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12.29 조회 2491
  • 페이스북
  • 트위터
  • url복사
  • 프린트

영기자의 현장 취재기

서울발레시어터×연희단팔산대 ‘아리랑 별곡’

한국의 민요 ‘아리랑’은 이름만 들어도 입으로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인지도가 높은 국민 민요인데요, 춤:in에서 처음으로, 한국적 특색이 살아있는 공연 〈아리랑 별곡〉을 관람했어요. 〈아리랑 별곡〉은 ‘서울발레시어터’와 ‘연희단팔산대’의 합작으로, 한민족 원형의 문화인 농악의 지난 2014년 11월 27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대표목록 등재 2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공연이에요. 오늘의 농악을 되돌아보고 농악 춤의 위력을 관객과 예술계에 알리고자 발레와의 만남을 주선하였다고 하네요.

‘서울발레시어터’는 벌써 20주년을 맞이한 역사가 깊은 발레단인데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열정과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창단되었습니다. 이에 걸맞게 이번 〈아리랑 별곡〉에서 발레와 농악과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연희단팔산대’는 마지막 유랑단체 여성농악단을 복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어요. 단원들이 모두 여성들이고 종합 예능을 지향하여 조선시대 ‘산대’라는 거리축제에 모든 것을 뜻하는 ‘팔’을 붙여 ‘팔산대’라 작명하였다고 해요. 현재는 강원도와 협력하여 평창 올림픽 상설공연을 제작 중에 있답니다.

공연은 총 8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첫 번째 〈문굿〉을 시작으로, 〈Hope(각설이 타령)〉,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 〈아리랑 별곡〉, 〈판굿(오채질굿과 오방진)〉, 〈도시의 불빛〉, 〈채상소고춤〉 그리고 〈당산벌림〉으로 끝을 맺었어요. 첫 번째 〈문굿〉은 마을에 도착한 풍물패가 난장을 허락받으면 악기를 울리며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뜻하는데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풍물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어요. 연희단팔산대의 여성 단원들이 창을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등장했는데요. 흥겨운 공연의 시작을 제대로 알리는 작품이었어요.

두 번째 작품 〈Hope(각설이 타령)〉는 각설이 타령과 전래 민요인 한 오백년을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서민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그렸다고 해요. 걸인복장을 한 채 구슬픈 아리랑 가락과 느릿한 각설이 타령에 몸을 맡긴 채 발레의 관습에 맞서는 모습은 발레의 문턱을 낮추고 한국의 발레를 만들어온 서울발레시어터와 맞닿아있는 작품인데요. 3명의 각설이가 등장하여 각각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노랫말에 맞추어 익살스러운 동작을 보여주었어요. 발레 테크닉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손목을 심하게 꺾고, 팔에 힘을 모두 뺀 채로 ‘각설이’의 모습을 사실적이고도 과장되게 묘사했어요. 마지막에는 모든 각설이가 무대 위에서 나오는 빛 한줄기를 바라보며 작품의 끝을 맺었는데요. 마치 각설이들의 죽음을 뜻하는 듯 했어요.

다음은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예요. 보통 신파극이라 하면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소재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이 소재의 원제는 ‘장한몽’이예요. ‘장한몽’은 발레와 현대무용 동작을 차용하여 안무했는데요. 위트 있는 작품 구성과 특이한 말투의 나레이션으로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답니다. 이 작품은 무용수가 아닌 소고꾼들이 출연하였는데요. 소고꾼들이 무용수만큼의 역량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무대를 보면서 당연히 서울발레시어터의 무용수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연 중간 연희단팔산대 단원들을 소개할 때, 이수일과 심순애 역할을 맡은 소고꾼들이 소개되어 알게 되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놀랐을 것이라 생각돼요.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임소희 관련 사진

서울발레시어터×연희단팔산대 〈아리랑 별곡〉 ⓒ한국문화재재단


이 공연의 제목이기도한 〈아리랑 별곡〉은 바로 전 작품인 〈장한몽〉과는 상반된 분위기를 풍겼어요. 농악과 발레의 만남에 표제가 된 초연 작품이며, 정선아리랑의 곡을 중심으로 아우라지에서 마포나루까지 소나무를 엮은 뗏목을 탄 떼꾼들의 여정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정선아리랑은 떼꾼들에 의해 전해진 아리랑인데요. 그들은 위험천만한 여정을 겪으며 사랑을 경험하고, 이별을 경험하고, 다시 뗏목에 오르는 허무함을 경험하며 살아왔다고 해요. 안무자 제임스전은 이러한 떼꾼들의 순환에 주목하였고 사랑, 이별, 허무의 고리를 춤으로 형상화하였어요.

