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4.27 조회 4505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복사
  • 프린트

영기자의 현장 취재기

영화 〈댄서〉 리뷰 : 천재라는 수식어의 무게

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세계 3대 발레단을 꼽을 때 그 순위는 랭킹을 매기는 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린스키 발레단이나 볼쇼이 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단 그리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뉴욕 시티 발레단 등 유수의 발레단들이 포함되기도 빠지기도 하는데 이 치열한 경쟁에서 어떠한 조합에도 빠지지 않는 발레단이 있다. 바로 영국의 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이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 ⓒJacob Sutton


로열발레단은 발레 전공자에게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과도 같은 발레단으로 발레단 산하의 발레학교에서 13명을 뽑는데 수천 명이 지원할 정도로 그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또한 학교에 입학하여 수 년 간의 트레이닝을 거쳐야함은 물론이고 학교를 졸업한다 해도 로열발레단의 입단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발레학교에서 언제나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고 무려 3년을 월반하였으며 발레단에 입단한지 단 1년 만에 수석 무용수의 자리에 오른 발레리노가 있다. 바로 로열발레단의 역대 최연소 수석무용수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이다.

19세의 나이에 수석무용수가 된 폴루닌은 제2의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라 불리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우아한 짐승’으로 불린 그는 도약에서 속도를 조절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음은 물론이고 훈훈한 외모까지 겸비해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일 년을 기다려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최정상의 자리를 박차고 2년 만에 돌연 탈단을 결정하여 무용계에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영화 <댄서>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4월 13일 개봉한 영화 〈댄서〉는 세르게이 폴루닌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그가 고향인 우크라이나에서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부터 〈Take me to church〉[1]를 마지막으로 무용계를 떠나고자했던 순간까지 보여준다. 영화의 흐름은 폴루닌이 로열발레단의 수석무용수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정점의 순간에서 탈단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중점적으로 전개된다. 온 몸에 문신을 새기고 파티와 스캔들로 연일 신문을 장식한 트러블 메이커가 왜 돌연 은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오해하고 의문을 가졌을 관객들에게 그 이유를 제시한다. 어린 나이에 엄격한 발레학교에서 테크닉을 연마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속박된 삶을 살았던 그가 바랐던 것은 ‘가족이 한 집에서 사는 것’이란 소박하고 작은 소망이었다. 영화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만드는 한편 타겟층을 고려한 상업성이 첨가된 드라마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 만일 그의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기대한 관객이 있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무용 다큐멘터리 영화는 타 분야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내부모습을 담은 영화 〈라 당스〉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보고자 한다. 〈라 당스〉는 〈댄서〉에서 폴루닌이라는 한 특정 인물을 조명했던 것과 달리 150명의 무용단원들의 연습현장과 리허설, 공연실황 그리고 예술 감독과 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을 진지하게 보여준다. 한 동작에서 점프를 가볍게 뛰는 것과 무겁게 뛰는 것, 동작을 홀딩하는 시간의 연장 등 미세한 차이가 주는 동작 질의 향상을 위하여 무용수들은 치열하게 연습한다.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의 무용수들은 좌절하는 법이 없고 안무자의 요구에 맞춰 좀 더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하여 정진한다. 그 외에 무용수들의 금전적 권리를 보호해주고자 힘쓰는 예술 감독과 미국에서 투어 온 후원자들을 위한 밤, 요즘 소위 핫한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 등 〈라 당스〉에서는 특별하지만 또 여느 발레단과 다르지 않은 발레단의 하루하루가 비춰진다.

개인의 감정 표현을 우위에 두는 현대 무용과 달리 발레는 완벽한 테크닉과 절제된 포지션 속에 자기 자신을 감춰야만 한다. 그들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32회의 연속회전 동작인 푸에떼(fouette)를 해내고 눈부신 기량을 뽐내는 그랑 파드 되(grand pas de deux)를 소화해낸다.

하지만 그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또 포기해야하는가. 폴루닌이 당시 화제가 되었던 것은 일반적인 발레무용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충격적인 행동들 때문이었다. 로열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그가 왜 행복하지 않은지에 대해 모두가 의아해했다. 그의 행보는 ‘발레계의 배드 보이(bad boy)’라 불리며 손가락질 받았지만, 오히려 〈라 당스〉에서 묵묵히 춤에 매진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순간 거짓처럼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연 빡빡하고 힘든 발레단 생활을 견디면서 일탈의 충동을 느끼지는 않을까? 아니, 만약 느낀다 해도 발레단을 뛰쳐나가는 것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춤을 추고 그들 각각을 대변하는 개별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라 당스〉 속 무용수들은 이미 내면에 폴루닌을 한 명씩 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권윤희 관련 사진

ⓒJacob Sutton


폴루닌은 〈Take me to church〉를 끝으로 발레를 그만두고 LA의 연기 학교에 입학하려했지만 〈댄서〉를 촬영하면서 계속 춤을 추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영화는 그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담아온 영상과 ‘우아한 짐승’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솔로 장면들을 감상하는 재미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심지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가운데 춤을 추는 장면에서 관객 중 누구도 나가지 않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영화에 출연한 것이 발레단의 러브콜을 받기 위해서라든지 그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함일지라도 다시 춤을 추기로 마음을 다잡은 그가 언젠가 무대 위에 오른다면 한 번 공연을 보러가고 싶다.



[1] 가수 호지어(Hozier)가 부른 노래에 맞춰 로열발레단 동료인 제이드 헤일-크리스토피(Jade Hale-Christofi)가 안무하고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이 감독을 맡아 촬영한 작품이다. 2년 전 youtube에 업로드된 이 영상은 현재까지 누적 1,90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권윤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목록

댓글 0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