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21.08.12 조회 5242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복사
  • 프린트

: 덴마크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의 프로젝트 <수확(Høst)>

무용수의 몸으로 산업농경을 돌아보다.

무용수의 몸으로 산업농경을 돌아보다 : 덴마크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의 프로젝트 <수확(Høst)>

서영란_안무가, 리서처

이 글은 예술작업의 미적이고 기술적인 선택을 논의하는 것만을 넘어서, 작업 속에서 발견되는 질문과 고민을 농경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와 토론의 장으로 연결하여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출발점 - 농경을 돌아보기

나는 현재 덴마크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덴마크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하여 예술적 행위로 반응하는 액티비스트(Activist)와 예술가, 농경과 관련한 대안 운동과 관련 단체의 활동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2021년 2월, 덴마크 스존(Sjon) 인류학 필름 페스티벌은 개방형의 온라인 워크숍 솔라스탤지어 브레인스토밍 워크숍(Solstagia Brainstorming workshop)을 마련하였다. 나는 기후 액티비즘 퍼포먼스 콜렉티브 ‘비커밍 스피시스(Becoming Species)’의 일원으로 그 미팅에 참여하였고, 기후 문제 관련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 음악가, 아이슬란드의 유기 농부, 노딕 퍼마 컬쳐(Nordic Permaculture) 위원회 등과 만났다. 우리는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예술과 액티비즘의 역할에 대해 토론했다. 당시, 비커밍 스피시스의 또 다른 구성원인 기후 액티비스트 리케(Rikke Jespersen)는 이러한 질문을 공유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예술을 통해 힘을 가진 사람들/구조들을 바로 겨냥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구조적 변화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의 스토리텔링에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How can we directly target powerful people/structures through our art and build direct political messages into our storytelling to create structural changes for a sustainable future?”
- 솔라스탤지어 브레인스토밍 워크숍 中

이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시적인 예술작업과 실천에 담으려고 하는 많은 예술가와 액티비스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특히 농경에 대한 나의 관심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농업 근현대사를 조사하면서 시작되었다. 전통 농경과 공동체들, 그리고 환경의 파괴는 식민지 시대에 도입된 산업 농경과 함께 시작되었고, 후기 식민 정부가 경제성장과 녹색혁명 등을 추진하면서 더 확대되었다.1)
전통 농경을 하던 농부가 산업 농경으로 급격히 전환해야 했던 이야기는 아시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남부 율란 출신 덴마크인인 나의 시어머니의 아버지는 세계대전 이후 마샬 플랜(Marshall Plan) 지원에 따라 미국 농경 기계를 구입하고 그들의 전통 농경에 도입했다.2) 이후 70년대 EU 농경법은 대규모의 산업 농경을 지원해주었고 이에 따라 아버지가 일구던 전통 농경을 그의 아들이 대규모 산업 농경으로 전환하였다. 전통 농경 지식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이 도입한 산업 농경의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는 가족 간의 큰 불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비슷하게, 리코일(Recoil)의 안무가 티나(Tina Taarpgard)의 아버지는 전통 농경에서 산업 농경으로, 또 유기 농업으로의 전환을 모두 경험하였다. 흥미롭게도 그는 산업 농경에서 유기 농업으로 바꿀 때, 전통 농업의 지식을 부분적으로 회복했다고 했다.

1955년의 마지막 옥수수 수확 ⓒ아스타(Asta Jurgensen)

동과 서를 떠나,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산업 농경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오히려 이전의 전통 농경이 다양한 생물종의 공생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이 높으며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흐름을 함께하여 덴마크와 한국 안에서도 재생 농경과 퍼마 컬쳐 등의 대안적 농경을 지지하는 그룹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의 새 작업 <수확(Høst)>을 발견했다.3)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의 안무가 티나는 인간과 다양한 생물종의 새로운 관계와 지속가능성에 관해 생물학적 지식을 퍼포먼스에 활용한 흥미로운 작업을 해왔다. <수확> 프로젝트에서는 그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서부 율란의 농경 지방을 재방문하며 흙, 산업농경, 작물들, 가축들, 지역 주민들, 수확을 둘러싼 의식 등을 키워드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현재 농경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토론 현장과 실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기대하며, 인턴으로 참여하였다. 나는 프로젝트의 과정과 공연을 관찰하고, 또 이 공연을 본 다양한 관객들과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생각을 나누며 이 글을 수확하였다. 이 글을 통해, 한 예술작업의 미적이고 기술적인 선택을 논의하는 것만을 넘어서, 작업 속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질문과 고민을 농경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와 토론의 장으로 연결하여 확장하고자 한다.

