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1년 3월 9일 화요일 16:00~18:00
장소: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연습실
참여자: 안나 안데렉(안무가), 김형민(안무가)
2021년 13회 광주비엔날레 스위스 파빌리온 프로젝트로 안무가 안나 안데렉(Anna Anderegg)의 작품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가 2월 26일부터 3월 3일까지 공연되었다. 안데렉의 이전 작품에 퍼포머로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는 김형민 안무가가 그녀를 만나서 COVID-19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디지털 시대에 공연과 신체성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왼쪽부터 안나 안데렉(Anna Anderegg), 김형민 ⓒ김하람
전체를 잇는 네트워크
김형민: 당신은 전 세계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고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장소와 레지던시에서 활동을 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안나 안데렉: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연예술 시장과는 다른 형태이긴 하다. 우리는 보통 공연을 올릴 때 서둘러 준비하고 빠르게 끝낸 후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생각하곤 한다. 지난 11년간 나는 장소와 연결하여 창작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맥락을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는 보통 공연을 올리는 데에 정신이 없어서 이 공연을 누가 보는지, 작품이 장소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급하게 작업하기보다는 그 나라와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흥미로운 장소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항상 마주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열려 있으려고 한다.
김형민: 하지만 그렇게 작업하는 것이 쉽진 않다. 예술 현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자신의 커리어가 지속되기 위해 작업해야 하는 현실 가운데 놓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안나 안데렉: 고맙다. 나에게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랑 맞는 사람을 찾고 관객과 의미 있는 교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상황들 속에서 작업하는 나의 방식이다.
김형민: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얼론 투게더>가 공연되는 5시간 동안 상당히 많은 큐(전환 신호)가 있었는데 당신이 전부 조율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신의 침착성, 높은 집중력과 넓은 관대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당신이 훌륭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작업뿐만 아니라 성품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많은 큐와 타이밍을 요구하는 작업을 매번 다른 장소에 가서 다른 예술가들과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가능한지 항상 궁금했다. 나도 다른 무용가와 함께 당신의 작품에 갑작스레 참여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처음부터 전부 다 가르쳐줘야 했다. 나는 당신의 특별한 작업이 흥미로웠고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신체성이 무엇인지, 감정과 지시(instruction) 중 무엇이 먼저인지, 공연과 촬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이후에는 지시를 따르고 그것이 인도하는 상태를 느끼려고 했다. 그렇게 혼란으로 시작되었던 작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분명 흥미로운 몸에 대한 접근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당신의 작업하는 방식을 통해 신체성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안나 안데렉: 지시는 내가 많이 고민하는 문제이다. 사실 공연이라는 포맷 자체도 이미 관객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지 않을까. 그들은 초대를 받아 자리에 앉고 작업의 실마리를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작업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 계속 고민한다. 어떠한 무대 장치를 관객에게 배치할지와 같은 것들이다. 더불어 작업의 과정에서 사람들과 흥미롭고 건강한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지 생각한다. 학제 간 작업을 많이 하고 있기에 다른 분야 전문가와 예술가가 내 작품에 참여하는 방식, 모든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작업의 방향성을 놓치지 않는 것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내가 퍼포머에게 지시를 할 때는 내가 보고 싶은 것보다는 부차적 효과로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흥미로운 어떤 것을 퍼포머에게 말하면 그들이 그것을 재생산해내려고 하기 때문에 스코어를 만든다든지 다른 방식으로 지시를 제시하려고 한다. 이럴 때 퍼포머들이 다른 측면의 것을 만들어 내는데 바로 그것이 내가 보고 싶은 내용이다.
왼쪽부터 김형민, 안나 안데렉 ⓒ김하람
팬데믹 시대에 함께 작업하는 법
김형민: 매우 흥미롭다. 그렇다면 당신은 스코어를 어떻게 만드는가?
