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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9.09.30 조회 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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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색을 지닌 채 달리는, 안무가 정재혁

스치는 것에서 영감을 붙잡고 공상합니다.

스치는 것에서 영감을 붙잡고 공상합니다.
자신의 색을 지닌 채 달리는 안무가 정재혁

양재천 ⓒFotobee_양동민
1.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제 색깔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매 순간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리고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 개운치 않은 하루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스스로 자문해보곤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며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고 갈등을 느끼는 것은 결국 제 색깔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나이고, 내가 되기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2. 당신에게 이곳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머리가 복잡하고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집 앞 양재천에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달려서 자전거를 버리고 택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머리가 개운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는 한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쉬면서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들 중에는 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 한 번 더 쳐다보게 만드는 사람, 빨간 옷을 입은 사람, 무표정한 사람, 웃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의 표정에는 삶이 묻어납니다. 사람이 있고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른 풍광으로 보이는 이곳 양재천에서, 저는 쉼과 영감을 얻어갑니다.

3. 이곳에서 춤은 어떻게 발견되나요?

모든 것들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제 머릿속으로 쑥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각자만의 루틴, 옷의 색깔,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모습 등이 그러합니다. 이처럼 갑자기 비집고 들어오는 재미있는 생각들은 오래도록 남아 기억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기억들을 가지고 공상합니다. ‘안무’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동작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이런 공상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춤을 발견하고 싶을 때, 그런 공상들을 재현해내고 제 색깔을 슬쩍 얹어봅니다.

4. 이곳에서 춤은 어떤 모양인가요?

이곳의 많은 사람과 변화하는 풍광에 적잖은 영감을 얻어왔기에, 이곳을 신뢰합니다.
일단 이곳에 오면 저의 생각은 잠시 멈춥니다. 구태여 특정한 누군가에게 억지로 영감을 얻어내려 하지 않고, 누가 보든 상관없이 보이는 타인들의 꾸밈없는 표정, 몸짓, 말투 등을 그저 바라봅니다. 그리고 정해진 약속은 없지만, 서로의 안전을 위해 배려하고 공감하는 작은 규칙을 지키는 모습도 바라봅니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며, 그 선물은 꾸밈없고 자연스럽고 친근한 춤으로 나타납니다.

정재혁_안무가 컴퍼니 제이(Company J)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로 활동 중인 정재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졸업 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트리샤 브라운 댄스컴퍼니 무용수로 활동하였다. 트리샤 브라운의 많은 레퍼토리 작품에 출연했으며 귀국 후 매년 신작을 발표하며 안무가로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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