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액트_션]은 전 세계 및 한국 무용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중에서 눈여겨 볼만한 '전환'의 지점이 되는 행동/활동을 돌아보고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발언하고 행동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나’와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래전 『정의를 향해 비틀거리며 가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책의 저자인 리 호이나키(Lee Honiacki)는 물질만능주의의 미국 사회에서 때로는 금욕적이리만치 느껴지는 실천적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루하루 마주하는 일상의 시스템과 그 안의 문제점들을 고민하면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한다. 그는 변화를 위해서라면 변화가 몰고 오는 일상의 불편함을 묵묵히 감수하는 사람이었고,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생각이 매우 꼼꼼하여 함께 살아가기엔 참으로 피곤한 사람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라마틱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정의를 향해 비틀거리며 가다』라는 책 제목이 지닌 의미만은 선명히 각인되었다. 저자는 삶의 면면을 사유하고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 다수가 걷는 일반적인 길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웹진<춤:in>의 [춤과 액트-션>] 코너를 부탁받은 후, 장혜진 안무가의 유럽의 기후 행동에 관한 에세이를 보면서 큰 영감을 받은 터라 내 차례가 오자 책임감과 약간의 중압감을 느꼈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무용계에서 눈여겨 볼만한 ‘턴’으로서의 행동과 액션들을 되돌아보고 이에 안무가의 생각을 굴절하는 데 초점을 둔 이 코너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 행동에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 참 좋았다. 그 첫 회로 다뤄진 안무가 제롬 벨(Jerome Bel)의 지구 온난화에 관한 실천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예술가의 겉멋이나 자의식으로 인한 고집 정도로 치부될지 모르나, 나에게는 안무만큼 의미 있는 행동으로 느껴졌다. ‘act’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일반적인 ‘행동’ 혹은 ‘행동하다’라는 뜻 외에 연극 조의 행동, 즉 진정성과는 거리가 있는 꾸미기 식의 행동이나 시늉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때로는 안무라는 것이 실천적 행보로서의 액션(action)이 아니라, 그저 실천적인 주제만을 안무 소스로 차용한 “an act”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유수의 페스티벌에서 안무 행위 자체를 걷어내고 논의의 판을 벌인 자전거를 탄 사내의 일탈은, 그 일련의 행동들 자체로 매우 실천적인 안무 행위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국내로 눈을 돌려 지금 무용계의 실천 행동은 어떠한가. 무용계에는 그동안 눈여겨 볼만한 ‘턴’으로서의 행동과 액션들이 있었으며, 있다면 지금 이 시각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
유턴이 아닌 새로운 길을 향해 : 무용계 미투 사건들로 가시화된 창작환경의 변화 가능성
이 질문을 던지자면 이견 없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작년, 수많은 매체가 ‘누르고 누르다가 드디어 터졌다’며 대서특필한 무용계의 미투(Me too) 사건들로 시작된 반성폭력 연대다. 누군가는 이를 일부의 세력다툼, 다시 말해 원로 대 개혁 세력(?) 간의 싸움 정도로 치부하며 그 의미와 규모를 축소하려고도 하였으나, 2016년부터 시작된 가히 혁명에 가까운 국내외의 미투 운동은 전개 과정에서 변화를 가능케 하는 언어와 논리의 기반을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 심어 놓았다. 그리하여 저항과 비판의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치부되었던 무용계에서조차 미투가 터진 것이다. 서툰 언어를 가졌고 연대 경험이 없었음에도 뜨거운 연대 행동들이 일어났고, 이는 우리 사회를 놀라게 하였다. 참여한 누적 인원만 천여 명에 달한 작년 미투 사건에 대한 연대 행동에는 실제로 지금 한창 창작 작업을 펼치고 있는 다수의 무용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직접적인 행동은 많은 무용인이 본인의 창작환경을 되돌아보고 규약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며 무용계의 더욱 구체적인 개선과 변화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그리하여 개인들이 따로 또 같이 참여한 다양한 층위의 ‘액션들’은 매우 굵직한, 즉 하나의 일관된 방향성을 지닌 턴(Turn)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누군가는 ‘연대의 승리’라고도 평가한 이 거스를 수 없는 집단행동의 방향성과 변화의 여정은 올해도 진행 중이며, 이러한 ‘변화의 턴’을 굴착한 여러 단체와 개인행동들 중에 필자는 승리와 패배에 초점이 맞춰진 법정 재판 과정 대신, 안무가로서 본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예술작업을 통한 연대 액션과 그 안에서 예술과 정의(art and justice) 사이를 비틀거리며 나아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기술해보려 한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을 꿈꾸며-