안나 안데렉: 함께 작업하는 퍼포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퍼포머들이 만들어내는 어떠한 흥미로운 순간을 해석하고 그것으로부터 불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방법론적으로 나는 보통 두 개의 주제를 가지고 리서치한다. 하나의 전반적 주제가 있고 움직임 언어에 영향을 주는 두 번째 주제가 있는 식이다. <얼론 투게더>에서의 전반적 주제는 테크놀로지와의 관계였고 그 아래 남성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주제를 리서치하고 그것을 신체성, 상황, 배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가장 즐겁게 작업하는 부분은 비디오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주제를 선정하면 비디오 자료를 찾고 이때 이미 무엇을 찾는지, 어떠한 신체성에 관심 있는지 확실해진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의 퍼포머들과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이 생산된다. 그들 각자의 배경을 바탕으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더하면 재미있는 부분과 디테일을 추출해낸다. 역동성, 크기, 속도, 길이와 같은 신체성을 탐구해서 각자의 신체적 패턴과 색깔을 만든다. 그런 후에 작품 구조를 만들고 재료들을 구성해 나간다.
김형민: 상당히 많은 층위가 있다. 당신의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하면서 여러 요소를 신체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많은 층위가 있다고 느꼈다. 제한된 시간에서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작업할 수 있는가? 보통 한 달이나 두 달간 작업을 하는 편인가?
안나 안데렉: 많은 신체적 부분을 스케치하는데 보통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번 작업은 운이 좋게도 매우 생산적으로 진행되어서 한 달 만에 모든 작업을 했고 그 후 무용수 익셀(Ixchel)이 참여하면서 2주간 반복적으로 연습하며 매끄럽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한국에 도착한 후 2주간 자가격리시간을 가졌고 그 시간 동안 자료들을 최소화하여 온라인으로 작업하면서 작품을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김형민:팬데믹으로 인해 창작과정이 상당 부분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나 안데렉: 팬데믹 이전부터 작품 컨셉을 기술에 대한 것으로 설정했고 제목도 ‘투게더 투게더 얼론(Together Together Alone)’으로 정했었다. 그것이 2019년 11월이었다. 그 후 갑자기 팬데믹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연기되었고 광주비엔날레도 총 7개월이 미뤄졌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집에 있으면서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외부와 연결되는 시간을 가졌다. 가상의 세상을 만들고 그러한 세상에 의존하면서도 이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디지털 환경의 시민으로서 살고 있으면서 우리가 서로 만나는 플랫폼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이 장소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가. 공공의 공간은 개인적 정보나 시간을 지불하는 것 없이 모두를 위해 개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작업을 해 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함께 많은 시간 동안 작업해야 했으나 한국에 올 수 없었기에 시노그래피, 필름 등은 예술가들이 각자 작업해야 했다. 컴퓨터를 통해 퍼즐처럼 진행되었고 이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했다.
김형민: 당신의 작품 제목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혼자이지만 분명 함께하지 않는가. 요즘 같은 시대에 마음에 와닿는 문구이다. 우리가 지금 만나고 싶으나 불가능하기에 다른 방법으로 다른 차원으로 만나지 않는가. 이러한 방식도 당신이 있는 곳에서 완전히 존재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안나 안데렉: 거기에 완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신체적 측면에서 분명했다. 우리의 신체가 지속적으로 파편화되는 의식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것을 신체적 측면에서 해석하려고 했다. 몸이 계속 두 가지 재료를 동시에 다루느라고 바쁘게 움직였다.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 ⓒ안나 안데렉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 놓인 신체
김형민: 공연에서 퍼포머와 관객 사이의 확실한 경계를 느낄 수 있었다. 의상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작품을 보면서 퍼포머와의 명확한 경계를 느낌과 동시에 가까이 다가왔으면, 혹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인간의 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퍼포머를 인간의 몸이 아닌 다른 생명체로 느꼈고 나아가 나 자신을 이러한 생명체로 보기 시작했다. 인간과 다르지만 깊은 연결고리가 있음을 발견했다.
안나 안데렉: 나는 보통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파헤쳐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흥미를 가지는 건 관객을 위해 많은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피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는 가변성을 가지길 원한다. 작품을 만들 때 명백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과정속에서 왜곡되고 나중에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관객이 상상력을 채워 넣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기를 원한다.
김형민: 작품에서 실제와 가상에 관련한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개념을 다루고 있는지 궁금하다.
