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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무용센터

줌아웃 - 에세이

국내외 무용 현장에 관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의 관점을 소개합니다.

2017.11.30 조회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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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춤꾼>, 바람 부는 길 위에 서다

신현림_시인, 사진가

인연


안개처럼 흐려져 간 추억들을 부른다는 것은 슬프고 애틋하다. 지나보면 다 아쉽고, 안타깝기만 한 시간들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니 지금 이 순간 그때의 생각들을 부르고, 찬찬히 기록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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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박호상


오래 전에 알았고, 다시 만나 또 이어가는 관계는 기분이 좋다. 최상진 피디는 30대 내 인생을 바꾼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읽고 나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분이다. 그는 이 작업으로 독립피디 부문 피디상 본상 후보로도 뽑혔다. 일주일 간 방송을 찍으며 가족같이 한 솥밥을 먹었다. 이후 방송 테이프를 받은 날 술자리를 갖고, 그가 미국체류 피디로 지내다 나를 찾아와 잠시 만났다. 그러다 소식이 끊긴지 10여년 만에 연락이 되었다. 그가 방송에서 비껴 나와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 <바람의 춤꾼>을 보러 갔다.
최상진 감독은 시대와 역사를 호흡하며 죽거나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을 위해 치유의 춤을 추는 거리의 시인이자 장인, 이삼헌씨의 삶과 일대기를 15년간 찍었다. 이 세월이 주는 무게감에 나는 먼저 이 작업과 그들의 인내심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글에서는 최상진 감독과 그의 작품의 주인공인 이삼헌씨를 축복하며 두 분의 인연과 작업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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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춤꾼 포스터 ⓒ바람의 춤꾼


춤의 시작


먼저 이삼헌씨가 춤을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중학교때 티브이에서 발레를 보고 나도 저렇게 날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작정 발레학원을 찾아가 ‘지금은 학원비가 없지만 꼭 부모님을 설득해서 제대로 등록하겠으니 일단 먼저 배우게 해 달라’ 떼를 썼는데, 남학생이 학원에 찾아온 경우가 처음이라 원장님이 좀은 놀라셨나 봐요. 그렇게 해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세종대 무용학과를 84년도에 입학했는데 사학재단 비리로 학교가 혼란스러웠고,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나라도 굉장히 혼란스러웠거든요. 어느 날 발레수업을 하고 있는데 창 밖에서 학생들 구호 소리가 들리더니 최루탄이 마구 터지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과연 나는 뭔가! 같은 학생인데 저들은 현실을 얘기하고 나는 타이즈를 입은 채 먼 나라 얘기를 하고. 굉장한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탈반이었죠. 비록 발레를 하고 있지만 탈춤이라도 배워서 현실을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탈반이 학생운동의 산실인 줄은 몰랐어요. 결국 거리의 춤꾼으로 나서게 되었죠. 동방 불교대학에서 나비춤 바라춤 범패를 배웠어요. 그렇게 계속 거리의 춤꾼으로 30년 가까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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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헌 ⓒ박호상


그의 거리의 춤은 각종 시위 현장에서 유명했고, 80년대 ‘세종대 무당’으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한다.
“우리 춤을 배우니까 자연스레 굿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굿당을 많이 다녔죠. 바라질 허드렛일도 도와주고. 굿이 강렬하죠. 굿도 멋있는 예술이구나! 굿에 사회 이슈를 담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대학 행사에 많이 불려 다녔죠.”



만남, 그리고 15년간의 작업


최상진 감독은 어떻게 이삼헌을 만나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방송 다큐멘터리 일을 시작한 지 26년이 되었다. 15년 전 그는 우연히 이삼헌의 거리의 춤을 보고 깜짝 놀랐다. 1993년도에 처음으로 그는 이삼헌이 극단에서 연습하는 것을 언 듯 보았고, 꽤 나중에 이삼헌이 길에서 추는 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작업을 기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기록하다 보니 15년쯤 지나서 영화로 나오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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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 ⓒ박호상


