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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1.11 조회 3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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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품 <네스티: 여성, 억압과 해방>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웹진 <춤:in>은 2018년을 이어 ‘떵샤와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코너를 2019년 5월, 8월, 11월 총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무용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과 함께 무용공연을 본 뒤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코너입니다.


[떵샤랑 같이 무용공연 보러가요!]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품
<네스티: 여성, 억압과 해방>

떵샤(윤상은)_안무가

같이 보러 간 사람들

신지혜

경기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장. 장애인들을 만나는 자원 활동을 하면서 소수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술을 우대하는 소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욕구는 늘 있었지만,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대학입학 후 줄곧 시민사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페미니즘과도 가까워졌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끔 덕질(?) 겸 공연을 보러 간다. 요즘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뭘까 고민하는 것을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신율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스무살에 만난 페미니즘 덕분에 10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 즐겁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해서 수학여행 장기자랑 무대에 늘 올랐다. SES, 디바, 이효리, 엄정화 언니의 노래들과 함께. 대학 때는 여성힙합동아리를 했고 지금도 친구들과 사부작 사부작 댄스 공연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현대무용에 도전하고 싶은 로망이 몸 어딘가에 늘 꿈틀대는데 과연 로망의 실현은 언제쯤…?

왼쪽부터 신지혜, 이신율 ⓒ윤상은
내가 춤을 받아들일 때
떵샤: 무용공연이 두 분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데, 오늘 무용공연을 보러 가는 것에 대해 어떤 기대감이 있으셨나요?
지혜: 저는 약간 걱정을 했어요. 난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영화를 볼 때는 평론가의 말들을 참고하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데, 무용은 해석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과연 무용공연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고 왔던 것 같아요.
신율: 저도 너무 공감돼요. 그래도 기대가 있었던 게, 이런 기회에 무용을 보지 않으면 절대 스스로 보지 않을 테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현대무용을 배워서 추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있었는데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못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더 기대됐어요. 심지어 그저께 밤에 꿈을 꿨는데, 제가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평소 익숙한 K-Pop 아이돌그룹의 군무가 아니라 오늘 본 공연처럼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춤이요. 제가 TV 프로그램인 <퀸덤>을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그 꿈을 통해서 ‘아 맞다. 내가 이런 욕구가 있었지’를 다시 한 번 상기했어요.

왼쪽부터 이신율, 신지혜 ⓒ윤상은
떵샤: 그런데 <퀸덤>이 뭐에요?
신율: 요즘 인기 있는 엠넷(Mnet) TV 프로그램인데요. 여자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이에요. 보통 아이돌은 기획사가 제안하는 한정된 컨셉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퀸덤>에서는 평소 하지 못했던 컨셉에 도전할 수 있고 기존의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실력도 맘껏 보여줄 수 있어요. 최근에 AOA가 멋진 슈트를 입고 보깅(Voguing) 댄서들과 공연을 하면서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라는 랩을 해서 사람들이 엄청 열광하기도 했죠. 상대적으로 남자아이돌은 콘서트를 통해 다양한 컨셉에 도전하면서 성장을 경험하는데, 여자아이돌은 콘서트를 하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콘서트보다는 행사를 도는 게 주 수입원이죠. 그런 아쉬움을 <퀸덤>이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고 있어요.
떵샤: 현대무용 공연을 보시니까, 아이돌 댄스와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지혜: 아이돌의 춤이나 퍼포먼스는 쇼(Show)처럼 연출적 요소를 부각해서 무대의 화려함에 집중하게 되는 반면에 오늘 공연은, 특히나 의상이 시스루(See-through)라서 더 그랬던 것 같은데, 몸의 움직임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어요. 보통 무용수라고 하면 발레리나처럼 여리여리한 몸매를 생각하는데, 오늘 만났던 무용수들은 운동을 많이 한 것처럼 몸에서 탄탄함이 느껴져서 움직임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율: 의상이 시스루인게 정말 신의 한수였어요. 보통 의상은 단점은 가리고, 장점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입는데, 비치는 의상은 엉덩이 처짐과 뱃살 이런 게 다 보이잖아요. 소위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는데, 그게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요가를 해봤기 때문에, 저런 움직임을 하려면 고난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알거든요. 사실 저는 평소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보니 (웃음) 작품 초중반까지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훈련해서 몸을 써야 하나 의문이 들었는데, 작품 중후반에는 훈련된 몸의 멋짐에 감탄하면서 봤어요. 특히 듀엣 장면에서는 완전히 몰입하여 몸을 수련한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요.
떵샤: 이신율님은 아이돌 댄스를 좋아하시잖아요. 아이돌 댄스의 어떤 지점이 좋은 건가요?
신율: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웃음) 그냥 나에게 제일 익숙한 문화고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아이돌 커버댄스를 해서 몇 번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아이돌이 되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현재의 K-pop 아이돌 시장이 얼마나 착취적이고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하지만 엄청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다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싶지는 않기도 하고요. 그래서 농담으로 다음 생에는 비주얼 멤버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죠. (웃음) 그렇지만 요즘엔 비주얼 멤버도 춤, 노래 다 잘해야 해서….
떵샤: 아이돌 댄스는 문화로 자리 잡아서 그런지 쉽게 즐길 수 있는데, 현대무용은 난해하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아요.
지혜: ‘내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맞나?’라는 질문이 생겨요. 그냥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뭔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감상하면 되는데, 안무가의 의도를 맞춰야 할 것 같고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마치 수능에서 ‘시인의 의도’를 맞추는 것처럼요. 출제 의도를 맞춰야 하는 것 같은.
신율: K-pop 댄스 보면 딱 알잖아요. 예를 들면 “니가 사는 그 집”이라고 하면서 손으로 집 모양 딱 해주잖아요. (웃음) 또 노래 가사랑 같이 보니까 즉각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해석이 돼요. 그런데 현대무용은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렵죠. 오늘 공연은 ‘여성의 억압과 해방’이라는 주제가 있잖아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제가 어떤 장면을 보면서 ‘지금 저건 억압이야 해방이야?’ 하면서 추측하고 있더라고요. ‘여성들이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저건 억압을 뜻하는 건가?’ 하면서요.
지혜: 보통 여성의 억압과 해방이라고 하면 억압에서 해방으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이 공연을 보면서,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장면들이 맥락 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어떤 것은 억압이고, 어떤 것은 해방이라고 단순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요.
신율: 저도 그랬어요. 지금까지 그런 촌스러운 서사에 익숙해져 있어서. (웃음) 본 게 너무 미천하여….