안나 안데렉: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된다. 반복에서도 그렇다. 시간은 춤에서 핵심적 요소이다. 나는 관객에게 움직임을 보는 자유를 주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것은 루프 구조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행적 시간이 아니기에 관객은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 있고 이 공간 속 관람 경로를 어떻게 디자인할지 결정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작품의 또 다른 측면으로는 우리가 스스로를 온라인에서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대한 것이다. 온라인에서 보이는 우리의 모습은 촬영된 과거의 것인 동시에 기획된(curated) 이미지이다. <얼론 투게더>에서는 디지털로 촬영된 부분을 담길 원했고 그것은 인간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작품에서는 분명 물리적 몸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과거의 물리적 몸을 반영한 디지털화되고 기획된 이미지가 함께하는 거다.
김형민: 당신의 작품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문(A Cyborg Manifesto)”을 떠오르게 한다. 예언적이고 급진적인 이 선언문에서 해러웨이는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라고 주장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 하지만, 기계에 의해 의존한 상태를 설명하는 이 선언문과 당신의 작품과 많은 연결고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기획한다는 점에서 모두 사이보그이다. 내가 무용수로 참여했던 당신의 작업 <호미스(#homies)>에서도 그랬지만 모니터 얼굴을 가진 인간 신체라는 혼합체가 등장한 <얼론 투게더>에서 이러한 관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해러웨이가 인간, 기계, 동물간의 모호한 경계를 지적했듯이, 우리가 누구인지, 자신 그리고 타인과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가시화했다. 작년 거의 매일같이 줌 화상회의를 계속하다 보니 신체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신체성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었다. 가상공간 속, 기계에 의존하는 삶 속에서 신체성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안나 안데렉: 난 늘 무용수들의 강한 신체 훈련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스튜디오 밖으로 나오면 무용수들조차도 앉거나 걸으면서 엄지손가락만 이용한다. 세상을 보고 경험하려는 높은 감각과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핸드폰 화면을 넘기는 최소화된 움직임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 속에는 엄청난 신체성을 보여주는 영상들이 있지만 실제로 몸은 화면을 넘기는 데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몸을 사용하는 다양한 방식의 부재이다.
김형민: 신체성 개념이 변화해야 하며,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나 안데렉: 동의한다. 난 신체성이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최소화되고 있다.
김형민: 줌을 통해서 움직이면 공간과 소통의 제한으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타인의 에너지를 받을 수도 없다. 사실상 함께가 아닌 혼자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살게 된다면 삶 속 그리고 공연에서의 신체성이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김형민 ⓒ김하람
얼론 투게더, 그 이후
김형민: <얼론 투게더>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안나 안데렉: 우리 스스로는 공연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실제로 한국으로 공연을 하러 올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주한스위스대사관, 은암미술관, 광주비엔날레 관계자의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고 예술가들은 작업을 멈춰야 했다. 어떠한 대안을 강구하지 않고 아예 허락하지 않는 것은 예술계를 어렵게 만드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공연이 가능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비록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었던 기간이 아니라 비엔날레 관객은 없었지만, 공연 기간 동안 관객들이 꾸준히 찾아주었고 관객이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다. 관객들이 꽤 긴 시간 동안 공연을 관람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형민: 무대가 굉장히 멋있었다. 무대 장치의 재료가 얇고 섬세하면서도 분명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안나 안데렉: 시노그라피를 담당한 건축가 김사라와는 보통 기술적이거나 예산적인 이야기를 하곤 한다. 많은 투어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 및 기술적인 부분은 미학적인 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업의 예술적 측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항상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건축과 안무를 다루는 김사라의 작업을 이미 두 번에 걸쳐 한국에서 함께 했었고 그때 박수환 영상작가와도 함께 작업하였다. 박수환 작가의 시선, 높은 수준의 테크닉, 즉흥적으로 순간을 잡아내는 능력이 맘에 들었다. 광주비엔날레 공연이 끝난 후에도 작업을 볼 수 있도록 영상으로 남기길 원했고 박수환 작가가 직접 공연을 촬영해주었다.
김형민: 작업에 참여한 모든 예술가가 작품을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 함께 작업할 계획이 있는가?
안나 안데렉: 박수환 작가를 스위스에 초청하여 함께 작업하려고 계획 중이다. 또한 <얼론 투게더> 투어를 하고 싶고 이번에 함께 작업한 사람들과 그대로 진행하길 원한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완벽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지금은 새로운 작품도 진행하고 있으며 곧 독일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얼론 투게더> ⓒ안나 안데렉
정리. 한석진(무용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