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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2.23 조회 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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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Talking: 뉴욕 거리 토크

2017 SDC-MR 교환 프로그램, 장혜진- 황수현 대화

장혜진_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뉴욕의 거리에서 뉴욕의 움직임거리, 사람거리, 공연거리, 공유거리 등을 논하다.


황수현 안무가의 2017년 뉴욕 레지던시는 서울무용센터와 미국 무브먼트 리서치(Movement Research)의 교류(MRX) 외에도, 뉴욕이라는 곳에서 일정 기간 예술가로서 살아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이라는 지형도 안에서 좌표를 움직이며 걸어 다니는 순간의 감각을 대화에 담아보기 위하여 거리 토크를 진행했다.



줌아웃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장혜진 관련 사진

ⓒ장혜진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장혜진: 뉴욕에서의 지난 시간들이 어떠셨어요? 이렇게 타지에서 타자이자 인사이더로서 머물 때 느껴지는 감정이 궁금해요.

황수현: 아는 상태와 모르는 상태가 어떻게 다른 지 알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더 크게 다가오네요. 레지던시 과정에서는 관찰자 입장이 되니 흥미로워요. 직접 행동하는 것 그리고 밖에서 살펴보는 것 속에서 수행성을 찾고 있어요. 저 나름대로의 질문을 다시 만들어나가는 때인 것 같기도 해요. 작가로서 질문이 좁혀지는 느낌이에요.

장혜진: 아, 그런 감각은 예술가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는 지와 관계가 있는 것도 같아요. 여행 중에는 주로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죠.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그렇게 '관찰자'로 느껴지는 지점들이 발생하지요. 그래도 무브먼트 리서치 교환 작가로서의 입장과 위치는 조금 다를 수도요.

황수현: 그렇죠. 합의된 아티스트로 왔다는 것. 그냥 class-taker 로서 온 것은 아니니까요. 또한 속 시원한 점은 굳이 아티스트로서 원점부터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있어요. (웃음)

장혜진: 주로 어떠한 질문을 받나요? 저의 경우는 몇 주 전 아브론아츠센터(Abrons Arts Center)에서 제닌 더닝 워크숍 참관 후에 버스정류장에서 수현 씨와 함께 있을 때 받았던 질문을 많이 받아요. "What kind of work do you do? 어떤 작업을 하세요?"

황수현: 저는 background에 대한 질문이요. "What is your background?" 그렇게 묻더라고요.

장혜진: 아 그 질문이요? 그건 대부분 작가의 작업 이력을 물어보는 것이긴 한데, 프로필 혹은 전공 에 대한 질문일 때도 있어요. 때로는 어떠한 매체를 활용해서 작업을 하느냐는 질문이죠.

황수현: 네, 그런데 저의 백그라운드를 이들은 거의 모르잖아요. 제가 말해도! (웃음) 그런 역사적 코드의 분실과 소멸을 경험하는 것도 통쾌했어요. 결국 배경은 지나가고 '작품'이라는 것만 남는 것 같아요.

장혜진: 또 여기서 받은 질문들이나, 아티스트들과의 교류에서는 어떤 점이 특이했어요?

황수현: 여기 아티스트들이 교류에 완전 오픈 되어 있다는 거요. 참 인상적이었어요. 잠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더라도 먼저 컨택을 해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장혜진: 아, 그때 만나본다고 하셨던 안무가들은 잘 만나보셨어요?

황수현: 네, 무브먼트 리서치 예술가 모임에서 알게 된 마리아나 발렌시아(Mariana Valencia)와의 만남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발렌시아가 먼저 이메일로 만나자고 제안했는데 발렌시아의 작품 세계, 그리고 저의 작품관 등을 공유하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또 만나자고 손 내밀어준 아티스트는 우르슐라 애글리(Ursula Eagly)에요. 애글리는 저와 같은 교류 작가(MRX)로 올해 10월에 서울무용센터에서 레지던시를 하게 되는 파트너예요. 두 사람과의 만남이 의미 있었던 것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아티스트로 인식하고 운영하는지 사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두 아티스트 모두 웹사이트도 아주 재미있어 보이던데요.



