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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21.01.14 조회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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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면서 춤을 추는 의미를 찾는 법

안무가 김보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연습실 ⓒKenn. 김병구
Q 당신은 누구입니까?

저는 수염 많은 안무가입니다. (웃음) 수염은 어렸을 때부터 길렀어요. 제가 열여덟 살부터 방송 댄서로 활동했는데, 방송 댄서 대부분이 저처럼 어리고 힙합 바지를 입고 다니니까 매니저들이 무시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팀은 일부러 더 단정하게 입고 다니려 했고, 저는 어려 보이지 않으려고 수염을 기르게 됐어요. 그것도 벌써 20년 전이네요. (웃음) 올해 갑자기 방송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방송에서 댄스팀을 바라보는 시각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특출난 댄서가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라는 단체명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한 달 동안 친구들과 함께 24시간 동안 춤만 추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시절 친구 집에서 술을 먹다가 우리 이름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무심코 영어 사전을 펼쳤죠. 그때 딱 ‘앰비규어스(Ambiguous)’라는 단어가 나오길래, 팀명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로 정했어요.

우리 단체가 어떤 춤을 추는 거냐고 물으면, 먹고 살기 위해 추는 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2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춤으로 부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무용을 하는 사람 중에서 춤으로 돈을 번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대부분 강의나 레슨을 통해 돈을 벌어요. 그런데 저는 돈 때문에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진 않았어요. 춤이 좋을 뿐이지 이걸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교육 쪽으로는 거들떠보지 않으려고 했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자 언제부턴가 작품 활동만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죠. 그다음으로는 춤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했어요. 무용에서도 오롯이 작품 활동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열심히 돈을 벌고 있습니다.

Q 여기는 어디입니까?

이곳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연습실, 정빌딩 지하입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이자 성스러운 공간이에요. 스님이 절을 찾듯이 제가 이곳을 찾는 거죠. 어릴 적 제가 방송 댄스를 시작했을 때, 저희 팀원이 40명 정도였어요. 그중에서 저는 막내였는데, 막내들은 항상 연습 시작 한 시간 전에 와서 청소해두고 저녁 식사 후에는 설거지를 해야 했죠. 그 일을 몇 년간 했는데 그때 그 시절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땀 흘리는 시간도 중요했지만, 사람들보다 일찍 와서 청소하고 설거지했던 그 시간도 제겐 중요했던 거죠. 그래서 그 문화를 무용수들에게 전수하고 싶은데, 안 좋아하는 것 같길래 제가 직접 해요. (웃음) 연습실에 오자마자 움직이는 것보단 청소하면서 오늘은 뭐를 해볼까 생각하는 시간이 참 소중하더라고요. 이렇게 순수한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신성한 의식 같고요.

처음 제가 연습실을 낸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무척 반대했어요. 돈도 없는데 왜 하냐는 거죠. (웃음) 근데 정말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무용수들 몇 명하고 매물들을 쭉 둘러봤는데, 이곳이 첫날 두 번째에 본 곳이었어요. 정말 초반에 봤던 곳인데, 그렇게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희 팀이 들어올 때만 해도 여기가 창고여서, 이리저리 부수고 수리할 게 많았는데, 만들어 두니까 좋긴 하더라고요. 올해 연습실을 차린 이후부터 잘된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올해 저희가 잘되기 시작하면서, 왜 우리가 잘 된 걸까 생각해봤어요. 아시겠지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무용 단체라고 하기엔 애매해요. 행사도 많이 하고 방송이든 뭐든 이것저것 많이 하기 때문이죠. 저희는 그렇게 작품을 무대에 계속 올릴 수 있다면, 돈을 받든 안 받든 어디에서든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지하철 역사든 거리 한복판이든 별의별 곳에서 춤을 추게 됐죠. 그렇게 계속 작업의 새로운 형태를 실험해 왔기에 올해처럼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무대가 아니어도 춤을 출 수 있고,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걸 오래전부터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 빨리 형태를 전환한 거죠.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건 저희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공연의 새로운 형태를 다시 고민하고 찾아보는 기회라 생각하고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

Q 이곳에서 춤은 어떻게 발견되나요?