퍼포먼스와 농경을 둘러싼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의 앙상블라주

나는 2021년 4월 17~19일 동안 <수확>팀의 덴마크 서부 율란 여행에 동반하였다.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한 공립학교의 체육관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초등학생들의 도움으로 공연에 사용할 풀을 심었고, 또 그들을 위한 움직임 워크숍과 쇼케이스를 열어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작업을 가장 일찍 본 관객이 되었다. 또 우리는 티나의 친척과 지인들이 하는 지역 농장들, 산업 축산농장, 감자 농장, 포플러 나무가 심어진 들에서 돼지를 풀어 사육하는 농장 등에 방문하였다. 무용수들은 농촌의 일손을 도왔고, 즉흥적으로 돼지를 위한 짧은 춤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수확>은 서부 율란의 농촌 지역에서 초연을 올렸고, 지역 농민의 말 헛간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 안에서 안무가와 무용수는 농부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 학교 선생님들, 아이들, 지역 예술가들을 만났고, 소, 돼지, 풀, 흙, 트랙터 농업용 기계와 마주하였다. 이 모든 존재가 작업 과정에서 협력자로 참여하였다. 마치 미생물, 곤충, 작물과 가축의 관계를 이어주는 흙의 에코시스템 마냥, 이 작업은 공연-농경-도시의 에코시스템을 직조하며, 퍼포먼스와 농경을 둘러싼 인간과 비인간들,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였다. 다른 공간들과 존재들이 연결되고, 서로의 존재를 노출하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우리가 산업 농경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적 농경 활동 등의 정치적인 행위를 하기 이전에, 서로를 이해하고 보살피는 상태로 만들었다.3) 이 예술적 실천은 우리가 일하는 몸에 관한 인간의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질문하고 토론하게 했다. 티나는 공연 소개 글에서 다음 질문을 공유한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자연을 모양 짓고 경작하며, 그 과정은 인간의 몸을 어떻게 모양 짓고 경작하는가? 몸을 경작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How do we humans shape and cultivate nature, and how does that process cultivate and shape a human body? What is it to cultivate a body?”

서부 율란 여행에서, 이 지역 출신이자, <수확>에 참여한 사진가, 프루드(Fryd Frydendahl)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유년 시절에, 농부들이 손으로 소의 젖의 위치를 찾고 기계로 젖을 짜는 모습을 본 것을 기억한다고 이야기했으며, 농부의 손으로 소의 젖을 짰던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로 다시 축가를 방문하였을 때는 농부의 손 대신 레이저 센서가 소의 젖을 감지하고, 기계가 젖을 짜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인간과 가축의 접촉이 사라진 이 변화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까? 농가 방문을 통해 우리는 티나가 했던 질문을 되묻게 되었다. 이러한 농업의 기계화가 가져온 행위자의 변화는 무엇을 야기했을까? 이 변화는 인간과 비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모양 지을까?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 유기물과 무기물의 분리를 넘어서

코펜하겐의 연습 스튜디오에서 안무가 티나, 현대무용수 힐드(Hilda), 플라멩코 무용수 조셋(Jossette)은 농부의 일하는 몸에 대해 고찰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본인의 전문 무용수로서의 경험과 춤추는 몸에서 찾으려 했다. 그들은 농부의 체험적 지식과 무용수의 체험적 지식을, 농부의 노동과 무용수의 노동을, 그리고 농부의 작물을 통한 수확을, 무용수들의 춤을 통한 수확과 평행 시켰다. 농경이 한곳에 정착하여 장기간 전념하여 행해지는 활동이라면, 지금의 무용수들은 공연과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한 장소와 캐릭터의 상태로 이주한다. 다른 두 전문직을 병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예상치 못한 충돌과 흡수의 반응을 만들어냈다.

무대 위에서 컨템퍼러리 댄서 힐드는 자신이 춤을 출 때, 자신의 신체 부위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에 머리가 원하는 움직임 충동이 무릎, 척추, 어깨 각각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기도 하다는 것이다. 힐다의 몸은 개별적이자, 동시에 하나의 몸으로 움직였다. 그 조합된 몸은 다양한 움직임의 방향성을 동시에 지녔다. 조화된 움직임의 흐름이 생겨나다가 갑작스럽게 꺾이며 사라졌다. 일반적인 몸의 정렬과는 달리, 관절들의 각도가 기이하게 돌아가고, 꺾인 상태로 조합되었다. 이렇게 신체 각 부분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조합은 전형화된 움직임의 모습을 벗어나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현대 무용의 즉흥의 도구와도 닮은 이러한 태도는 몸의 내부적 연결성을 강조하는 유기적 시각의 한계를 넘어선, 들뢰즈(Delez)와 가타리(Guattari)의 <기관 없는 몸체(The Body without Organ)>를 떠올리게 한다.5) 자율성을 획득한 부분들끼리의 새로운 방식의 결합을 통해, 각 부분의 더 큰 잠재성을 도모한다. 몸의 내재적 연결성을 극복한 탈영역화된 몸은 유기적인 것과 비유기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이지 않을 것을 이분화하지 않는다. 티나는 <수확>의 프로그램북에서 다음의 질문도 공유한다.

