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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프/리뷰

제작 과정, 쇼케이스, 워크숍, 오디션, 경연대회 등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2018.04.12 조회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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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 일상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

글_조형빈

‘한영 상호교류의 해’ 폐막 페스티벌, 장애에 대해 질문하기

2017년 2월부터 약 1년 간 진행된 ‘한영 상호교류의 해’폐막 행사로, 《페스티벌 아름다름 : 아름다운 다름》이 개최되었다. 주한영국문화원이 주최한 이 행사는, 두 개의 공연과 한 개의 전시를 포함한 네 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 예술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고 사회에서의 예술의 역할을 탐색해보기 위해 마련된 두 개의 공연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장애를 해석해낸 현대무용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작품은 영국의 무용단인 칸두코 컴퍼니와 안무가 안은미가 함께 한 <굿모닝 에브리바디>이다. 2018 평창올림픽을 기념하는 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의 일환이기도 한 이 공연은, 최근 비-무용수와 장애인들을 무대에 올려 다양한 실험을 해왔던 안은미가 영국의 무용단을 통해 ‘장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칸두코 댄스 컴퍼니(Candoco Dance Company)는 1991년 영국에서 설립된 무용단으로, 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육체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온 무용단이다. 칸두코 컴퍼니에서는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무용수도 비장애인 무용수와 함께 고도의 훈련을 받는데, 이런 전문성을 가진 장애-육체가 안은미의 안무를 만나 어떤 무대를 만들어낼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한국의 안무가 김보라와 영국의 안무가 마크 브루(Marc Brew)가 콜라보레이션하여 작업한 <공·空·Zero>이다. 이 작품은 김보라와, 영국에서 장애인 안무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마크 브루(Marc Brew)가 만나 육체를 제로(0)의 지점에서부터 탐구하여 안무하고 직접 출연했다. 두 안무가는 2차례의 리허설과 3주의 워크숍을 거쳐 서로의 몸을 탐색하고 움직임을 모색하고, 몸이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안무가 자신의 몸과 오브제를 통해 풀어냈다. 특히 <공·空·Zero>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해 공연자와 공연의 진행 상황을 묘사해 주는 영국인 오디오 디스크라이버와 한국인 통역자가 함께 참여하여 리시버를 통해 본 공연의 디스크립션이 제공되었고, 실제 시각장애인이 이 서비스를 경험하며 공연을 감상했다.

전문무용수들과 안은미의 작업 <굿모닝 에브리바디>

안무가 안은미는 오랫동안 비-무용수들을 무대 위에 올리는 문화기술지적 작업을 해 왔다. 신체와 문화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왔던 안은미는 작업에서 몸이 사회와 맺는 과정에 집중했다. 이런 흐름에서 장애인 무용단 칸두코 컴퍼니와의 작업은 안무가 본인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칸두코 컴퍼니의 가장 큰 특징은 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어우러져 차이 없이 춤을 춘다는 것인데, 이미 2016년 내한하여 공연한 <비헬드(Beheld)>와 <렛츠 토크 어바웃 디스(Let’s Talk About Dis)>를 통해 장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물리적 장애의 신체를 완결성으로 표현해내는 칸두코의 작품은 장애를 묘사하는 다른 작품들과 다른 신선함을 안겨준다. 장애-신체를 재료로 삼아 안무를 수행하는 칸두코 컴퍼니와 안은미의 조합은 그래서 흥미롭다. 안은미는 장애-신체를 인류학적으로 풀어내는 안무가이고, 칸두코 컴퍼니는 장애-신체를 예술적으로 연마하여 작품으로 질문을 던지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안은미 안무 <굿모닝 에브리바디> ⓒ주한영국문화원

<굿모닝 에브리바디>는 그렇게 인류학적 질문을 던지는 안무가가 신체에 대한 새로운 탐험을 시도하는 무용수들을 만나 탄생한 작업이다. 무대 자체는 안무가 안은미의 개성이 한껏 드러난 모습으로 꾸며졌다. 안은미 고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대-키치적인 무대는 일종의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 무대와 의상이 영국의 무용수들을 만나 독특한 화학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무대 위에는 세 가지 세계가 중첩된다. 안은미만의 키치-월드와 안은미가 무대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장애-사회적 세계, 그리고 칸두코의 무용수들의 가지고 있는 훈련된 장애-육체로서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 중첩된 세계들 사이에서 육체는 빛나고, 번쩍번쩍한 무대 세트 사이에서 장애-육체는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대는 다양한 국면들을 보여주는데, 전체 무대 세트에서 나타나는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는 장애와 비장애의 사회를 은유한다. 단순한 이분법적인 대비를 통해 우리는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꿰뚫을 수 있다. 안무가 안은미의 인터뷰에 따르면, <굿모닝 에브리바디>라는 제목은 장애가 사회의 이질적인 부분으로 모나지 않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안은미는 이렇게 개성있는 무대와 색다른 방식의 움직임들을 선보이는 칸두코의 무용수들을 통해 사회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육체를 탐구하는 두 안무가의 콜라보레이션 <공·空·Zero>