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발견되는 것 같아요. 이곳에 오기 전 보았던 모든 것이 움직임의 영감이 되고, 여기서는 그저 움직이기만 하는 거예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의식하며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저 땀을 흘리는 거죠. 개미를 어딘가에 두면 땅을 파기 시작하듯이요. 그리고 제가 춤을 추는 이유는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춤을 추면서 그 이유를 발견해 나가는 것 같고요.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추면서 몸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것이 춤을 추는 이유가 돼요. 최근 이날치와 협업한 ‘범 내려온다’ 영상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그 춤을 따라 하는 챌린지를 하더라고요. 저희가 그 춤을 어떻게 추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요. 그들이 올리는 영상을 바라보면서 놀랄 때도 있죠. 도대체 그 열정은 어디서 오나, 저 기쁨은 어디에서 오나 하고요. 그런 식으로 직접 춤을 이해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추도록 하는 것이 저희 작업의 일부분이에요. (웃음)

Q 안무하는 데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있나요?

저는 안무를 그림으로 배웠어요. 어떻게 보면 운 좋게 얻어걸린 건데, 예전에는 안산에 연습실이 있어서 하루에 두 시간씩 지하철로 왔다 갔다 했거든요. 그때마다 조그마한 노트 하나를 들고 매일 같이 볼펜으로 노트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렇게 한 달 동안 한 면을 다 채웠고, 안무 역시 한 달 동안 완성을 했죠. 조그마한 면 하나에 빈틈없이 그림을 채우다 보면 안무도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 뒤부터 그림을 계속 많이 그리게 됐어요. 안무를 만들 때가 아니더라도 뭔가에 집중해야 할 때면 계속 그림을 그리죠. 예전에 서울무용센터에 입주작가로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그린 그림으로 전시도 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과 콜라보를 많이 했기에, 다들 제가 안무하는 데 있어서 음악이 중요할 거라 생각하시는데요. 저에게 음악은 그저 시간을 사용하는 것뿐이에요. 모든 음악은 시간 안에 존재하거든요. 2분짜리든, 10분짜리든 그 시간대로 재생되기에, 그 시간에 따라 우리는 움직임을 나열하는 것뿐이죠. 최근 이날치와의 ‘범 내려온다’ 협업은 장영규 선생님을 통해 음악을 들었더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무용수들에게는 우리가 매일 작업을 하니까 리프레쉬겸 함께 하자고 제안한 거죠. 그런데 이 작업이 잘 돼서, 이것이 주가 아닌데 주처럼 보이길래, 지금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Q 최근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진행했던 ‘춤추는 강의실’ 강의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강의는 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어요. 저한테 움직임 동작을 만드는 건 형식적인 거라서 안무에 어떤 의미가 있진 않거든요. 지금까지 많은 댄서를 봐왔지만, 대부분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르고 춤을 추거든요. 저 역시 숫자에 맞춰서 동작을 만들었을 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동작이지만 계속 연습하는 거죠. 그래서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강의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때 강의에서 보여준 건 음악을 분석해서 즉흥적으로 동작을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음악을 분석하다 보면 음악 안에 있는 수많은 구조를 발견하게 돼요. 그 구조를 이해하고 숫자를 채워 넣으며 움직임을 만드는 거죠. 보통 주변에 사람이 많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면 엄한 짓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 강의를 할 때는 그러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그걸 안 했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네요.

Q 2021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2021년도 정말 열심히 활동할 예정입니다. 2021년 2월과 3월에 프랑스의 다섯 개 도시를 한 달 동안 투어하는 일정이 있어요. <바디콘서트> 공연을 9회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런 만큼 프랑스에 갈지 말지 선택해야 해요. 일단 프랑스 쪽에서는 어떻게든 진행하자는 입장이지만, 저희는 모든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2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준비했던 만큼, 최대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직 고민 중입니다. (웃음)

취재·정리김연임_웹진 [춤:in] 편집장

김보람_안무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예술감독 김보람 안무가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예술감독으로, 몸의 언어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춤을 춘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춤의 장르나 개념에서 벗어나 가슴 속에 있는 ‘그 무엇’을 몸과 음악으로 풀어내기 위한 무용단체이다.
김병구_사진작가 김병구는 경계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그 이질감이 사라지는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나뭇가지를 잘라내면 수피들이 상처를 덮어내듯, 분리 또한 동합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경계 DMZ, 왕릉의 도시 경주, 문명과 원시의 공존 등을 사진으로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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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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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쥴리김은진2021-02-05

    사진과 관련 소개 영상도 같이 올려주시면 좋겠어요.김보람 김병규작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