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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09.16 조회 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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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과학] 춤의 기원 - 도대체 왜 추는 걸까?

[춤과 과학]



<춤:in>에서는 2019년 한 해 동안 춤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다. 춤과 과학이 공유하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춤과 과학 그 사이를 탐험한다. 과학 전문가와 과학을 그 소재로 다루는 예술가들의 글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영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춤과 과학]
춤의 기원 - 도대체 왜 추는 걸까?

김남식_카오스과학문화재단 사무국장

ⓒ이철민
우리보다 지적으로는 더 발달했지만 ‘춤’이 무엇인지 모르는 안드로메다은하의 어느 외계문명이 비밀리에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고 하자. 그 문명에서 파견된 한 외계생명체가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어느 날 자료 수집을 위해 BTS의 공연장을 찾았다고 하자. (또는 발레 공연장이나 탈춤놀이 마당이라도 좋다.) 그는 숨을 죽이고 공연을 지켜본다. 그 빠르고 현란한 몸짓을 신기해하면서도 당연히 머릿속으로는 궁금증이 커진다. ‘저들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왜 저런 동작을 취하는 걸까? 왜 관객들은 이렇게 열광하는 거지?’ 그는 계속 지켜보았지만, 공연은 그것으로 끝이다. 춤은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춤 자체가 목적인 것 같았다. 외계인은 그날 밤 안드로메다 본부에 타전한다. “그들은 ‘춤’으로 뭔가를 소통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뭘 전달하려는 건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왜 춤을 추는 걸까? 또 왜 그렇게 춤에 열광하는 걸까? 춤의 기원과 본질을 추적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 똑똑한 외계인이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앞에 나왔던 ‘소통’이나 ‘열광’과 같은 단어에 주목해보자. 이런 일들이 우리 몸 어디에서 벌어지는 일인가를 생각해보자. 그렇다, 출발점은 바로 우리의 ‘뇌’다. 춤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뇌를 알아야 한다. 뇌는 왜 생긴 걸까?
식물은 뇌가 없다. 움직이는 동물에게만 뇌가 있다. 그래서 많은 뇌과학자들은 움직이기 위해서 뇌가 생겼다는 데 동의한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먹이를 찾기 위해 또는 포식자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축적한 유용한 정보를 소환하고 현재의 감각 정보들과 통합해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미래를 예측하여 미래를 현재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 컨트롤센터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뇌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훌륭한 예가 우렁쉥이(멍게)다. 우렁쉥이는 유충일 때는 물속을 헤엄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뇌가 있다. 하지만 성체가 되어 바위에 고착하여 생활하면서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움직이지 않으니 뇌가 필요 없어진 거다. 우리는 보통 뇌가 사고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애당초 그러한 사고가 필요했던 이유는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산책처럼 가벼운 운동이나 화투 같은 간단한 게임도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움직이면 뇌가 건강해진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움직일 動’자를 써서 동물(動物)이다.
미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Scientific American》의 2019년 1월호에 <Evolved to Exercise>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듀크대학의 진화인류학 교수 허맨 폰쳐(Herman Pontzer)가 쓴 글이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를 오늘날의 인간으로 이끈 가장 중요한 진화적 혁명은 직립보행으로, 인간의 몸은 ‘Built to Move’, 즉 움직이는 것에 최적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와 가까운 친척인 다른 유인원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무를 오르내리는 수직의 동선에서 초원을 누비는 수평의 동선으로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서 인간의 운동능력은 극대화되었다. 운동능력을 나타내는 수치인 최대산소섭취량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인원에 비해 4배나 많다고 한다. 결국, 장구한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몸과 마음(뇌) 모두 움직임을 갈망한다. ‘움직임’은 인류의 숙명이다.
