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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2.23 조회 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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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댄스 체험기 - 우주의 사랑이 흘러드는 회오리 안에서

[독자기고]




수피댄스 체험기 - 우주의 사랑이 흘러드는 회오리 안에서

윤희섭_<춤:in> 독자

줌아웃 에세이 윤희섭 관련 사진

ⓒFarhad Bazazian


7년 동안의 여행 그리고 무작정 자전거 세계 일주. 중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파리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약 5,000킬로미터를 달렸다. 어느 터키인은 나에게 왜 가족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왜 그토록 세계를 떠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스탄불에서 배를 타고 얄로바라는 곳으로 갔다. 버스 기사들은 데브리시라는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100여 명의 여행자가 언덕에 친 색색의 텐트가 보였다. 평평한 곳을 골라 우리도 텐트를 쳤다. 불가리아에서 잠깐 자전거 여행을 함께 했던 터키계 독일 친구 우무트와 다시 만났다. 우무트는 여전히 신발 없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고, 여전히 옷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있었다. 난 우무트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곳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흥미로운 여행자들이 있었다. 이란, 불가리아,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등등. 긴 머리와 수염, 펑퍼짐한 옷, 어깨에 걸친 악기가 그들의 특징이었다. 아주 고요하고 예민한 영혼들이 흔하게 감지됐고, 난 말없이 그들의 존재를 즐겼다.
사나흘 동안 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회전을 지켜보는 것이 내 일과였다. 24시간 내내 돌아가며 음악가들은 연주했다. 밤 9시가 넘으면서 홀은 열정적이 됐고, 간혹 눈물을 쏟아내는 이도 있었다. 여자 친구가 수피 댄스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빙글빙글 도는 친구를 지켜보며 나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서 루미의 시를 읽었다.



<여인숙>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여자 친구는 뱃속에 새 생명을 품었고, 그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포옹과 선물을 줬다. 어느 여행자는 직접 뜨개질한 양말을 선물했다. 나는 태어날 아기의 형상을 그때 처음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내 친구 우무트에게는 '우주 아빠'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기가 자라면 언젠가 너한테 보낼게. 잠깐 같이 여행해 줘. 그게 우주 아빠로서 역할이야." 친구는 흔쾌히 허락했다. 아기가 자라면 나처럼 긴긴 여행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수피 댄스는 이란의 시인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가 창시한 신비주의 의식이다. 한쪽 팔은 하늘을, 다른 한쪽 팔은 땅을 향하고 팽이처럼 빙글빙글 돈다. 손 뻗은 하늘에서 우주와 합일을 이루고, 발 디딘 땅을 향해 우주적 사랑이 흘러든다는 뜻이다. 쉬지 않고 돌다가 문득 티끌 같은 자아가 광대한 우주에 포개지는 무아지경의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다음 날, 나도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명상하다가 일어나 무대에 올랐다. 천천히 빙글빙글 돌았다.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 나무로 된 무대는 미끌미끌했다. 넘어지진 않을까 다른 이를 방해하진 않을까 주의하며 천천히 회전했다. 내가 선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감은 눈을 가끔 떴다. 무대 주위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이들이 보였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이는 고이 잠이 들었다. 나는 그 영감 가득한 공간이 좋았다. 24시간 내내 수피 음악이 계속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터키어 가사였지만 친구는 그것이 루미의 시에서 왔다고 했다.



줌아웃 에세이 윤희섭 관련 사진

ⓒFarhad Bazazian



리듬이 몸에 흡수됐다. 차츰 회전은 빨라졌고, 어깨 위에 얹었던 손은 수평선처럼 펼쳐졌다. 어느 여행자가 입은 긴치마가 꽃잎처럼 둥글게 펼쳐졌다. 나는 음악의 울림과 명상하는 이들의 고요와 회전의 관성에 몸을 맡겼다. 나는 마음속에 나선은하를 떠올렸다. 우주의 시간으로 은하가 회전했다. 우리 은하의 한쪽 끝, 태양계와 지구가 내 손가락 끝에 있었다. 시간과 생명의 역사가 회전하는 몸을 타고 내 안에서 스쳐 갔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내 안의 세계가 웃고 있다고 느꼈다. 마음껏 웃었다. 환희였다. 나는 천천히 회전의 속도를 늦추고 두 손을 포개 어깨 위에 얹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많은 이가 보였다. 그들이 느낄 황홀경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춤을 끝낸 나는 무릎 굽혀 예를 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팔각형 모양의 무대 끝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빈자리를 찾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계속되는 몸 안의 회전을 느꼈다. 두 손바닥은 펼친 채 허공을 향했다. 거대한 힘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내 몸 안에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고 거대한 힘이 흘렀다. 황홀경인지 무아지경인지, '내가 녹아 우주에 흐르는' 경험을 했다. 찰나는 영원처럼 길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한 송이 들꽃에서 우주를, 한 손안에 무한을, 한순간에 영원을'