관객과의 대화 ⓒ윤상은
예술이 여성을 다룰 때
떵샤: 제가 여러분들을 이번 공연을 같이 보자고 섭외한 이유가 있는데요. 국내에 여성을 주제로 한 무용 작품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 여러 축제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가진 작품을 초청하곤 해요. 오늘 이 작품도 그렇고요. 제가 두 분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아니까, 이런 이슈를 다루는 무용 작품에 기대하는 바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혹은 예술이 여성을 다룬다고 했을 때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까요?
신율: 예전에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수업을 들었을 때, 수업의 키워드가 ‘다른 몸 되기’ 였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락한 것과는 다른 몸 되기’죠. 그런데 오늘 본 공연에도 그런 요소가 많더라고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하거나 허락하지 않은 기괴한 몸짓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공연 중간에 한 무용수가 섹스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하는데, 다른 무용수가 마이크를 잡고 그 동작을 “허리를 돌리고 있다. 가빠진다. 안쪽 근육을 쓰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누가 봐도 섹스를 연상시키는 몸짓이지만, 저렇게 건조한 어투로 객관화하여 서술함으로써 그 몸짓에 덧 씌워져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했죠. 그런데 한편으로 이게 뭐가 그렇게 급진적인가 싶더라고요. ‘여성의 몸은 섹스하는 몸이 아니다’라는 주제 자체는 지금까지 여성주의 작품에서 이미 많이 다뤄졌거든요. 한국에 이런 담론이 없던 것도 아닌데 북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하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담론이 있으면 뭐하나요. 아직도 여성들에게 소위 ‘여자다운’ 춤만 허락하는 사회인걸요. <퀸덤>에서 AOA가 “나는 꽃이 아니고 나는 나무야”라는 말만 해도 열광하고, 슈트만 입고 나와도 벅차오르는 게 현실이죠. 그러니까 제 말은, 더는 이런 주제가 급진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또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무용계가 제한적인 것만 허락된 공간이라면 이게 급진적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많은 여자 무용가들이 이런 주제를 계속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 주제를 다루는 게 특이한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고 인식될 만큼 말이죠. 저도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기획하고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움직임에 함께해야겠다는 생각하게 됐어요. 또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은 다르다’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리고 작품에 탈의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브래지어도 벗고 팬티도 갈아입는 모습을 조명으로 비추어 관객에게 노출하는 게 좋았어요. 무대 뒤쪽에서 갈아입고 나오는 게 아니라요. 생각해보니까 속옷을 입는 장면을 꼭 숨겨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교복 블라우스에 여성의 브래지어가 비치는 것과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팬티가 보이는 것이 문제 되는 세상이 아니라면요. 여성의 몸이 숨겨져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고 소비될 일이 없지 않지 않을까요? 저는 그래서 이런 장면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몸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이것 같고요.
떵샤: 사실 저도 이 작품이 생각보다 ‘급진적’이지 않고 기대에 못 미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관객과의 대화에서 안무가가 여성 안무가는 언제나 더 인정받아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또 너무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연의 완성도라는 것도 어떤 관습이며, 남성 중심적인 시각일 수 있는데,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쉽게 무시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지혜: 요즘에는 여성이 무언가의 책임자이고 수행의 주체자인 경우가 많아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이 중요한 직책에 자리하는 게 사람들한테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이슈를 다루는 게 무용이라서 좋았어요. 무용은 참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해주더라고요. 예를 들어 머리카락을 길게 앞으로 늘어뜨린 장면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까치발을 들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움직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렵더라도 이렇게 해방을 찾아가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또 처음과 끝에 강렬한 빨간 조명이 들어오는데, 그 조명이 성매매를 연상시켜서 여성이 진열된 모습으로 시작하는 건가 싶었다가 마지막에는 구두를 손에 끼고 립스틱을 과하게 칠한 모습을 보면서 편견을 무너트리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건, 무용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무용은 그저 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꼭 같이 본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왼쪽부터 이신율, 신지혜 ⓒ윤상은
떵샤: 관객과의 대화에서 ‘네스티’라는 제목을 트럼프가 대선 때 상대 후보였던 힐러리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했던 말인 ‘네스티 우먼(Nasty Woman: 불쾌한 여자)’에서 따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정치를 하고 계시는 지혜님의 의견이 궁금했어요. 예술작품이 정치적 이슈와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 이슈가 예술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혜: 대부분의 예술작품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최근 방영한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차별금지법’을 다뤘을 때 난리가 나기도 했었죠. 어떤 이는 그 드라마가 자신이 지지하는 바를 표현해준다며 위로받기도 했어요. 드라마처럼 무용도 정치적인 요소를 담기도 하는데, 무용이라는 장르 자체가 아직 친근하지 않아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익숙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과 같은 장르에서는 정치적인 코드를 쉽게 발견하는데, 무용에서는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특히 저처럼 창당을 하려는 상황에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이슈를 유명한 누군가가 언급했으면 위안이 될 때가 있어요. 오늘 공연을 보며 페미니즘 이슈를 가지고 있던 관객은 반가움을 느꼈지 않을까요? 그리고 오늘 공연에서 ‘페미나치’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말이 전 세계적인 단어였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웃음)