“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 인간은 이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서 있나?”
“What is natural and what is not natural? How we, as humans, stand perpetually in between?”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의 비분리는 작품의 여러 장면에서 관찰된다. 무대 한쪽, 현실적인 원예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두 무용수가 풀을 옮겨 심고, 흙을 누르고 두드린다. 심장 소리와 같은 반복적인 비트가 들리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곧 그 소리가 트랙터와 같은 농업기계의 엔진 소리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심장과 엔진. 엔진처럼 실행하는 심장과 심장처럼 작동하는 엔진. 이후 엔진의 소리는 땅을 두드리는 무용수들의 몸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은 그들의 몸은 엔진 소리를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옮겨낸다. 마침내 무용수들은 엔진 비트를 타며 맨손으로 무대를 두드린다. 기계적 사운드가 발화시킨 어쿠스틱 사운드는 곧 두 몸 사이의 비언어적 공명-리듬 놀이로, 또 플라멩코 댄서의 맨발의 발걸음 소리로 바뀐다. 이 일련의 장면들에서 자연적인 몸과 비자연적인 기계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 관계가 되면서 그 둘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역사적으로 농업의 기계화는 여성을 농업의 중심 역할에서 멀어지게 하고, 남성 중심의 농업을 야기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여성 농부들은 농업의 기계화로 인해 자신들의 일과 사회 경제적 힘을 잃었다. 특히 쌀 여신 ‘스리’에 대한 믿음으로 여성 농부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쌀 농경의 신성한 부분들과 제의들도 사라지게 되었다.6) <수확>의 한 관객이었던 예술가이자 기후 운동가인 스티네(Stinne Hesthaven)는 이 공연의 장면들에서, 특히 무용수의 원예 활동이 기계적 소리에 영향을 받을 때, 남성적인 에너지가 두드러지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기계화로 인해 덴마크의 남성적 성향의 농경으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진가, 프루드가 목격한 우유 생산의 기계화처럼, 새 기술의 도입은 인간, 가축, 작물 사이의 접촉을 멀어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와 반대편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농경 효율성과 생산량을 지속하기 위해서 기계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편향된 프로-기술주의와 반-과학 기술주의의 분리를 넘어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과 기계를 포함한 비인간 사이에서 각 행위자/행위소의 잠재성을 확장하며, 서로에 대한 존중과 돌봄을 바탕으로 이들 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7)

<수확> 리허설 ⓒ쏘렌(Søren Meisner)

뿌리의 고정됨과 퍼짐

플라멩코 댄서 조셋은 공연 중에 자신이 푸에르토리코에서 만들었던 옛 공연 작업을 소개한다. 그녀는 플라멩코 댄서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서, 푸에르토리코 전통 음악의 한 종류인 붐바과 플라멩코를 결합하고 그곳의 일상적 풍경인 알을 품는 암탉을 그리는 작업을 하였다. 그녀는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수확>에서 말하는 뿌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근대적인 인식, 즉 뿌리와 전통이란 고정되어있고 변하지 않는 거라는 인식을 흔든다. 조셋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전통을 섞고, 각각의 전통이 가진 경계를 확장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조셋은 근대적 형태의 플라멩코 구조를 의도치 않게 탈구조화하고 재구조화한다. 예를 들어 플라멩코 구두를 신지 않고 맨발로 플라멩코 발 스텝을 하거나, 플라멩코 속 손가락과 팔의 유기적인 움직임만 떼어내어 앉은 자세로 보여준다.

