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희_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
댄스필름, 비디오댄스, 스크린 댄스, 스크린 온 댄스, 코레오 씨네마, 무빙 픽쳐 이미지 등 무용과 필름이 만나는 장르의 용어는 여러 가지이다. 이 용어들은 다 같은 대상을 칭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티스트의 작업 방식에 따라 다르게 명해지는 것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무용과 영상매체를 둘러싼 용어는 처음부터 혼재된 양상을 띄어왔으며, 현재에도 공식적인, 혹은 다수가 동의하는 용어는 없다. 시대에 따라 혹은 관점에 따라 예술가 및 학자들은 무수한 용어를 사용하고 제시해왔으나 그 변용을 살펴보면 대체로 ‘영상 지시어(film, video, cinema, media, screen, moving-picture) + 춤 지시어(dance, choreography, movement, performance)’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또한 그 결합 순서에 따라 지칭하는 대상의 범위가 달라지는 경향도 있다. 즉, ‘춤 지시어 + 영상 지시어’의 순서는 ‘춤(dance)’이 ‘영상(film)’을 수식하기에 ‘film’이 ‘dance’를 수식한다. 그렇기에 댄스필름은 춤과 영상매체가 결합된 모든 가능성, 즉 춤작품의 단순한 기록이나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포함하는 넓은 영역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영상 지시어 + 춤 지시어’의 순서는 춤과 영상이 결합된 하나의 독립적 예술작품이라는 협의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나아가 지시어 내에서의 개념적 전환 및 확장은 영상매체의 변화 및 춤 개념의 변화와도 관련 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기술적 가능성과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포괄적 용어(umbrella term)를 제시하려고 노력하나 이 역시 임시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의 댄스필름과 유럽에서의 비디오댄스(사실 명칭도 헷갈린다)의 역사적 시초가 다른가? 미국과 유럽에서의 비디오 댄스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영상과 춤의 결합은 기술적, 사회적, 제도적 요인들에 의해 독특한 담론을 형성해왔다. 우선 기술적 조건, 즉 영상매체의 개발과 발전은 장르 자체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화사 초기에 극소수가 실험하던 시대를 지나 유의미한 크기의 장르가 형성된 것은 1930년대 필름 카메라가 상용화된 것과 1960년대 비디오테이프 카메라가 상용화된 것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페스티벌, 출판매체 등을 통해 춤계의 담론이 형성된 것과 관련 있다. 미국의 경우 1971년 Dance Film Association이 뉴욕에서 ‘Dance on Camera’ 페스티벌을 개최했으며, 프랑스의 경우 1985년 퐁피두센터에서 ‘Video Danse’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이는 비디오 댄스로 하나의 페스티벌을 구성할 만큼 장르가 성숙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각각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비디오댄스 장르가 가시화된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제도적 요인으론 기관 및 제도의 뒷받침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는 특히 유럽과 미국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유럽의 경우 1987년 Channel 4가 제작한 ‘4 Dance’와 BBC가 제작한 ‘Dance for the Camera’에서 보듯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전문화된 장르를 형성했다. 방송사에서 공모하고 수상 및 지원을 하여 양질의 작품을 만들게하고 전 유럽에 방영함으로써 독일, 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 등에서 비디오댄스 장르가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구자이자 비디오댄스의 선구자라고 여겨지는 마야 데런의 경우에서 보듯 독립 예술가/영화가/안무가가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국립이나 주립 기관이 드물고 예술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원이 적은 미국에서는 개별 예술가 및 예술계의 노력으로 비디오 댄스의 장이 형성되고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댄스필름, 비디오 댄스 등 이 용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아티스트/이론가들은 누구이며, 그 배경이나 이론적 토대는 어떻게 되는가?