최상진 감독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고 눈가에 살며시 드러난 주름으로 그의 생은 더 깊어보였다. 나는 다시 입을 떼어갔다.
“같이 작업한지 15년이 되었다는 건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이삼헌씨에게 최상진 감독과의 오래된 인연에 대한 소회를 물어보았다.
“거리에서 춤추고 사는 와중에 친구로 만나다가 어느 날 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는 제안을 받고, 말주변도 별로 없는 저는 난감했었죠. 최상진 감독은 춤 순서 기다리고 있을 때라든지 긴장하고 있을 때 와서 기분이 어떻냐, 등등을 물어왔어요. 처음엔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아서 피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변변찮은 나를 포장해서 영화로 내놓아 주니 면구스럽고, 감사하죠.”
그의 변변찮은, 이란 겸허한 말을 나는 잠시 생각했다. 모든 익숙한 것들은 변변치 않다. 변변치 않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카페 안의 탁자도 다 변변치 않은 평범한 색깔에 변변치 않은 플라스틱이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함께 모여 있어 훈훈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 저녁은 내리고, 까페의 불빛은 더 환하게 빛나고, 뜨겁던 차는 비워지면서 우리는 따스해진다는 것이었다. 춤도 평범한 인간의 움직임에 감정과 혼을 담아 특별한 기운을 이끌어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일 것이다. 혼자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와 어딘가의 만남에서 예술은 시작되니까. 나는 최감독에게 이삼헌씨와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 또는 노하우가 뭔지 궁금했다.
“같은 세대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같았어요. 그것이 서로를 이끌어주었고 공감대가 형성 되었어요. 그래서 소통 또한 자유로웠던 거 같아요.”
그의 조용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면서 멈추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이 같았음에도 충돌은 없었냐고 물었다.
“동세대라는 공감대는 좋았지만,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학교 때는 학생운동도 했었죠. 졸업 후에는 그러지 못했고, 방송 일을 계속했어요. 그러나 이 친구가 거리의 춤꾼으로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 굉장히 미안했어요, 그리고 감사했죠.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록뿐이라는 자조감과 부채감이 있었죠. 거리에서 춤을 추는 춤꾼.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로서의 기록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들은 서로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많이 싸웠다고 했다. 작업에 필요한 인터뷰 내용이 있는데 이삼헌 춤꾼은 인터뷰를 거절하곤 했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라면서 최감독은 입가에 엷게 미소를 지었다.
“잘난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나를 찍느냐는 얘길 하더군요. 이정도면 충분히 되지 않았느냐면서 전화를 끊었어요. 진득하게 들어야 할 내용들을 못 들었을 때도 있었죠.”
이삼헌씨는 무척 과묵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동안 참고 참아온 그만의 말들이 뜨거운 몸짓으로 풀어져 나오는 듯싶다. 그는 거리에 나오는 사람은 너무 많고, 자신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란다. 춤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서 도드라졌을 뿐. 인터뷰는 면구스러울 뿐이란 것이다. 나중에는 서로 너무 친해져서 오히려 찍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모르는 관계가 찍기 쉽다. 가족도 처음에는 쑥스럽고 데면데면해 한다. 카메라가 있을 때는 이야기를 안 하고 오히려 내려놓으면 이야기를 시작하는 등 한숨 나올 만치 작업이 안 풀려 답답할 때도 많았나보다. ‘인터뷰로 나를 너무 내밀하게 파려고 하지 말라, 이미 충분하지 않느냐.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님. 기록을 하는 것 뿐. 왜 시시콜콜 기록을 하려고 하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술집에서 이야기 나누듯 카메라를 몰래 들고서 인터뷰를 담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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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신현림 시계 방향으로 이삼헌, 최상진 ⓒ박호상


