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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5.25 조회 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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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춤과 음악: 춤과 음악이 어우러졌던 때

[기획연재] 춤과 음악



춤과 음악의 공통 특성을 찾아 떠나는 기획. 음악과 춤이 발원하는 뇌와 몸에 대한 성찰로부터,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거나 거리를 둔 관계, 새로운 춤으로서의 음악에 대해 생각해본다. ‘춤과 음악’에서는 배타적인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춤과 음악이 향유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안하며, 무용계와 음악계의 성찰과 자기반성을 촉구한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졌던 때

김진호_작곡가·음악학자

들어가며


오늘날 음악이 빠진 춤 혹은 무용의 공연은 찾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춤은 음악을 여전히 필요로 한다. 반면 오늘날의 많은 예술적 서양음악은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춤과 무관해 보인다. 이 글은 춤과 음악이 어우러졌던 때, 즉 과거의 예술 이야기를 한다. 서양에서 이 과거는 대충 바로크 시대까지다. 바로크 시대가 끝난 후인 1750년부터 매우 독특한 음악 장르가 등장한다. 예술적이며 비실용적인 기악이라는 장르. 교향곡이나 소나타 같은 기악, 즉 악기들로만 연주되는 음악이 서양의 고전주의 시대에 성행하는데, 이 장르들과 함께 서양인들은 비로소 춤과 분리된 음악의 세계를 알게 된다. 그 이전까지 인류가 알고 지냈던 ‘춤과 음악의 어우러짐 프레임’을 깨버린 세계였다. 이 독특한 세계에서도 음악은 저 깊은 내면에 있어서는 춤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음 연재 글에서 다룰 이야기다. 여기서는 과거 이야기를 해보자.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먼저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이야기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믿었던 신들을 위해 제의(祭儀)를 벌였다. 여러 제의들 중 특히 디오니소스 제의에서는 음악이 춤을 포함해 여러 요소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무용인 김말복에 따르면 디시람브(Dithyramb)는 디오니소스 제의 중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여기서는 50여명의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행진하면서 디오니소스 신의 생애를 춤과 마임으로 표현했다.(김말복, 2003) 김말복은 디시람브에 음악이 있었다고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는데,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통해 보충해보면 디시람브를 포함한 디오니소스 제의에는 음악이 있었다. 우선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법률>(Laws)과 <국가>(The Republic)에서 디시람브에 대해 언급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다양한 음악에 대해 소개하는 <법률>에서 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는 디시람브가 음악의 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국가>의 저자 플라톤에 따르면 디시람브는 시인이 발화하는 시(詩)다. <법률>과 <국가>는 각각 디시람브의 서로 다른 측면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단의 근거는 플라톤의 후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통해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디시람브에 운문(verse)이 많이 들어오면서 그리스 비극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디시람브는 변천과정을 겪은 셈이다. 김말복도 이에 대해 말한다. 디시람브는 “다산과 부활을 비는 제례의식이 격식을 갖춘 합창과 연극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김말복, 2003) 음악으로서의 디시람브에서 춤이 빠지지 않았다는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이외에도 적지 않다.

디오니소스는 풍요 및 다산의 신, 그리고 황홀경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눈을 감고 추상적인 음악만을 들으면서도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었을 수 있다. 여기서 지적해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황홀한 감정은 주로 종합적 경험을 통해 얻어졌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졌던 것은 다양한 예술 장르가 어우러지는 경험이자 예술적이면서도 정치적이고, 또한 종교적이기까지 했던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심지어 제의 속에서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춤추고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종합적 경험이 황홀감을 줄 수 있다.)

예술학자들 중에서는 예술의 기원을 제의에서 끌어낸 이들이 있는데, 영국의 언어학자 제인 해리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해리슨에 의하면 디오니소스 제의가 이루어지던 원형극장의 중심에는 ‘오케스트라’(orchestra)라고 불리는 원형 공터가 있었다. 장소를 지칭하는 용어였던 오케스트라에서 춤과 노래가 섞인 코레이아(choreia)가 이루어졌다. 코레이아는 집단적 춤을 의미하는 코로스(choros)에서 유래했다.(Jane Harrison, 재인용: 김융희, 2008) 오케스트라가 오늘날 전문적 악기연주자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바뀌었듯 집단적 춤을 의미하는 코로스도 합창(chorus)으로 뜻이 바뀌었다. 용어의 변천사와 무관하게 고대 그리스에서 음악과 춤은 같이 어우러졌었다.



근대적 기악음악, 춤곡으로 등장하여 춤을 지워내다.


음악에서의 고전주의 시대(1750~1810)에 악기들로만 연주되는 기악이 처음 등장해 춤과 음악의 오랜 동거를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끝냈다고 했다. 그런데 기악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춤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춤곡으로 등장했다. 춤곡으로서의 기악이 나중에 춤을 버린 것이다. 기악은 적어도 춤에 대해서는 배은망덕했다.

