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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01.26 조회 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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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인+] 춤과 건축: 구축과 호흡 - 몸이 만들어 내는 공간

[춤인+] 춤과 건축



안무가와 무용수가 공간을 인지하고 특성을 알아가는 과정, 신체로부터 외부로 공간성을 확장해 나가는 일은 안무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춤과 건축의 접점에 초점을 맞춰 격달 주기로 관련된 작업의 리뷰, 아티스트와 건축가, 연구자들의 인터뷰, 현장 답사 등을 포함하여 움직임 주변의 다양한 공간해석을 담고자 한다.


구축과 호흡: 몸이 만들어내는 공간

양은혜_기획자, 저술가

‘춤과 건축’의 첫 호는 무용인들과 긴밀한 공간인 극장에 대한 이야기다. 무용공연이 이뤄지는 극장을 무용과 분리함으로써 극장의 전형성과 몸이 구축하는 공간의 확장성에 대해 살펴본다.



극장 안은 텅 비었다?


극장은 세계를 구축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한다. 빈 무대에서는 장소성을 찾아볼 수 없다. 안무가가 하나의 작품을 극장에서 발표하기 위해 3개월, 6개월 혹은 1년간 준비를 하고 극장에 들어온 순간, 상상 속의 세계는 무대디자이너와 조명디자이너, 사운드디자이너가 무대감독의 감독 하에 구축되기 시작한다. 연습실에서 테이핑으로 구획되고 상상해야 했던 공간이 무대에서 실제 세트와 함께 물리적 공간으로 변모하면 무용수의 몸은 그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본 공연은 큐시트리허설, 조명리허설, 드레스리허설을 거쳐 들어가게 되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무용수들의 몸이 적응될만한 2~3일째 되는 날에는 공연의 막이 내려간다. 준비기간과 에너지, 노력에 비해 무용 공연의 기간은 매우 짧다.
관객의 기립박수와 함께 무용수들이 퇴장하자마자 무대 뒤는 개방되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소음은 마치 작품세계를 해체하는 알람처럼 작동한다. 이어 본격적인 해체가 시작한다. 무대미술과 조명은 차례대로 트럭에 실려 나가는데,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무언가의 장례식을 보는듯하다. 이렇게 다시 원래의 텅 빈 무대로 원상복귀를 한 후 밖으로 나와 극장을 바라보면 ‘극장은 뭘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무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순간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껍데기 같은 건축물 말이다.
무대를 중심으로 설계된 극장은 가장 큰 보이드(void, 빈 공간)를 품고 있는 건물로, 어쩌면 가장 비범한 건축물이 극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스스로 단절, 고립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극장설계는 극장공간이 세워지는 주변 콘텍스트의 연관보다는 그것이 세워진 후에야 주변의 문화가 환기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극장의 안과 밖의 경계는 매우 뚜렷하다. 무대에 새로운 세계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어둠과 고요함이 필수조건인데, 극장은 주변소음과 자연광, 풍경 등 외부 요소들을 모두 차단하여 무대의 고유성을 지키기 때문이다.
건축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극장은 사람의 이야기를 위한 공간 아닐까. 이야기가 구축되는 무대는 객석과 프로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를 경계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로 구분된다. 또한 가상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지우는 신호는 암전이다. 이 암전으로 관객은 공연의 시작을 알게 되며 현실세계는 뒤로 떠나보낸 채 가상세계로 들어선다. 물론 극을 시작하는 형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현실세계에서 극으로 넘어오는 시간의 사인은 조명이든 행위이든, 음악이든 항상 존재한다. 그럼 이제 프로시니엄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



2차원의 극장에서 이뤄지는 3차원의 춤


프로시니엄 아치는 액자형식의 구도를 가지고 있어 관객은 그림을 보듯 아치 안에서 행해지는 극을 감상한다. 이 구도는 무대장치와 무용수의 움직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무대 정면으로 위치해 있는 객석 구조로 인해 무대와 움직임은 모두 앞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앞뒤상하수의 방향이 정해져있는 무대는 정교한 원근법이 존재하는데 무용수들의 동선과 동작은 모두 정면을 기준으로 안무되어 있다. 심지어 모더니즘을 여는 발레작품으로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에서는 무용수들이 뒷모습을 보였다는 것, 무대미술과 안무가 역원근법을 차용하였다는 것이 매우 혁신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발레 동작은 정면에서 가장 길어 보일 수 있는 신체 사용법이 정해져 있으며 턴 아웃(turn out, 골반과 양 무릎, 양 발끝을 바깥으로 향하는 발레의 기본자세)이 기본자세가 된다. 그런가하면 러시아 볼쇼이극장은 관객이 무대를 잘 볼 수 있도록 무대의 각도가 10도 정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현대무용 무대에서는 이러한 2차원의 구도를 탈피하기 위해 천장이나 윙(wing) 밖에 카메라를 설치해 무대에 무용수의 움직임과 영상을 동시 상영하는 등의 방법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직사각형 무용실의 앞면에 기다란 거울이 세팅되어 있는 것도 무용수의 움직임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이다. 정면에서 관객이 어떻게 볼 수 있는가를 무용수는 거울을 통해 연습한 후 그 감각을 기억해 무대에서 시연한다. 그러나 프로시니엄극장에 맞춰진 방향에 무용수들의 공감각이나 움직임은 한정되지 않는다. 비록 몸의 방향은 앞을 향해 맞춰져있더라도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보이드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몸이 만들어내는 공간