줌아웃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장혜진 관련 사진

ⓒ마리아나 발렌시아와 우르슐라 애글리의 홈페이지


뉴욕에서의 동선


장혜진: 수현 씨와 처음 저드슨 처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이야기했지만, 저에게 뉴욕의 컨템포러리 씬이 자극적인 이유는, 이 도시의 성격에 걸맞게 수많은 사례를 최단 기간에 제공해 준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수현 씨는 뉴욕에서 벌써 두 달 남짓 지냈는데. 뉴욕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거리는 어디였나요?

황수현: 기억에 남는 거리라.. 연습실 가는 길? (웃음)

장혜진: 아, 저기 에비뉴 C에 있는?

황수현: 네, 에비뉴 C에 있는 Movement Research 연습실이랑 워크숍이 진행되었던 아브론아츠센터 가는 길이요. 집에서 가까우니까 그 길들은 지도를 안보고 걸어도 될 정도로 친숙했어요. 거리를 진짜 보게 되더라고요.

장혜진: 주로 어떤 생각하셨어요 이렇게 걸을 때?

황수현: 음… 시기적으로는 두 섹션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3주 워크숍을 들었던 시간과 이후 2주간 연습을 했던 시간. 그러고 보니 워크숍 들었던 시간은 너무 옛날 같네요. 그때는 영어도 그렇고, 너무 긴장하고 어색해하며 이 길을 걸어갔는데.. 나중에는 그냥 일처럼. 수행하듯이 길목을 걸었어요. 집에서 되게 가까우니까. 8분? 그냥 연습복 입고 갔다가 돌아오는… (웃음) 어렸을 때 클래스 다닐 때 느낌도 들었어요.

장혜진: 정말 교복입고 학교 가는 기분으로요?

황수현: 네 정말! (웃음)



줌아웃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장혜진 관련 사진

ⓒ황수현, 장혜진


장혜진: 수업 듣기 전 아침에는 주로 무얼 하셨어요?

황수현: 수업 전에는 다른 것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침을 맛있게 먹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었어요.

장혜진: 그것도 중요한 일이죠. 알렉산더 테크닉 수업이 좋으셨다고 했지요? 그 테크닉에서 사용하는 기법들이 수현 씨 이번 작품 안에서 육성을 응용하는 부분과 교집합이 있어 보이던데요.

황수현: 사실 알렉산더 테크닉이 보이스 하시던 분이 내어놓은 테크닉이라 들었어요. 저는 그야말로 실기 베이스로 몸으로 알아내는 것이었는데요. 연습하다 깨닫고, 찾아보고의 과정을 반복하던 중 이 워크숍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와 접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죠.

장혜진: 어땠어요? 알렉산더 테크닉이라는 라벨 아래서 정보를 배울 때에? 자극이 되었다거나?

황수현: 기본적으로 제가 알게 된 선 안에서는 알렉산더 테크닉이란 몸에서 뼈에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근육을 사용하기 위해서 다른 큰 근육을 이완시키는 테크닉 인데.. 이와 같은 훈련 속에서 본인의 '습관'을 발견하는 거죠. 그것을 또 버리려고 해보고. 자기 몸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상태. 그 생김의 상태, 주어진 골격 구조 안에서 가장 쉽게 움직이는 법 등을 찾아보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사실 그 자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지만, 편하게 움직이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요. (웃음)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무브먼트 범위를 넓히는 실험을 할 수 있을까, 넓혀진 범위 속에서 움직임 자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몸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에 접근하는 게 더 흥미로워요. 몸에 대한 자각과 편안함, 효율성 등이 목표가 아니라, 그 위에 안무적으로 아이디어를 어떻게 입힐 것인가를 질문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죠.

장혜진: 알렉산더 테크닉이 안무법은 아니니, 몸을 탐구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작용한 것 아닐까요? 이렇게 사례와 데이터가 축적되는 것이지요.

황수현: 그리고 실은 다른 이들의 안무법이 궁금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원론적으로 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사례가 필요했던 것은 맞아요.

장혜진: 그렇죠. 왜냐하면 몸을 리서치 하는 방법과 무대를 구현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라 생각해요. 연출이라는 최종 도달점이 있는 지 없는 지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인 것이죠.

황수현: 네, 그렇게 리서치의 방향과 결이 다르다 하더라도 몸을 리서치 해야 하는 동기는 명백히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나서 어떻게 이를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운영하는지, 또한 정확하게 무엇을 수용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해요. 작품을 꾸려나가는데 있어서도요.

