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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2.09 조회 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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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_안무가

[춤과 액트-션] 시리즈 #1 제롬 벨의 기후행동

[춤과 액트-션]



[춤과 액트_션]은 안무가 장혜진의 에세이 시리즈로,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 무용계에서 눈여겨 볼 만한 '턴'으로서의 행동/액션들을 기술하고, 이를 통한 안무가의 생각의 굴절을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춤과 액트-션] 시리즈 #1
제롬 벨의 기후행동

장혜진_안무가

춤과 액션(Actions)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액션 즉 행동은 춤/안무에 있어서 모든 것에 기반이 된다. 춤을 직접 수행하는 순간에서부터, 배우고 가르치는 순간, 창작하는 순간, 춤과 관련한 공동체를 이끄는 순간, 작품이 공유되는 순간에도 일련의 행동들이 발견된다. 연극에 비해 언어가 소거되었다고 인지되는 장르인 춤/안무에서 ‘행동’은 때로 ‘말’을 수반하기도 하고, ‘말’보다 먼저 등장하기도 한다.

행동하는 예술가들이 여럿 나타나는 현상은 2019년인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새로운 측면은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행동’들이 발화되고 시스템화되는지는 현재의 렌즈를 통해 살펴볼 만한 사안들이다. 이 에세이 시리즈에서 행동/액션을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턴’을 유사어로 사용해보고 싶다. ‘턴’에 대한 질문도 최근 예술계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새로운 접근이나 행동과 경향을 발견하기 위한 질문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공연적 전환으로 인지될 수 있나? Can we perceive this as a performative turn?’라는 질문은 동시대 공연예술의 특징을 이야기 해오는 동안, 혹은 4차 산업혁명 속의 공연예술에 대해 질문하는 동안 자주 등장해 왔다.

나는 이 에세이 시리즈에서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 무용계에 ‘턴’으로서 행동/액션이 등장한 사례들을 살펴보고, 개인적으로 발견한 그 행동들의 특성에 대해 기술해 보겠다. 그뿐만 아니라, 그 ‘턴/액션’들을 통한 내 생각의 굴절을 드러내는 것이 이 에세이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한 굴절에 의한 굴절을 담는 에세이에서 내가 첫 번째로 다루어 볼 액션은 안무가 제롬 벨의 기후행동이다.
씽크 탱크 Think Tank
2019년 여름, 안무가 제롬 벨은 ‘노 플라이트 (No flight)’ 즉 더는 비행기를 타고 투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지난여름 비엔나의 2019 임펄스탄츠 페스티벌에서 제롬 벨의 [씽크 탱크: 춤과 생태 (Think Tank: Dance and Ecology)] 토론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이 토론회는 임펄스탄츠 공연목록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기에, 나는 이것이 공연성을 띤 토론이라 추측했다. 이 토론회는 액터(Actor)들을 초대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때 액터는 배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의 행동을 수반할 사람들을 의미했다. 무용수, 안무가, 비평가, 프로듀서, 의상 디자이너, 세트 디자이너뿐 아니라 활동가, 기술자, 요리사, 농업인, 일반 관객 등 환경에 대해 발화할 수 있는 모든 직업군의 사람들이 초대되었다. 그가 이와 같은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는 씽크 땡크를 통해 그간 공연예술계의 관행을 들여다보고, 조치함으로써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해결책을 찾아내고, 그 결과로 춤과 생태에 관한 텍스트와 성명서를 발표하여 더 큰 토론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2019 Impuls Tanz에서의 제롬 벨 토론 ⓒ장혜진
토론에 앞서 그는 이것이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형태의 담론이라 이야기했다. 사회적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 그의 행보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행동임은 확실했기에 이것은 그에게 액션(Action)이자 턴(Turn)이었다. 그는 본인이 1년 전부터 수 개월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로 토론을 시작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이 사는 파리의 아파트에서 온풍기 스위치를 붙잡고 있었다. 환경을 위한 적정 실내 온도의 1~2도 오차를 줄이도록 노력하고 있다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느꼈다. 스위치를 잡은 손과 그의 창작 관습을 비교하여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삶은 가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I realized my life was fake….”라고 이야기한 그는 한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땅으로 꺼져가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어느 날 환경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 호주에서 왔다는 안무가를 만났고, 24명의 무용수를 데리고 비행기에 탑승한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다시 한번 모순을 발견했다. 그녀와 그가 계속 발생시켜 왔던 비행기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s) 때문이었다. 탄소 발자국이란 인간이 활동하고 생산, 소비하는 전 과정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총량을 말한다. 본인의 작업 활동과 해외 투어를 통해 배출해 온 탄소 발자국에 한동안 복잡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을 만났고, 그때 우울증이 멈추었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티노 세갈은 수십 년 동안 선박으로만 이동하며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었고, 제롬 벨은 그와의 만남에서 취해야 할 액션과 턴을 찾았다. 그는 당연히 환경에 관한 작업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다만 환경에 관해 행동하겠다며 노 플라이트(no flight)를 선언하고, 탄소배출의 주범인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는 기후 행동 (climate action)에 동참했다.