안은미와 칸두코 컴퍼니의 작업과는 다르게, 김보라 x 마크 브루의 작업은 두 안무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3주 동안 진행되었던 워크숍을 통해 두 사람이 함께 리서치하고 안무를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안은미의 작업이 몸이 받아들여지는 문화에 대한 표현적 작업이었다면, 김보라와 마크 브루의 작업은 몸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무용가로 꾸준히 작업을 해왔던 김보라와,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안무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마크 브루는 서로의 육체를 제로(0)로 보고, 거기에서부터 안무를 출발시켰다.

김보라, 마크 브루 안무 <공·空·Zero> ⓒ주한영국문화원

작품 <공·空·Zero>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개념은 ‘무게감’이다. 몸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했다는 ‘제로’는 무대 한 가운데에 놓여진 커다란 오브제로 형상화되었다. 금속질의 거대한 오브제는 무대를 압도하는 크기로 놓여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으로 공중으로 떠오른다. 묵직하게 놓여있던 오브제가 육체의 한계성을 의미했다면, 가볍게 떠오른 오브제는 이제 ‘제로’로 돌아가서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육체의 본질을 보여준다. 김보라 안무가는 이 안무에 등장하는 무용수가 총 네 명이라고 설명하는데, 출연하는 안무가 두 명과 함께 금속질의 오브제, 그리고 마크 브루의 휠체어도 각각의 캐릭터로서 무용수와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된다.

작품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두 사람의 솔로는 자기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그것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비장애인인 김보라의 육체와 휠체어를 탄 마크 브루의 육체는 서로 대비되고, 그 본질과 한계를 인식하는 과정이 가장 먼저 선행된다. 그렇게 ‘인식’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두 무용수는 함께 만나서 듀엣을 하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몸의 차이와 호흡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두 육체의 차이점을 드러내면서 한데 엉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어느새 오브제가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고, 작품은 ‘제로’로 들어간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크 브루가 기대고 있던 휠체어 자체를 해체하면서, 몸 그 자체를 해체하고 제로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공연이 끝난다. 오랜 기간 자신의 몸을 통해 장애-신체의 움직임에 대해 연구해 온 마크 브루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가며

안은미의 안무가 다양한 모습의 신체를 활용하여 ‘사회적 장면’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 김보라 x 마크 브루의 작업은 서로 다른 육체가 1:1로 만나 상대방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신체를 재해석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굿모닝 에브리바디>에서는 삼성전자와 협력해 앱을 활용한 저시력장애인들을 위한 디지털 기술이 공연에 도입되었고, <공·空·Zero>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디스크립션이 도입되었다는 특징이 있었다. 아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배려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장애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인식 자체를 바꾸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비전문무용수 장애인들과 이미 안무 경험이 있는 안은미와, 장애-신체를 가진 무용수와 처음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김보라 두 안무가는 각각의 작품을 통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특히 한국의 예술계에서 익숙하지 않은 ‘장애’라는 주제는 2013년 내한하여 공연했던 제롬 벨의 <장애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제롬 벨의 <장애극장>은 물리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아닌 지적장애인들을 무대 위에 올려, 장애인들이 각자의 장애와 조건들에 대해 발화하면서 그것을 날카로운 수행성으로 풀어낸 탁월한 작품이다. 여기서 장애는 단지 퀴어(queer)함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관객과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에 직접 달려들어 그것을 깨부수는 생생한 경험이 된다. 마찬가지로 안은미와 김보라, 마크 브루의 작업 역시 ‘장애와 비장애’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영 상호교류의 해’ 폐막 페스티벌에서 시도되었던 여러 가지 것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와 공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형빈 대학에서 사회학과 문화학을 전공하고, 무용에 관한 문화연구를 해오고 있다. 창작과 비평에 대해 글을 쓰며 무용월간지 등에서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글을 실었다. 현재는 웹진 <춤:in>의 편집부로, 기획과 편집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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