장혜진: 정보를 받아들이는 센서로서의 몸. 몸의 감각(sensorium)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한 감각을 열어내는 것이 왜 수현 씨 작품에서 중요한 지 알겠네요. 감각들을 이론화하고 이를 프랙티스로 가르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이번 무브먼트 리서치의 MELT 워크숍에서 셸리 센터(Shelley Senter)의 <알렉산더 테크닉: 비판적 실천(Alexander Technique: A Critical Practice)>에서는 비판적 담화와 함께 알렉산더 이론들 그리고 각자의 감각적 경험을 모두 스튜디오로 초청한 것 같아 보여서 흥미로웠어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전형적 신체적(somatic) 코드를 벗어난 수현 씨만의 몸에 대한 접근, 연구 등도 워크숍으로 꾸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떠세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황수현: 아, 그건 다음기회에… 생각해볼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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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장혜진: 워크숍 기간 이후 연습실에서 작업하는 2주 동안은 어땠나요?

황수현: 사실 워크숍하는 3주 동안에는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고, 일정도 있었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하느라 개인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그러다 워크숍이 끝나고, 에비뉴 씨 연습실에 다니게 되었죠. 개인적으로는 그 시간이 더 좋긴 했어요. 그냥 완전하게 저 홀로 작업하러 가는 시간이니까. 주는 것을 받는 시간이 아니니까요.

장혜진: 수현씨 보면서 혼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때 저희 브루클린 음악원(Brooklyn Academy of Music)에서 바체바(Batsheva)의 <마지막 작업(Last work)>이라는 공연을 보기 위해 로비에서 만났을 때 생각이 나요. 제가 좀 늦어서 멀리서 수현씨를 찾아 걸어가는데, 북적거리는 로비에서 혼자 안무노트를 들고 골똘히 서 계시다가 이렇게 노트를 꺼내 무언가 기록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도착하며 안무 노트를 가리키며 "거기에 무엇이 있어요?" 하고 물어봤던 것 같아요.

황수현: 아…(웃음) 저는 뭐든 적어야 하거든요. 생각나는 것 있으면 무조건 적는데, 문제는 적어놓고도 잘 들춰보지 않아서 기억을 못해요.

장혜진: 저도 많이 그래요. 적는 행위자체가 중요한 것이죠.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FOMO'라고 요새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Fear of missing out'. 때로는 무엇인가 나를 지나치고 떠나갈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것인지, 실제 기록이라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때도 있어요. 수현 씨의 경우도 길 가를 걸으시면서, 연습실에서도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인가 봐요.

황수현: 네,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몸풀기보다 생각 정리를 먼저 해요. 내가 오늘 와서 무엇을 할 건지.

장혜진: 아 몸보다 손 혹은 사유의 흐름을 풀어내는 것 같네요.

황수현: 네, 생각이 막 쏟아지면, 손으로 무언가 그려보던지 노트 위에 끌어내 보려 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무언가 정리가 되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요. 그것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요.



줌아웃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장혜진 관련 사진

ⓒ황수현


황수현: 특히 이번 연습기간의 경우는 하루에 3시간이라는 제한이 있어서 매일 질문을 먼저 정리했던 것 같아요. 전날 가지고 있던 질문을 다시 오늘 물어보기도 해요. 사실은 이 눈물 프로젝트의 시초인 <For it to end>라는 과거 솔로 작품을 준비해서 선보일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프로젝터와 의상을 한국에서부터 가져왔는데, 프로젝터의 사용이 저드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또한 무언가 기존의 것을 보여주기보다 이번 저드슨 공연에서는 내게 필요한 것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에서는 무엇이든 실험해볼 수 있으니까요. 저드슨에서 공연되는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보아도 너무 꽉 짜인 작업보다는 아이디어가 보이는 것, 날것들이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뉴욕의 공연 거리


장혜진: 저드슨에서 보셨던 작품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이었어요?

