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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08.25 조회 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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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파티 스토리:
현대무용단 고블린 파티 인터뷰

배재휘_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줌아웃 대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배재휘 인터뷰 관련 사진

연습실에서 만난 <은장도> 공연 연습중인 고블린 파티 멤버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진호, 안현민, 이연주, 임성은, 지경민, 이경구


지금으로부터 9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자. 2007년, ‘고블린 파티’가 창단됐을 때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하기 위해 만났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지난 9년의 세월을 더듬어 보았다. 그들의 애플 캘린더와 함께.



2007


임진호와 지경민은 학교 선후배로 만났다. 중앙대 졸업 작품 준비 중이었다. 제목은 <원(WonE)>이다. 같은 해 CJ영페스티벌에 출품된 본 작품이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자연스럽게 고블린 파티의 시작이 되었다. 그 해에 이 둘은 홍승엽, 이태상, 최경실 안무가와 함께 여러 작품을 같이 했고, 이후 2010년까지 계속 별다른 신작 없이 같이 작업을 해 왔다. 그래서 사실 내년이 고블린 파티의 10주년이라고 말하는 게 좀 민망하단다. 하지만 둘이 같은 작품에 무용수로 출연하거나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는 등, 지난 10년 동안 떨어져 지낸 적은 다 합쳐도 몇 달이 채 안 된다고 한다.



2008-2009


대학을 졸업하고 둘은 동대학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교육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본래 임진호의 의지가 강해서였지만, 졸업은 지경민이 먼저 했다(임진호는 아직까지 논문을 쓰지 못했다). 임진호의 경우, 많은 무용수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할 때를 위한 대비책으로써 ‘교직 이수’를 염두에 두고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진학 후에는 오히려 지경민의 무용교육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2009년에는 한 프랑스 안무가가 주축인 된 팀에 둘 다 무용수로 섭외되면서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다. 가는 김에 본인들 공연도 해보자는 생각에 <아이고(I Go)>라는 작품을 만들어서 축제에 참가했다. 당시 CJ의 후원으로 항공료와 현지에서 쓸 공연 리플릿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프랑스를 다녀온 후에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했다(이들과 필자와의 첫 만남도 바로 이때 이뤄졌다. 필자는 당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창무포스트극장 담당 무대감독이었는데, 오늘 인터뷰처럼 당시에도 그들과 다른 팀 뒷담화도 하며 재미있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줌아웃 대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배재휘 인터뷰 관련 사진

2010-2011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이들은 이때가 고블린 파티의 본격적인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지경민은 2010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임용고시까지 준비해 보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무용교육에 관한 공부는 자신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2011년에는 <아이고> 2세대가 만들어졌다(그들은 이후 <아이고>를 5세대까지 업그레이드 했다. 마치 아이폰처럼). 이 때 둘은 <아이고>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2009년 1세대에서는 임진호가 안무를 담당했다면 2011년 서울댄스컬렉션에 본 작품을 출품할 때는 ‘공동 창작’을 했다. 고블린 파티의 큰 특징 중에 하나인 공동 창작 방식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줌아웃 대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배재휘 인터뷰 관련 사진



그 해에 그들이 기억하는 또 다른 큰 사건은 매주 1번씩 공연하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오페라에 1년 동안 참가한 것이다. 당시 이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임진호는 평생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공연을 하며 무대공포증을 극복했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당시 공연 때 관객에게 일명 ‘사랑의 묘약’(사실은 자양강장제)을 반강제로 팔아서 차비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같은 공연을 하다 보니 안무를 조금씩 바꾸기도 하고, 공연 진행에 방해가 안 되는 수준에서 장난을 치기도 했단다. 공연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백스테이지에서 만화 보다가 공연하고 다시 들어와서 만화 보고, 관객 입장할 때 같이 공연장 들어가기도 했지만, 무용수라면 잘 경험해 보지 못하는 장기 공연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치도 그만큼 쌓였다.



