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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에세이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8.05.09 조회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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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어느 공공 극장의 마이웨이

김채현_무용평론가

PSNY 재개관 기념 프로그램에서 표출된 연대감, 김채현 제공

기획연재 <뉴욕의 춤과 공공예술, 그 현장에 다가서다>는 해외(뉴욕)방문기 에세이입니다. 김채현 무용평론가의 현장 인터뷰로 뉴욕의 춤과 공공예술을 살펴봅니다. 뉴욕 공공예술 현장의 운영 실무자들을 만나 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춤을 포함한 공공예술 활동을 국내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유효한 참조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폐교를 극장으로 만든 신참자들

만남은 대개 운명을 가른다. 유휴(遊休) 공간에도 그런 운명이 있다. 개발업자를 만나면 부동산이 되고 예술인을 만나면 문화 공간이 된다.(그렇게 조성된 문화공간을 결국 부동산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뉴욕의 퍼포먼스 스페이스 뉴욕(Performance Space New York:PSNY)은 어느 폐교가 청년 예술인들을 만나 갑자기 문화 공간이 된 곳이다. 높은 부동산 임대료로 예술인들의 원성을 사면서도 예술을 손아귀에 넣은 맨해튼에서 이 공간은 지난 40년 아방가르드 춤과 퍼포먼스 분야의 전초 기지 구실을 해왔다. 여기서 발표된 춤과 퍼포먼스는 대개 세계 초연작이었고 지금까지 수천 편 선보인 것으로 추산된다.

PSNY 재개관 기념 프로그램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PSNY 제공

이 공간의 역사는 지금부터 40년 전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 소재 어느 공립초등학교(Public School 122)가 주민 수 격감으로 폐교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맨해튼은 산업 중심이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때 뉴욕시가 맨해튼 남쪽에서 폐업한 제조업 지역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개발에 대대적으로 나서 무리하게 재원을 조달하면서 재정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 이 와중에 이민 노동자들의 동네인 이스트 빌리지를 노동자들이 떠나고 그 빈자리를 보헤미안 같은 현장 예술인들이 채워나간다. 이미 1960년대부터 이민촌 이스트 빌리지에 둥지를 트는 예술인들이 늘어나던 추세가 이 무렵에 더욱 고조되었다. 시 공무원들의 임금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공공복지 재원도 형편없이 깎이던 그 황량한 시기에 뉴욕시는 폐교까지 관리할 여력도 의욕도 없었던 것 같다. 이 틈을 타 20살 안팎의 몇몇 신참 청년들이 1979년에 이 폐교를 자기들의 리허설 등 예술 공간으로 점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폐교가 우범지대로 방치되느니보다 청년들이 어떤 명분으로 출입하는 쪽을 당국이 내심 반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 다음해에 이 공간은 퍼포먼스 스페이스 122(Performance Space 122)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였다(국내에서는 P.S. 122로 더러 알려져 왔었다). 수많은 무용인과 퍼포머들을 끌어들인 P.S. 122는 2011년 당초 2년 예정으로 리노베이션을 시작하였으나 공사가 어언 6년을 끌은 끝에 올 연초 재개관하였다. 이 붉은색 벽돌 건물은 1894년에 4층으로 지어졌고 전체 대지는 250평 정도로서, 뉴욕시는 이 건물 리노베이션 예산으로 무려 4백억 원을 투입하였다. 공연예술 지원에 더해 근대 유산 보존과 커뮤니티 활성화를 염두에 둔 조치였을 테지만, 아무튼 그 예산 규모는 대단해 보인다. 이 건물에는 여러 공익 커뮤니티 사무실도 입주해 있다.

열악한 공간을 감내한 이스트 빌리지의 열망

PSNY 전경, 김채현 제공
PSNY 재개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쉴렌즈카 예술감독(맨왼쪽), PSNY 재개관 프로그램. PSNY 제공

‘Performance Space New York(PSNY)’이라는 새 이름으로 재개관 행사 ‘아방가르드 아라마(Avant-Garde Arama)’가 2월 18일 저녁에 3시간 여 진행되었다. ‘아방가르드 아라마’는 1980년의 개관 프로그램으로 지금껏 장수해왔고 춤뿐만 아니라 온갖 전위 활동이 등장한다. PSNY의 여러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된 재개관 행사에 30여 명의 퍼포머들이 갈라 형식으로 참여하여 제각각 이 공간의 정신을 질펀하게 기렸다. 트럼프를 등장시킨 노골적 풍자로부터 PSNY의 지난날을 떠올리는 원로의 회고담, 소품 신작들까지 장르의 벽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저녁의 패러디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날 인산인해 모양으로 공간들을 빼곡히 메운 5백명 가량의 관객은 대부분 퍼포먼스 분야 관계자들이었을 것이고, 이 같은 관객 규모는 P.S. 122가 거쳐 온 역사는 물론 뉴욕에서 실험 예술이 활발한 정도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였다.

80년대 초반 P.S. 122가 자리를 잡던 당시 무대 상황은 한 마디로 열악 자체였고 어쩌면 극장도 아니었다. 벽을 튼 공간 가운데를 기둥이 방해한 데에다 음향 설비는 아예 없고 조명은 교실 전등과 임시방편의 설치 전구로 해결하고 객석이라곤 폐교 의자와 스티로폼 방석이 전부였다. 치장도 장식도 요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실제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도리어 창의력을 촉진했을 가능성은 크다. 아무튼 근 40년 후 리노베이션 결과, 이제 PSNY는 가운데 기둥이 없는 각각 150평, 40평 규모의 천장이 높은 두 극장과 여러 워크숍 공간, 엘리베이터를 갖춘 의젓한 극장으로 거듭났다.

