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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05.14 조회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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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핌으로서의 움직임(Movement as Care)

최태윤_작가, 교육자

그림이 온기를 줄 수 있을까요?
아니요, 육체만이 온기를 줄 수 있습니다.

시가 온기를 줄 수 있을까요?
아니요, 대화만이 온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육체와 대화를 통해 온기를 얻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기 위함입니다.

나는 최근 프린스턴 대학의 레베카 레이지어(Rebecca Lazier)가 안무한 <아마도 다른 이들이 있었다>(There Might Be Others)라는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품에서 12명의 무용수들은 계획된 선율에 맞추어 즉흥적인 동작을 선보였습니다. 전체적인 프롬프트가 있긴 했지만 각 무용수는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움직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나머지 댄서들 역시 다음 차례까지 이를 따라했습니다. 체계와 즉흥 사이에서 경이와 긴장의 순간들이 탄생했습니다. 댄서들은 서로를 안거나, 쓰다듬거나, 혹은 서로에게 기대는 둥 신중하고도 배려 깊은 움직임을 만들어냈습니다. 불편한 일탈과 대립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공연 후에 작품에 참여한 무용수 코리 크레그(Cory Kregge)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일반 대중들이 간혹 춤을 이해하거나 즐기기를 어려워하는 것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는 내가 처음으로 춤과 움직임의 개념적인 철저함을 배웠던 순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 작품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진실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추상에 형태를 부여하는 수단으로서의 움직임과, 사람들 간의 공통된 공간을 찾는 수단으로서의 움직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 나는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춤으로부터 우리가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지워버리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움직임의 의미를 판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통제가 아닌, 보살핌의 행위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나는 개인전을 위한 새로운 작업 중입니다. 작품들은 보살핌의 기억에 관한 나의 연구의 자취를 더듬는 동시에, 관객들이 스스로를 보살피도록 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친밀한 이들 사이의 보살핌, 공동체에서의 보살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보살핌을 다룹니다. 작품 속에서, 풍경은 인물이 되고 인물은 풍경이 됩니다. 인물들은 온화한 동작과 고요함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보살핌의 순간을 상상하고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역시 보살핌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보살핌의 행위란 공간을 차지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변화시켜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려 깊은 견딤이자, 조심스럽게 무언가가 되는 행위입니다. 즉 보살핌은 누군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책임을 지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은 타인을 보살피기 위한 의무이자 준비과정이 됩니다.

당신의 춤은 움직이는 법을 잊는 것입니다.
당신의 춤은 움직임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당신의 움직임은 보살핌의 시입니다.

Can drawing give you warmth?
- No, only the body can give warmth.

Can poetry give you warmth?
- No, only dialogue can give you warmth.

Then, what’s the point of drawing or writing poetry?
- It’s to remind us that the body and dialogue keep us warm.

I recently saw a dance piece 'There Might Be Others' choreographed by Rebecca Lazier at the Princeton University. In the piece, 12 dancers danced with improvisational movements based on a programmatic score. Although there was a prompt, each of the dancers had the agency to start their own movement, and other dancers had to follow it until the next round. Between system and improvisation, there were moments of surprise and tension. The dancers had deliberate, caring gestures ? people holding each other, petting, or relying on each other. There were also moment of uncomfortable breakouts and confrontations.

I talked to a Cory Kregge, a dancer in the piece, after the show. We talked about how the general public often finds dance difficult to understand and appreciate. The conversation reminded me of first learning about the conceptual rigour of dance and movements. It’s challenging to just see, experience a piece, and ‘get it’. We talked about movement as a way of giving form to ideas and a search for common space with people. From that, I had some questions.

Can we learn from dance how to unlearn what we think is a movement?
Can we move in a way without a judgement of the meaning of the movement?
Can we move as an act of care, and not of a control?

I’m making new paintings for a solo show at Factory2 in Seoul to trace my search for memories about care, and to function as visual devices for the viewer to take care of themselves. They are about care between intimates, care within communities, and care within oneself. In the painting, landscape becomes figures, and figures become landscapes. The figures are between gentle motion and stillness. In making these paintings, I imagined and remembered moments of care, and made sure the act of painting was also a caring act. Caring is not an act of taking something, like taking up space or conversation. Instead, it's a careful holding, becoming something carefully. Taking care is paying attention and becoming accountable. Taking care of ourselves is both a responsibility and a preparation for taking care of others.

Your dance is about unlearning to move.
Your dance is questioning what it means to move.
Your movement is a poetry of care.

디스트리뷰티드 웹 오브 케어(Distributed Web of Care)는 분포된 네트워크에 대한 워크숍입니다. 대기업들이 사유화한 네트워크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위협합니다. 워크숍에서는 참가자들이 끈과 스티커를 사용해서,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가 되어봅니다. )


최태윤_작가, 교육자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교육자로 퍼포먼스, 전자장치, 드로잉과 스토리텔링을 수반하는 작업을 하며, 공공 공간에 개입을 시도하기도 한다. 동료 작가, 활동가, 그리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사회 참여적 프로젝트와 대안적인 교육 활동도 선보여왔다. 아이빔 아트 앤 테크놀로지 센터와 로어 맨해튼 문화위원회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활동했다. 도시화에 관한 책을 자가 출판하였으며, 컴퓨테이션에 관한 드로잉 책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를 공동 설립하여 운영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근래에는 장애와 정상의 벽을 ‘탈학습’하고 예술과 기술의 접근성과 다양성을 향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ttp://taeyoonch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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