씽크 탱크 Day 1: 토론을 이끄는 제롬 벨의 모습 ⓒ장혜진
네이밍과 액션 (Naming and Action)
이틀간 이루어졌던 씽크 탱크 토론에서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단어 자체를 문제시 삼는 이들도 있었다.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용어를 내세우는 정당의 반대 정당이 만들어 낸 단어인데 ‘변화’라는 단어는 사태의 시급함을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었다. 한편 지구 온난화라는 단어도 환경에서 ‘온난화’ 만이 문제가 아닌데,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는 한계성을 지적했고, 온난화를 문제 삼기 위해서는 지구 온난화보다는 ‘지구 열기화(Global Heating)’와 같은 단어가 더욱 경각심을 가져올 것이라 이야기하는 이도 있었다. 그 외에도 기후 위기(Climate Crisis), 기후 재난(Climate Disaster), 기후 비상(Climate Emergency)이라는 단어들을 내세우며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한 토론의 언어를 찾았다.

언어 선택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해결 행동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놀랍게도 이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미 수년간 기후 행동을 개인적으로 펼쳐온 이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고 버스나 기차를 탑승하는 걸 사회적으로 제의화(ritualize) 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비행기로 1시간 걸릴 거리를 22시간 버스로 달리는 그 순간을 의식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그들이 질문 삼은 관행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 왜 여러 명의 무용수들을 데리고 투어하는가? 꼭 필요한 일인가?
- 왜 h&m 등과 같은 곳에 가서 의상을 사는가? 꼭 필요한 일인가?
- 왜 연습실에는 히터나 에어컨이 있어야 하는가?
- 국제 무용 아카데미아, 페스티벌, 레지던시가 왜 필요한가?

인류가 맞닥뜨렸다고 하는 멸종(Extinction) 앞에 결국 공연 프로덕션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든 것이 빠르게 질문되고 있는 현상에 나는 한동안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수년간을 냉/난방 시설이 없는 곳에서 연습해왔다는 또래 예술가들의 발언, 이를 위해 공원과 쇼핑몰, 공공의 장소에서 연습해온 이들에게 공연의 생산은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위와 같은 질문들을 바탕으로 제롬 벨은 다음과 같은 선언과 액션을 결심하였다.

- 신작 <이사도라 던컨>을 위한 연습은 스카이프로 진행하겠다.
- 타이페이에서 공연하는 <Show must go on>은 스코어를 통해서 작업하며 현지 안무가 2명에게 재무대화(Restaging)를 요청할 것이다.
- 나는 앞으로 더 개념화(Conceptualization)만 할 것이다.
- 나는 앞으로 쇼핑하지 않을 것이다.
- 공연 프로그램을 종이에 프린트하지 않고, 직접 몸으로 수행할 것(I instead perform the program)이다.
- 나는 내가 주는 월급으로 비행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과 함께 작업하지 않을 것이다.
- 씽크 탱크 토론회의 결과로 선언문을 쓰겠다.
- 토론회에 함께해 준 사람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지 않는 예술인 그룹(Non-flying artist group)을 만들 것이다.
- 그동안 선박의 탄소 발자국이 잘못 계산되어 왔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은 오염물질을 발생시키므로, 주로 기차를 이용할 것이다.

위의 액션들과 함께 제롬 벨은 앞으로 비행기로 움직이는 무용단과 극단 작업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그 이전에 벨기에와 덴마크의 일부 극장들에서 비행기로 투어하는 예술인은 기획하지 않고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예술인만을 무대에 세우겠다고 이야기한 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선언이었다. 지난 십 수년간 확장과 이주를 꿈꾸어 왔던 춤은, 다시 다른 의미의 지역성(locality)을 띠기 시작하고 있었고 이것들이 ‘환경문제를 위한 행동’으로 일축될 수 있는 결정들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생소하게 나를 감돌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제롬 벨은 ‘국제화 아카데믹 현대무용(Global academic contemporary dance)’을 비판하였다. 그가 홍콩에서 열었던 한 오디션에서 모든 젊은 무용수가 결국 비슷하게 춤을 춘다는 것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으며, 이것이 오히려 현대무용 국제화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였다. 현대성 혹은 동시대성이란, 한순간 여러 곳에서 빠르게 일어나는 것이라 믿으며 세계 무대로의 진출이나 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의 발언은 의문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씽크 탱크 Day2: 제롬 벨과 토론자들 ⓒ장혜진
제롬 벨의 액션에 대한 질문들
씽크 탱크 토론 동안에, 제롬 벨의 액션에 대한 의구심과 질문도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 생태적 가치와 금전적 가치 중 무엇을 중요시할 것인가? 결국, 모두 생존에 관한 것이 아닌가?
- 환경적 과정을 부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예술가가 몇 명이나 되는가? 제롬 벨의 특권이 아닐까? - 예술인이나 예술단체가 발생시킨 환경오염의 정도는 주식회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혹시 이는 환경 자체를 위하는 것 보다 예술인의 순결성을 위한 퍼포먼스는 아닌가?
- 우리는 어느 정보에 기대고 있는가? 그것이 미디어라면 그것은 신뢰할만한가?
- 우리가 항의하고 시위할 때는 어떠한 정보나 지식에 기반하여 움직이기 마련인데, 그때 그 지식들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 왜 예술가가 경찰이 되려고 하는가? 왜 우리를 그렇게 위치시키는가? 그러한 수직적인 시위나 액션에는 반대한다.

