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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에세이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7.11.30 조회 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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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춤 표현으로 자기를 되찾다

[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춤:in〉에서는 시대 흐름을 주시하여 기존의 춤 담론을 주도해온 개인적 창조의 패러다임을 넓혀서 2017년 한 해 동안 시민을 위한 표현이 돋보이는 춤 표현 활동을 연재한다. 〈춤:in〉은 춤과 정치·권력·인권 사이의 담론을 발굴하여 ‘시민 사회 및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시민과 공생하는 춤 표현의 가치를 적극 사고하는 계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본란에서는 시대·문명·사회와 춤의 선순환적 조화를 성취한 특이 사례들이 함께 조명된다.


춤 표현으로 자기를 되찾다
: 영화가 묘사하는 춤추는 소시민

김채현_춤비평가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를 주동하였다. 이승만 자유당 정부를 무너뜨린 4·19 학생혁명(1960년) 직후 선출된 민주당 정부의 무능에 더해 사회 혼란이 이어지자 이를 빌미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로써 민주당 정부를 전복시키고선 군사 정치를 개시하였다. 군사쿠데타 직후 5월 23일 47명의 남녀 ‘댄스광(狂)’이 대낮에 비밀 댄스홀에서 춤췄다 해서 붙잡혔고 45명이 징역 3개월~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밀 댄스홀에서 춤추다 경범죄로 끌려가기는 그전에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당시 군부는 계엄법의 불법 옥내집회를 이유로 가혹한 실형을 가했다. 군사재판을 굳이 공개해서 언론들이 재판정에서 취재 경쟁을 하도록 유도하고 방청석도 초만원을 이루도록 한 것은 박정희 군부가 정치 정세와 사회 분위기를 곧바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력했음을 말해준다. 군사 계엄이 막 발동되던 터에 언론이 그 가혹한 실형에 대해 이의를 표했을 리 만무하고 또 국민 대다수(?)가 비밀 댄스홀을 달갑잖아 하던 세태에 편승해서 군부는 춤을 그렇게 ‘태연히’ 정치적으로 역이용하였다.

한국 전쟁 직후 1950년대 중반에 신문 연재소설 〈자유부인〉은 대학 교수 부인이 이른바 ‘춤바람’에 빠진 것으로 묘사했다 해서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이후 국내에서 비밀 댄스교습과 비밀 댄스홀은 1990년대 초까지 단속 대상으로 심심찮게 보도되었다. 이런 일들은 지금에 이르러 춤 억압의 사례로 지목되지만, 그런 춤 억압이 버젓이 자행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춤에 관한 일반적 편견이었다. 2004년에 이르러 경찰청은 비밀 댄스교습의 단속을 시대에 뒤떨어진 조치로 분류하였다. 90년대 이후 댄스뮤직이 소비되고 국내 댄스스포츠 인구가 7백만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산되는 우리 시대에 그러한 편견은 사그라지는 중이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춤에 관한 편견의 역사는 전세계적으로 광범하고도 뿌리 깊은데, 판단컨대 이 편견은 무엇보다도 몸과 결부된 춤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개인들이 그 같은 편견을 헤쳐나가는 영화 〈쉘 위 댄스〉[1]와 〈빌리 엘리어트〉[2]가 국내에서 끼친 영향은 크다. 극장 상영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TV 방영으로 보았을 두 영화는 시민의 일상(日常)에서 춤이 발휘하는 ‘가치’를 담담하게 제시하였다.

몸은 타고난 성에 준해 두 젠더(gender)로 구분된다. 두 가지 젠더 가운데 여성이 춤에 가깝거나 춤과 밀접하다는 관념은 실제 근거가 박약함에도 대부분의 문명에서 통용되어 왔다. 이런 통념이 강화될수록, 춤은 여성 전용의 장(場)이기 때문에 남성이 춤에 간여하는 것을 불륜의 소지가 있거나 남성성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그런 편견에 의하면, 춤은 남성들에게서 격리되어야 안전하다. 〈쉘 위 댄스〉(1996년 개봉)와 〈빌리 엘리어트〉(2000년 개봉)에서 주역은 모두 남성으로서, 한쪽은 일본의 중년 가장이고 다른 한쪽은 영국의 애송이 소년이다. 이런 차이가 있어도, 두 영화에서 그런 편견은 영화를 견인하는 중심 모티브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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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묘사된 20여 년 전 그 시기에 두 사람은 각자 사교춤(〈쉘 위 댄스〉)과 발레(〈빌리 엘리어트〉) 수련에 몰입한다. 그들이 춤 수련에 몰입할수록 편견이 더 부담스럽게 다가오며, 두 영화에서 춤 수련의 묘미와 편견의 압력 간의 대립감이 갈등의 핵심이다. 댄스스포츠 경연장에서 가장 스기야마가 파트너와 함께 발산하는 활력을 아내와 딸은 숨어서 목도한다(〈쉘 위 댄스〉). 자식 빌리가 자기 앞에서도 위축되기는커녕 신들린 듯 춤에 몰입하는 것을 아버지가 목도한다(〈빌리 엘리어트〉). 스기야마의 활력과 빌리의 몰입을 가족이 바로 눈앞에서 확인하는 순간은 각 영화에서 상황을 반전시켜서 갈등이 해소되도록 하는 결정적 계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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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을 익히는 스기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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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앞에서 굽히지 않고 추는 빌리


