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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5.14 조회 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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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춤에 관한 가장 즉흥적인 리뷰
<2018 서울국제즉흥춤 페스티벌>

마뇨_배우, 독립예술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공연의 매 순간 관객의 속마음을 즉석에서 말풍선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충격적이고 흥미진진할까?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여러 작품 중 <Contact Improvisation Performance>를 보고 즉흥극 배우의 관점으로 리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나는, 즉흥이라는 공연양식과 춤의 원시성의 연관성이라든지, 컨택 즉흥의 시초 또는 춤에서의 그것의 가치 등을 탄탄하게 논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닌지라,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즉각적으로 떠오른 솔직하고 편견 가득한 나의 실시간 말풍선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내고자 한다. 심약한 공연자나 주최 측은 부디 이번 리뷰를 건너뛰시라!

(상황 1. 공연 시작 10분 전 나를 포함해 3~4명의 관객만이 객석에 앉아 있다.) 참담하군. 공연자들 힘 빠지겠네.

(상황 2. 공연 시작 전 무대 위에서 몸을 푸는 공연자들을 보며) 경기 시작 전에 몸 푸는 운동선수들 같아. 공연자들은 (빈 객석이) 괜찮을까. 뭐, 함께 하는 사람들과 무대를 즐기는 수밖에. 어쩌면 더 좋은 공연이 나올 지도.

(상황 3.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수식어 가득한 설명과 소개가 십분 가량 이어지자) 그만 설명해요! 즉흥이 뭔지 컨택이 뭔지 몰라도 좋은 공연이라면 관객도 다 느낄 수 있다고요! - 물론 이해한다. 즉흥춤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지연 관객을 위한 시간 벌기 작전이었다는 것을.

(상황 4. 어느 정도 객석이 찼다.) 휴, 다행이다.

(상황 5. 무대 위 아티스트는 즉흥 연주자를 포함해 총 7명. 조명이 바뀌자 몇 명은 무대 밖으로 퇴장했다. 공연이 시작된 지 불과 2~3초도 안 되어 이경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써? 어떠한 내적 충동 혹은 외적 자극이 있었던 것일까. - 나는 비교적 시작이 느린 즉흥 공연자에 속하고 그 시작 역시 외적 자극으로부터 촉발되는 경우가 많아서 내적 충동만으로도 빠르게 움직이는 공연자를 보면 늘 신기하다.

(상황 6. 이경은과 강진안이 만났다. 이경은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고 강진안은 억지스러운 전개가 부담스러워 보인다. 둘은 이내 무대 위에서 헤어졌고 강진안은 퇴장했다.) 너무 많은 의도가 파트너를 떠나게 하는 것일까.

(상황 8. 컨택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김바리와 나모의 움직임을 보며) 자연스럽다. 둘은 아주 익숙해 보여.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밀도! 관계! 드라마! - 그렇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연극 하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즉흥이란 것이 볼거리로서 작용하려면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가,’ 잠시 딴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즉흥의 가장 큰 수혜자는 행위자들이다. 행위자들에게는 무대 위 매 순간이 감각의 증폭이고 치열한 실험이고 짜릿한 앙상블이고 가끔씩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를 깨닫는 영적 체험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무례하거나 무책임한 동료 연기자에 대한 짜증과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 자괴감 등도 이따금씩 동반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각 관객들은 어떠한가. 행위자들의 놀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가? 아니다! 관객은 흥미진진함을 원한다. 행위자가 발견한 것을 함께 발견하길 원한다. 혹은 즉흥의 한 요소가 되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서는 우연적이든 필연적이든 흐름, 그러니까 맥락, 그리고 의미를 찾아내길 원한다. ‘공연자가 매 순간 무대를 살아내는 것,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꼭 의미와 맥락이란 것이 필요하냐?’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맞는 말인데 애매한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살아냄과 존재함이 연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곧 의미와 맥락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니까.

(상황 9. 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중 이경은과 이윤정 사이에서 마침내 긴장감과 밀도가 발생했다.) 재미있어지는데!

(상황 10. 하지만 둘 사이에 물리적 접촉은 아직 없다. 둘은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하거나 변형하면서 리드의 역할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여기서 또 딴 생각. 컨택 즉흥은 반드시 물리적 접촉을 수반해야 하는 것일까. 이 쫀쫀한 긴장감과 흥미진진함은 둘의 시선, 그리고 둘 사이의 공간, 그러니까 직접적인 접촉이 없음으로 인해 오히려 가능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황 11. 즉흥연주자 유태선의 전자음악이 무대 위 움직임과 무관하게 전환되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죠? - 이건 연주자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전환된 음악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무대에 있었더라면 나는 나의 반응을 몸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무대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다 즉흥의 재료가 되니까.