비디오 댄스에 관련된 주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점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화하자면 film 시절엔 film dance가, video 시절엔 video dance가 대중적인 용어였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60년대 이후 비디오카메라의 보편화와 무용계의 성장, 그리고 백남준이 제시한 ‘비디오 아트’ 개념으로 인해 video dance가 널리 사용되어 비디오라는 매체가 사라진 오늘날까지 존재감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용어의 기원과 그 이론적 토대에 대해 본인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학자나 예술가들이 특정 용어를 처음으로 제시하고 그 토대를 밝힌 경우는 film-dance(Maya Deren, 1945), choreocinema(John Martin, 1946), screendance(Douglas Rosenberg, 2012), moving-picture dance(Noel Carroll), dance video creation (Chaurand, 1993), camera choreography(Virginia Brooks, 1993) 등이 있으며, 페스티벌이나 기획출판물에서는 cinedans(네덜란드), reeldance(캐나다, 호주), dance for camera(영국) 등의 용어도 사용되었다. 국내에선 일찍이 김현옥이 비디오 댄스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론적으로 새로운 용어 및 근거를 제시한 경우는 없고 일반적으로 비디오 댄스가 사용되고 있다.
비디오 댄스의 용어를 둘러싼 혼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비디오 댄스 용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용어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며, 용어의 변천 역시 진보적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위에서 말한 학자들의 논의를 분석해보면 미국 미학자이자 필름학자인 노엘 캐롤은 그 동안 사용된 용어를 비교분석하면서 왜 철학적으로 기존 용어들이 한계가 있는지 논증하고’moving-picture dance’라는 용어를 새롭게 제시했다. 이론적으로 보면 가장 총체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용어는, 그러나 현실에선 가장 드물게 사용되고 있다. 캐롤 이외에 다른 학자나 예술가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또한 철학자 에린 브래니건은 최근에 비디오댄스에 대한 심도 깊은 이론서를 펴내면서 <Dancefilm>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광의의 영역은 dancefilm으로, 예술적 결과물은 screen dance로 구분하면서 ‘영화감독/안무가가 협업으로 탄생시킨 특유의 영상물’로 지칭했다. 마야 데런이 1945년 최초로 ‘film-dance’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래 무수한 용어가 등장했지만 다시금 처음과 유사한 용어로 회기된 것을 볼 때 이러한 용어의 혼재와 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혼란은 춤과 영상매체의 결합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확장하는 과정이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특유의 담론을 형성함을 의미한다. 필름이라는 매체가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개념으로 영상의 관습과 관점을 형성하듯 비디오 댄스라는 장르 역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전신 모델쯤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미디어 학자인 지그프리드 젤린스키(Siegfried Zielinski)는 “미디어의 역사는 원시적 장비에서 복잡한 장비로 변화하는, 예측할 수 있고 필수적인 진보의 산물이 아니다. 기술의 현재 상태는 반드시 가능한 최고의 상태를 표상하는 것은 아니다(2006)”라고 말한 바 있다. 마야 데런은 춤과 영상이 결합된 장르를 개척하면서 최초로 film-dance를 제시했지만 그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 용어를 적극적으로 주창하기보다는 임시적인 지시어로 여겼다. “라벨과 분류는 하나의 형식을 정확하거나 매우 유사하게 지칭할 때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용어는 실제론 아무리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공통의 동의와 사용에 의해서 정확한 의미를 부여받는다(1960).” 필름과 비디오라는 매체가 사라진 오늘날, 여전히 필름 댄스나 비디오 댄스라는 용어가 건재하다는 점, 이후로 등장한 무수한 용어가 주도권을 빼앗지 못하고 혼재한다는 점은 예술 못지않게 용어 역시 관습과 문화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 웹, 인터랙트 미디어 등 새로운 기술기반이 등장한 오늘날 비디오 댄스는 과도기적 산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인간이 춤추는 몸을 보고 경험해 온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화적 활동의 일부라는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 본 답변은 필자의 논문인 “비디오 댄스 용어의 혼재 현상을 둘러싼 담론 고찰(2015, 우리춤과 과학기술, 30집)”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정옥희_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겸임교수
정옥희는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무용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무용학의 형성과정에서 무용이 예술이자 학문으로 자리 잡는데 미디어가 미친 영향에 대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표적 연구로는 마야 데런의 학제적 행보에 대한 탐색(“Reflections on Maya Deren’s Forgotten Film The Very Eye of Night,”Dance Chronicle,32(3))과 미국 공영방송 무용 다큐멘터리의 실패요인 분석(“Dancing(1993) and the Dilemma ofRepresentingDanceonTelevision,”DanceChronicle,37(2))이 있으며, 미국 무용학술지인 Dance Chronicle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