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 시 한 줄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계를 다 보고 싶었고, 난 어디에서 온 누구이며,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나라, 모든 책을 여행하면 허공에 뜬 질문에 뚝 하고 답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적힌 한 줄 'How the light gets in'을 보고 한 친구가 말했다. "수피 게더링(Sufi gathering) 기간 내내 네 티셔츠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다. 그것이 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이다.’ 레오나드 코헨의 시야." 그랬다. 내 안의 어떤 균열이 내가 끊임없이 빙글빙글 지구를 돌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오랜 여행 후 나는 그 균열을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친구들은 떠났고 우리도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이 마르면 떠나기로 했다. 그 후 3일 내내 비가 내려 빨래는 언제나 촉촉함을 유지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들과 온종일 내리는 비를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많은 친구들이 떼 지어 루미의 도시 코냐로 갔고 나와 여자 친구는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남터키로 떠났다.

p.s 그때 여자 친구의 배 속에서 자라던 아기는 수중 분만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사일러스', '고요'라는 이름의 아기는 웃으며 울며 13개월 동안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7년 5월부터 터키의 얄로바에서는 114일 동안 수피 게더링이 열립니다.




에세이의 배경이 된 터키 중부의 도시 콘야(Konya)는 메블라나 루미(Mevlana Rumi)의 죽음을 기리는 축제기간 중 유명한 수피댄스 의식이 열리는 곳이다. 의식은 매년 12월 중순에 일주일 동안 열리고 12월 17일에는 축제가 절정에 달한다.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자였던 메블라나 루미는 콘야에 메블라나 수피교단을 세웠고 그의 아들은 데르비시(수피교단의 탁발 수도승) 형제단을 만들었다. 이들의 독특한 춤추는 행위는 기쁠 때 종종 거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던 메블라나의 습관에서 유래한 것이다.
터키에서는 세마(sema)라고 하는 이 수피댄스 의식이 시작되면 데르비시들은 수의를 상징하는 하얀색 긴 예복과 검은 망토를 입고 속세의 무덤과 묘비를 상징하는 원뿔꼴의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데르비시들은 홀 주위를 세 차례 돌고 나서 속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을 상징하며 검은 망토를 벗어던진다. 그리고 팔을 교차해 접어 가슴에 붙이고 고개는 비스듬이 숙인 채 한 명씩 차례로 무대를 누비며 돈다. 회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팔도 펼쳐지며 오른쪽 손바닥은 하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위로 향하고, 왼쪽 손바닥은 은총을 지상으로 전하기 위해 아래로 향한다. 이들은 춤을 네 차례 반복한 다음 코란의 구절을 읽고 의식을 끝낸다.1)
UN에서는 루미의 사상과 철학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탄생 800주년이 되던 2007년을 루미(Rumi)의 해로 선정하기도 했다.2) 이에 터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그의 탄생을 기리는 행사가 개최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8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서울교대 강당에서 수피댄스 공연3)이 한 차례 이루어진 바 있다. 한 자리에 못 박힌 듯이 뱅글뱅글 도는 독특한 형태를 지닌 수피댄스는 원형 그 자체로도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이 수피댄스에 영감을 받은 안무가가 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제18회 서울 세계무용축제(SIDance 2015)에서 터키 전통 수피댄스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데르비시>4)라는 작품인데, 아래 주소로 들어가 보면 짧게나마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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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1) 내셔널 지오그래픽(2008). 『일생에 한 번은 가고 싶은 성지 여행(세계여행사전 3)』. 이선희 외 역(2012). (고양: 터치아트). pp. 496-497.
2)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926764&thread=07r02
3) 김애옥(2012). 『초콜릿처럼 글쓰기』. (서울: 답게). p. 280.
4)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487&contents_id=98455




윤희섭_<춤:in>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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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0 / 300자

  • 지나가다가2020-04-23

    멋진 글이에요... 춤으로서 우주와 합일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