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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6.29 조회 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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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인문학도, 춤으로 세상 구제 길을 가다
: 콜롬비아 몸의학교

[기획연재] 춤·시민·표현



〈춤:in〉에서는 시대 흐름을 주시하여 기존의 춤 담론을 주도해온 개인적 창조의 패러다임을 넓혀서 2017년 한 해 동안 시민을 위한 표현이 돋보이는 춤 표현 활동을 연재한다. 〈춤:in〉은 춤과 정치·권력·인권 사이의 담론을 발굴하여 ‘시민 사회 및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시민과 공생하는 춤 표현의 가치를 적극 사고하는 계기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본란에서는 시대·문명·사회와 춤의 선순환적 조화를 성취한 특이 사례들이 함께 조명된다.


인문학도, 춤으로 세상 구제 길을 가다
: 콜롬비아 몸의학교

김채현_춤비평가

2016년 가을 콜롬비아 정부군과 반군이 장장 52년간의 내전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서명한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다. 그 세월에 22만명이 전투에서 사망했고 해결이 막막하던 내전을 종식시키는 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64년 좌우익의 무력 투쟁에서 발단되어 민병대, 게릴라 등 준군사조직이 준동하면서 콜롬비아가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자 마약 밀매 조직마저 기승을 부렸다. 그 사이에 콜롬비아는 치안이 부재하는 나락으로 내몰린다. 국제기구 조사에 따르면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인구 8백만)에서만 1993년 한 해에 7만건의 강력 범죄가 발생했고, 그중 근 6천 건이 살인 사건이었다. 백주 대로에서 버스를 정지시켜 강도짓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사회 청소를 명분으로 부랑자와 청소년 등을 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처치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였다. 어린 아이들이 집에서 버려지고 좀 크면 마약 밀매 조직과 폭력에 동원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시기에 무용가 레스트레포(A. Restrepo)는 콜롬비아 북서쪽 해안 도시 카르타헤나에서 몸의학교(Colegio del Cuerpo)를 세우고 세상 구제에 나섰다. 올해로 설립 20년째인 몸의학교는 이제 학교의 기반을 닦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08년 이래 한국을 수차 방문한 그는 최근에도 한국을 방문하여 국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춤이 주축을 이루는 학교의 이름을 몸의학교라 한 이유로서 그는 콜롬비아 내전의 참화 속에서 폭력 앞에 놓인 ‘몸’을 구할 방도로서 춤추는 ‘몸’의 가치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언론에 소개한 바 있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레스트레포가 인문학도로서 늦깎이 춤꾼이 된 이력도 다소 관심을 자극할 테고 그가 잔혹스런 콜롬비아 사회에서 세상 구제에 나선 것은 매우 주목할 일이다. 몸의학교는 곧 그의 분신이라 할 만큼 그 없는 몸의학교는 상상할 수 없다.

60년대에 콜롬비아가 내전의 길에 들어섰지만 레스트레포는 1957년 중상류층 출생으로 그의 청소년기까지 콜롬비아 내전은 일단 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보고타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인문학도였다. 그러나 대학 재학 시절부터 삶의 방향을 찾아 유럽을 여행하고 오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여기서 만난 아이들을 통해 비로소 콜롬비아의 비극에 눈을 뜨면서 그는 거리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을 실행하였다. 이 선도 작업의 일환으로 연극을 응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연극 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의 삶에서 전환점을 이룬다. 연극 학교에서 어느 무용수 출신 학생이 그에게 귀띔해준 ‘너의 발이 매우 유연하고 너의 몸을 보라’는 한 마디는 그가 춤과 몸에 눈뜨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에 자극 받아 레스트레포는 마침 보고타에서 뉴욕의 제니퍼뮬러무용단 순회 공연을 보고 곧장 마사 그레이엄 테크닉을 익히고 발레 등을 수련하였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가 1983년부터 마사 그레이엄 학교에서 3년간 수학하고 뉴욕에서 가르시아 로르카의 문학에서 착상한 첫 솔로작으로 데뷔하였다. 콜롬비아로 귀국한 후에도 춤 공연으로 주목을 받았고 스페인에 가서도 계속 작품을 발표하였다. 1991년 그는 콜롬비아로 귀국해서 자신의 학교를 세울 계획을 세웠다. 공공 기금 등을 알아보며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공공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였다. 2년 후 그는 프랑스 앙제로 연수를 가서 여류 현대무용가 들리으벵(M.-F. Delieuvin; 당시 앙제 안무 학교 예술감독)을 만나 학교를 세울 것을 약속하고 1994년 함께 귀국하였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나 레스트레포와 들리으벵은 모여진 기금과 지원금으로 카르타헤나에서 몸의학교를 열었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몸의학교 교육 현장


몸의학교에 기금을 지원하면서 콜롬비아 문화부는 무용단부터 운영할 것을 제안하였고 레스트레포도 이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열은 현대무용 시범 교실에 무려 480명이 참가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청소년들의 호응도에 학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1달간 시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강좌를 계속 받겠다는 학생이 450명이었으며 이 학생들을 선별하여 몸의학교는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지난 20년간 8천여명의 청소년들이 이 학교를 거쳐갔고 전문 무용수로 성장한 사람만 500명을 헤아린다.

