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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5.25 조회 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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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자의 현장 취재기

예술을 경영하다

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예술경영’이란 단어는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예술이란 무릇 예술가의 창작활동으로써 이익을 꾀하지 않는데 반해 경영이란 사업을 운영하여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반된 두 개념이 만나게 되면 조금은 다른 맥락을 지니게 된다.
영기자는 지난 4월 17일 개강한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2017 전문무용수를 위한 행정인력양성 아카데미”의 커리큘럼 중 4월 24일 예술의전당 전해웅 본부장의 강의와 5월 10일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장광열 대표의 강의를 《춤:in》의 독자들과 같이 공유하고자 한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경영


예술경영의 사전적 정의는 ‘예술단체나 기관 또는 예술 사업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이는 경영학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운영에 효율성을 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의전당 전해웅 본부장은 비영리 예술경영의 목적은 최대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단체 혹은 기관의 설립취지나 사업취지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예술경영은 아티스트의 예술적 이상과 현실적 환경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중매자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중간 역할을 맡는 예술경영을 통해 예술가는 국가나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보다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 최근 영리를 추구하는 예술 활동과 문화예술 관련사업도 예술경영의 분야에 포함되는 추세이기는 하나, 전통적으로 예술경영은 비영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2017 전문무용수를 위한 행정인력양성 아카데미”에서 ‘무용인을 위한 직업으로서의 예술경영’이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예술의전당 전해웅 본부장과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에 지원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습적인 질문에 잠시 고민해보았으나 고개가 좀처럼 끄덕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답은 ‘많이 하는 편’이었다. 유럽의 경우 점차 문화예술 지원을 줄여가는 추세이고 미국은 기업이나 개인지원을 제외하면 국가적으로 지원받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예술가와 단체에 대해 풍부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불어 무용수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과 단체에 대한 지원도 상당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특히 국공립 문화예술회관과 지역별 국공립 예술단체와 비영리 극장, 민간 예술단체 및 축제, 이 모두를 합치면 1,0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공간과 단체들은 단순히 예술가의 활동무대로써 활용될 뿐 아니라 모두 공연예술경영의 대상이 된다. 예술기관의 조직이나 인력, 재무를 관리하고 공연을 기획 및 제작하거나 홍보하고 관객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업무가 예술경영의 업무에 포함되고 있다. 전해웅 본부장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였다. 먼저 미국의 발레단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 포스터를 발레리나에서 발레리노로 대체하자 젊은 여성 관객들이 대폭 증가한 점과 예술의전당의 식당에서 여자 손님에게는 남자 점원이 서빙을, 남자 손님에게는 여자 점원이 서빙을 하게 바꾸자 클레임이 줄어든 사례였다. 이처럼 작은 변화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기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예술경영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직접 예술경영인으로서 살고 있는 전해웅 본부장이 직업으로서 예술경영이 가지는 장단점에 대해 얘기하였다. 먼저 장점에 대해 언급하자면 행복한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는 점을 들었다. 아픈 사람을 항상 대면해야하는 의사와는 달리 공연을 즐기러온 관객들은 기쁜 마음으로 공연장에 오며 언제나 웃고 있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받는다고 말하였다. 또한 예술가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을 꼽았다. 언젠가 공연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아티스트와 가까이에서 일한다는 점이 뿌듯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외에도 공연과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거나 21세기의 대표적인 성장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예술경영인으로서 사는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와 복지의 문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일자리보다 많아 인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점, 경제·사회적 상황에 취약한 점 등 단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러한 단점들이 어떤 이에게는 직업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포기할만한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전해웅 본부장은 예술경영인로서 산다는 것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으며 무엇보다도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였다.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도서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의 내용에 대해 설명했을 때였다. 책에 따르면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제조업의 생산성은 8배 정도 증가하였고 평균임금도 여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6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년이 지나도 전혀 향상되지 않은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서비스업이다. 단적인 예로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4명의 연주자가 30분간 연주해야만 한다. 이는 200년 전에도 4명의 연주자와 30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공연에서 생산성을 늘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대다수이다. 이러한 ‘공연예술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질적인 재정적 난관을 도와줄 국가와 공공 지원의 필요성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TV와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을 통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라이브와 아카이브 영상을 이용할 수 있는 〈Digital Concert Hall〉 서비스 ⓒwww.digitalconcerthall.com