위의 질문들 외에도, 한 농부의 피드백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토론에 참석한 이들에게 “당신은 나를 소비하고, 나도 당신을 소비한다. 지금 당신들의 대화는 너무 깐깐하고, 딱딱하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머물러 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지금의 순간에 서로를 소비하고 있는 개개인, 또 출장과 작업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와서 비엔나에서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 - 우리는 각자 어디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쉬는 시간 동안 나는 제롬 벨과 카페테리아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가 2007년 한국 스프링 웨이브 페스티벌에서 <PK와 나>를 공연하고 티노 세갈의 <무언가를 보여주는 대신에 브루스와 댄을 춤추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를 하시오>를 위해 무용수를 선발했을 때 함께 작업하며 처음 만났었다. 그는 그때를 되짚으며 “그래, 티노처럼 그렇게 작업하면 되는데….”라고 회상했다. 반면 나는 그에게 여러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질문을 공유했다. 한국의 경우 해외여행이 허용된 지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은 것, 그렇기에 여전히 한국은 ‘여행 낭만주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섬은 아니지만, 남북의 분단으로 섬처럼 기능하여 육지로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했다. 그리고 나의 관점에서 지금의 씽크 탱크는 유럽 특수화된 토론인 측면이 있고, 그것에서 또 다른 성격의 민족주의를 발견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넌 너무 멀어서 부르지 않겠어. 너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테니까”의 논리가 가능해지는 지금의 유럽은 그와 동시에 난민사태라는 재난을 겪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제롬 벨의 기후 액션을 지지한다. 물론 그의 액션이 한편으로는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를 재현하는 퍼포먼스로 보이는 측면도 있고, 그가 이러한 불안과 수치심, 그리고 필드의 모순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해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생태불안(Ecological Anxiety)과 비행 수치심(Flight Shame)이 어쩌면 그에게는 미학적인 재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내가 비엔나에서 관찰한 그의 모습은 매우 일관되었다. 비엔나의 모든 곳을 걸어서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엘리베이터 탑승을 거부하였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녔으며, 찜통더위로 모두가 앓고 있는 비엔나의 여름 속에서 부채만 한 손에 묵묵히 쥐어 잡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퍼포먼스일지라도 나는 그를 응원한다.

제롬 벨의 씽크 탱크에서 느꼈던 가장 충격적인 점은, 모든 거대담론이 기후재앙이라는 ‘느린 죽음’ 앞에서 힘을 잃고 있었던 점이다. 자국주의, 인종주의 등과 같은 큰 이데올로기도 결국 환경의 이데올로기 앞에서는 밀려나게 되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마텐 스팽버그(Marten Spangberg)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을 바꿀 수 있다. We can only change what is thinkable. 유럽의 에로웨이브(Aerowave) 네트워크는 주최 측이 기획한 국제총회와 페스티벌이 발생시킨 탄소 발자국의 대가로 참여 프리젠터들에게 ‘3그루의 나무 심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에로 웨이브의 생각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45도가 넘는 열기가 유럽을 강타한 2019년 여름, 춤은 그 자신을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액트-션하고 있는지 발견하는 순간들이었다.
In a turn, we turn away from something or towards or around something and it is
we who are in movement, rather than it.
Something in us is activated, perhaps even actualized, as we turn.

턴을 할 때, 우리는 무언가에게서 멀어지거나, 가까이 가게 되거나, 그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 그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턴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가 활성화되고, 심지어 현실화될 수도 있습니다.

- 이릿 로고프(Irit Rogoff)의 “Turning”에서 발췌

장혜진_안무가 한국과 북중미, 유럽 여러 나라를 오가며 ‘예술가를 서포트하는 예술가'로서 안무하기-안무찾기-안무보기-안무쓰기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 <미소서식지 몸 microhabitat body>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창작, 연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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