황수현: 멕시코에서 온 교류 아티스트 애나 파울라 카마르고(Ana Paula Camargo)와 페르민 마르티네즈(Fermin Martinez)의 작업이요! 그들의 작업은 정말 날것 그 자체였어요. 그들 또한 2주 레지던시를 거쳤다고 하고, 자기들이 실험해본 것들을 준비해서 더 보태지 않고 빼내지도 않고 고스란히 보여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두 퍼포머가 박스를 장착하고 움직임을 실험하는 작업이었는데, 아이디어가 대단했다기 보다는 박스라는 것을 분해해서 이렇게 저렇게 변형되게 해 놓고 몸도 유기적으로 변화시켜 보는 그 접근들, 그리고 시간을 정해놓았다는 지점, 이러한 키치한 실험을 둘이서 같이 해보고 있다는 것, 또 즉흥적으로 안무한걸 실행해보고 지켜보는 것 등이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우리 관객들이 이미 박스는 어떻게 움직여진다는 것을 '알고' 보고 있다는 것. 일반화된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니까 그것이 재미있었어요. 저드슨에서 추구하는 것들과 잘 맞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혜진: 저도 그들의 작품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실은 그 공연이 끝나고 그들과 같은 열차를 타고 귀가하게 되어서, 제가 느꼈던 것들을 그들과 나눌 수 있는데 기회가 있었는데, '일어서려고 하다'라는 동사가 심플하게 explore되고 있다는 생각을 말했어요. 해체된 박스는 사람 없이 서 있을 수 없기에, 사람의 몸의 현존성으로 일으키려하는 부분들, 사람 없이는 이가 무너지는 지점들이 정치적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또 하나는, 'A practice of finding exit'. 출구를 찾는 연습으로 보였지요. 손, 발 등의 출구를 찾고, 몸의 여러 부위의 출구를 찾는 것. 아니면 몸 자체가 아예 박스에서 벗어나는 것 등 출구에 대한 지시 또한 정치적으로 다가오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황수현: 네, 심플한데 상상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작업들이 Work-In-Progress 쇼잉에서는 가장 좋은 모델이 아닌가 해요.

장혜진: 이들이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 관객과 공유한 질문도 우리가 작품을 읽는 새로운 독법을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이 질문들을 "과정 속에서 우리를 움직인 질문들 (the questions which set this process in motion)" 이라고 표현했어요. 질문의 키워드였던 Encounter(맞닥뜨림), Frailty(약점), Recognizing each other(서로를 알아차림), Dissidence(반체제), Control/Power(통제/권력), Biopolitics(생정치학) 등의 흐름도 흥미로웠고요. "In what way are we together? (어떤 점에서 우리는 함께 있습니까?)" 라는 질문, 그리고 또한 'hacking'이라는 단어의 등장도 큰 의외성을 가졌어요. "How do we hack into our relationships?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해킹합니까?"

황수현: 그 안에 제 작업에서의 질문들과 마주하는 것들도 있었어요. 저 또한 이번 솔로 Work-In-Progress에서는 '이미지'를 가지고 리서치 해봤는데, 이들도 박스 안에 몸이 어떻게 나와있냐에 따라서 어떻게 이미지가 만들어지느냐. 박스와 몸이 어떻게 닿고 있고 이에 따라 내러티브가 어떻게 전환되는가, 이러한 실험들을 실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장혜진: 네. 이들의 작품 <untitled>는 전형적인 응답 형식이었어요. A가 말하고 B가 대답하는 형식이요. 식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수현 씨가 말씀하신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것을 저도 보았던 것 같아요. 그들이 박스 안에 있었지만, 마치 밖에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듯 했어요. 그만큼 밖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잘 인지하고 있는 선택들이 일어난 것이지요. 마치 본인이라는 위성이 밖에도 존재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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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황수현: 그리고 이러한 실험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저드슨의 취지와 관객들의 수용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드슨의 역사적 실험 정신의 축척이 그 공간 안에 가득한 것이죠.

장혜진: 그냥 날것으로는 이런 만족감까지 주기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 무언가 반드시 플러스 알파가 존재하기에 그 날것에 끌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무엇일까요?

황수현: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시도한다는 아이디어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험정신'만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험방법' 같은 것들이 드러나야지요.

장혜진: 아, 매우 흥미로워요. 실험정신으로는 불충분하다. 실험방법 혹은 '무엇을' 실험하느냐는 목적어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황수현: 그리고 이 실험 안에서 관객들과 공유해야겠다고 선택하는 사항들이 무엇이냐는 거죠. 사실 여기서 말하는 실험방법이라는 것이 공연예술에 대한 코멘트라고 생각해요. 날것을 어떻게 공적으로 내어 놓느냐. 날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 공연예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안에서의 날 것이어야 한다 생각해요. 그것들이 더 명확하게 있어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앎'이 일어나니까요.