공연예술이 가지는 이러한 경제적 딜레마가 암울하게만 느껴졌지만 생산성 향상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해웅 본부장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발달된 기술을 이용하여 공연예술 생산성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미리 무용수의 움직임을 녹화하여 마치 분신술을 쓴 것처럼 여러 명의 무용수들을 무대 위에 투영하거나, 무대바닥이나 막에 빔을 쏴 변화하는 배경을 만들어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둘째로 공연을 영상화하여 공연장이 수용할 수 있는 관객의 배를 점유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음악의 경우 이미 베를린 필하모닉(Berlin Philharmonic)은 〈Digital Concert Hall〉라는 연회 서비스를 제공해 세계 어디서든 라이브 콘서트와 아카이브를 감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The Metropolitan Opera)은 최신 오페라의 작품들을 영화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는 〈Met on Screen〉을 제공하여 해외에서도 고품질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관객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무용의 경우 종종 실황 공연이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앞선 사례와 같이 대형 무용단의 공연을 PC로 볼 수 있게 실시간으로 상영한다든지 무용수들의 연습장면을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요구된다.



예술경영과 기업경영의 차이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장광열 대표는 이번 아카데미에 예술경영인으로 참석하였지만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실로 다양하다. 현 서울국제즉흥춤축제와 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 예술감독이자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예술분과 운영위원장,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이사를 맡고 있고 숙명여자대학교 무용과 겸임교수이면서 동시에 〈춤웹진〉 편집장을 맡고 있다. 30년 넘게 공연예술계에서 다양한 일을 맡아온 덕분에 그는 국내외 예술계 현장에서 일어난 무궁무진한 사례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본 강의에서 그의 오랜 경력으로 비롯된 무용의 현안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다시각적인 의견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2017 전문무용수를 위한 행정인력양성 아카데미”에서 ‘공연기획과 제작(1): 기획에서 재원조성까지’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장광열 대표와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장광열 대표의 강의는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구체적인 사례 위주로 진행되었다. 특히 예술경영과 기업경영의 차이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1970년대 초 뉴욕 시티 발레단(NYCB)이 일본의 섭외요청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무용단원들의 자존심까지 살린 예시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 뉴욕 시티 발레단은 세계 최정상 발레단으로 일본에서 발레단을 초빙하기 위하여 공연 회당 10억(현재 돈으로 환산했을 때)을 지불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일본은 처음 계약을 제안했을 때 뉴욕 시티 발레단에 2회의 공연을 제안하였고 발레단은 이를 흔쾌히 승낙한다. 하지만 얼마 뒤 일본은 공연회수가 2배로 늘어난 4회의 공연을 제안하게 된다. 뉴욕 시티 발레단은 뛸 듯이 기뻐했지만 계약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점점 표정이 굳게 된다. 늘어난 2회 공연의 주인공인 오데트 역을 일본인 무용수가 맡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의 뉴욕 시티 발레단에서 아시안 발레리나를 주역으로 발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사실은 유효할 것이다) 발레단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기존 회당 공연료에서 5억을 추가한 15억을 제안하며 공연을 성취시키려 한다. 일본이 제안했던 공연료는 사실 발레단에게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액수였기 때문에 사무국과 예술 감독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용단원들만은 이에 동요하지 않고 제안을 계속해서 거부한다. 무용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는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우선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계약은 종지부를 맺을 것 같았으나 또 다른 일본의 파격적인 제의에 발레단을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된다. 회당 공연료를 20억으로 올려주겠다는 메시지는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제안이 분명했다. 과연 뉴욕 시티 발레단은 돈에 굴복하였을까? 아니면 당초 계약된 대로 2회만의 공연을 했을까?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뉴욕 시티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NYCB


