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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6.12 조회 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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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프로듀서들의 이유 있는 모임 : 더프로듀서(The Producer)

박지선_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프로듀서 그룹 도트

12월 첫 모임 ⓒ더프로듀서과

해외의 많은 네트워크 미팅에 참석하다 보면 민간에서 활동하는 독립 기획자들이 모여 있는 라운드 테이블의 모든 주제는 결국 ‘지속 가능성’ 과 ‘생존’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좁혀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서로의 생존 방식을 교환한 후 세계 곳곳에 동지가 있음에 안도하기도, 힘을 얻기도 하지만, 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안고 돌아가게 된다.

2013년 처음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1)을 시작했을 때 모였던 한국, 대만, 일본, 홍콩, 마카오, 호주 등 아시아 11개국의 40여 명의 프로듀서들은 마치 점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고민했던 지점들의 공통점을 환기하며 새로운 협력 방식 속에 ‘생존’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와 방법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APP 초기 ‘프로듀서’라는 용어는 마치 시기적 트렌트처럼 생각되었고, 참여자들은 스스로를 기획자, 기획 행정가, 아트 매니저 등 다양하게 지칭하며 프로듀서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보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APP의 모든 멤버는 자신을 프로듀서 또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로 칭하며, 변화하는 공연예술 환경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APP의 프로듀서들은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 점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필요한 시점에 점들은 서로 연결되어 선이 되거나 원 또는 다양한 도형을 만들며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은 2013년 시작한 아시아 공연예술 프로듀서들의 플랫폼이다. 아시아 프로듀서들의 창의적인 제작 활동을 확대하고, 이종문화활동을 개발하고 국내 및 아시아의 창의적 리더 개발을 목적으로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에 관한 컨퍼런스를 처음 열었으며, 2014년부터 매해 아시아의 도시를 돌며 APP CAMP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은 서울, 2015년에는 대만의 이란과 타이페이에서 일주일간 진행되었다. 한국, 대만, 일본, 호주,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중국,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40여 명의 프로듀서가 참가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도쿄, 2017년에는 호주 멜버른에서 열렸으며, 2018년 연례 미팅은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예정이다.

2017년부터 몇 명의 독립 프로듀서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가운데, APP의 한국판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 프로듀서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의 전문가들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확장되어온 공적 영역이 이제는 민간의 영역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민간의 전문가들의 역량을 만들고 협력의 구조를 만드는 것에 대한 필요성 역시도 몇몇 프로듀서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었다. 명확한 목적과 목표 없이 일단 모아보자, 하는 생각과 함께 2017년 12월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1월 모임, <장애 예술> ⓒ더프로듀서

연극, 무용, 음악, 전통예술, 다원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5명의 프로듀서들이 모였다. 각자 자기소개와 함께 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공유하는 가운데, 내적인, 외적인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획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가?”, “프로듀서로서 예술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작업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민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른 프로듀서들은 어떻게 작업하고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일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질문과 고민은 각자의 것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우리는 작지만 야심찬 1단계 목표를 설정했다. 2018년 12개월 동안 12번 만나자는 것이다. 모임은 매번 주제를 정해 서로의 지식과 정보, 노하우를 나누는 느슨한 형식의 네트워크로 시작하면서 장기적으로 모임의 성격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네트워크 이름은 ‘더프로듀서(The Producer)’이며, 구성원의 조건은 1. 현대 공연예술(Contemporary) 장르에서 2. 비 관습적이고 비 상업적인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3. 새로운 예술의 언어들을 찾으며, 4. 스스로의 크리에이티브(창의성)를 추구하고 5. 자신의 자원을 공유하고 협력을 통해 6. 공연예술 생태계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함께하는 7. 민간에서 활동하는 독립 프로듀서다. 물론, 위의 조건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해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고자 하는 프로듀서들에게는 언제나 모임의 문을 활짝 열려있다.