뉴욕에서의 공유거리


장혜진: 그렇다면 수현 씨 본인의 저드슨 작품 <methods of crying>의 경우 무엇을 실험하셨고, 어떠한 실험정신이나 방법을 가지셨는지?

황수현: 하하 그러니까요..한국에서 작품을 만들 때 관객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더 퍼포머티브하게 만드는 성향이 내게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렇기에 그것을 잠시 놓고 Working-In-Progress로 접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얼마만큼을 포맷 안에 넣어야 할 지. 특히 이번 울음에 관한 방법의 작품의 경우는 한국에서 그룹 작품으로 이미 구현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았던 것이죠.

장혜진: 아 울음이라고 부르니 더 재미있네요. 눈물 대신에. 울음. 동사니까요.

황수현: 한국에서 <I want to cry, but I'm not sad>를 작업할 때는 울기 위한 방법론으로 무용수들과 함께 호흡 패턴을 연구하고, 몸을 어떻게 인지하는 지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했어요. 미술관에서 공연화되는 과정에서는 그 호흡 등의 방법 위에 움직임을 덧입혔죠. 그러나 이번 솔로형태의 Work-In-Progress에서는 'Image'와 'Shape'에 대해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미지라는 것이 실제로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아요. 그래도 관객이 바라봤을 때 울음이라는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어떻게 매칭되는지 궁금했어요. 또 그 이미지와 매칭되었을 때 나의 몸의 상태, 이미지로부터 가져오는 shape들 등을 작업 앞부분에서 탐구해 보았고요. 거기에 사운드 - 내가 내는 소리들, 몸을 때려서 나는 소리들을 덧입혀본 것이죠. 이 소리들이란 사실 듣는 아이디어보다는 Body of Pain을 만들어가는 지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사운드들이 리듬화되기도 하죠. 세 가지의 복합적 요소 - 이미지, 사운드, 그리고 나의 몸이 울음으로 가는 상태 - 등으로 구성을 만들었어요. 한편, 즉흥 장면들의 경우 사실 전혀 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죠. 오히려 구성 안에서는 눈물을 흘리기가 쉬워요. 내가 어떤 타이밍에 어떤 형식으로 눈물을 흘릴지 컨트롤이 되는데, 즉흥 안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더 어렵더라고요. 계획이 안 되니까. 또 저드슨에서 주어진 15분이라는 시간 안에 해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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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Browne


장혜진: 이때 말씀하시는 이미지는 몸속에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몸이 지각하고 있는 이미지인건가요?

황수현: 관객이 보는 입장에서는 내가 놀란다든지, 무언가를 만든다든지, 또한 그 액팅에 맞는 표정들- 미간을 찌푸린다든지, 나의 호흡의 타이밍 등이 모두 이미지인 것 이죠. 그리고 제 몸 안에서의 이미지에는 호흡의 위치가 있을 수 있겠네요. 호흡을 어느 정도 멈추었다가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나타나는 호흡의 타이밍들이, 순간 내가 바라보는 이미지가 되어버리기도 해요. 하지만 이미지를 미리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고요.

장혜진: 작품을 보면서 viewing frame이 '초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안의 결정 요소들, 구조들, 움직임의 질감들이 우리의 시선을 퍼포머의 흉상이나 초상, 두상 쪽에 붙들어 놓는 요소들로 작용하더라고요.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지만, 마치 카메라 렌즈가 줌인이 되듯이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기존의 작품들이 공간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 졌다면 본 솔로에서는 초상적인 '상'을 발견했어요.

황수현: 이전 국립현대미술관 작업의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공간을 제가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저드슨은 보다 제한된 상황이기에, 공간이라는 아이디어 보다는 몸 속으로 더 들어온 것 같아요.

장혜진: 아니면, 몸이라는 공간을 사용하셨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황수현: 네, 몸 자체를 더 리서치하고 싶었다는 것이죠.