발레단은 일본이 제안한 4회 공연에서 2회가 더 추가된 6회를 하겠다고 회신을 보낸다. 일본 측에서는 4회 공연분의 계약금으로 6회의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했으나 여기엔 발레단이 제안한 추가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6회의 공연 중 2회는 일본인 무용수를 주역으로 세우고 나머지 4회의 공연은 뉴욕 시티 발레단 측의 발레리나가 주역을 맡기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절반이 아님 3분의 2를 뉴욕 시티 발레단의 단원이 맡게 되었고 동시에 공연료는 처음 계약 때보다 더 많이 받게 된 것이다.

기업경영의 논리에서 보면 뉴욕 시티 발레단은 회당 20억을 받을 수 있는 공연을 2회 추가된 6회의 공연을 함으로써 금전적인 손해를 면치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경영의 논리에서 보면 계약 초에 비해 수입이 4배나 증가하였고 동시에 단원들의 자존심도 살려주었으니 결과적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뉴욕 시티 발레단에게 있어서 많은 부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예술가들의 자존심, 단원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장광열 대표는 더불어 공연 예술 전문지인 월간 《객석》의 기자로 활동했을 때 ‘인간성’이 예술경영에 어떻게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직접 경험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객석》은 공연예술분야 중에서도 주로 음악을 다루는 잡지로 해당 잡지는 기사를 작성할 뿐 아니라 공연을 기획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에 《객석》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안네 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를 한국으로 초청하게 된다. 그런데 얼마 후 한국에 외환위기가 불어와 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당초 계약했던 5,000만원의 출연료를 2배 가까이 지불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객석》은 예상했던 수익은커녕 오히려 수천만 원의 적자를 떠안게 되어 타격을 입게 되지만 컴퍼니의 규모가 작지 않았기 때문에 《객석》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한 개인 기획사에서 현존하는 최고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를 초청하였는데 IMF의 여파 때문에 모두가 우려했다고 한다. 당시 개인 기획사가 수천만 원의 적자를 내면 부도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우려와 달리 아슈케나지의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유인즉슨 그가 기존 계약된 개런티의 반만 받고 연주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평소 아슈케나지가 내한할 때마다 기획사에서 공연 뒤풀이 자리를 마련하여 아티스트와 인간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을 쌓았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장광열 대표는 이야기의 끝에 예술경영을 하면서 지켜야할 점으로 세 가지를 당부하였다. 첫째 거짓말을 하지 말 것, 둘째 서두르지 말 것, 마지막으로 인간적으로 대할 것이었다.

오랫동안 현직에서 일해 온 두 인사의 강의는 예술경영이 다소 생경했을 무용전공자들에게 전반적인 이론적인 내용과 직업으로서의 장단점, 다양한 사례들을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예술경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끌었다. 강의에서 소개된 예술경영 사례들은 비단 예술경영인을 꿈꾸는 이 뿐 아니라 공연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할 필수 덕목이었다.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의 경쟁상대가 아디다스가 아니라 다름 아닌 닌텐도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닌텐도를 하느라 운동을 하지 않아 스포츠 의류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무용의 경쟁상대도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찾아야한다. 관객들은 무용공연을 보러갈 수 있는 시간에 영화를 관람할 수도 있고 야구를 보러갈 수도 있다. 이에 무용작품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 위하여 우리는 이제 무용을 경영해야 할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린 “전문무용수를 위한 행정인력양성 아카데미”에서는 매 시간마다 다른 강연자를 초청하여 문화예술행정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4월 17일부터 직업전환을 희망하는 전문무용수를 대상으로 이론과 실무교육을 하고 있는데 본 교육의 90% 이상을 이수하고 마지막에 치러지는 평가시험을 통과한 수강생에게 문화예술기관(무용단)이나 기획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를 주최하고 있는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파견된 수강생에게 매월 70만원을 지원하고 있어 문화예술경영이나 공연기획, 홍보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전공자는 해당 아카데미를 눈여겨보는 것이 좋겠다.




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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