신지혜 ⓒ윤상은
무용수의 몸
떵샤: 여러분이 평소에 생각하는 무용수의 몸은 어떤 몸인가요?
지혜: 무용수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김연아였어요. 김연아처럼 가냘프고 마른 몸이 아름다운 춤을 출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대학 시절 무용과의 학교 공연을 보았을 때도 그랬고요. 그런데 오늘의 공연도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랐고 예전에 떵샤의 공연을 봤을 때도 그랬어요. 그렇게 무용은 정형화된 몸의 형태를 보여주는 장르가 아니라, ‘움직임을 어떻게 보여주는가’가 중요한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공연에서 성적으로 느껴지는 움직임에서 주짓수처럼 강렬한 움직임으로 진화되는 걸 보면서 ‘여성은 여성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그 메시지를 보여주는 게 곧 무용이라는 장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율: 저도 비슷하게 마른 몸을 떠올렸어요. 그래도 현대무용은 발레보다 몸의 다양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댄싱9>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여전히 마르고 예쁜 몸을 가진 여성 댄서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공연은 달랐어요. 제가 아무리 페미니스트라 해도 제 다리가 짧고 굵은 게 여전히 속상한데,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에서 만든 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광고를 보면 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공연에서 본 무용수들의 다양한 몸이 분명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당분간은 저도 제 몸에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약발이 떨어질 때 까지는요. (웃음) 또 오늘은 심지어 머리도 대충 묶은 무용수 언니가 있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무대인데 머리를 저렇게 대충 묶다니! 놀라면서 좋아했죠.
떵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유독 외국 무용수들이 통통한 것에 관대하고, 한국 무용수들은 통통한 것에 엄격한 것 같아요. 저는 그걸 깨고 싶은 마음이 있죠.
신율: 왠지 우리도 다양한 몸을 가진 여자가 기괴한 몸짓을 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떵샤가 그런 작품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웃음)