술을 마시니 감정이 조금 더 과열되고 회한의 느낌이 담겨 최상진 감독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맑은 정신에 연출된 장면이었다면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삼헌씨는 그 장면을 좋아하지 않았다. 구질구질하다며 빼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게 최고의 장면이라고, 그 장면 덕분에 영화가 살았다는 말을 듣는다. 나도 그 장면이 기억난다. 진솔하고 거짓됨이 없어 보여 가슴이 젖어왔다. 하지만 이삼헌씨 본인은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이렇게 홀로 촬영을 진행하다가 시베리아 촬영 때부터는 다른 스탭들도 있어선지 이삼헌씨는 협조를 잘 해주었다고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이 증상은 광주 5.18 항쟁으로부터 온 트라우마 이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고1때 겪은 5.18의 기억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케이티엑스도 못탄다. 고속버스나 비행기를 타도 힘들다. 언제든 원할 때 내릴 수 없는 밀폐된 공간을 힘들어 했다. 그런 이유로 그가 샤먼 축제 참가를 위해 프랑스를 향해 가게 되었을 때에도, 비행기 대신 기차를, 기나 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영화 장면 중,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전 블라디보스톡 옆 우스리스크에 잠깐 들렀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나는 기차역에서 그가 추었던 춤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추운 땅의 추운 공기가 엷게 흔들리고, 뜨거워지는 느낌까지.
“강제이주 집결지 역인데 플랫폼에서 춤을 추던 이삼헌 춤꾼이 기차가 지나가자마자 철로로 성큼 내려가는 거예요. 또 다른 기차가 오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철로 위에서 지전을 흔들며 춤추는 모습에 순간 전율을 느꼈어요. 편집하면서 그 전율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춤 그 자체에서 오는 전율도 있지만 편집으로 어떤 색깔을 입힐 수는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수많은 고려인들이 그 역 주변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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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이주집결지 라즈돌노예역에서 진혼무를 추는 이삼헌 ⓒ<바람의 춤꾼>


그가 말한 이 부분은 최상진 감독이 이전에 나와 했던 작업, <세기말 블루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만의 특징, 즉 회화적인 이미지로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되었고 <바람의 춤꾼>에서도 여실히 보였다. 나는 이 지점이 최상진 감독의 특징으로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그만의 작업 색깔로 자리하길 기대하고 있다.



넋을 달래는 춤, 축복의 춤


그러면 다시 우스리스크와 바이칼호 얘기로 돌아가자. 이곳은 고려인들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라즈돌노예 역에서 집결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화물칸에 실려 갔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깃든 자리다. 여기에서 이삼헌 씨는 그들을 위해 애도의 춤을 추었다. 그가 지전 등 무구를 비롯해 춤에 필요한 소품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이유도 이 애도의 춤을 추기 위해서였다. 여기저기에 그때의 울림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싶어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무속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칼호를 접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
나의 물음에 과묵한 그가 가만히 숙였던 고개를 들어 말하였다.
“바이칼호가 무속의 시원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곧 유구한 역사가 피부로 와 닿거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자료 등 다른 곳에서 접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어요. 바이칼호에서 중요했던 것은 바라춤을 추는 일이었죠. 바라춤은 죽은 넋들을 극락세계로 잘 가라는 축원을 하는 것이지요. 황량한 곳에서 바라춤을 추는데 촬영하면서도 가슴이 굉장히 아팠어요. 정말 죽은 자들의 환영을 보는 듯했어요. 마음이 아련하면서도 애틋했어요. 바라춤을 바이칼호에서 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추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민주 열사들, 우리 비극의 역사 속에서 희생된 분들이 저의 바라소리에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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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에서 민주영령들을 위한 바라춤을 추는 이삼헌 ⓒ<바람의 춤꾼>


그의 춤은 일제 치하에 희생된 조상님들이나, 민주투쟁을 하다 스러진 영혼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 죽은 넋을 달래주고 이끌어 부드럽고 따스하게 극락으로 이끄는 축복의 춤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시대의 아픔과 함께, 진혼무


