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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20.12.14 조회 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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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건축] 건축 설계와 영상, 그리고 안무의 어디쯤

[춤과 건축]



<춤:in>에서는 2020년 한 해 동안 ‘춤과 건축’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건축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건축 그 사이를 탐험한다. 건축 전문가와 건축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건축]건축 설계와 영상, 그리고 안무의 어디쯤

김사라_건축가

ⓒ권민호, PaTI 일러스트레이션 스튜디오. 모갈2호

ⓒ권민호, PaTI 일러스트레이션 스튜디오. 모갈2호
“Dance is the most ephemeral of arts. It is inscribing on air like architecture.”
Yi-Fu Tuan, <Passing strange and wonderful>, Island Press 1933

<마지막 장소>(2017), 영상 23:41 ⓒ박수환
지난 11월 8일, 제4회 서울 무용영화제에서 다이아거날 써츠의 공간 실험 프로젝트 <남이 설계한 집>(Designed by Another Architect : The romance of many dimensions, 2020)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남이 설계한 집> 프로젝트는 <마지막 장소(Last Place)>(2017)에 이은 다이아거날 써츠의 두 번째 공간 실험 프로젝트이다. <마지막 장소>가 경계 없는 공간에서 얼음과 무용수의 관계, 그리고 얼음이 녹으면서 변하는 저수지의 공간감과 주변의 자연 현상에 집중하여 공간성을 구현하는 작업인 것에 반해, <남이 설계한 집>은 누군가가 설계하고 오랫동안 철근 콘크리트 구조체만 남겨진 건물의 여러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발현하는 설계 작업이다. 이 시도는 건축가가 건물을 리모델링 하는 과정의 연장 선상에서 건물을 다시 살게 하는, 재생의 한 형식으로 간주했다. 특정한 용도로 설계된 건축을 다른 차원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 제3자의 시선을 통해 한 공간이 다양하게 인식될 수 있는 무한한 공간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7년 <마지막 장소> 작업을 시작할 때 안무가와 영상 감독과의 협업은 막연한 시도였다. 예술계나 건축계에서 암묵적으로 물리적인 구축이 건축을 대변하는 작업 방식으로 강요받는 풍토에 다른 방법으로도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고 발현할 수 있다는 엉뚱한 발버둥이었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건물이 아닌 공간을 다루는 설계자로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건축은 물리적인 구축뿐 아니라 건축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여러 문제 해결 능력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인식. 지각하고 점유하는지를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규모나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다이아거날 써츠가 지속적으로 작업의 경계를 넓혀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이 설계한 집>은 건축과 영상 혹은 안무, 아니면 음악, 사진 등의 어느 영역에 국한되기 보다 공간을 발현하는 방법론의 결과물이다. 한 건축가의 무용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으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도 예술의 영역을 구분하여 감상하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남이 설계한 집> 자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독자들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이 설계한 집>(2020) ⓒ드로잉 다이아거날 써츠

<남이 설계한 집>(2020) ⓒ드로잉 다이아거날 써츠
<남이 설계한 집>은 경험 표기 체계라는 드로잉으로 각 공간에서의 경험을 지시하고 벽이나 바닥, 기둥을 세우는 대신 사람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공간감을 발현한다. 영상은 버려진 구조체의 규정된 공간에서 카메라의 방향과 안무가의 움직임을 매개로 공기의 밀도와 매질, 중력, 공간의 축, 그리고 빛에 의한 시각적 착시를 다룬다. 건축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물리적 구축 과정을 제하고 공간을 감지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본능적이고 친밀한 단위인 인간의 몸과 움직임을 사용했다. 인간이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느냐가 건축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몸을 통한 공간의 묘사나 그 안에서의 서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남이 설계한 집> 영상은 버려진 콘크리트 건물의 구조적 공간과 그 공간 속의 인간의 특정적인 움직임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여러 방법으로 중력을 다룬다. 중력과 무한한 겨루기를 하기를 타고난 건축과 무용, 그래서 더욱이 그 중력이 달라지는 상황은 건축과 무용 양자에게 의미가 있다. 아래 첫 번째 이미지는 <남이 설계한 집>영상의 일부로 중력과 안무가의 힘겹고 아름다운 겨루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건축과 무용은 시간의 지속성과 일시성으로 운명을 달리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몸’을 도구로 경험하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공유한다. 공기의 매질과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안무가의 낯선 동작은 인간을 나른한 인식에서 깨운다.

<남이 설계한 집>(2020) 영상 13:15 ⓒ박수환

<남이 설계한 집>(2020) 영상 13:15 ⓒ박수환

 <남이 설계한 집>(2020) ⓒ김주영

<남이 설계한 집>(2020) ⓒ김주영
<남이 설계한 집>에서 연출된 안무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자체는 추상적이지만 인간이 공간에 개입하면 그 공간은 규모가 가늠되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없다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혹은 증명해 낼 방법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작업하는 장성건 음악감독이 언젠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소리 자체는 파동이기 때문에 자연 현상 속에 늘 있는데 듣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소리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공간, 건축도 분명 그런 것이지 않을까? 보고 경험하는 자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공간 - 그렇기에 설계자나 안무가는 더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가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진 공간의 조형을 정의하듯, 춤은 잠재적 공간의 조형성을 내포한다. 인간의 움직임은 자체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며 공간감을 만들고, 건축은 조형으로 공간을 정의하고 그 안에서 열려있는 공간감을 제안한다. 공간은 짓기의 과정을 거쳐 물질화되는 것일 뿐 건축 설계도가 완성되면 설계자의 머릿속에 이미 수많은 레퍼토리(repertory)를 그리며 존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사용자가 얼마만큼 섬세하느냐에 따라 일상의 움직임, 매일매일의 동작이 더해지며 삶의 퍼포먼스를 재설계할 수 있다.

<남이 설계한 집>(2020) ⓒ박수환

<남이 설계한 집>(2020) ⓒ박수환
김사라_건축가 김사라는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 Thoughts)의 대표 건축가이다. 작업의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고 건축, 디자인, 사고를 매개로 설계와 공간에 관한 작업을 한다.
권민호_일러스트레이터 권민호는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와 왕립예술대학원에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드로잉과 영상을 기반으로 일러스트레이션과 순수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다. 관찰에 기반을 둔 재현 그림으로 생각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엮는다. 우리 근·현대의 풍경을 소재로 지금 우리 삶을 보이려 노력한다. 색을 다루는 것이 서툴러 잘 쓰지 않지만, 때론 '움직이는 빛'으로 그림 위에 색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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