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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프/리뷰

제작 과정, 쇼케이스, 워크숍, 오디션, 경연대회 등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2017.11.30 조회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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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몸짓이 안무가 될 때

일상의 몸짓이 안무가 될 때1)

배명지_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줌아웃 에세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배명지 관련 사진

올라퍼 엘리아슨, <미시적 움직임>, 2011, 랩탑 상영 버전, H.264 퀵타임 코덱, 1920x1080 HD, 스테레오, 16분 27초, 작가 및 노이게리엠슈나이더 갤러리 제공, ⓒ올라퍼 엘리아슨


우리가 행하는 일상의 행위들이 현대미술의 퍼포먼스나 무용적 안무가 될 수 있을까. 음식을 먹는다거나, 길을 걸어 다닌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평범한 몸짓들이 ‘안무’와 ‘퍼포먼스’라는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을까. 일상적 평범함에서 섬광과도 같은 미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1960년대 이후 퍼포먼스가 예술과 현실, 일상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시도 가운데에서 탄생하였듯이, 일상의 몸짓과 안무 사이의 거리 좁히기는 20세기 중반 이후 예술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퍼포먼스를 경유하며 일상의 몸짓을 안무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작업이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퍼포먼스 영상 <미시적 움직임 Movement Microsope>이 그 한 예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인물들은 모두 작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다. 그의 스튜디오는 건축가, 디자이너, 테크니션, 아카비스트 등을 포함하여 7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작품 제작, 리서치, 요리, 정원 가꾸기 등의 다양한 영역의 일을 수행한다. 스튜디오 내 외 공간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상에는 스튜디오 구성원들과 10명의 무용수가 동시에 등장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용수들의 ‘연출된’, ‘매우 느린’ 움직임과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정상속도’의 몸짓이 완벽하게 대구를 이루고 추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몸짓의 대조 속에서 지루한 일상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던 매일의 규칙적인 노동은 하나의 미학적인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무용수들의 정지해 있는 듯한 동작은 스튜디오의 길든 시간을 탈자연화하고, 노동 자체를 경제적 관점이 아닌 시각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2)

일상의 몸짓에서 이러한 미학적인 시각성을, 놀라운 미적 순간을 발견하였다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행하는 수많은 일상 행위들을 이러한 시각성의 관점으로만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가. 내 몸의 어떤 동작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기제와 도구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출근시간에 맞추어 빠르게 걸음을 움직이는 군중들의 발걸음, 촛불 시위에서 이루어진 축제와도 같은 몸짓의 기저에는 그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들과 ‘의도’들과 수많은 ‘정치’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권력과 자본의 흐름이 종종 몸을 통과하며 강하게 작동하듯이, 몸짓 역시 이러한 정치적 힘과 부지불식중에 연결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작업을 보자. 그것은 196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그룹인 하이레드센터는 <청소 이벤트 Cleaning Event>이다. 하이레드센터의 주요멤버인 다카마스 지로, 아카세가와 겐페이, 나카니츠 나츠유키를 포함한 여러 명의 퍼포머들은 도쿄 올림픽이 한창이던 1964년 10월 16일, 흰색 유니폼의 청소복장을 하고 ‘깨끗이(Be Clean)’이라는 간판을 세워둔 채, 걸레, 빗자루, 수세미 등의 청소 도구로 거리 곳곳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였다. 이 퍼포먼스의 직접적인 배경은 1964년 10월 10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 도쿄 올림픽이다. 당시 올림픽은 패전국 일본의 재기를 세계에 알리고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신호탄이었으므로, 일본은 도쿄를 재단장하려는 정비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강박적으로 진행하였다. 하이레드센터는 청소하기라는 일상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이러한 도시미화작업의 강박적인 국가적 노력을 풍자한다. 이는 어떤 강력한 프로파간다 없이 사회적 행위를 똑같이 모사하면서도, 이를 내부에서 비판하는 매우 개념적인 직접 행동(direct action)이자 그 자체로서 ‘사회적 안무’였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실천의 모순 Ⅰ-가끔은 무엇인가를 만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Parodox of Praxis Ⅰ- Sometimes Making Something Leads to Nothing> 는 멕시코시티 거리에서 9시간 동안 얼음 블록을 미는 걷기의 행위를 보여준다. 걷기의 끊임없는 반복행위를 통해 한 덩어리의 얼음은 흔적도 없이 바닥으로 사라진다. 열심히 걷는 행위가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무위의 행위가 된다. 그의 걷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효과와 효용가치도 생산하지 못한 ‘헛짓’이 되었다. 알리스는 걷는 행위를 통해 비효율적 행위를 극대화함으로써 효율적 가치가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소리 없이 저항한다.