줌아웃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장혜진 관련 사진

ⓒWhitney Browne


장혜진: 또 작품 처음에 소리를 내면서 등장하셨기 때문에, 소리가 나는 그 공간 즉 두상, 흉상 근처로 저의 초점이 움직이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인과 관계가 발견되네요. 그러한 소리를 낸다는 선택, 앞머리로 눈을 가린다는 선택들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고 저의 독법을 조성하더라고요. 또한 텍스트의 사용에서 뒷문장인 'I'm not sad'가 먼저 소개되고, 후에 앞 문장 'I'm trying to cry, but'이 나오니까 더 퍼포머의 눈이라는 매체에 나의 눈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초상에서 눈을 보아야겠다는 욕구가 놓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관람했던 그 바라봄의 상태가 흥미로웠어요.

황수현: 초상을 보려고 하는 욕망이 놓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죠?

장혜진: 멀리서 전체 그림을 보려고 관전 할 수도 있으나, 관객으로서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이 사람의 얼굴표정에 집중해야겠다. 아, 이 작품은 내가 이렇게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요. 이 작품은 나의 렌즈를 줌인한 상태로 흉상과 초상을 놓지 않기 위해 마치 더 앞으로 가듯이 봐야겠다는 생각하는 거예요. 아, 그런데 나중에 실제 눈물을 흘리실 때는 마침내 그 흉상에 대한 이미지는 증발하고 라고요. 다른 종류의 empathy (동감)만이 남았어요. Empathy는 이미지가 아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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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Browne


황수현: 맞아요. 앞머리, 흰 양말, 검은 옷, 텍스트 등의 요소들 모두가 커넥션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일정한 곳으로 시선이 가도록 하기 위해 관심가질 만한 점을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놓치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죠. 앞머리를 올리는 부분에 있어서도, 얼굴이 어떻게 보이겠다는 것을 인지했고요. 물론 앞머리를 내리고 눈이 가려졌을 때 더 내면적으로 들어갈 수는 있더라고요. 하지만 또 오픈 되었을 때는 커튼을 열듯 무언가 다른 감각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첫 장면의 사운드도 마찬가지로 길이, 정도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였어요. 처음 연습실에서 시도해봤을 때는 소리가 너무 길게 나와서 저도 놀랄 정도였는데, 공연할 때는 긴장을 하니까 장기와 식도가 살짝 올라가있는 느낌이. 이에 따라 무드도 올라가 있더라고요. 긴장되었을 때 가슴 부위를 들면, 소름이 돋으면서 몸의 상태가 달라지잖아요. 그러한 일들이 공연할 때 일어나는데 내리고 싶은데 참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소리가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어요. 아마 이를 위해서는 많은 양의 보이스 수행이 필요할 듯해요.

장혜진: 실생활에서 울음은 즉흥으로 나오죠. 계산되어서가 아니라… 한편 공연예술 안에서의 울음은 즉흥이기가 힘들고, 실제 어떠한 부분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즉흥적 성분이 있었던 이 솔로 공연이 안무되었던 그룹작품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가장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황수현: 제 스스로 퍼포머가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지요. '안무자-퍼포머-보는 자'라는 메커니즘 안에서, 안무자로서 제 자신을 상정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저의 몸의 현존을 도구로 사용해 보았어요. 사실 이제 돌아보니 그룹 작품 할 때는 무용수들이 참 대단했구나. 이 어려운 것을 해내다니! (웃음)당연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본다는 상황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또한 준비된 안무가 있는 경우 그냥 현존하는 상태로 몸을 인지하는데 에너지를 더 크게 쏟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번 솔로에서처럼 즉흥이 있을 경우 '이거 너무 길지 않나'라는 다른 류의 생각도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이 생각을 막아야 하거든요.

장혜진: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는요?

황수현: 네,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 그 생각이 계속 들어오면. 내가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의 비판들이 같이 들어오더라고요. 공간에 대해서도 '더 넓게 써야 하나..' 그런 류의 생각도 떠오르고…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생각들이 사라져야 울 수 있는 것인데, 쉽지 않았어요. 기존 그룹 작품의 경우도 무용수가 이런 말을 했어요. 발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눈물이 안 나온다고. 그 순간 다른 생각이 들어오기 때문이죠. 눈앞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어도 눈물이 안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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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Browne


장혜진: 아 다들 어디 갔지 그런 생각이요.