(상황 12. Makoto Matshima와 이윤정이 만났다.) 둘은 이미 연결되어 있다! -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둘의 연결은 지속된다. 컨택 즉흥은 반드시 물리적 접촉을 수반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다. 닿지 않아도 그 사이의 밀도가 살아있다면 컨택은 지속된다. 무대를 벗어나는 등퇴장로의 가장 후미진 공간에서도 둘의 존재감은 무대 전체를 점유하고 있다.

(상황 13. 공연 중반부쯤 되었을까. 공연자들 전체가 무대로 나왔다. 신체의 일부를 접촉한 채 하나의 유기체처럼 병렬로 연결되었다. 전체가 한 덩어리로 이어지자마자 이경은이 빠르게 움직여 덩어리의 끝으로 이동했다.) 뭔가 아쉬워. - 즉흥공연에서는 오프닝, 등퇴장 동선, 전환, 엔딩 등에 대해 몇 가지 약속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장면 역시 그 약속 중 하나로 보였다. 하지만 이경은의 제안이 급작스러웠던 탓인지 아니면 여섯 명의 병렬식 연결이 조화로운 컨택으로 이어지기에는 무리였던 것인지 장면이 더 확장되지는 못했다. 공연의 전반부에 둘의 조합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여섯 명의 컨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내심 기대했는데 여섯은 이내 흩어져 다시 둘의 조합으로 돌아왔다. 어찌 보면 이것은 컨택 즉흥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기도 할 테다. 나에게 자극을 주는 존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나와 몸을 맞대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면 나는 어느 자극에 반응하고 누구에게 제안을 할 것인가.

(상황 14. 공연의 중반을 훌쩍 넘어선 듯하다. 강진안은 흐물거리는 양말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때 이경은이 다가간다. 강진안은 양말을 쓰러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이경은의 접근을 온몸으로 막아낸다.) 푸하하하! - 객석에서 가장 많은 웃음이 터진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상황 자체의 재미도 있었겠지만, 이 장면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공연 초반부터 지속되었던 두 공연자 사이의 불편한 긴장감이 즉흥의 요소로 쓰였기 때문이다. 둘의 대립이 극적 장치로 활용되자 (객석까지 흘러들었던 정체 모를) 긴장감이 단박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이런 게 아닐까, 즉흥을 보는 재미라는 게. 무대에서 촉발된 문제가 바로 그 무대에서 해소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 말이다. 나는 종종 삶의 교훈을 즉흥에서 깨우치곤 하는데, 오늘의 공연은, 같은 무대에 존재하려면 갈등마저도 그 무대 위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상황 15. 연주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무대를 돌아다닌다. 어느 샌가 Makoto Matshima가 연주자의 자리를 꿰차고 마이크 앞에서 구음을 하고 있다. 이경은이 Makoto Matshima의 등인가 뒷목인가를 두드리자 바이브레이션이 절로 된다.) 같이 즉흥 하고 싶다! - 순간 짜릿했다. 즉흥판에 뛰어들고 싶은 순간이라니! Makoto Matshima의 구음과 다른 공연자들의 움직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마침내 난장이 일어나는 듯했다. 앞서 강진안과 이경은이 상황의 전복을 만들어냈듯이 Makoto Matshima는 역할의 전복을 만들어냈다.

(상황 16. 마지막 장면. 공연자들의 리드에 따라 연주자는 어느새 무대바닥을 구르고 있다. 조명은 서서히 아웃되고 색소폰 연주는 암전 뒤에도 조금 더 이어졌다.) - 이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그저 미소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즉흥적인 것이든 약속된 것이든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즉흥으로의 초대’, ‘춤으로의 초대’, ‘컨택으로의 초대.’

(상황 17. 조명이 다시 들어오고 공연자들은 두 팔 벌려 서로를 안았다.) 커튼콜 전에 나누는 포옹이라니 어쩐지 감동적이야! - 그랬다. 관객 인사에 앞서 함께 무대를 치러낸 동료들을 가장 먼저 안아주는 모습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컸다. 나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그 빌어먹을 완성도와 예술관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괴롭혔던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미워하는 이가 나의 동료들이라 말한다면 그 말의 뜻을 사람들이 짐작이나 할까. 공연이 끝나면 두 팔 벌려 동료들을 안아줘야지, 뜬금없이 다짐이란 걸 했다.

(상황 18. 음악이 바뀌고 공연자들이 객석으로 다가와 손 내밀며 함께 춤을 권한다. 하나둘씩 무대로 올라가는 관객이 보인다.) ‘즉흥으로의 초대’는 성공적!

누군가 즉흥을 믿지 않는다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은, 공연으로서의 즉흥이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형편없어질 수 있음에 대한 염려이자 두려움을 뜻한다는 것을. 형편없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가장 위험한 무대에서 실험을 멈추지 않는 우리들과 당신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마뇨_배우,독립예술가 관객들의 이야기로 즉흥연극을 뚝딱뚝딱 만들어 선보이는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 극단 밖에서는 작품을 직접 쓰고 만든다. 즉흥작업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정리해보고 싶었고, 이 리뷰가 그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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