몸의학교가 위치한 도시 카르타헤나는 레스트레포의 고향이기도 하고 스페인이 남미에 세운 아프리카 노예 무역항으로는 최대 규모였다는 어두운 역사가 드리운 곳이다. 흑인과 흑인 혼혈이 인구의 대다수인 이곳에서 그는 오히려 흑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이 무자비하고도 극심하던 현실을 절감하였다. 이미 프랑스 연수를 가기 전부터 그는 2년간 재직하던 보고타의 고급 미술 아카데미를 그만둔 상태였으며 비영리 사설 학교를 카르타헤나에 자력으로 세울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 비추어 사람마다 가진 몸을 학교 이름으로 내세운 데서 그의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레스트레포는 언론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콜롬비아 내전의 최대 피해자는 힘 없는 아동들로서,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다. 내전 속에서 우리의 몸은 찢기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인간의 몸은 일회용품으로 전락했다.” 몸의학교의 출발점은 춤이 아니라 몸이며, 학교의 귀착점 또한 공연의 성과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에 있다. 그렇더라도 몸의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춤이 주축을 이루는 사실은 춤의 가치가 절대적일 수 있음을 나타낸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몸의학교 무용단 공연 〈오노 가즈오를 위한 꽃〉 (201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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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학교 무용단 공연


몸의학교 교육 프로그램은 무용수를 양성하는 데 최우선의 목표를 두기보다는 우선 몸에 관한 감성을 일깨워 몸 자체의 창의력과 통찰력을 함양하는 데 목표를 둔다. 그 프로그램은 연령대에 준해 크게 다음의 3단계로 나눠진다.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재능 씨앗 과정’, 청소년들이 재학하는 ‘예술 고등학교 과정’, 성인기의 ‘현대무용 연구 과정’. ‘재능 씨앗 과정’은 보편적 몸 감성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 고등학교 과정’은 6년제로서 현대무용, 즉흥, 음악, 미술, 사진 등의 교과로 운영된다. 그리고 ‘현대무용 연구 과정’은 18~23세의 학생들이 2년간 재학한다. 학생들은 현대무용, 전통무용, 민속무용, 힙합, 어번댄스 등의 춤을 선택하는 것을 비롯해서 안무 창작, 몸에 관한 복합적 표현(음악, 사진, 비디오, 미술 등과 춤을 연계한 몸 표현), 몸과 사회의 연결(춤 교육 및 전파)을 주제로 저마다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몸의학교는 졸업생들로 구성된 자체 무용단(Compania del Cuerpo de Indias)이 있고 졸업생들과 무용단원들은 학교의 교사진으로도 활동한다. 이처럼 교육과 창작 공연 양면에서 학교의 활동에 필요한 인원을 자력으로 충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일이다. 몸의학교는 스페인 국제협력개발기금을 종자돈으로 문화 센터 건립을 카르타헤나 외곽에서 추진하고 있다.



줌아웃 에세이 김채현 관련 사진

몸의학교 무용단 커뮤니티 공연 〈눈물 자국〉


국가가 사람들을 버릴 때, 생각해보면, 몸도 함께 버려진다. 국가가 버린 사람을 향해 레스트레포도 뜻있는 이들처럼 구제의 손길을 뻗어왔다. 그런 손길로써 그는 사람들의 몸을 일으켰고 춤추도록 하였다. 극한 상황의 사회 속으로 뛰어든 그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춤으로써 남과 호흡을 나누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성장하는 길을 지금도 열어가고 있다.



[참고 자료]
· 몸의학교 공식 사이트 바로가기
· 몸의학교 소개 영상 자료 바로가기 바로가기
· 몸의학교에 관한 국내 언론 보도 바로가기




김채현_춤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민음사),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사회평론)를 비롯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현암사) 등의 공저와 ≪춤≫(청년사), ≪미적 체험의 현상학≫(민음사)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춤 영상 문고를 개설할 예정이다.


김채현_춤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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