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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1.30 조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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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댄스필름 프로젝트 ‘TAKE#’

드디어 국내에서도 활성화되는 무용영화(Dance film)의 제작과 유통

심정민_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서양의 무용이 국내에 유입된 지 한 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우리나라 무용은 급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도 꾸준하게 때론 비약적으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세계적인 흐름에 적극 동참하면서 그 격차를 눈에 띠게 줄여왔다. 이제 무대 위에서의 안무 및 연출은 세계적인 추세와 수준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한편, 비교적 새로운 장르인 무용영화의 경우 해외의 선진적인 무용계와의 격차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이미 20세기 중엽부터 단순한 공연실황의 녹화(recording)를 넘어서 세분화와 전문화 과정을 거쳐 왔다. 이를테면 작품의 현장감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영화적 연출기법을 활용하거나, 혁신적인 창작과정을 강조하기 위해 제작다큐멘터리를 첨가하여 이해시키거나, 더 나아가 공연과는 상관없이 영상용 무용작품 즉 무용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공연실황의 녹화이라는 기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몇몇 무용가들의 개별적인 시도가 있긴 했지만 무용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근래 들어 고무적인 현상은 무용영화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이를 적극 수용하여 실행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다. 2016년부터 서울무용센터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댄스필름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영상예술포럼과 서울신문의 공동주최로 제1회 서울무용영화제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특히 서울무용센터의 댄스필름 프로젝트 ‘TAKE#’는 무용과 영상 분야 예술가들을 모아 매칭, 리서치, 창작, 영상제작뿐 아니라 유통과 사후관리까지 모두 지원한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올해 서울무용센터의 댄스필름 프로젝트는 먼저 무용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무용가와 영상작가들을 공모하여 각각 4명씩 총 8명을 선정하였다. 매칭된 무용가와 영상작가 4팀은 여러 달 동안 특강과 워크숍 등을 통해 서로의 전문 영역에 대한 지식을 공유한 후 팀별로 10분 내외의 무용영화를 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발표된 4개의 무용영화 작품이 바로 김태우 연출과 임진호 안무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이승엽 연출과 박진영 안무의 <호접몽>, 김대현 연출과 김동희 안무의 <내 신발에게>, 백종관 연출과 김승록 안무의 <Unholy Three>다.