그런 결정적 순간이 닥치기 전에 두 사람에게서는 춤이 재촉한 변화가 이미 지속되고 있었다. 기업의 중견 관리직 스기야마는 사교춤 동료들과 친밀 관계를 형성하고 활기를 되찾는다. 성실한 월급쟁이로서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했던 무기력증을 그는 춤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 빌리는 (오디션 장에서 느낌으로 얘기하였듯이) 춤이 몸과 마음에 가져다주는 효과를 감지하고 있었다. 제각기 가족 몰래 은밀히 체험하는 그러한 변화상은 춤을 통해 이뤄졌고, 이 같은 흐름은 두 영화가 암시하는 춤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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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친 스기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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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장에서 춤의 느낌을 말하는 빌리


두 사람은 춤으로써 갈등에 빠졌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춤으로써 가족을 설득하고 자기를 회복한다. 두 영화에서, 편견으로 인한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가족과의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사회적 편견의 대변자일 뿐이며 두 사람의 갈등 상대는 궁극적으로 사회이다. 다만 사회 전체가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며, 사교춤 동료들이나 특히 빌리의 춤 선생, 할머니, 어머니, 오디션 감독관 등 편견 없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숨통의 구실을 하였다. 그들이 춤 수련에 몰입함으로써 결국 가족 그리고 사회와 화해하는 모습을 담은 두 영화는, 비유컨대, 춤을 기리는 송가(頌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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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는 스기야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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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 사이에서 발레를 배우는 빌리


여기서 더 나아가, 빌리와 아버지는 춤에서의 남성성(男性性)에 관한 관점을 말로써 다투었다. 춤을 남성성 부재의 영역으로 매도하는 영국 사회 일반인들의 생각은 아버지의 말로 내뱉어진다. “아버지: 사내애들은 축구, 권투, 레슬링을 하지. 발레를 만지작대지도 않아. 빌리: 웨인 슬립 같은 발레 무용수들은 운동선수들만큼 튼튼하다고요. 아버지: 내 말 들어. 발레든 복싱이든 집적대는 일일랑 모두 집어치워.” 하지만 아버지가 빌리의 후견자로 돌아서고 탄광촌 사람들이 빌리 후원금 모집에 동참하면서 아버지의 그런 훈계는 사실상 종적을 감춰버린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남성성의 통념을 흔들면서 춤에 남성성을 되찾아주었다.

〈쉘 위 댄스〉와 〈빌리 엘리어트〉는 전문 무용가나 무용수가 아니라 소시민의 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각각 사교춤과 예술춤(발레)에 끌리는 남성들이 등장하지만, 사교춤이든 예술춤이든 장르를 막론하고 춤이 어떤 소시민에게는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두 영화는 강조한다. 춤(예술)을 갖고 행하는 자기 표현은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하듯이 자기 회복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고, 이 점은 두 영화에서도 재현되었다. 무용가는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관객 시민을 고무시킬 수 있는 데 비해, 일반 시민은 자기를 춤춤으로써 자기가 된다. 〈쉘 위 댄스〉와 〈빌리 엘리어트〉가 이야기하듯이, 시민은 자기를 춤출 자유가 있다.



[1] 〈쉘 위 댄스〉 일본판(1996)을 리메이크한 미국판(2004)도 내용이 유사하나, 여기서는 일본판을 기준으로 소개한다.
[2] 〈빌리 엘리어트〉에 관해서는 필자의 다음의 글을 참조하기 바람: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는 몇 가지 시선, 춤웹진 시평란 게재, 2003.6.



[참고 자료]
· 〈빌리 엘리어트〉 영상 자료 바로가기
· 〈쉘 위 댄스〉(원작, 일본판) 영상 자료 바로가기
· 대한늬우스 보도 땐스광 처벌 군사재판(1961) 보도 영상 자료 바로가기
· 소설 《자유부인》을 영화화한 영화 〈자유부인〉(1956) 영상자료 바로가기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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