황수현: 네. 이 사람이 재미없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거니까요. 내 시야 앞에 무언가 바뀌었을 때. 그리고 이들의 액션이 인지될 때, 또 내 몸의 액션이 바뀌었을 때 그와 함께 오는 생각들을 걸러내는 것이 참 어렵더라고요.

장혜진: 예전 공연 보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이 있어요. 우는 것을 내버려둔 관객. 관객을 내버려 둔 채 일어나는 울음. 그러한 관계의 형성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미술관에서, 옆에서 아이와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뭐하는 거야?" 물어봤더니 엄마가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음, 슬픈 거야. 너도 울지?" 그랬더니 그 아이가 "응!" 이러고 계속 보더라고요. 이때 들었던 생각이 아, 아기들은 울면서 태어났고, 그 당시 울음이 더 중요한 소통이었으니까. 사회 속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와 성인의 울음소리는 전혀 다른 청취감을 갖게 하잖아요. 이 공연을 보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하고,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구조와 컨벤션이 허용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러한 공간의 조성.

황수현: 네, 미술관에서 할 때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지켜보기에 놀랐어요.

장혜진: 미술관에서 이 화두를 다루는 것과 저드슨 처치에서 시도해보는 것. 그리고 한국인 앞에서 다루는 것과 미국인 앞에서 다루는 것이 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어떻게 달랐어요?

황수현: 그 정도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활용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관객들이 굉장히 흥미를 보였어요. 국가적 감수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실제 제가 포착하기는 어렵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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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Browne


Work-In-Progress, Research, Process라는 화두


황수현: 혜진 씨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게 Work-In-Progress였는데, 어땠어요? 끝난 작업 같았어요, 아니면 정말 process-oriented 작업 같았나요?

장혜진: 흠… 끝난 작품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저의 질문은 오히려 '끝났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황수현: 그렇네요.

장혜진: Work-In-Progress란 더 이상 어떠한 수정도 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지. 그렇다면 즉흥의 요소가 있는 작품은 끝날 수 없는 것인지. 끝난다는 지점이… 더 이상 손이나 크래프팅, 컨트롤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작품의 유통과도 관련이 있나요? 다음에 '제대로 된' 기회가 또 있다는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요?

황수현: 아, 그래서 Work-In-Progress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무엇이 끝난 건지. 분명 어떤 작품의 경우 더 이상 손대고 싶지 않다는 지점에 도달 하기도 하거든요. 이거는 여기서 끝이다. 여기의 소스나 질문은 반복될 수는 있으나, 이 작업에 더 이상 수정을 가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요.

장혜진: 그 결정에도 두가지 층위가 있죠.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인지로 done! 끝이라고 조각가가 외치듯이 완결되는 경우. 혹은 작가의 관심이 옮겨가서, 새로운 화두로 변화했기 때문에 흘러간 작품에 손을 대지 않는 경우.

황수현: Work-In-Progress는 스타일인건가요?

장혜진: 그럴 수도요. Work-In-Progress가 완결 이전의 브릿지인 것인지, 혹은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의 스타일 혹은 형식 form 인 것인지. 종착지가 다를 수도 있죠. 모든 작품의 종착지가 공식적으로 완결된 느낌의 정형화된 코드가 아닐 수는 있으니까요.

황수현: 그렇다면 Work-In-Progress외에 Research-based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장혜진: 무브먼트 리서치, 인류학적 리서치, 민족지학적 리서치 모두 리서치죠. 하지만 그 외에도 작가가 염두에 둔 경험, 확률 게임도 모두 리서치 일 수 있어요.

황수현: 리서치만 그대로 옮기는 작품은요? 어떠한 크래프팅 없이 리서치가 그대로 공연되는 것은요? 제 작품의 경우 무용수들이 이에 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과정 동안에는 워크숍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저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거든요. 예를 들면 마주보고 표정을 이렇게 저렇게 변화시켜 보는 것, 또 퍼포머들이 제시된 과제에 얼만큼 편하게 임할 수 있는 지와 같은 심리적인 부분도 리서치 해보고요. 우리가 얼만큼 열리게 되는지를 실험해보는 거죠. 어떠한 종류의 분위기 조성이죠. 이 모든 워크숍의 과정이 우리끼리는 너무 재미있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저는 그것을 구현물에 포함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그 부분이 제가 원하는 공유지점이 확실히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 마지막 단계에서는 공연화하는 과정을 꼭 거쳐요. 그 두 가지를 완전히 구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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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저희가 수많은 사례를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자극인지 이러한 이야기 앞서 했었잖아요. 제가 환영하는 것은 두 가지가 clash인 것 같아요. 리서치는 무대 오르기 전까지만 해야 한다는 접근과 리서치 자체가 공연이 되는 접근이 공존하는 현장을 접할 때 좋아요. 그 안에서 내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저는 performance as practice 적 접근이에요. 그러나 상대적이죠. 한국에서는 제 작품을 그렇게 규명하고 있어요.