김태우 연출과 임진호 안무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죽음에 관련된 여러 이미지들이 움직임과 함께 나타난다. 대학병원 주차장으로 구급차가 들어선 후, 한 여인이 장례식장으로 들어선다. 한 여인의 빈소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두 남자가 절을 하더니 갑작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 특유의 일상성 짙고 개성 있는 몸짓으로 그 상황을 그려나간다.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는 카메라에 의해 자연스럽게 장례식장 이곳저곳이 비춰진다. 한 여인은 자신의 죽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어둡고 차가운 시체보관실에 놓이게 된다. 황망함이 묻어나오는 한 여인을 대하는 두 남자의 격식 있고 절도 있는 몸짓이 망자를 보내는 의식을 연상시킨다. 세 명의 남녀 무용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움직임으로만 이와 같은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는데, 따라서 영상에 비춰진 구체화된 장소가 아니라면 추상적인 춤처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영상이 탄탄히 받쳐준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승엽 연출과 박진영 안무의 <호접몽>은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과 현실감 없는 시공간으로 인해 기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변의 기준과 가치관에 맞추거나 타협하면서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과연 나의 본 모습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새로운 창작공간으로 부상한 문화비축기지의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하여 꿈의 세계 혹은 마음의 심연을 실제화 하는데 있어 영상 이미지에 심취하고 있다. 자연 속에 인공구조물을 배경으로 하고 여성무용가의 몸짓을 주요 피사체로 하여, 다양한 영상연출기법을 디테일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김대현 연출과 김동희 안무의 <내 신발에게>는 국민적 아픔인 세월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바닷가에서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여인이 춤을 추는 가운데 신발 한 쌍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후 그 신발은 장소를 바꾸어 이곳저곳에 놓이게 된다. 마치 신발의 주인인 영혼이 자기와 관련된 이러 곳을 지나쳐 가는 듯하다. 단원고 정문이라든가 앞에 통학로와 상점들, 광화문의 시위현장, 비닐에 쌓인 책상과 의자들, 노란 깃발과 손수건들과 같은 실제 형상들이 나열된다. 이러한 형상들과 교차 편집되는 장면으로, 문화비축기지의 거대한 원통구조물에서 추는 버티칼댄스가 있다. 버티칼댄스는 줄에 매달려 몸을 수평으로 한 채 움직이는 춤 장르로서 중력에 반하는 몸짓으로 인하여 일반적인 춤과는 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당한 실력의 여성무용가는 마치 물속에서 갇혀 떠도는 듯한 움직임을 펼친다. “선물 받은 새 신 발을 집에 두고 수학여행 가는 배를 탔다”라는 자막은 강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백종관 연출과 쌍방(김승록) 안무의 <Unholy Three>는 무대라는 3차원의 시공간에서 펼쳐진 세 개의 삼인무를 스크린 위에 겹겹이 쌓아두었다. 구체적으로는 현대무용의 역사에서 추출한 세 편의 삼인무를 재연한 후 그 3차원적인 움직임을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영상화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공연예술로서의 춤이 영상으로 재구성되었을 때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단순한 중첩을 넘어 크기, 각도, 속도, 선명도, 스탑모션, 장면전환 등에 있어서 여러 촬영기법과 편집기법을 활용하여 세 편의 삼인무를 한 화면에 효과적으로 축적해 놓았던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서울무용영화제에서 보았을 때와 서울무용센터에서 보았을 때의 감흥이 상당히 달랐는데, 전자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디테일들이 후자에서 확연하게 감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스크린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게 한다.
송주원의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은 작년 45분짜리를 20분으로 편집하여 재(再)상연한 것이다. 김수영의 「절망」의 시구를 모티브로 하여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은 것처럼’이란 네 개의 장면으로 전개된다. 갖가지 형태의 집에 사는 사람들과 그 집에 붙어있는 영혼 같은 존재의 일상생활이 때론 소소하고 재미있게 또 때론 차분하고 진지하게 펼쳐진다. 송주원이 안무와 함께 영상연출까지 책임지고 있는 관계로, 화려한 촬영 및 편집기법에 몰두하기보다는 움직임의 의미와 질감을 섬세하고 충분하게 살릴 수 있는 영상연출의 선을 지켜나가고 있는 인상이다.

서울무용센터의 댄스필름 프로젝트는 불과 2년차지만 빠르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년에 선정된 김모든의 <Jamais Vu>가 이탈리아 ‘스토리 위 댄스-비디오댄스 대회’에서 베스트 콘셉트상을 받았으며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애틀랜타,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 초청받았다. 송주원은 장소특정형 무용영화 시리즈인 <풍정, 각>으로 제1회 서울무용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올해 발표한 4개의 무용영화 작품의 경우에도, 이미 몇 차례 상연으로 국내 무용계에 무용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렇게 빠른 성과가 가능한 배경으로는 그만큼 무용영화에 대한 요구가 폭넓게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 무용계에서는 21세기 후반부터 무용영화가 정착 및 발전해갔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다채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우리 무용계에서는 그동안의 필요에 비해 실제적인 발현이 상당히 늦은 감이 있다. 이제라도 서울무용센터가 댄스필름 프로젝트를 통해 무용영화의 제작과 유통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나 무용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두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의 분야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리서치는 앞으로 무용영화의 전문화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본다.
한편으로 한국의 무용영화가 창작적으로 좀 더 무르익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주제 의식의 실제화에 있어 좀 더 진지하고 심층적인 고민과 탐구가 요구되며, 보다 신선하고 창의적인 안무 방법이나 연출 방법 역시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각 무용영화 작품마다 제각각 다양한 예술적 추구와 방향을 제시해야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국내에서 무용영화는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서울무용센터의 댄스필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발전과 확산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심정민_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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