첫 번째에 이은 다섯 번의 모임은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사례 공유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매 모임마다 2명의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작업과 현재의 생각과 고민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오래 동안 스쳐지나가며 알았던 기획자들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작업 속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동시에 수평적이고 오가닉한 멘토십이 이루어진다. 1월 모임의 주제는 장애 예술이었다. 영국문화원의 최석규 감독이 영국 장애예술의 사례를 공유했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의 오세형 팀장과 이진엽 연출이 게스트로 참석해 관련 지원사업과 창작 사례를 공유해 주었다. 프로듀서로서 장애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창작으로 이끌 수 있을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떻게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무대 위에서 어떻게 극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장애를 인식하게 할 것인가? 창작 과정에서 미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 프로듀서로서 장애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져주는 시간이었다.

3월 모임, <프로듀서와 예술가> ⓒ더프로듀서

2월 모임은 공연예술 생태계의 변화 속에서 프로듀서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네트워크와 협력의 가능성과 조직 구조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가졌다. 이 주제는 올해 모임 내내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으로 12월 마지막 모임에서는 ‘더프로듀서’ 네트워크의 지속 가능한 가치 있는 협력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았다. 3월은 게스트가 가장 많은 모임이었다. 주제는 “프로듀서와 예술가 간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형태로 작업하고 있으며, 더 나은 협력 구조를 위한 방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로 프로듀서들은 자신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모임에 초대했다. 예술가들에게는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프로듀서들에게는 다른 이들의 작업 방식과 관계 맺기에 대한 경험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4월 모임은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에서 열렸다. 행화탕을 운영하고 있는 서상혁 피디가 주관을 하였으며, “지속 가능한 공연예술 창작활동을 위한 측면에서 유통구조의 현 상황 진단과 개선 방안 모색” 이라는 광범위하지만 평소에 항상 가지고 있는 고민을 주제로 담아왔다. 5월 모임은 광주에서 가졌다. ‘사회적 예술’이라는 주제 하에 프로듀서, 연출가, 안무가, 사운드 아티스트, 무대 디자이너, 문화 기획자 등 24명이 함께 했다. 광주 5.18민주묘지와 구묘역 방문, 시민들이 직접 만든 전시 <23개의 방> 관람, 광주 최초 선교사 사택 방문, 구 전남도청 방문 후 차 없는 거리의 마지막 여운을 느끼며 금남로를 따라 걸었다. 광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하루의 일정 속에 ‘사회적 예술’에 대한 주제 토론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프로듀서로서 한국의 현대사를 바라보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에 대한 고민과 함께 예술이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고민을 가슴에 담는 시간이 되었다. 토론 중에는 프로듀서로서 광주의 오월에 대한 가상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논의해 보는 시간을 이후에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5월 모임, <사회적 예술 @광주> ⓒ더프로듀서
5월 모임, <사회적 예술 @광주> ⓒ김서희

‘더프로듀서’는 2018년 1월부터 5월까지 5번의 모임을 마쳤다. 작지만 야심찬 1단계 목표인 12달 12번 만나기는 이제 7번이 남았다. 7번의 모임 동안 참여 프로듀서들은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함께 논의할 주제로 가져온다. 물론, 짧은 시간이기에 충분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주제들은 내년에 이어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토론 또는 프로젝트로 발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반드시 프로듀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프로듀서와 함께 일하는 모든 예술가와 행정가 그리고 공공 영역의 기획자 모두 이 모임에 관심이 있다면, 참여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모두가 함께 만드는 느슨한 네트워크인 ‘더프로듀서’의 2단계 목표는 독립 프로듀서들의 활동과 예술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프로듀서 네트워크를 통한 창의적 협업과 가치 있고 다양한 협력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올해 남은 7번의 모임이 재미있게 잘 진행되기를 희망해 본다.

4월 모임, <지속가능한 공연 예술 @행화탕> ⓒ더프로듀서


박지선_프로듀서 독립 프로듀서이다. 오랜 기간 축제 기획자로 활동했고, 국제교류 기획자로, 국내외 예술작품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해왔다.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 창립 기획위원이다. ‘사운드’를 테마로 레지던시를 기획 운영해왔으며, 최근에는 도시, 예술, 테크놀로지, 사운드를 키워드로 다양한 예술가 간, 예술가와 비 예술가 간의 협업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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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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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호2018-06-18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무슨일을 하는건지도 모르고.. 잘 보이지도 않지만..
    모든일의 시작과 끝에 서 계신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