그런데 여기서 우리 시대의 큰 비극이 터졌다. 그가 샤먼축제를 위해 바이칼호를 지나 거의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였다. 한국에서 떠난 지 16일 만에 최종 목적지였던 프랑스 주라에서 세월호 비극을 접하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 가슴이 아팠고 이 여행을 계속 해야 할지 의문을 품었다. 한국은 난리도 아닌데 축제에 참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함께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한 밤 중에 모여 의논했다. 촬영을 접는다고 해서 세월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일정을 잘 마치는 것 또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 세월호 영령들, 아이들을 위해서 축제에서 진혼무를 추는 게 어떨지 생각했다. 그래서 샤먼 축제 측에 이야기를 해서 이삼헌씨가 진혼무를 추겠다 전했다. 그리고 춤을 출 때 전 세계에서 모인 샤먼들이 모두 일어나 기도를 해주었다. 시민과 학생 400여 명이 물속에 빠져 생사도 모른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춤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 모두 침묵했어요. 어떤 한 사람이 박수를 쳤는데, 쉿 소리가 나며 자제시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침묵의 도가니에 빠졌어요.”
춤이라는 것은 감흥이다. 현장에서는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그날의 진혼무는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를 뜨겁게 느끼는 자리였으리라.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는 전달이 되었다. 이삼헌씨의 표정과 몸짓은 활화산처럼 분노에 치달았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항변과 질타였으며, 아이들을 위한 기도였다. 그만큼 춤의 힘은 강렬했다. 그는 멀리서나마 그의 춤이 슬픔을 깊이 어루만질 위안이자 힘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다시 그에게 질문하였다.
“진혼무 추면서 어떠셨어요?”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당시의 절망과 슬픔을 고스란히 끌어안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최상진 감독이었다.
“몸을 던지며 바닥을 구르며 춤을 추었습니다. 외국사람들의 리액션이 이런 춤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어요. 인터뷰를 해보니 설명을 듣지 않았어도 영혼을 위로한다는 것을 다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영혼들이, 아이들이 온 걸 봤다는 샤먼들도 있었습니다. 몸짓 하나로 세월호의 아픔을 사람들이 함께 느꼈지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몸짓이 갖고 있는 메시지는 어떤 말보다도 강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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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축제에서 세월호 소식을 듣고 진혼무를 추는 이삼헌 ⓒ<바람의 춤꾼>


길 위의 춤, 묵언의 안무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안무를 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누구 앞에서 당당하리만큼 한국 전통 춤에 대해 실력이 없어요. 그런데도 하는 것은 마음과 정성이 수반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춤의 테크닉은 좀 부족할 수 있죠. 전통 춤의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모제 제안이 오면 많은 생각들을 하죠. 돌아가신 분의 삶을 떠올리고 여러 가지 음악들을 반복해서 계속 듣습니다. 판에 서기 전까지 어떤 게 적절할까. 어떤 몸짓이 적절하고 주변 분들하고 같이 호흡을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요. 공연하기 전에는 말을 안 하죠. 혼자 있으면서. 저랑 많은 이야기를 하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오늘 저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야 된다 자꾸 되새기죠. 가벼울 수 없으니까 최면을 많이 걸죠. 누구하고도 말 안 섞죠. 춤이 10분이면 이야기를 만들 거 아니에요. 학춤에서 날갯짓 하는 몸짓이 있어요. ‘날아가시오. 학이 날듯이 비상하듯이 하얀 한복 입고 너울너울 가시오. 그만 놓고.’ 그렇게 마무리를 하는 경우도 있죠. 또 장애인분들 집회 때는 떠나신 분은 떠나신 분이고 남은 분들도 있잖아요. 그 분들을 일어나게끔 하는 춤도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깃발 춤으로 마감을 하든가, 학이 훨훨 나는 걸로 하든가 사안이 좀 다르죠. 연행자이기 때문에 주고받고 하는 게 있어요. 사람들의 눈빛이 나한테 주는 강한 메시지가 있을 때가 있죠. 자동적으로 동화가 되죠. 분위기에 깊숙이 밀어 넣으려고 즉흥적인 춤사위를 섞을 때도 있습니다.”



그가 춘 춤은 지금도 아련하게 내 마음속에서 한 걸음, 걸음씩 이어지고 흘러나가면서 솟구치고 날아오른다. 감독은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작품을 찍고 이를 긴 호흡으로 풀어놓는다.