‘우리는 그동안 여성이자 무용수였고 서로에게는 낯선 섬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여성이자 무용수, 그리고 서로에게는 낯선 섬이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예술 생태계의 ‘남동생 업어 키우기 문화’ 속에서 ‘여성 무용수로서의 나’는 늘 뒤로 밀리고, 우리의 신체 주권은 헛헛하게 나뒹굴며 세찬 물살에 삼켜져 왔습니다. 작아짐을 강요하는 침묵의 바다에 둘러싸여 동료를 보면서도 홀로인 듯 외로웠던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낯선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의 바다에 언젠가부터 파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섭도록 새카맣게 어두워 소용돌이로 떨어져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억겁의 물결은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외롭게 떨어진 섬들 같던 너와 나를 저 밑바닥 어딘가부터 연결하던 대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너’와 ‘나’를 연결한 ‘여성’이라는 그 길을, 우리는 이제 걸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질퍽이는 길의 굽이굽이를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묻고자 합니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은 있는가. 더는 ‘공연의 꽃’이 아닌 ‘공연을 지탱하는 나무’로 불리기를 원하며, 원초적 야성을 갑옷처럼 장착한 여성 무용가들이 달려가야 할 너른 벌판은 어디인가.
2020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35주년’을 맞아 무용계에서 활발하게 페미니즘을 탐구해온 여성 무용가들과 함께, 움직임으로 여성들의 신체 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성 예술가들이 회복해야 할 너른 대지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을 꿈꿔보고자 합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춤추고 기뻐하며, 눈물이 마를 때까지 웃고 울며 달리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세차게 나뒹굴고픈 당신과 나의 그곳, <찬란한 벌판>입니다.“
이 글은 올해인 2020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헌정 공연을 기획하며 작년 가을에 미리 써놓은 <공연 기획 의도>이다. 미투 사건의 방청연대 과정에서 급변하는 상황을 접할 때마다 쌓인 안타까움을 문장으로 꾹꾹 눌러 담았는데, 한번은 반드시 국내의 처참한 여성 인권의 현실을 무대에서 논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작성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 밑바탕에는 몇 개월간 법원과 무대 안팎에서 구체적인 연대 행동을 함께해온 출연진과 제작진이 있었다. 무용계 미투 사건들의 1심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2019년 가을부터 본 공연에 참여 의사를 밝힌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재판을 참관한 후 연습실로 돌아와 연습하고, 다시 모니터링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몇 개월을 자발적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전까지는 서로의 작업을 멀리서 지켜보던 동료 선후배에 불과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고 현실이 몰고 온 풀리지 않는 무기력감을 작품으로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연대로서의 예술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하여 포스터 하단에 위치한 <후원>에는 아래 단체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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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포스터 ⓒ천샘
“후원: 아프리칸댄스컴퍼니 따그, 오후의 예술공방, 툿 네트워크, 그리고 댄서스라운지”
이 단체들의 이름은 무용가로서 개개인의 액트(act)가 우리로서의 연합된 액션(action)으로, 그리하여 공연을 올리는 행위를 통해 어떠한 방향성을 만들어 내는 턴(turn)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드러낸다. 학원이든 공원이든 무용실이든 혹은 아프리카 댄스라는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장르이든, 자신이 속한 움직임의 지점에서 치열하게 춤을 춰왔던 그녀들은 피해자들의 아픔이 투영하는 오늘의 현실에 깊이 공감했고, 이것이 불러온 고민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그 때문에 출연진과 제작진은 본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환경적 문제점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연 준비를 시작하면서 현재의 창 제작 방식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했고, 이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절차가 무엇인지 매 순간 논의하였다. 