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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2.23 조회 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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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자의 현장 취재기

댄스필름, 한 발짝 더

임소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댄스필름은 실험의 영역이다. 영상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기반으로 움직임과 상상력이 만나는 복합적인 예술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상영회가 2017년 2월, 서울무용센터에서 열렸다. 2016년 서울무용센터 댄스 필름 제작 아카데미를 통해 우수한 예술적 역량으로 선발된 유재미, 김모든, 마윤하, 송주원 4인의 신작 댄스필름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이틀간, 총 2회 열린 상영회 첫 날은 댄스필름 안무가들이 자리에 함께해 유쾌한 분위기에서, 이튿날인 마지막 상영회에서는 몰입을 높이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유재미 <SYBCH05 - TRACKING> ⓒ유재미


첫 번째 상영작은 유재미의 <SYNCH05 - TRACKING>이었다. 필름의 주제는 일상과 ‘춤의 경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다. 춤을 일상으로 (일상을 춤으로가 아닌)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즉흥적인 춤과, 그것을 또 다시 재해석하여 안무하는 작업을 통해 일상과 춤에 대한 안무가의 시각을 규명하는 것이 이 작업의 중요한 주제라고 한다. <SYBCH05 - TRACKING>은 총 4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며 각각 집 안의 침실, 주방, 화장실, 옷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을 춤으로 재해석했다.

침실 장면에서는 이불 속에서의 꿈틀거림,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기지개의 시원함을 주로 나타냈다. 카메라의 시선을 전체적인 것에만 맞춘 것이 아니라 무용수의 눈, 발과 같은 작고 감각적인 부분에도 시선을 맞추어 집중도가 높았다.

주방 장면에서는 냉장고에서 과일과 채소를 꺼내 고르는 행위를 안무적으로 해석하였다. 특이했던 점은 재생 속도의 변화를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순간의 빨라짐과 느림에 차이를 주며 움직임에 입체감을 주어 타 장면들에 비해 짧은 재생 시간이었음에도 흥미를 자아냈다.

화장실 장면에서는 샤워하는 행위를 안무적으로 해석하였는데, 다른 장면들에 비해 역동적이지 않아 아쉬웠다. 머리를 감고, 거품을 묻히는 등 거의 모든 안무들이 느린 속도로 표현되었다. 주방 장면처럼 순간의 속도감을 활용하였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옷방 장면은 옷을 입는 일상을 안무적으로 해석하였다.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의 원피스를 입는다거나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른 장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웃음 코드가 느껴졌다.

<SYBCH05 - TRACKING>은 첫 상영작이었기 때문에 댄스필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역할은 성공적이었다. 지루하지 않은 화면 구성과 안무, 적당한 상영 시간이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첫 상영작이 끝나고 다음엔 어떤 필름이 상영될지 기대가 되었다.



김모든 <Jamais Vu (미시감 : 未視感)> ⓒ김모든


두 번째 필름은 김모든의 <Jamais Vu (미시감 : 未視感)>이다. 이 필름은 4가지 필름 중 유일하게 나레이션을 사용했고, 무엇보다도 남녀의 듀엣이 가장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또 외부와 내부를 번갈아가며 화면을 구성하였는데, 댄스필름의 장점인 공간의 무제한성을 잘 활용하였다. 이 구성 덕분에 영화 같은 효과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장면이 전환될 때의 음악연결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한 음악이 끝나자마자 다른 음악으로 변주되는 부분이 이질적으로 다가와 집중을 깨트렸다. 댄스필름에서는 안무 뿐 아니라 화면 구상, 음악까지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마윤하 <언덕엔 보리가 이미 익었네> ⓒ마윤하


세 번째 필름은 무용 비전공자들이 보기에는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는 필름이었다. 마윤하의 <언덕엔 보리가 이미 익었네>는 안무적 요소보다도 영상미가 돋보였던 필름이다. ‘망원정’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데, ‘망원정’은 세종대왕이 자주 행차하여 농정을 살피던 조선시대 정자이다. 홍수와 한강 개발 사업으로 파괴되었다가 90년도에 그 원형에 따라 복원되었다.