우리는 이제 사소한 움직임과 일상의 동작이 당대 사회를 재상연하는 마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알로라&칼자디야의 <하프 마스트 풀 마스트 Half Mast Full Mast>에서도 그러하다. 이 작품에는 깃대를 지렛대로 사용하여 몸을 90도로 들어 올리는 깃발 형태의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23명 체조선수가 등장한다. 공중에서 깃대와 수직을 이룬 그들의 신체는 묘하게도 깃발의 형태를 이루고 위아래 두 화면 중 하나의 화면에 나타난다. 그가 어떤 화면에서 나타나는가에 따라 깃발은 만기(full mast)로 휘날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조기(half mast)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총 23명의 국가 체조선수에 의해 수행된 깃발-신체 동작은 비에케스 섬의 지리정치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비에케스 섬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본섬에서 약 10km 떨어진 섬으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이 섬의 75%를 사격장으로 바꾸었다. 2003년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로 사격장이 폐쇄되고 환경개선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비에케스 섬의 주민들은 자연환경과 생태 파괴라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면해야 했으며 자신의 생존권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투쟁과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깃발의 형태로 등장한 23명의 훈련된 신체는 바로 푸에토리코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훈련된 신체들이며, 그들은 자국의 폐허에 다시금 깃발을 내리고 있다. 체조선수들이 깃발의 형상으로 만기 혹은 조기의 위치를 수행하는 것은 이 섬에서 60여 년간 진행된 투쟁 속에서 겪은 승리(만기), 혹은 상실(조기)을 상징한다. 여기서 훈련된 신체와 그 움직임은 미학적 층위에서 제도비판의 사이트가 된다.

청소하는 몸짓을 통해 개발을 향한 국가적 열망을 풍자하는 것(하이레드센터), 걷기 행위를 통해 생존과 노동, 자본의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프란시스 알리스), 훈련된 신체의 몸짓이 식민과 개발에 대한 저항이 되는 것(알로라&칼자디야) 등은 가장 일상적이고 익숙한 행위를 경유하며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사회의 문제, 더 나아가 인생 전반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작가들의 특수한 몸짓들이다. 이들 작가는 몸짓 그 자체에 주목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몸짓을 작동하게 만드는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들추어 낸다. 위의 작가들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매개는 몸을 통한 퍼포먼스이고 안무이지만 그것은 완벽히 미학적인 몸짓이 아닌 사회적 의미가 내재한 몸짓이다. 몸짓 그 자체에 이미 정치성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 안무’라 부를 수 있다.



줌아웃 에세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배명지 관련 사진

알로라 & 칼자디야, <하프 마스트, 풀 마스트>, 2010, 2채널 HD 비디오 프로젝션, 컬러, 21분 11초, 리슨 갤러리 제공, 사진: 켄 아들라드, ⓒ알로라 & 칼자디야


1) 본 글은 배명지, 「역사를 몸으로 쓰다」(『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시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7) 중 일부를 수정 게재하였으며, 해당 전시(2017.9.22~2018.1.21)에 출품된 일부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다.
2) Biba Bell, “Slow Work-Dance’s Temporal Effort in the Visual Sphere,” Performance Research 19-3 (2014), p.133.




배명지_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몸의 사회적 수행성, 수행적 사건으로서의 퍼포먼스와 지각의 문제, 미디어와 신체 움직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 기획과 글쓰기를 병행한다.
배명지_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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