무용수와 안무가 사이, 혹은 안무가와 안무가 사이에서 놓치기 쉬운 의사소통을 보완하기 위해 연습 전후로 대화시간을 가졌고, 논의가 필요한 모든 지점을 메신저 회의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였다. 또한 연습 시작과 마감 시간을 준수했고, 소통하기 편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공연이 올라가기 40일 전 개인 사정으로 그만둔 무용수에게는 총연습시간과 공연에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연습 수당을 지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만의 이해로는 부족했던 부분은 다른 단체들이 주최한 워크숍에 참여하여 창작규약의 초고를 만들어보았고, 본 공연의 제작을 끝마친 뒤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항들을 덧붙여 창작규약 최종본을 만들어 SNS에 공개하였다. 미투 사건들이 쏘아 올린 화두를 계기로 국내 여성 인권의 현실을 돌아보는 공연 한 편을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고민과 대안의 모색 과정은 ‘창 제작 과정 전반을 점검하는 실천 행동’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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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공연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완성한 창작규약 본문 ⓒ천샘
팬데믹적 재난의 한가운데에서 : 정답이 없는 예술의 기다림과 눈물
작년에 시작된 미투 사건들의 1심 판결이 모두 높은 수위의 실형 선고로 일단락되자, 그제야 나는 우리가 함께했던 연대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사태가 시작되었고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던 대통령의 발언에 의지하며 애써 불안감을 뒤로하고 공연의 홍보를 시작하였다. 다행히도 예매 창구를 오픈한 지 일주일 만에 1, 2회 차 티켓이 대부분 판매되었고, 개인적으로는 실천적 연대 행동으로서의 예술작업을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일군듯하여 매우 뿌듯하였다. 하지만 신천지 확진자의 출연으로 다시금 새로운 국면을 맞은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사회를 숨 막히게 압박했다. 결국 조명 리허설까지 끝난 상황에서 우리는 3월 초연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코로나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여름으로 늦추게 되면서 아래와 같은 편지를 관객들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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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에서 보내는 편지 본문 ⓒ천샘
<벌판에서 보내는 편지>
-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3월 6, 7일(금, 토) 공연 취소 및 초연 일정 재조정 안내를 담아 -
감기 바이러스를 다룬 영화 ‘감기’의 줄거리를 듣고 황당했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비슷한 현실이 벌어지니 아찔합니다. 지금은 창작자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무척 힘든 시기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일주일 만에 1, 2회 차 공연과 관객참여 세 수업의 신청이 마감되어, 공연과 부대행사의 시기를 전면 재 고려하기까지 제작진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의 취지는 여성으로서, 시민으로서, 예술가로서 우리가 꿈꾸는 변화를 예술을 통해 함께 바라보고 기리는 데에 있습니다. 공연에 참여한 여성 예술가들은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에 대한 질문이 사무치도록 깊었고, 무대에서 한번은 세차게 던져야 끝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본 공연의 취지가 온전히 실현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5월 말에서 8월 사이로 초연 일정을 잠시 보류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지속적인 응원을 보내주신 관객 여러분에 대한 제작진들의 예의이자 책임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관객참여 수업도 현재와 똑같은 형식으로 다시 진행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그 벌판에 반드시 가 닿아야 하니까요.
입금을 완료해주신 분들께는 이번 주 내로 환불 조치해드릴 예정이며 어제인 2월 26일부터 개별 연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연락을 못 받으신 분들은 아래 사이트로 들어와 댓글 남겨주시면 됩니다. 예매 취소를 고사하고 좋은 취지에 써달라고 미리 연락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응원과 지지를 바탕으로 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우리의 허허벌판은 아직 멀고 험하지만, 때로는 뒷걸음질처럼 보이는 이 과정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분명 함께 걷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걸음에 퇴보란 없으며, 우리는 분명 그곳에 가닿을 것입니다.