직립보행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글을 준비하면서 이전에 게재된 글들을 읽게 되었다. 노정래 박사님의 <동물의 구애>를 읽어보니 공작이나 두루미 등 동물계의 춤의 대가들이 대부분 두 발로 구애의 춤을 춘다는 게 흥미로웠다. 가설이지만 직립보행은 상대에게 상체를 많이 드러냄으로써 표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움직임을 가장 정교하게 발전시킨 걸 꼽으라면 누구나 스포츠와 춤을 생각할 것이다. 스포츠는 진화적으로 수렵이나 전쟁을 시뮬레이션한 것으로 추측된다. 스포츠가 인간의 투쟁본능을 표출한 모의 전쟁이라면 춤은 아마도 짝짓기와 연관된 구애나 전희(前戱) 과정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따라서 소통과 공감의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춤에는 보다 복잡한 요소들이 내재하여 있다. 무엇보다 미적 요소인데 춤은 그 자체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대부분 음악과 병행된다. 이것도 진화적으로 손쉽게 추측할 수 있다. 움직임은 맥박이나 심장 박동 또는 호흡과 긴밀하게 관련된다. 거기에서 리듬이 생기고 그것이 움직임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미적 요소와 결합하면서 움직임은 ‘춤’이 된다. ‘아름다운 움직임’이 탄생한 거다.
종교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기록이 예전의 종교의식에 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아마도 신을 불러내고 상상 속의 신에게 용서와 사랑을 구하는 동작이 춤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종교와 관련하여 아주 재미있는 추측을 한다. 이러한 과정이 인간의 ‘유태성숙(Neoteny)’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유태성숙이란 유아 때 모습 그대로 성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유태성숙한 유인원이다. 그래서 보통 어린 유인원이 성체 유인원보다 인간을 더 닮았다. 인간이 신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이가 부모 앞에서 예를 갖추거나 용서를 구하는 모습과 흡사한데, 실제로 신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또 그런 식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보면 개는 유태성숙한 늑대이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Manwatching》 참조) 인간은 더욱 귀엽고 유아적인 개를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개는 인간에게 평생 ‘강아지’이고, 그런 강아지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다. 그래서 늑대는 절대 춤추지 않지만 개는 때때로 인간(신) 앞에서 춤을 춘다. (유튜브에 재미있는 영상들이 많이 있다.) 인간이 신을 위해 춤추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운 움직임’은 ‘아름답고 숭고한 움직임’이 된다.
구글에서 춤의 어원을 살펴보니 ‘Dance’는 ‘생명의 욕구’를 나타내는 산스크리트어 ‘Tanha’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한자어 ‘舞’도 잘못이나 사악함을 털어낸다는 종교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말 ‘춤’이라는 단어의 어원도 ‘노력’이나 ‘집중’과 관계된 말이라고 한다. 어원에서도 나타나듯이, 결국 춤이란 뇌와 관련하여 인간의 본원적인 움직임과 소통의 욕구가 표출된 것으로 미적이고 종교적인 활동의 총체라고 할 수 있겠다. 춤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이쯤으로도 과하다.
‘닥치고 춤!’
나는 과학문화운동을 하는 카오스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재단의 대표적 행사로 봄가을 각각 10번의 과학강연을 하는 데 올해의 주제가 ‘기원과 본질’이다. 봄학기의 주제가 ‘모든 것의 기원’이었고 가을학기의 주제는 ‘도대체 과학’이다. ‘도대체 시간이란 뭘까?’ ‘에너지란 뭘까?’ ‘무한은 뭘까?’ 등 ‘본질’을 주제로 10개의 강연을 열게 된다. 그래서 <춤과 과학>을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춤의 기원 - 도대체 왜 추는 걸까?’를 제목으로 뽑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이런저런 자료를 살펴보면서 춤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카오스 과학문화재단의 가을 정기 강연은 <도대체 사이언스>을 주제로 최고의 과학자를 모시고 과학의 근원적인 질문을 함께 고민한다. 9월 25일(수)부터 10주간 매주 수요일에 무료로 진행되며, 신청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ikaos.org/kaos/apply/view.php?kc_idx=73
김남식_카오스과학문화재단 사무국장 서울대 물리학과를 중퇴하고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카오스과학문화재단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의 물리학자 Freeman Dyson의 다음 말을 좋아한다. “모든 문화의 압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동맹, 그것이 과학이다!”
이철민_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기획을 하는 출판 작가이다. 94년도부터 다양한 이슈를 그리는 저널, 광고 일러스트,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일러스트를 해왔으며, 일상을 그리는 수필집 《글그림》을 출간했다. 그 외 《박문수전》, 《내 이름》, 《창경궁의 동무》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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