<바람의 춤꾼>, 대한민국 국민에 바치는 헌무


“춤이 강력한 언어이긴 하지만 그 생생한 호흡과 미세한 떨림, 한국 전통 춤에서 보여주는 맺고 푸는 춤사위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영상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극장이나 거리에서의 춤 공연은 그 공간의 크기나 보는 거리에 따라 놓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바람의 춤꾼>에서 보여주듯 춤꾼의 표정과 손 떨림의 미세한 클로즈업이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춤의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거든요. 멀리서 몸동작과 그 리듬의 흐름만 볼 수 있었던 춤이 영상의 힘을 빌어 더욱 강력한 언어가 되는 거죠. 춤 공연에 영상이 자주 동원되고 요즘 댄스영화들에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바람의 춤꾼> 감독으로서 제 영화가 단지 정치나 사회 이슈만을 다룬 다큐 영화가 아닌, 발레리노를 꿈꿨던 소년이 거리의 춤꾼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예술영화로서도 자리매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같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평론가 유지나 교수님의 <바람의 춤꾼>은 로드댄스다큐라는 영화미학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는 평을 상당히 좋아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문밖에서 기다리다 손을 꼭 잡아주시던 관객 분들도 많으셨고요. 15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 고마움이 30년 거리의 춤꾼으로 살아온 이삼헌에게 보내는 그분들의 찬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의 춤꾼>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바치는 헌무(獻舞)였거든요. 서로 헌무와 찬사를 주고받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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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1주기위령제에서 진혼무를 추는 이삼헌 ⓒ<바람의 춤꾼>


나도 최감독의 초대로 ‘관객과의 대화’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자리는 지난한 한국의 현대사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되었던 많은 국민들이 <바람의 춤꾼>을 통해 위로하고 위안을 받는 자리였다.



춤과 삶, 이 땅의 현실을 직시하기


“이삼헌씨는 본인의 춤이 어떻게 평가되었으면 좋겠어요?”
“뭐, 평가라고까지 할 거 있나요. 그냥 제게 주어진 숙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이렇게 춤을 추면서 살 겁니다. 제가 춤추는 사람으로서 단 하나 바람이 있다면, ‘춤은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춤과 삶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든 사물이 연관되어 있듯이 춤도 정치와 사회, 이 땅의 아픔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춤을 전공한 사람들이 꼭 인식했으면 하는 겁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사랑이야기나 할 게 아니라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춤꾼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춤만이 아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예술분야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현실을 마주보고, 고뇌하고, 꿈꾸고, 움직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둡거나 뒤틀린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예술은 조금이라도 현실을 바꾸려 하는 힘이 없으면 공허하다. 구름을 잡는 일처럼 헛되다. 철저히 현실과 마주해 나오되 철저히 작가의 미학이 새로워야만 관객이 감동한다. 어느새 카페 창에 까맣게 어둠이 물들고, 불빛이 춤을 추듯 가뿐하게 떠있다. 바람이 불어 더 신나게 춤추는 듯하다.




신현림 시인·사진가. 디자인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 대학원에서 비주얼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과 독특하고 매혹적인 시와 사진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반지하 앨리스》를 냈다. 그림과 사진, 텍스트를 융합하는 작업을 펼치며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등을 썼으며, 시집 《초코파이 자전거》, 《세계명화와 뛰노는 동시놀이터》는 초등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삼헌 무용가. 거리의 춤꾼. 세종대 무용과에서 발레를, 동방불교대학 범패과에서 나비춤. 바라춤 등 작법을 공부했다. 고교시절 청주사대 무용콩쿨과 서울예전 무용콩쿨에서 1등을 했으며, 전국의 각종 발레콩쿨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발레리노의 꿈을 접고 30년 동안 거리의 춤꾼으로 살아왔다. 가극단 <금강> 창단 단원, 극단 <현장>단원 등을 거쳤고 현재 (사)한국민족춤협회 이사로 재직 중이다. <동학 100 주년기념공연, 사랑과 혁명의 대서사시 가무 - 금강>, <노동의 새벽>, <산천초목> 등의 작품에 출연했고 영화 <바람의 춤꾼>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2017년 아름다운 예술인상(한국민족춤협회)을 수상했다.

최상진 영화감독. 방송PD.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25년 동안 EBS <문학기행>, <리얼실험프로젝트X>, <다큐프라임-인류문명탐험>, <서양미술기행>, KBS <영상기록 병원24시>, <그곳에 가고 싶다> 등의 방송 다큐와 교양물들을 연출했다. <바람의 춤꾼>은 첫 장편다큐멘터리영화이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영화 <샤먼 로드>는 2016년 EIDF(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제작지원 프로젝트이다. 2018년 EIDF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할 예정이다. 2001년 평등.인권방송 디딤돌상(한국여성단체연합), 2008년 올해의 좋은 방송상(민언련), 2013년 EBS 방송대상 협력제작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신현림_시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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