극장이란 호칭이 실제 사치에 불과했던 초창기에 사이먼 포티, 로버트 윌슨, 몰리사 펜리, 다나카 민, 케네스 킹, 아니 제인 등등 미국 춤계에서 중진이거나 곧 중진이 될 면면들이 개관 직후부터 적극 참여한 것이 P.S. 122의 정착에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뉴욕에 DTW, 댄스페이스, 저드슨 처치, 더 키친, 커닝햄 스튜디오 등 실험춤이 가능한 공간이 꽤 있었는데도 그처럼 열악한 P.S. 122에 호응이 높았던 것을 보면 실험적 전위에 대한 어떤 독특한 열망이 감지된다.

그 열망은 P.S. 122가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의 기풍과 직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타임스퀘어광장과 브로드웨이 주변처럼 수직으로 치솟은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의 숲은 뉴욕(맨해튼)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맨해튼에서 센트럴파크 남쪽의 절반 정도가 그러하고, 그 아래 절반 정도는 고도가 매우 낮다.(이 지역들은 관광의 우선순위에서 제외되기 마련이다.) 고도가 낮은 지역에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는 서쪽의 그리니치 빌리지와 함께 보헤미안 풍의 실험 정신을 견지해온 곳이다. 특히 P.S. 122가 문을 열던 시기는 히피운동, 대안문화공간, 저항운동, 록음악 대가들의 활동이 성행하던 때였다. 이런 매력은 지금도 뉴욕의 전설처럼 말해지곤 한다.

분열과 억압에 맞선다

그러나 80년대에 미국 경제 추락과 함께 이스트 빌리지도 쇠퇴하였다. 90년대 이후 이스트 빌리지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노숙자도 드물지 않은 가난한 동네에서 안정된 중류층 중심의 신흥 주거촌으로 변모해왔다. 급기야 신자유주의와 젠트리피케이션의 물결에서 이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역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들이 이어진다. 예술은 남았으나 예술가는 없는 우울한 아이러니가 여기서도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비추어 PSNY의 향후 활동이 관심사로 떠오른다. PSNY는 재개관하면서 39살의 쉴렌즈카(J. Schlenzka)를 예술감독으로 기용하여 운영을 맡겼다. 이 여성은 맨해튼의 현대미술관(MoMA)의 별관인 PS1(퀸즈 지역 소재)에서 퍼포먼스 큐레이터를 역임한 바 있다. PS1은 MoMA와는 달리 컨템퍼러리 아트 전용 전시장으로서 해프닝과 미니멀리즘 이후의 퍼포먼스 및 장소 특정 예술과 연관이 깊다. 일반적으로 퍼포먼스는 화랑 같은 흰 벽 속에서 자본 위주로 제도화된 시각 스펙터클을 넘어설 대안으로 여겨졌다. 퍼포먼스 분야의 젊은 큐레이터가 예술감독으로 나서도록 한 것은 PSNY가 어떤 변화를 추구할 것임을 전망하게 한다.

PSNY에서 익숙한 퀴어 분위기, PSNY 재개관 프로그램 , 김채현 제공
과거를 회고하는 인디언 후예 자매 연극인, PSNY 재개관 기념 프로그램, 김채현 제공

재개관과 동시에 연 웹사이트에서 PSNY는 몇 가지 운영 방향을 적시하고 있다. “PSNY는 퍼포먼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작업을 일반 관객에게 제공하여 지역(이스트 빌리지 및 뉴욕)과 미국 안팎의 현대적 퍼포먼스를 선도해나갈 사명이 있다. 그리고 장르 교차 및 정치적 참여가 뚜렷했던 PSNY의 전통을 지속하여 분열과 억압을 조장하는 정치에 대응해 나간다. 또한 PSNY의 역사가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기 이전에 시작된 점을 염두에 두어 도시 개발로 인해 배제되는 예술인과 지역 공동체를 옹호하는 환경과 프로그램을 조성할 것이다. 특기 사항: 맨해튼의 원주민이던 인디언 선조들께 PSNY는 경의를 표한다.” 대개의 공공 극장이 웹사이트에서 예술적 지향을 밝히는 일반적 관행을 성큼 뛰어넘어 PSNY는 여기서 정치적 입장까지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역 공동체와의 연계 및 책임을 뚜렷하게 약속하는 점도 얼마간 특이해 보인다. 그 구체적인 첫 실행 작업으로서, 재개관 전날 PSNY는 미국의 토착 인디언이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 지역에서 백인들에게서 쫓겨나 서부로 강제 유랑한 과거사를 되새기는 강연 행사를 열었다.

트럼프 풍자 퍼포먼스, PSNY 재개관기념 프로그램, 김채현 제공

재개관하면서 공간의 이름을 P.S. 122에서 PSNY(뉴욕퍼포먼스공간)로 개명한 것은 어쩌면 당돌한 인상을 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운영 방향을 참조하면 PSNY로의 개명에 공감되는 바가 있다. P.S. 122의 성과를 계승하되 그 시절의 전문 예술인 위주의 공간을 탈피해서 (뉴욕과 미국 안팎의) 시민을 겨냥한 공간으로 전환시키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이 대목에서는 또한 예술과 시민의 일상을 연결시키는 어떤 행동주의도 읽혀진다. 퍼포먼스의 재맥락화 같은 이런 시도 속에서 PSNY가 예술과 일상 현실의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타개해 나가는지 주시해볼 만하다.

김채현_무용평론가 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 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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