2012


2012년에는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많았던 때였다. 임진호는 국립현대무용단(당시 홍승엽 예술감독 시절)에서, 지경민은 당시 강동아트센터 상주단체였던 안애순무용단에서 각각 무용수로 활동했다. 이 외에도 지경민은 한팩 라이징스타로 선정되어 <애니메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각자 활동하는 중에도 연말에는 다시 모여서 <아이고> 3세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듬해인 2013년 초에 해외 투어를 갈 예정이었기에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2013


2013년에는 앞서 얘기했듯이 <아이고> 3세대가 유럽 투어를 떠났다. 그리고 창단 이래 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먼저, 당시 막 군입대를 한 임진호는 유럽 투어에서 빠졌는데, 임진호는 초등학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생활을 하면서 나름 혼자 작업 구상을 계속 해나갔다. 바로 이 무렵 또 다른 멤버인 이경구가 고블린 파티에 합류했다. 부산국제무용제 AK21에 출품했던 <인간의 왕국>에 함께한 것이다. 이경구는 2011년과 12년에 대학교 강사로 출강 중이었던 지경민의 학생이었는데, 당시 콩쿠르 준비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무렵이어서 지경민의 “언제든 연락해라. 도와주겠다”라는 말 한마디에 다짜고짜 연락을 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지경민은 성심을 다해 그녀를 도와주었고, 이후 <아이고> 4세대에는 손나예 무용수가, 5세대에는 이경구가 함께하게 되었다. 같은 해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 출품한 <불시착>이라는 작품도 만들어졌는데 이는 <인간의 왕국>의 파생작이라고 한다. 이 외에 지경민은 고블린 파티 활동을 하는 와중에 개인 활동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11분>에 참여했다.



2014(a)


2014년에는 국내외에서 기존 작품들의 초청콜이 끊이질 않았다. <불시착>은 러시아, 일본, 그리고 모다페에서 초청받았고, <아이고>는 오스트리아와 벨기에에서 투어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국립현대무용단 ‘전통의 재발명전’에서 <혼구녕>이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매우 바쁜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줌아웃 대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배재휘 인터뷰 관련 사진



PAUSE


여기에서 잠깐 시간의 흐름을 끊어서 이들이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을 병행하는 면면을 통해 공동 창작 방식에 이은 고블린 파티의 또 다른 특징들을 엿보도록 하겠다. 실제로 지경민, 임진호, 이경구 등은 팀 활동 뿐 아니라 개인 활동들도 잦은 편이다. 먼저, 지경민은 <11분>과 한팩 라이징스타 공연을 통해 알게 된 무용가 김보라와 <땡큐>를 비롯해서 작업을 함께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김보라는 고블린 파티와는 매우 다른 작품 성향을 가지고 있는 안무가란 점이다. 고블린 파티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다른 무엇보다 ‘움직임과 몸을 통한 표현에 집중’ 하는 것이라고 할 때 특히 그러하다. 예를 들어 김보라가 안무한 <아트 보라 컴퍼니>는 무대미술적 요소가 많지만, 고블린 파티 공연들의 경우에는 기껏해야 의상 정도에만 힘을 주는 편이다. 그럼에도 고블린 파티 멤버들이 이렇게 성향이 다른 무용가들가와도 개인 작업을 활발히 하는 것은, 멤버들이 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음을, 또한 고블린 파티가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런 개인 활동이 마치 배움의 과정과 같다고 설명한다. 자신들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무용수로서도 체력이 되기 때문에 외부 활동을 통해 팀 활동에서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은 배운다고 말이다. 반대로 팀 작업은 ‘장사’와 같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나중에 은퇴하고 뭐 할 거야?”라는 질문에 “장사나 해야지”하는 그런 ‘장사’가 고블린 파티의 작업이다. 좀 더 완성된, 완벽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에서 멤버들의 개인 활동을 권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 배움의 과정은 계속할 것이다.



줌아웃 대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배재휘 인터뷰 관련 사진



내친김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고블린 파티의 또 다른 특징은 ‘스토리’이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관념을 주제로 삼는 여타 다른 현대무용단체에 비해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 작품을 만든다. 일례로 이번에 준비중인 신작 <은장도>도 각각의 사연과 캐릭터를 지닌 4명의 과부가 은장도라는 섬에서 살며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이는 작품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다 못해 학술적인 면모도 보이며 일반 대중 관객과는 거리감을 두고 있는 요즘의 현대무용과는 좀 다른 길을 가는 듯하다. 그들이 진지함을 싫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겠다.



2014(b)


다시 2014년으로 돌아오면, 2014년 중반에는 고블린 파티에 큰 영향을 끼친 일이 있었다. 바로 홍은예술창작센터(現 서울무용센터)에서 입주예술작가로 레지던시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연습실도 레지던시 시절에 느낀 창작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마련한 공간이라고 한다. 이전까지는 일명 도둑콜(야밤에 몰래 학교 연습실에 가서 문 열고 들어서 숨죽이고 연습하다가 나오는 비밀 연습)로 연명하다가 레지던시로 인해 창작 공간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지경민은 부모님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반드시 거주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서울무용센터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고 했다. 가끔 친구들과 술 마시고 늦게 집에 갈 때는 휴가라고 말하면서...