이 시간을 잠잠히 흘려보내고, 다시, 벌판에서 만납시다.
2020.2.27.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출연진, 제작진 드림
굳이 장문의 편지를 쓴 이유는 이 공연을 통해 시작한 ‘제작과정을 통한 실천 행동’을 지지해준 관객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 또한 그분들과 함께 완성하고자 함이었다. 예술에는 승리나 패배가 없기에 우리는 과정 안에서 뜻하지 못한 순간순간에 최선의 목표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편지를 보내며 공연 일정을 전면 재조정하는 과정 역시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실천적 예술의 진정성을 드러내기 위한 집단행동이었다. 환불 절차가 진행되자 공연을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환불을 포기하고 제작지원금으로 기부하는 관객들도 출현하였다. 그리하여 출연진과 제작진은 이 과정에서 보내주신 관객들의 덕담과 위로에 오히려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결국 우리가 ‘함께’ 꿈꾸며 행동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추스를 수 없을 만큼 낙담한 순간에 상대방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음을, 이 기나긴 기다림을 시작하는 마지막 편지를 보내면서 깨달았다.
예술과 정의를 향한 비틀거리는 길 위에서
“정의란 너희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나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체험하는 것이다. … 정의는 행동이지 반응이 아니다.” -닐 도널드 월쉬(Neale Donald Walsch), 『신과 나눈 이야기3』
우리는 치열한 행동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자신을 던질 수 있는가. 예술(art)과 정의(justice)는 바로 그 내면의 질문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행동으로 인해 체험된다는 점에서 본질이 유사하다. 즉 예술가의 정의를 향한 본능적인 목마름은, 예술도 정의도 바로 ‘자신을 몸소 치열하게 던지는 행위’에 그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예술가의 자의식으로 인한 겉멋이라 비웃는다 한들, 나에게 일어난 질문 속으로 치열하게 행동하여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 속에서 본질을 벗어난 껍데기는 부서지고, 예술은 그 활동성과 영향력의 반경이 타인에게까지 미치는 거대한 공통분모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정의’라는 말은 딱딱하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라는 말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예술이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도구가 된다고 할 때, 우리는 그러한 명목하에 예술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높은 실형이 구형된 판결을 보며 누군가는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법적 판단일 뿐, 우리의 ‘계’는 그 판결을 통해 어떤 정의를 구현하였는가, 혹은 구현하려 하는가. 창작자인 내 입장에서 이 사건들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무용계의 실천적 정의를 담은 현 실태’는 바로 시스템의 보완과 점검을 통하여,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창작환경 구현과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개인 구성원들의 저항과 비판의 언어 회복에 있다. 그리고 이는 개인과 단체들의 자발적인 선택, 즉 늘 자신을 점검하고 주변 환경과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발언하는 행동을 통해 일궈낼 수 있는 변화의 지점이다.
나는 누군가의 경험을 대신 말하기가 어려워 최근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천적 액트와 연대적 턴(an Act of Activism and Turn of Solidarity)의 사례를 기술하였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 천여 명이라는 숫자 안에 포함된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무용인에 있다. 그들은 반성폭력 연대가 직면한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였고, 방청에 참여하고 탄원서를 쓰거나 피켓을 들기 위해 매우 구체적인 실천이 뒤따르는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매 순간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동반한,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기꺼이 감수한 많은 무용인을 만났고, 그로 인해 내 삶에 찾아온 변화가 참되듯이 그들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왜냐면 그들은 두려움으로 인한 위력이 본인의 예술에 침투하는 행위에 당당히 선을 긋고, 높은 집단적 도덕성을 동반한 구체적인 실천 행동을 통해 법원의 엄중한 판결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용계를 바라보는 인식에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행동들이 모여, 우리는 비틀거리면서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