아름다운 가야금의 선율과 꾀꼬리 같은 창사자의 목소리로 음악이 시작되었고, 무대에는 물결을 입은 듯한 모습의 여성 무용수들이 등장했어요. 무용수들의 물결과 같은 의상과 파란색의 뒷 배경으로 ‘강’이라는 소재를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천천히 작품이 진행되다 곧 음악이 피아노의 선율로 변주되고 음악과 춤의 속도가 빨라졌어요. 앞부분의 느슨했던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효과를 주기도 했지만, 빠른 속도감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어요. 한편으로 남녀가 한 쌍씩 듀엣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용수들 간의 부족한 호흡이 엿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놓칠 수 없게 만들었죠. 전체적인 연출에서는 부족한 면이 없었지만, 무용수들 간의 호흡이나 안무의 속도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임소희 관련 사진

〈아리랑 별곡〉에서 농악과 발레가 어우러진 모습 ⓒ한국문화재재단


눈을 즐겁게 해줬던 〈아리랑 별곡〉이 끝나고 5번째 작품인 〈판굿(오채질굿과 오방전)〉은 연희단팔산대가 꾸민 무대였어요. 흥겨운 풍물놀이를 길게 볼 수 있었던 신나는 작품이었어요.이번 공연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었습니다. ‘판굿’은 마을을 돌며 다양한 놀이를 하다 마지막에 마을의 타작마당 같은 넓은 곳에서 화려한 테크닉을 모은 농악을 치는 것을 칭하는데요. 이 작품의 가장 큰 볼거리는 바로 소고꾼들의 ‘자반뒤지기’예요. 한국무용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몸을 뒤로 뒤집어 원을 돌며 뛰는 기술이랍니다. 경력이 많은 소고꾼부터 8살 꼬마 소고꾼까지 모두 멋진 자반뒤지기를 선보였어요. 자반뒤지기 외에도 상모를 돌리며 원을 그리고, 신명나게 북을 치며 대형을 풀고 맺는 등 볼거리가 가장 많은 작품이었답니다.

다음은 서울발레시어터의 〈도시의 불빛〉. 제임스 전의 초기 안무 작품으로, 안무 당시 파격적인 컨셉과 안무로 주목을 받으며 이슈가 되었다고 해요. 전체적으로 빨간색인 무대 세팅, 재즈의 색이 진하게 풍기는 선율에 남녀의 정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안무가 돋보이는 작품인데요. 사실 이번 공연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했어요. 〈판굿〉이라는 극히 한국적인 작품 바로 다음에 작품으로 ‘한국적’인 특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재즈 선율이 짙게 흐르는 이 작품이 나왔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어요.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이 이어졌습니다. 이 소고춤은 모자에 연꼬리 같은 흰 띠를 돌리면서 소고를 치며 추는 춤이에요. 김운태 소고꾼이 유랑농악단 시절 익힌 호남의 가락에 기본을 두고 후일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경기와 영남의 가예를 가미하여 자신의 바디를 만든 것인데, 현재 가장 멋스런 채상소고춤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해요.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은 일반적으로 배우거나, 보았던 소고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소고춤이었어요. 멋스러운 기교나, 뛰어다니는 동작 하나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좁은 행동반경 안에서 모든 춤이 이뤄졌어요. 엇박을 사용하고, 상모를 격하게 돌리며 소고의 박자를 맞추는 동작들은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실로 고난도의 기술이 아닐 수 없답니다. 김운태 소고꾼의 연륜과 차분한 소고의 소리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임소희 관련 사진

서울발레시어터×연희단팔산대 〈당산벌림〉. 발레리노의 매끈한 턴과 소고꾼의 힘 넘치는 자반뒤지기 듀엣 ⓒ한국문화재재단


마지막 작품은 서울발레시어터와 연희단팔산대의 합작 〈당산벌림〉입니다. 이 작품은 농악과 발레의 만남의 하이라이트라고 소개했어요. 경기도와 충청도의 농악에서 나오는 ‘ㄷ’자 대형으로 둘러서서 농악을 치고, 춤을 추는 대목에서 발레단이 그 사이에 들어가 테크닉과 단체 대형을 선보였는데요. 말 그대로 농악을 배경음악으로 발레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으로 꾸며졌어요. 연희단팔산대와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 모두가 한 명씩 나와 자신의 개인기를 선보이고, 연희단팔산대 단원 1명과 서울발레시어터 단원1명씩 짝을 지어 함께 춤추는 등 조화를 이루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농악을 들어 귀가 즐겁고, 화려한 발레의 테크닉과 대형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그 이상의 조화나 예술적 협업을 찾기 힘들었던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줌아웃 프리뷰 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임소희 관련 사진

〈당산벌림〉에서 김운태 소고꾼의 멋들어진 꽹과리 연주 ⓒ한국문화재재단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농악과 발레의 만남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하지 않는다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은 농악과 발레가 세밀한 조화를 이루며 성공적인 접점을 그려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이질적인 두 장르가 처음으로 만났다는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도전적인 시도가 돋보인 이 공연과 마찬가지로 발레와 농악뿐만 아니라 춤과 여러 장르가 어우러지는 실험정신이 꾸준히 춤계에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임소희_춤:in 영 프로페셔널 기자


목록

댓글 0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