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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0.14 조회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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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하여

[춤과 과학]



<춤:in>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춤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과학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과학 그 사이를 탐험한다. 과학 전문가와 과학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과학]
아름다움에 대하여

김갑진_카이스트 물리학과 조교수

ⓒ이철민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믿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낙서 같은 그림과 내가 듣기에는 그저 소음 같은 음악이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밤새가며 그려갔던 내 그림보다 학교에서 대충 그려서 제출한 친구들의 그림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기라도 한 걸까?” 그 답을 찾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이런 모호함을 싫어하는 내가 과학을 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에게 과학은 객관적이었고 합리적이었으며, 노력한 대로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노력했고, 그렇게 ‘물리학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물리학자는 연구하는 사람이고, 내가 물리학자로서 하는 연구는 ‘자석’에 대한 연구이다. 보통 자석이라고 하면 말굽자석이나 네오디뮴 자석을 떠올리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자석이 많다. 자동차에의 모터에도 자석이 있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도 자석으로 되어 있으며, 병원에 있는 MRI도 자석이다. 자석이 있어서 가죽 핸드폰 케이스를 고정할 수 있고, 자석이 있어서 배달 업체 정보를 냉장고에 붙여 둘 수도 있다. 이렇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석에 뭐 신기할 게 있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것이 많다.

신기하다는 것은 예상을 못 했다는 것이고, 예상을 못 했다는 건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해보자. “자석의 자성, N극과 S극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마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답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질문이 다소 근원적이며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자석이 그렇게 널려있는데 말이다.

근원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파고파고 또 파 들어가 보면 된다. N극과 S극의 근원을 찾기 위해 자석의 N극과 S극의 가운데를 잘랐다. 그럼 N극과 S극이 따로 나뉠까? 그렇지 않다. 두 개로 나뉜 자석은 각자 N극과 S극이 생겨버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반으로 잘라보자.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플라나리아도 아닌 것이 잘라도 잘라도 끊임없이 N극과 S극이 생긴다. 그렇게 자르고 또 자르다 보면 무엇이 남을까? 그렇다, 원자 하나가 남게 될 것이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럼 원자는 N극이나 S극이 따로 존재할까? 안타깝게도 원자 하나도 N극과 S극이 함께 존재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가?”

19세기 초,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Orsted)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실험을 하고 있었다. 금속으로 된 도선에 전류를 흘리는 실험을 하던 와중에, 도선 주변에 있는 나침반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중학교에서 배우는 외르스테드의 법칙을 발견한 순간이다. 외르스테드의 법칙은 전류를 흘리면 주변에 자기장이 생긴다는 법칙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솔레노이드를 만들고 전류를 흘리면 자석이 된다. 이게 바로 자성이 나오는 근원이다. “그런데… 자석에는 전류를 흘리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자성이 나오는가?”

다시 원자로 돌아가 보자. 원자라는 것은 (+)인 원자핵이 가운데에 있고 그 주변에 (-)인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그런데, (-)를 가진 전자가 돌고 있다는 것은 거기에 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원자란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면서 만드는 작은 전류 고리이며, 거기서 자기장이 나온다.

그런데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류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자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자의 자전이다. 이러한 전자의 자전을 우리는 ‘스핀(spin)’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돌기도 하지만 스스로 회전하고 있기도 하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면서 스스로 자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전자의 공전과 자전이 바로 자성의 근원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전자가 어떤 축을 기준으로 돌고 있어야 우리는 축의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축의 양단을 N극과 S극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자성이 나오는 원리는 전자의 ‘움직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움직임’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KTX를 타고 출발할 때 무심코 옆에 있는 열차를 보면, 내가 움직이는 것인지 옆에 있는 열차가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그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아인슈타인이 말한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다. 내가 타고 있는 열차가 멈춰 있는 것인지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면, 멈춰 있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이나 그 본질은 같아야 한다.

전자가 가만히 있으면 그냥 (-)를 가진 전기일 테지만, 그것이 움직이면 자기장을 만든다. “만약 전자는 가만히 있는데 내가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전자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테니 전류가 생기고 자기장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전자가 정지해 있으면 전기를 띈 것으로 보이지만, 내가 움직이든 전자가 움직이든 상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기로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자신의 상황에 따라 전기로 보이기도 하고 자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같다.

자석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서 생각해보면 원자 속에 있는 전자가 참 고맙다. 쉬지 않고 계속 돌아주니까 우리가 자석을 볼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내가 연구하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전자가 움직여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석을 보기 위해 직접 어지럽게 돌아야 한다.

전자의 회전이 자석의 근원이라는 말은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자석이 아닌 것들이 많다. 원자 하나하나는 자석인데 원자들이 모인 물체가 자석이 아닌 이유는 원자들의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이 중구난방이라서 그렇다. “그렇다면 자석이 아닌 물체를 빨리 회전시키면 자석이 될까?”, “뭐라도 회전시키면 자석이 되는 게 아닐까?” 한 번 밥을 먹다 말고 젓가락을 열심히 돌려보라. 아니면 젓가락은 그대로 두고 여러분이 직접 열심히 돌아보던가.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젓가락에서 자기장이 나오고 자석이 된다. 물론 거의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약하지만…. 실제로 과학자들은 이런 것을 해보았다. 물론 사람이 아닌 젓가락을 돌렸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무엇이든 한번 돌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아니면 여러분이 뱅글뱅글 돌고 싶어질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실험 물리학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가 대답하지 못하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움직임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일까?”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대칭성’이다. 대칭성이 존재하면 대칭성의 방향으로 보존되는 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이 보존된다는 것은 그 방향으로 가도 전혀 이득이나 손실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득이나 손실이 없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흐름’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어떤 곳을 가든 월급통장의 잔액이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다면, 굳이 직장으로 출근을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흐름이 생겼다는 것은 이득이나 손실이 있고 대칭성이 깨졌다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대칭성이 깨졌기 때문에 전자는 돌게 되고, 그래서 자석이 된다. “그럼 도대체 대칭성은 왜 깨졌을까?”

이쯤에서 이야기를 멈춰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석에서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움직임을 이야기했고 상대성을 논했으며 대칭성을 상상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을 수 있지만, 그 종착역은 자연의 신비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과학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자연을 설명하길 기대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이라도 자연을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아름답다 할 수 없을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학창시절 생각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얻은 것 같기도 하다.
이것 역시 누군가에게는 주관적인 아름다움일 테지만 말이다.
김갑진_카이스트 물리학과 조교수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2년을 근무하였고, 그 후 같은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다시 3년 반을 근무하였다. 5년 반의 일본 생활을 접고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현재 카이스트 물리학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자성체의 물리이며, 자성의 근원인 전자의 스핀을 이용하여 기초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철민_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 기획을 하는 출판 작가이다. 94년도부터 다양한 이슈를 그리는 저널,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일러스트를 해왔으며, 일상을 그리는 수필집 《글그림》을 출간했다. 그 외 《박문수전》, 《내 이름》, 《창경궁의 동무》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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