<수확>은 그동안 강조되어왔던 플라멩코의 전통적인 이미지-집시들이 모는 말의 말발굽 소리를 닮은 발 스텝과 불을 둘러싼 그들의 이국적인 제의와 같은-를 벗어난다. 오히려 플라멩코 발 스텝의 대지와의 밀착된 관계가 바닥을 두드리고 밟은 행위로 인해 지배적으로 강조되어 보인다. 이렇게 대지를 밟는 신체적 제스쳐는 동아시아의 농경적 제의에도 만연해있다. 땅에게 농경의 시작을 알리고, 좋은 수확을 위해 기도하는, 인간들의 제의.8)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풀뿌리는 원래 심겨 있던 곳에서 떼어져 나와 무대 한가운데에 새로 심어진다. 재배치된 풀은 약해 보이지만, 이주로 인한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치 많은 전통이 낯선 곳으로의 이주와 만남으로 인해 새롭게 발명되었듯이.

<수확> 리허설 ⓒ쏘렌(Søren Meisner)

춤의 수확, 신체적 노동의 가치

<수확>의 무대 위에서 5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무용수들의 신체적 노동은 관객의 의식과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팽창하고 무거워진 무용수의 근육과 신체의 극한 사용으로 인해 의식의 상태가 변화한 듯이 초탈한 무용수의 표정은 관객의 의식 또한 다른 상태로 이동시킨다. 관객들은 무용수와 같은 시공간에 함께 하고, 관찰하면서 무용수들의 진동과 그들의 신체적 느낌을 흡수한다. 같은 공간에 함께하면서 무용수의 리듬을 몸에 체현하게 되는 관객들이 이 공연의 수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무대 위의 무용수, 풀, 흙 이 관객과 공유한 진동, 즉 이 공연의 수확은 비물질적이고, 보이지 않고, 일시적이다.

유목적이고 창발적인 무용수의 일하는 몸을 보면서, 농부의 노동과 무용수의 노동을 평행시키는 이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현 사회가 미래의 농업의 방향을 논의하고 대안적 농경의 가능성을 제시할 때, 변화 가능성의 측정 기준은 현재의 생산량과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재생 농경과 퍼마 컬쳐를 현재의 산업 농경과 비교할 때, 장기적으로는 전자의 생산량이 많고 생물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해도, 노동 강도가 더 높다는 게 취약점으로 제기된다. 이 논의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철학의 문제로 우리를 회귀시킨다. 노동 강도가 높다는 것은 과연 취약점인가? 우리 사회에서 신체적 노동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 카타르시스를 생성해 낸 무용수의 신체적 노동의 가치가 농업의 노동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두 다른 전문 직업의 동맹을 통해 근대적 가치들로 절하된 신체적 노동의 의미를 교란할 수 있을까?