황수현: 그럼에도, 리서치만 올리면 이것이 해결이 안돼서 무언가를 가져다 붙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 않나요?

장혜진: 글쎄요. 해결해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어요. 결국 무엇을 무대 위에 올리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더 가까워요. 무엇을 그 쟁반 위에 올리고 싶냐는 것이죠. 물고기 일수도 있고 도마일 수도 있고 칼일 수도 있죠. 그 중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인지될 거고요. 이 위에는 안무적 은유가 올라 갈수도 민족지학적 인용이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죠.

황수현: 리서치는 제도권 안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요?

장혜진: 저는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귀인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카데믹한 것이 있는 사람은 누구고 없는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구분 자체를 잘 안 해요. 어떠한 작품이든 좋은 작품에서는 리서치가 보여요. 그 리서치의 종류는 다르겠지요. 그 리서치는 워크숍을 하며 안무적 초이스의 경우의 수를 줄여가는 것일 수도, 움직임 실험일수도 있고요. 저는 리서치라는 단어를 아카데미아에서 듣지 않았어요. 필드에서 들었지요. 무브먼트 리서치에서 말하는 리서치는 사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리서치보다 맥락이 넓다고 생각해요.

황수현: 리서치하면, 무언가 실험을 해서 화학적 반응이나 물리적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연상되지요.

장혜진: 그렇죠 질적 연구, 양적 연구 등. 사례 연구나 인터뷰 혹은 인풋과 아웃풋이 있는 회로도가 연상될 있어요. 하지만 공연예술 안에서는 가설이 없이 혹은 혼자만 아는 가설, 억지스러운 가설이 있는 연구도 가능하다 생각해요.

황수현: 리서치가 흥미로우면 아웃풋은 전혀 상관없을 때도 있어요. 못 울어도 된다 생각이 들만큼요. 아, 이전에 오리가 날아오르게끔 하는 리서치로 장면이 전개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의 가설과 리서치가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장혜진: (웃음) 유사 리서치. 유사 가설인가요?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황수현: 네, 맞아요. 저는 이제 결심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1년 동안 하고 싶은 작업들에 대해서 두 달에 한번이든 한 달에 한번이든 사람들 불러다가 공개적으로 스스로 오픈 스튜디오를 개최하고 싶어요. 이게 Work-In-Progress 아닐까요?

장혜진: 아! 꼭 진행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응원할게요. 저 이제 마지막 질문 드려요. 다음에 뉴욕에 다시 오게 되면 제일 걷고 싶은 거리는?

황수현: 음 다시 제일 걷고 싶은 거리라? 아, 뉴욕에 오자마자 가봤던 브루클린 브릿지요. 거기는 다시 거닐고 싶네요.

장혜진: 네, 꼭 다시 오세요. Work-In-Progress. Walk-in-progress.



장혜진 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안무가/무용수/드라마터그. 무브먼트 리서치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및 교사를 비롯하여 뉴욕예술재단 안무 멘토, 뉴욕라이브아츠 상주 안무가, 홀린스 대학교 무용과 조교수(2011-2014) 등을 역임 하였고, 한국에서는 모다페 국내초청공연,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 큐레이터 등을 통해 예술가를 지원하는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황수현 안무가, ㆍ퍼포머.무용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춤을 추는 행위와 보는 행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최근 퍼포머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비가시적인 현상이 어떻게 힘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춤의 매체적 특징과 한계를 연구하고 있다. 안무작으로는 <Co-Lab:Seoul-Berlin >(2012) <저장된 실제>(2014) <For it to end >(2015) <I want to cry but I'm not sad> (2016) 등이 있다.



장혜진_HeJin Jang Dance/CEPA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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