2015


서울무용센터에서 만들었던 <맛있는 몸>, <올바르며 슬기롭게> 등의 작품으로 2015년에는 젊은안무자 창작공연, 춘천아트페스티벌 등에 참가했다. 한편, 임진호는 <올바르며 슬기롭게>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참여하지 않았던 작업이었던지라 이를 공연장에서 처음 본 것이다. 너무 재밌고 좋은 반면, 자신만 뒤쳐질까봐 우려되어 개인 활동으로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에 참가하여 <리어왕>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꼭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작품이라고 한다. 이후 고블린 파티는 처음으로 커뮤니티 댄스를 만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문화재단 ‘서울댄스프로젝트’의 ‘서울무도회’에서 참여 권장을 받아서 만든 <사연이 깃든 작은 습관의 파생>은 일반인과 함께 춤을 추는 작품으로 당시 제작지원비 100만원으로 만들었다. 악기 연주가 있으면 25만원이 추가 지원된다고 하여, 임진호가 작품에서 멜로디언을 불었다. <아이고>는 그 해 처음으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정식으로 초청되어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불시착>은 스페인에서 야외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공연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를 백스테이지 바닥에 세워두고 객석 방향으로 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구형 카메라라 최대 20분 촬영만 가능해서, 지경민은 20분마다 버튼을 다시 눌러주기 위해 본래 작품에는 없던 움직임까지 넣어가며 공연을 했고, 결국 공연하면서 촬영까지 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페이스북에서 당시 찍었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지경민은 다른 것보다 영상촬영에 대한 욕심이 크지만,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본인이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줌아웃 대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배재휘 인터뷰 관련 사진



2016


2016년 현재, 고블린 파티는 8월에 공연될 <은장도> 외에 창작산실에도 선정되어 <옛날 옛적에>라는 작품도 준비중이다.

임진호는 9년 전, 학교 근처 자신의 자취방에서 고블린 파티를 결성하면서 지경민과 꿈꿨던 것들을 지금 대부분 이뤘다고 말한다. 다만 아직 수도권이 아닌 지방, 도서 지역에서 공연을 많이 못해본 것은 아쉽다고 한다. 사실 국내 공연보다 해외 공연을 더 많이 간 팀이기 때문일 테다. 어린 시절 지경민은 친구 아버지가 출장 갔다가 사온 선물을 보면 너무 부러웠는데, 부러웠던 이유가 선물 때문이 아니라 친구 아버지가 ‘출장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출장 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지금 그와 고블린 파티는 바로 그 ‘해외 출장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어린 지경민의 꿈이 별다른 이유 없이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이었던 것처럼 그냥 해외 공연을 갈 뿐이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통해 해외에서 한국 현대무용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고블린 파티의 공연을 본 해외 공연 관람객이 “Korean contemporary dance is nice”라고 외치고 심지어 심장이 멈추기도 했단다(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고 한다. 평소 심장이 안 좋은 관객이었지만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초청이 아니라 고블린 파티가 직접 자체 제작 공연을 가지고 나가 올려도 관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지원금이나 초청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단체를 운영하고, 자신들만의 색깔과 방식을 계속 유지하여, 지금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고 있는 우리들이 모두 사라진 100년 후에도 고블린 파티가 현대무용계라는 사회에서 하나의 강력한 정당(party)으로 여전히 남아있길 바란다.



고블린 파티(Goblin Party)_비상한 힘을 가진 도깨비들의 모임/현대무용단 2007년 창단. 단체 상징은 도깨비. 주요 멤버는 지경민, 임진호, 이경구 등. 단체 대표는 없음. 케바케로 작품 안무자가 리더가 됨. 관객과의 소통을 중점으로 두되, 관객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 몸과 춤에 최대한 집중하여 창작하고 작품에서 무대, 조명, 음향, 영상은 그저 거들뿐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 댄스 컴퍼니.
고블린(goblin)=도깨비 / 파티(party)=정당 혹은 당
https://www.facebook.com/koreagoblinparty
배재휘_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문화 예술’과 ‘문화 콘텐츠’는 다른데……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대리 나부랭이.


배재휘_한국콘텐츠진흥원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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