건축과 무용의 공통점이 있다면 땅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무용수들은 바닥(땅)을 기반으로 걷고 뛰며 다양한 건축을 만들어낸다. 또한 높이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깊은 플리에(pli, 무릎 구부리기)로 아래로 내려가야 하듯 중력이 기반이 된다. 중력에 상응하는 움직임들은 그 속도와 방향에 따라 원심력과 장력을 만들어내며 다이내믹한 보이드를 만들어낸다.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무대예술을 담당했던 오스카 슐레머(Oscar Schlemmer)는 무용수와 공간 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중력을 거슬러 이상적인 조형성을 나타낼 수 있는 실험들을 로봇을 사용해 시행하기도 했었다. 한 명의 무용수가 동작을 통해 신체 부위와 이동 동선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 듀엣과 트리오, 군무에서 무용수와 무용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간의 율동’은 객석보다 무대에서 더 경험하기 쉽다.
아마도 공간을 가장 다이내믹하게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공간에서 춤을 추는 일일 것이다. 몸의 감각을 깨워 공간을 감지하고 정면으로 바라보던 공간을 바닥에서, 높이 점핑하면서 혹은 돌면서 바라보았을 때 몸이 감지하는 공감각은 공간의 매우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게 한다.



줌아웃 에세이 기획자, 저술가 양은혜 관련 사진

《Drumming & Rain A Choreographer's Score》, Anne Teresa De Keersmaeker & Bojana Cvejie, '50쪽.
안나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가 <Rain>에서 사용한 피모나치의 시퀀스 Golden section


벨기에 안무가 안나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는 〈Drumming〉, 〈Rain〉 작품에서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1170~1250)의 수열, 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 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인체 모듈러와 맞닿아 있다. 피보나치의 수열은 앞의 두 수의 합이 뒤의 수가 되는 수의 배열로, 이를 정사각형에 대입하면 정사각형의 반복 배열로 인해 무한대로 확장되는 규칙을 알 수 있다. 안나 테레사는 이러한 피보나치의 시퀀스를 무대에 대입하여 무용수들의 동선으로 삼았다. 그런 반면 르코르 뷔지에는 피보나치의 수열을 인체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배꼽을 중심으로 황금비에 따라 나누어 인체 모듈러를 개발해 건축에 도입하였다. 피보나치의 수열을 차용한 안나 테레사와 르코르 뷔지에의 공통점은 신체를 중심으로 움직임과 동선을 계산하여 무대와 건축에 도입시켰다는 점이다.
무용수들이 올리는 팔의 각도, 팔과 다리가 만나는 타이밍, 혹은 파트너와 만나는 순간 일어나는 각도와 형태, 타이밍, 방법은 보이지 않는 건축이다. 이들이 움직이면서 파악하는 공감각과 신체가 감각적으로 기억하고 만들어내는 조형성이 신체 내에서 가동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무용수들의 구축은 거리와 높이, 속도, 관계로부터 일어난다. 얼핏 건축은 물리적 공간(solid)으로써, 무용은 움직임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특성의 빈 공간(void)으로써 그 특성이 매우 대조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신체라는 주체를 가짐으로써 건축과 무용은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구축과 호흡


이 칼럼은 기존의 움직임이 행해지던 친숙한 공간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공간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의 수행으로부터 춤과 공간이라는 파트너 관계를 살펴본다. 앞으로 이뤄질 질문들은 춤을 출 수 있도록 주어진 공간 구조에 대한 질문이자 그 위에서 행해지는 무용의 이상향에 대한 질문과 엮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신체의 구조, 해부학을 동반하여 학습되는 무용은 그 동작이 갖고 있는 구조의 논리가 매우 명확하다. 땅에 기초하며 사람을 위하여 세워지고 행해지는 건축과 무용, 그리고 신체라는 중심축으로 이뤄지는 공간과 움직임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 보도록 하겠다. 극장에 들어가 큰 숨을 한 번 들이쉬듯이 말이다.



양은혜_기획자, 저술가 양은혜는 성균관대에서 무용학, 러시아어문학, 영어영문학을 전공, 대학원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하여 안무가, 무용작가, 드라마투르기로 활동하며 무용월간 《춤과사람들》 기자를 역임하였다. 현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편집위원, 무용인들의 담론화 형성과 무용기록 그리고 무용공연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춘 choreographyview를 운영하고 있다. 공간과 무용에 관한 기획 및 글쓰기를 하고 있다.
facebook.com/choreographyview


양은혜_기획자, 무용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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