마윤하는 군주의 시선으로 망원정에 올라 신민을 걱정하는 현대인을 상상해 보았다. 존엄하기 위해 애를 쓰고, 현세를 걱정하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부조리한 현대인을 주제로 안무를 구상하였다. ‘부조리한 현대인’에 가장 걸맞는 필름 속 소품은 ‘휴대폰’이다. 휴대폰 화면에는 계속해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정치적 내용의 게시물이 보여지는데 이는 세종대왕이 농정을 살피던 망원정과 대비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망원정이라는 장소가 주제를 나타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Jamais Vu (미시감 : 未視感)>와 마찬가지로 장소의 무제한성을 잘 활용했다. 만약 이 필름을 안무를 중심으로 제작했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송주원 <반반반> ⓒ송주원


마지막 필름은 상영 시간이 가장 길었던, 한 필름 안에 무려 3가지의 소주제가 들어가 있던 송주원의 <반반반>이다. 시놉시스에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라는 글귀를 시작으로 시공간을 확장한 과거와 현재, 가상의 시간을 제안하고 한 여성의 실제 삶의 에피소드를 내러티브로 삶에 대한 사고와 이해, 그 실천에 대하여 질문하고 상상한다. '밤과 낮, 같은 듯 다르게 반복되는 상황과 그녀의 행동을 통해 일상의 판타지 속에 매몰된 신체의 감수성을 찾고자 한다’고 쓰여 있는데, 총 3가지의 소주제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주제에서 이 시놉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소주제에서는 시놉시스가 말하는 것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첫 번째 소주제의 제목은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었으며, 흑백의 비좁은 방 안에서 진행되었다. 여성과 남성의 듀엣으로 안무가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전 협의가 되지 않은 안무를 하는 듯한 어색한 부분이 자주 보였다. 어색한 부분이 보이니 필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같은 형식의 안무가 반복되어 지루하다고 느껴졌다.

두 번째 소주제는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의 판타지’라는 말에 가장 잘 맞는 소주제였다. 실제 출연 무용수의 집에서 누구나 겪을, 겪었을 일상을 보여주었다. 한 여성 무용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메인 무용수가 주변의 무용수들이 움직여도, 춤을 추어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또 오직 주변의 사물과만 관계를 맺는 주변 무용수들이 판타지를 더해주었다. 덧붙여 이 필름의 숨겨진 묘미는 반려견이었다. 반려견조차 주변 무용수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이 판타지를 더해준 듯하다.

마지막 소주제는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었다. 이 장면 역시 여성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가 등장하였다. 두 사람은 여름과 겨울처럼 서로 대비되는 복장을 입고 있었다. 여름을 나타내는 여성 무용수는 겨울을 나타내는 남성 무용수를 향해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였고, 남성 무용수는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밑이 뚫려있는 계단에 사람 다리가 빼곡히 들어서 신발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첫 장면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면의 고요한 분위기를 한 번에 뒤집는 효과를 가졌고, 사람들의 다리만 빼곡히 나와 있는 것이 시각적인 충격을 주었다.

송주원의 <반반반>은 첫 번째 소주제를 제외하고 안무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 댄스필름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안무적 요소가 적은 소주제들이 댄스필름이라 명칭하기에 충분했고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반반반>을 통해 ‘댄스’필름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무’만이 주가 되어야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서울무용센터의 2017년 첫 댄스필름 상영회가 막을 내렸다. 댄스필름은 아직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낯선 분야이다. 하지만 댄스필름은 오늘날 꾸준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필자 또한 댄스필름에 잘 알지 못하고, 배운 적도 없다. 앞으로 무용수들을 위해, 댄스필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댄스필름 교육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황리에 막을 내린 서울무용센터의 댄스필름 상영회가 이제 막 발을 내딛고 발전해나가는 한국의 댄스필름을 더욱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관련 기사]
서울무용센터 ‘댄스필름 제작 아카데미’
http://choomin.sfac.or.kr/zoom/zoom_view.asp?type=OUT&div=04&zom_idx=138&page=1&field=&keyword=



임소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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