기악은 바로크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바로크 예술은 절대왕정 치하 프랑스에서 성행했다. 루이 14세는 왕권을 강화했다. 바야흐로 프랑스의 전성기였다. 이전부터 궁정과 귀족 계급의 위안거리였던 발레를 루이 14세의 국가가 처음으로 인정하고 육성했다. 1661년 파리에 왕립무용학교가 설립되었다. 1672년 이 학교는 음악을 추가해 왕립음악무용학교로 변신했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 내려오는 프랑스 국립음악무용학교다. 루이 14세는 왕립음악무용학교의 교장으로 왕을 위한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를 임명했다. 륄리는 오늘날 작곡가로 알려져 있지만 루이 14에게 고용될 당시에는 무용수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태양왕에게 음악과 무용은 긴밀히 연결된 것이었고, 그 연결의 정신만큼은 프랑스 국립음악무용학교로 이어져오고 있다.

절대왕정 치하의 프랑스는 고전 발레를 위한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부강한 나라 프랑스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외교 사신들과 경제인들이 몰려들었다. 파리는 이들의 호화로운 사교지로 유명세를 보였고, 여러 나라들의 다양한 춤곡이 이 사교장에서 소개되었다. 왈츠, 사라반드, 에어, 지그, 미뉴에트 등. 작곡가들은 이제 새로운 물주를 만나게 된다. 춤곡을 의뢰하는 이들. 춤곡으로서의 기악곡들이 작곡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음악은 주로 종교적 성악곡이었다. 성악으로부터 독립된 기악은 이렇듯 출발점에선 춤곡이었다. 그랬던 춤곡이 춤과 무관한 기악으로 발전한다. 발레 혹은 춤과 무관해 보이는 근엄한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춤곡으로서의 기악곡을 다수 작곡했다.



선사시대 이야기


최근 여러 분야에서 고대 그리스 이전의 이야기들이 연구되고 있다. 음악과 춤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과 동물행동학의 도움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이에고르 레즈니코프 같은 음악적 고고학자들은 동굴을 탐사할 때 노래를 부른다. 길고 깊은 동굴 중에서 특히 노래의 울림이 가장 좋은 곳이 있다. 그곳에서 조상들이 축제를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노래 울림이 가장 좋은 곳에서 조상들은 춤도 추고 그림도 그렸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선사시대의 그림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내리는 추측이다.(Whipps, 2008) 학자들은 또한 그림이 발굴된 곳이 춤추기에도 적합하다고 입을 모은다. 선사시대 축제의 장은 생활의 장이기도 했다. 생활용품으로서의 유적 또한 출토될 가능성이 크다. 고고학자들은 예술과 제의, 생활이 한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추측한다. 선사시대의 예술은 오늘날처럼 분리된 전문적 활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가며


춤과 음악은 한때 어우러졌다. 드러난 현상이다. 원인이 있을까. 동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원인을 추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특이한 소리를 내며 춤 비슷한 특이한 율동을 보여주는 동물들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영국의 유명한 영장류 연구가 제인 구달은 침팬지 수컷들이 비가 오면 ‘비춤’을 춘다고 말한다. 이것은 나무 흔들기, 두 발로 뛰어다니기, 발 구르기,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을 두드리기와 같은 행동들이 결합한, 느리고 율동적인 춤이다. 미학자 엘렌 디사나약은 침팬지들의 이러한 과시적 춤을 원형적 예술 활동의 동물적 예로 보고 있다.(디사나약, 2009) 춤과 음악의 어우러짐은 이렇게 우리 인간의 시간대를 넘는 이야기다.

동물과 인간은 모두 세계에 직면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존재로서 우리는 감정을 포함한 다양한 마음을 발달시킨다. 사람들은 음악을 그로부터 감정을 느끼는 어떤 자극으로 생각한다.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은 음악의 감정적/정서적 의미를 ‘음악의 배후에 있는 세계’라고 불렀다.(재인용: 색스, 2010) 음악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낀 이들은 종종 자기도 모르게 발을 구르거나, 어깨를 들썩인다. 감정은 영어로 ‘emotion’인데, 이 단어는 움직임 혹은 운동을 뜻하는 ‘motion’과 ‘out’의 의미를 가지는 접두어 ‘e’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이렇게 분해된 단어가 암시하는 바가 있다. 감정은 바깥으로 분출된 운동 혹은 움직임이라는 것. 감상자가 음악을 접해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는 춤을 추거나 육체적인 어떤 운동 반응을 보일 것이다.(김진호, 2017) 춤과 음악을 이은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세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과 동물이 진화시킨 특별한 마음이다. 춤과 음악을 연구할 때 감정을 비롯한 마음과 세계, 그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 김말복. 『무용 예술의 이해』 (서울: 이화여대출판부, 2003). · 김융희. 「예술의 기원을 찾아서」, 『철학, 예술을 읽다』 (경기도: 동녘, 2008). · 김진호.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서울: 갈무리, 2017). · 디사나약, 엘렌(김한영 역).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 (경기도: 예담, 2009). · 색스, 올리버(조석현 역).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서울: 이마고, 2010). · Whipps, Heather. 「Cave Men Loved to Sing」, Live Science-History, (http://www.livescience.com/2647-cave-men-loved-sing.html)




김진호_작곡가·음악학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4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여 음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안동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저서로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이 있다. 작곡가로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KBS교향악단이 연주했던 피아노 협주곡 <유리 절벽 위에서의 축제> 등이 있다. 현재 현대음악 및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보는 작곡가의 마음에 대해 연구 중이며 연구 결과가 최근『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김진호_작곡가·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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