이신율 ⓒ윤상은
떵샤: 오늘 봤던 장면 중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신율: 아까 언급했는데 누가 봐도 성행위를 연상할 만한 움직임을 오랫동안 하던 무용수가 있었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도 저런 몸짓을 해보고 싶다, 저렇게 강렬한 섹스를 하고 싶다, 섹스가 아니라 뭘 하더라도 저렇게 강렬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떵샤: 저는 후반 듀엣 장면에서 여성 무용수 두 분이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화합하는 것 같기도 했던 이미지가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지혜: 싸우는 것 같으면서 싸움을 말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것 같으면서도 체제를 깨트리려 하는 느낌이었죠.
떵샤: 그게 그 안무가의 스타일인가 싶어요. 계속 춤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면에서 파격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혜: 저는 현대무용이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어요. 오히려 현대무용이라고 하면 재즈 음악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거든요.
신율: 저는 떵샤처럼 더욱 파격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떵샤: 그리고 저는 공연을 보며 인종 문제도 떠올렸어요.
신율: 저도요. 아무래도 북유럽의 백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예술적이라며 추앙하는 건 아닐까 경계하게 돼요. 또 이런 작품을 동양인 여성이 하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동양인 여성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있기에 또 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주체적인 느낌이 덜 들 수도 있나, 아니면 더 들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다 백인이고 동양인 한 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들이 계속 생겨났어요.
떵샤: 만약 한국의 여성 안무가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큰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평가받았을 것 같아요.
신율: 축제 측에서도 페미니즘이 요즘 이슈이기 때문에 북유럽의 페미니스트 안무가를 불러온 거지 페미니즘에 깊이 고민한 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사회자와 통역하시는 분을 보면서 페미니즘에 조예가 깊은 분들을 모셨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사회자의 말에 무용수가 당황해하는 것도 느껴졌고, 또 통역을 왜 저렇게 하는 거지 의아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너무 아쉬웠어요.
떵샤: 또 남성들이 단체로 나와서 화합하는 작품들은 봤던 것 같은데,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화합하는 작품은 지금까지 못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주짓수를 하며 “어이!” 기합을 넣으며 동작을 맞추는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지혜: 맞아요. 실제로 그 장면에서 어떤 관객이 울더라고요. 저도 그 장면이 좋았고요. 그래서 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화합하는 장면을 만들어낸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했는데….
신율: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무용수 한 분이 “음악에 맞춰 카운트를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하고 상대가 움직이면 내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이어갔다”라고 말함으로써 답을 해주었다고 이해했거든요. 그런데 통역하시는 분이 그 말을 “공연을 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라고 번역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count’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는가에서 발생한 차이인지, 아니면 제가 들었던 말을 아예 통역하시지 않은 건지 확실하지 않아요. 들어보니 모든 문장을 다 통역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춤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박자가 딱딱 나누어지는 음악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합을 맞추는 건지 궁금했거든요.

왼쪽부터 이신율, 윤상은 ⓒ윤상은
공연이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때
떵샤: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오늘 본 공연이 여러분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신율: 오늘 받은 영감과 에너지로 이 사회가 기대했던 여성의 몸짓, 행동, 행실이 아니라, 다른 몸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괴하게 웃고 행동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지혜: 저는 오늘 받았던 여운들이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아요. 삶을 살아가다가 가끔 ‘그래서 그게 그거였나?’라고 그 장면을 되새길 것 같고요. 그리고 60분 동안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는 무용 공연을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여서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좋네요.
신율: 앞으로 무용을 또 보러 갈 것 같아요. 지난번에 연극 작품을 하나 봤는데, 보다가 뛰쳐나왔거든요. 대사에 깊이가 없었고, ‘버닝썬’ 사건을 희화화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런데 오히려 무용에는 대사가 없기에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즐길 수 있었어요.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외국 초청 작품이라 그런지 티켓 가격이 너무 비쌌어요. 이벤트에 당첨된다거나 할인권이 생긴다거나 해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기회는 종종 있었는데 무용은 그런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네요.
지혜: 그리고 이런 공연은 감동을 준다기보다는 숙제를 주는 느낌이라서, 내면의 힘이 있어야 또 보겠구나 싶어요. 그래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윤상은, 신지혜 ⓒ윤상은
짧은 감상
“억압과 해방의 뒤섞임이 퍼포먼스로 더 도드라졌던 공연!” - 신지혜
"어려서부터 이런 움직임을 보고 느끼고 직접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여자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렸던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라 그때의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관객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이 움직임의 일원이고 싶은 마음!" - 이신율
떵샤(윤상은)_안무가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동료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무용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내부자 입장에서의 창작과 예술생태계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무용을 그들만의 세상일이 아니라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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