탈영역화된 공연예술의 가능성

자기 반영적 입장에서 무용수의 노동을 현재의 산업 농경에 대입하여 돌아본 <수확>을 통해, 현 농업의 풍경과 신체적 노동, 그리고 인간, 비인간, 기계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작업이 제시한 중요한 키워드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로 발전될 수도 있고, 연구자, 예술가, 관객들 사이의 새로운 협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수확>의 한 관객이었던, 예술가이자 기후운동가 이다(Ida Dalsgaard Nicolaisen)는 제작 과정에서 시도한 시민 참여(civic-engagement)가 더 적극적인 공연 창작 과정에서의 시민 참여로 이어져, 무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적인 사회적 정치적 참여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하였다. 그 예로 그녀는 ‘기후 분야에 관한 시민 의회(Citizen Assembly on climate area)’의 민주적이고 심의적인 방법을 언급하였다. 시민 의회는 99명의 임의로 선택된 시민들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기후 위기와 관련한 대책을 연구하는데 초대되었으며, 이 대중들의 권고를 기후 정책에 책임이 있는 국회 정치인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8) 농업과 관련하여 농부, 소비자, 예술가, 관객, 연구자, 소비자 등이 앙상블라주(L'Assemblage)되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예술적 실천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수확>이 농부의 노동에 대응하여 무용수의 노동에 집중해 있다면, 자본주의 구조 내의 공연예술 프로덕션의 노동에 대한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무용수의 노동과 공연의 수확은 순간적이고 비물질적이며 그렇기에 사회의 신체적 노동에 대한 평가와 가치를 교란할 수 있는 창발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예술 프로덕션의 노동과 수확은 자본주의적 구조에 매우 고착되어있는 형편이다. 프로덕션을 위한 자금 조달, 예술지원사업의 경쟁 구도, 글로벌 아트마켓, 예술가와 기관들의 네임벨류로 형성된 계급, 작업에 대한 소유/저자 개념은 자본주의자들의 방법론과 현 사회 정치적 구조에 의해 형성되었다.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은 5명의 안무가가 만든 조합인 ‘모막(Mo.Mak, Movement Makers cooperative)’에 속해있다. 이 조합은 제작, 홍보 등의 자원과 정보를 공유하여 안무적 가능성과 교육, 과학, 연구 등의 분야들과 관련한 협업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조합이 예술가들은 집단으로 지원하기 위한 환경을 발전시키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콜렉티브 작가 그룹, 예술가와 작가들이 주도하는 페스티벌 등이 저자와 소유, 지식, 기회의 분배와 예술 생산 과정 속의 공생을 추구하여, 현 공연예술의 생산구조를 탈영역화하는 집단적인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1. 1) 서영란 (2020)
  2. 2) 마샬플랜과 미국의 농경 기계 구입과 확산, The Marshall Plan, 1948-1953, danmarkshistorien.dk, Aarhus university, https://danmarkshistorien.dk/vis/materiale/marshall-planen-european-recovery-program/?fbclid=IwAR2hACgJ-oY_Rx0UxD9iD1sJtg3Rgg656Jiv6O36s1yH_n0REeFXXKWGCpA
  3. 3)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의 웹사이트 (https://recoil-performance.org/productions/host/)
  4. 4) 돌봄은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더 구속력이 있다. 그것은 적극적인 관여를 요구한다. Puig de la Bellacasa (2017)
  5. 5) Deleuze & Guattari (1987)
  6. 6) Suh(2020). 말레이시아 사례의 경우, Karim(1994). 인도네시아 지역 사례는 Partasasmita (2019)
  7. 7)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시도하기 위해, 또 생물종 뿐만 아니라 돌, 금속, 기계 등의 물질까지도 포함하기 위해 비인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8. 8) 이 질문과 생각은 로지 브라이어도티(Rosi Braidotti)의 온라인 강의(Pufendorf Institute, Lund University, Sweden, April, 2021)와 참여한 청중들과의 토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로지는 강의하는 동안, 엘론 머스크와 같은 기술 중심의 자본가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일관했는데, 이후 한 청중, 테드(Ted Ostervall)이 질문했다. 우리는 어떻게 자연 과학과 잘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과학 긍정주의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반과학주의적 입장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을까?
  9. 9) 인도네시아 십다차르 지역에서 쌀 씨앗을 심는 Nagaseuk(쌀을 심을 시기)라고 불리는 행렬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파이프로 땅을 치면서 행렬을 하고, 그 파이프로 만들어진 땅의 구멍 속에 씨앗을 심는다. (소개 글 https://ciptagelar.info/5-kegiatan-adat-kasepuhan-ciptagelar/) 한국의 농경 사회 전통 중에서, 지신밟기는 공연 예술적인 행렬로 농경 시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마을 곳곳과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지신을 위해 농악을 연주하며 나쁜 신들을 물리쳐달라고 빈다.
  10. 10) ‘기후 분야에 관한 시민 의회’ 웹사이트 https://tekno.dk/project/citizen-assembly-at/?lang=en

참고문헌

  • Deleuze, G. & Guattari, F. (1987). A thousand plateaus :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 Minneapolis, Minn. :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Karim, W. J. (1992). Women and culture, between Malay Adat and Islam. Boulder, Colo: Westview Press.
  • Partasasmita, Ruhyat, et. al. (2019). Impact of the green revolution on the gender’s role in wet rice farming: A case study in Karangwangi Village, Cianjur District, West Java, Indonesia, Biodiversitas, Vol. 20, 1, pp. 23-36.
  • Puig de la Bellacasa, M. (2017). Matters of care : speculative ethics in more than human worlds .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Suh, Y.R. (2020). Rice, Ritual and Spirits, Critical Reading, ed. 7 ½ project, e-book (publication in process)
서영란_안무가, 리서처 서영란은 한국에서 샤머니즘, 변형된 전통, 신화, 아시아의 근대화에 관해 공연 작업을 만들어왔다. (http://yeongransuh.com) 덴마크에서 종교 역사와 분쟁 관련 석사를 마친 뒤, 기후 액티비스트들과의 만남을 통해, 탈 식민화-인권-환경 문제를 연결해서 바라보게 되었다. 인류세를 비판하며 모든 생명과 물질의 공생을 꿈꾸는 예술가, 학자, 액티비스트의 행위에 참여하고 관찰하고 글을 쓰는 중이다. (https://brunch.co.kr/@rosaria1110)


목록

댓글 1

0 / 300자

  • 서원명2021-08-18

    농경의 역사를 예술가의 몸짓으로 구현해보는, 그런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모순을 참여자 모두가 제가끔 느끼고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실험?
    문득 Meta verse를 통하여 보다 다양하고 손쉬운 연출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드네요.

    예술에 대한 문외한의 입장이라 매우 거칠고 무지한 추측인지는 모르지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