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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7.27 조회 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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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쓰는 역사, 무용 아카이브

김현옥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학예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은 연극, 무용, 음악, 시각, 다원, 융복합 장르 등 기초예술 분야의 기록 및 정보자료를 수집하여 보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예술 전문 아카이브 기관이다. 수집 자료는 기본적으로 출처의 원칙과 원질서의 원칙에 따라 정리한다. 수집을 할 때에는 서로 다른 예술가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자료를 섞어서 정리하지 않는 출처의 원칙과 당초에 정리된 상태나 질서를 가능한 유지하는 원질서의 원칙을 지킨다. 예술인 스스로, 현재 진행 중인 자신의 창작 작업을 기록하는 것이 무용 아카이브, 예술 아카이브의 첫 걸음이다.



과정을 담은 기록물은 더 본질적이고 더 실체에 가깝다.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 역사 속에서 많은 예술 기록물들은 폐기, 은폐, 왜곡, 훼손되었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예술은 작품으로 말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강조하다 보니,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기록물을 남기는 것에는 소홀하다. 기록물만큼 과거의 상황, 행위, 생각, 반응을 제대로 담아내는 산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기록물은 기호, 이미지, 소리, 문자, 그림, 움직임 등 여러 수단이 동원된 매우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행위이다.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창작 작업에만 몰두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또 다른 행위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목적과 의도로 기록물을 생산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기록물에 대한 평가와 폐기 작업, 특히 디지털 파일일 경우 복본 제작은 필수적이며, 중요한 기록물을 선별해 정확한 정보를 기입해 두는 것이 좋다. 기록물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정보적 가치, 증거의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 기록물은 결과보다는 그 결과를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더 본질적이며 실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춤 자체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정보도 예술 아카이브의 중요한 대상이다.


무용에도 대본이나 악보와 비교할 수 있는 무보(舞譜)가 있긴 하나, 훨씬 복잡하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영상 매체의 발달은 무용 아카이브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영상 기록만으로는 예술가의 철학이나 미학, 당대의 제작 환경, 제도 등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가능하다면, 하나의 무용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생산되는 일체의 자료들을 컬렉션 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대본, 악보, 무보, 오디션 및 제작발표회 등의 자료, 연출노트, 안무노트, 제작일지, 무대미술자료(스케치, 도면 등), 팸플릿, 포스터, 보도자료, 공연 영상, 사진, 인터뷰 자료, 다큐멘터리, 행정 기록물(기획서, 대관신청서, 기금신청서 등) 등은 물론이고, 공연에 대한 평가, 통계, 연구논문, 보고서 등 연구 관련 자료, 그리고 극장 관련 자료나 예술가 개인의 메모, 일기, 서신 등도 중요한 기록물이다.



무엇을 수집해서 영구 보존할 것인지 선별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기록물을 생산하는 주체든, 생산된 기록물을 수집하는 기관이든 무엇을 아카이빙 할 것인가를 선별하는 일은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역사적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자료원은 기획수집과 기획제작으로 구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기획 수집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 진행한다.



줌아웃 안내노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학예사 김현옥 관련 사진



대표적인 무용분야 기획수집으로는 무용 평론가 故 김영태 컬렉션(공연 프로그램, 예술가 캐리커처, 단행본, 육필원고, 애장품 등 약 27,600건 기증), 안무가이자 발레의 선구자 故 임성남 컬렉션(공연 영상, 사진, 안무노트, 서신, 일기, 발레슈즈 등 약 1만 건 기탁), 한국 창작춤의 대모 김매자 컬렉션(공연 영상, 프로그램, 사진, 각종 행정기록물 등 약 8천여 건 기증) 등이 있다. 수없이 많은 무용 공연과 무용인의 초상을 찍어온 사진작가 김찬복선생과 송인호선생의 사진 필름 원본도 소장하고 있다. 예술자료원은 1979년부터 예술적, 자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공연의 실황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공연영상 제작사업’을 진행하고 있다(현재까지 약 1,900여 편 자체 제작). 무용의 경우는 주요 예술상 수상작(대한민국무용대상 베스트7, 대한민국무용대상 솔로&듀엣5), 주요 행사, 주요 안무가의 신작 및 대표작을 선정해 제작한다. 2016년에는 88편(연극 48편, 무용 40편)을 제작했다. 이는 연간 공연 19,896건(출처: 문예연감 2016) 대비 0.4% 제작에 불과한 수준으로, 공공기관의 기록화 사업은 무용 아카이브에 있어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 노인이 작고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


자료원에서는 예술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이에 따른 예술사 연구의 단절과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예술인의 기억을 말로 풀어내는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동일한 사료를 활용하여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을 구술채록으로 보완하고, 예술가의 생애와 예술적 체험을 미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자료원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연극, 무용, 음악, 시각, 대중예술,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총 288인의 구술 기록을 확보하였다. 무용 분야의 생애 기록으로는 김천흥(1909), 송범(1926), 김수악(1924), 전황(1927), 이매방(1927), 조동화(1922), 문장원(1917), 정병호(1927), 김백봉(1927), 육완순(1933), 강선영(1925) 등 22인이며 주제사 채록은 ‘해방 이후 한국 근·현대 무용교육과 무용 창작의 정착 과정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47인과 ‘20세기 후반 참여 지향의 춤 흐름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5인의 구술채록이 진행되었다. 이는 예술사, 문화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활용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

여기까지 기록의 중요성, 산출 기록물의 유형 그리고 아카이브 현황을 간략히 소개했다. 예술자료원은 예술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예술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김현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학예사. 연극을 공부했고, 2010년부터 예술자료원에서 공연예술분야 기획수집과 예술인 구술채록사업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김현옥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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