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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1.13 조회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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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과학] 세계관

[춤과 과학]



<춤:in>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춤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과학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과학 그 사이를 탐험한다. 과학 전문가와 과학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과학]
세계관

주일우_과학잡지 에피 발행인

ⓒ이철민
1.
아무것도 없는, 혼돈(카오스)만이 있다가 갑자기 태어난 대지의 여신, 이어서 혼돈 속에서 밤의 여신, 어둠의 신이 등장하고 가이아는 하늘, 산, 바다의 신을 낳고 다른 신들도 잇달아 세상에 나왔다. 신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있기는 했지만, 어둠과 빛이 나뉘고 산과 강이 생기고 사람들이 사는 터전이 만들어졌다. 바다의 신이 노해서 삼지창을 휘두르면 폭풍우가 치고 하늘의 신이 놀라면 바람이 분다. 신들이 크게 흔들어대는 세상에 사는 인간들의 삶은 고달프다.
2.
하나님이 혼돈과 어둠에 빛을 만들고 낮과 밤을 나누었다. 하늘을 만들고 물이 흐르고 시간도 흘렀다. 식물과 나무를 만들어 곡식과 열매가 열리고 해와 달, 그리고 별이 하늘에 자리를 잡도록 했다. 새, 바다짐승, 집짐승, 들짐승을 차례로 만들고 그것을 다스릴 인간들이 태어났다. 세상은 처음에 만든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예측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바닥 안이다. 기적이라는 형태로 하나님은 그 뜻을 인간들에게 알릴 수 있다. 따라서, 섭리를 헤아린다고 자만하지 말고 늘 조심해야 한다.
3.
아무것도 없는 혼돈 상태에서 거대한 알이 생겨났고 알에서 거인이 태어나 도끼를 휘둘러 하늘과 땅을 갈랐다. 가른 것만으로는 하늘과 땅 사이가 충분하게 넓지 않아서 반고가 땅을 밟고 하늘을 지고 만팔천 년을 견디면서 사이를 점점 더 벌렸다. 하늘과 땅 사이가 구만리 벌어졌을 때, 거인은 생명이 다했다. 그의 몸은 세상의 만물의 재료가 되었다. 여기에 살 인간들은 네 명의 신들이 힘을 합해서 만들었다. 흙을 빚어서 만든 인간들은 그때그때 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만듦새가 달랐다. 사람의 생김새가 천차만별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4.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회전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까지는 지상계이고 그 위는 신의 영광을 표현하는 완벽한 천상계이다. 지상계를 이루는 물질들은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져 있고, 네 가지 성분의 비율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정해진다. 불이나 공기와 같은 성분이 많은 물질은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경계면으로 올라가려고 하고 흙이나 물처럼 무거운 성분이 많은 물질은 우주의 중심인 지구 중심 쪽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천상계에서 움직이는 해나 별의 움직임은 완전한 운동인 원운동만 하고, 우리 눈에 그들의 운동이 원운동을 벗어나 보이는 것은 원운동이 겹쳐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물론, 생명은 신이 시작과 번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 주위를 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상의 구조와 움직임, 그리고 그 존재 이유까지 모두 바꿔야 하는 일인데, 다른 설명 하나 없이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다니.
5.
사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만화 속에 있다. 우리가 생활하다가 갑자기 독자들에게 보이는 장면에 끌려가면 작가가 준 대사를 읊어야 한다. 내가 사는 만화는 로맨스 만화라서 남주, 여주, 서브 남주, 서브 여주, 엑스트라 등의 역할에 따라 주어진 설정값이 그것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 하지만, 독자들이 보는 장면 바깥에서는 자신이 의지대로 행동을 하면서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에 의문을 지닌, 자아를 가진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밥 맛없는 녀석을 짝사랑해야 하는 역할에 진저리를 치기도 하고, 곧 죽어야 하는 운명에 거스를 방법은 없는지 궁리를 하기도 한다. 작가가 시키는 대로 독자들 앞에선 연기하면서 그 바깥에서는 반전을 꿈꾼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 자아가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 가끔 측은하다. 하지만 고민 없는 녀석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만화에서 엑스트라이지만, 나도 마음속에 좋아하는 녀석이 있는데, 작가는 1도 관심 없을 테니, 그 사랑을 이룰 방법이 있는지 좀 더 열심히 탐구해야 한다.
6.
137억 년 전의 빅뱅에서 출발해서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한구석에 있는 우리 은하의 변두리에 있는 태양계의 3번째 행성, 지구. 지구의 역사는 45억 년 정도 되는데 생명은 35억 년 전에 시작되었고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진화했다. 다양한 생물들이 지구상에 번성했고 그 갈래에서 인간도 등장했다.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이제는 원자와 전자, 그리고 아원자 구조까지도 알고 그 힘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이런 지식과 힘에 기반해서 세운 인류의 문명은 지구 생태계, 대기 조성, 그리고 기후까지 거대한 영향을 미쳐서 인류 스스로 살기 어려운 상황으로 지구 환경이 급속히 변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하지만 제대로 정체를 밝히지 못한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소로 이루어진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의 4%에 못 미친다. 그 4%에 못 미치는 지식도 내 작은 머리로 이해하긴 쉽지 않다. 137억 년과 같은 긴 시간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 시간이 가져온 생명의 다양성도 100년 남짓의 시간의 길이에 갇힌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다. 위대한 영혼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해주어 이해하는 척하고 있지만 깊게 내려가면 모르는 것 투성이다.
7.
주변 사람들도 내가 마법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가끔 내가 실수해서 편지를 가지고 온 하얀 부엉이를 들키기도 했지만 간단한 주문으로 목격자들의 기억을 지운다. 마법사들만 사는 세계에서 끼어서 살 수도 있었지만, 가족들과의 불화도 있었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도 즐거워 여기서 계속 살고 있다. 여기서 살면서 사람마다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나 그 속에서 작동하는 원리들이 같은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애써 피한 탓도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에 대해 내밀한 물음을 던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왕따도 아니건만 서로의 세상이 다르니, 친구들과 서로 완전히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는 데 힘든 경우들이 있다.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세워 어깨 걸고 함께 나아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나는 마법세계 바깥에서 지금의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은데, 이들에 사는 세상이 모두 다르다는 것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 기후변화나 에너지 문제처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큰 상황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 내가 과학자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내 친구들이 내가 알아낸 지식을 바탕으로 공유하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주일우_과학잡지 에피 발행인 주일우는 생화학과 과학사를 공부했고 과학과 사회의 연결 지점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1996년에 창간된 문화 잡지 《이다》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과학과 문화 사이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아트센터나비, 문지문화원 사이를 거치면서 인문학, 과학과 예술을 연결하고 많은 협업을 만들어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역임했고, 지금은 과학잡지 《에피》를 발행하면서 두산인문극장, 카오스재단 과학강연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

이철민_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기획을 하는 출판 작가이다. 94년도부터 다양한 이슈를 그리는 저널,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일러스트를 해왔으며, 일상을 그리는 수필집 《글그림》을 출간했다. 그 외 《박문수전》, 《내 이름》, 《창경궁의 동무》 등에 그림을 그렸다.

주일우_과학잡지 에피 발행인 주일우는 생화학과 과학사를 공부했고 과학과 사회의 연결 지점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1996년에 창간된 문화 잡지 《이다》의 편집동인으로 참여하여 과학과 문화 사이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아트센터나비, 문지문화원 사이를 거치면서 인문학, 과학과 예술을 연결하고 많은 협업을 만들어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역임했고, 지금은 과학잡지 《에피》를 발행하면서 두산인문극장, 카오스재단 과학강연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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