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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08.25 조회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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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펜 토탈 Treffen Total 2016
- 함께 해야만 알 수 있었던 레지던시

박진영_안무가

나는 서울무용센터와 K3탄츠플란 함부르크 레지던시의 해외교류프로그램인 ‘트레펜 토탈’에 선발되어 참여했다. ‘트레펜 토탈 2016 (Treffen Total 2016)’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가를 위한, 예술가들이 원하는, 예술가들에 의한’ 협업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독특한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참여 예술가들은 6월29일부터 만나, ‘화이트 월(White Wall)’을 함께 만들고 토론을 시작했다. 7월 1일부터 24일까지는 예술가들이 모여 4주간 다채로운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었는데, 본 프로젝트는 함부르크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16명의 무용수와 안무가 외에도 연극, 음악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는 2명의 타 국적 예술가, 나를 포함한 6명의 다국적 예술가들까지 총 24명이 모여 진행되었다.
‘트레펜 토탈’의 모티브는 예술작업 및 교류 프로젝트인 ‘스위트 앤 텐더 콜라보레이션(Sweet & Tender Collaboration, 이하 S&T)’에서 비롯되었다. ‘S&T’는 다국적 예술가들이 모여 이루어진 그룹으로, 개인으로 활동하는 독립 예술가들이 혼자서는 구현해내기 어려운 작업물의 가능성과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멤버이자 함부르크에서 ‘트레펜 토탈’을 시작하는데 큰 기여를 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예니 바이어와(Jenny Beyer) 조지 홉마이어(Georg Hobmeier)를 주축으로 2010년부터 진행되었다.



‘플라워 토크(Flower Talk)’- 꽃을 돌리며 자신의 주제, 자신의 생각, 프로그램대해 제안하기


트레펜 토탈의 독특한 점은 협업에 중심이 되는 디렉터 혹은 감독이 없다는 것이다. 참여 예술가들은 감시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시도하고, 또 그것을 없앨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프로젝트의 일원이라면 누구든지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으며 하나의 제안은 모든 구성원에 의하여 토론되고 결정된다. 이 작업을 위해 계획된 5번의 공연, 점심시간, 트레이닝은 선택사항으로 자유롭다. 그런데 이 무한 신뢰와 자유의 방식은 오히려 우리를 더 계획적이며 체계적이도록 만들었으며 어느 누구도 쉬지 않고 몰두하도록 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플라워 토크(Flower Talk)


모든 일정은 하루 전 혹은 당일에 결정된다. 그러나 첫 공연이후 부터 우리는 작업을 하면서 모든 생성과정 및 형태를 조율 (공간, 시간, 순서 등) 하면서 진행하였기에 점점 능률적으로 변해갔다. 이는 짧은 토론이 아닌 하나의 주제, 예를 들어, 공연순서에 관련해 기본 4시간 동안 서로의 작업을 바라보며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하고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논의 및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통하여 또 다른 협업작업의 방법을 습득하도록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토론은 모든 공간에서 하나의 덩어리 같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갔으며 서로간의 개연성을 만들어가게 되면서 프로그램들과 프로젝트 작업들로 완성되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토론은 헤어짐의 아쉬움 보다 주어졌던 4주 간 함께 얻은 것과 버려야 할 것들 그리고 우리가 해나가야 할 미래의 작업들에 대한 것으로 채워졌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마지막 날의 토크


‘화이트 월(White wall)’- 아이디어부터 시작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


‘트레펜 토탈’은 실제로 계획이 없다. 우리의 스케줄 표 ‘화이트 월(White Wall)은 ‘오늘’과 ‘내일’이라는 표에 시간테이블이 적혀 있는데 자신이 작업하고자 하는 아이디어와 참여인원수 혹은 같이하고 싶은 사람을 포스트잇으로 붙여 넣을 수 있어 관심이 있는 구성원은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와 참여하기로 한 이들이 모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실험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디어와 작업 방향을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수용하는 방식과 어떠한 결과물을 내야만 한다는 압박이 없는 상황 때문에 때때로 방향성을 잃어 힘들기도 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화이트 월(White wall)


두 번의 공연 이후부터는 공유를 제안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한다. 협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생겨나면 함께 작업하는 방법을 더 심화시켜 진행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이곳 함부르크에서 작업하는 예술가들과 인터내셔널 예술가들의 차이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작업을 이어나간 참여자들과 자신의 생활을 두고 온 참여자들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들이 만들어낸 작업스타일은 결과가 아니라 ‘협업과정’에 목표를 두었기에 4주 후에 반드시 완성된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것도, 어떤 성과를 내보여야 하는 것도 아닌 까닭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의 작업형태를 보였는데, 바로 ‘협업에 의의를 두었는가, 방법에 의의를 두었는가.’로 나뉘었다. 먼저 협업에 의의를 둔 참여자들은 쇼케이스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피드백과 생각을 주고받았다. 더욱이 그들은 연습과정 또한 공개하였다.
방법에 의의를 둔 참여자들의 경우, 독립적 주체인 자신이 어떻게 다른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으며 어떠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서로가 어떤 교류를 할 수 있을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등의 리서치 과정을 통해 작업을 구체화시켰다.
기존 프로젝트들은 예술가들에게 프로젝트 계획서를 받고, 정해진 주제에 맞는 작업을 요구하여 그에 맞는 결과물을 기대한다면, ‘화이트 월’은 그와는 차별화된 구조였기에 우리는 자유롭고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발성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여러 상태를 나타내게 하였는데, 예를 들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구성원으로서 생산적인 작업을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참여자도 있었으며. 이런 좋은 환경에서 (한 달 동안 우리는 체재비를 받고, 작업에 필요한 오브제 또한 영수증을 제출하면 주는 형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간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등이었다. 이 체류 기간이 끝나고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더 좋은 환경에서 발전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 번의 쇼 케이스’- 스물 네 번의 쇼 케이스를 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모든 공연에 솔로는 없다. ‘트레펜 토탈’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협업”은 참여 아티스트들이 함께 리서치하고 작업하는 것을 권장한다. 쇼케이스 형식의 공연이 7월 2일, 7일, 17일, 20일, 22일 총 다섯 번 진행되었다.
첫 번째 공연은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각자에게 주어진 5분 동안 공연이 이뤄졌다. 공연 전 날인 7월 1일에 참여자들은 모여 누구와 함께 팀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블랙박스 공간에서 공연을 진행, 각자가 무엇을 쓰는지, 필요한 공간과 요소들을 자신의 이름이 있는 페이퍼 뒤에 적은 뒤 이를 바탕으로 토론을 하여 팀이 정해지고 공연 순서가 정해졌다. 이 공연은 관객에게 ‘트레펜 토탈’에 참가하는 예술가들이 처음 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참가한 예술가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날이었다. 리허설은 없었으며 단지 내가 있는 위치와 각자가 사용하는 매체(예를 들어 몸을 중심으로 사운드와 컴퓨터를 이용)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공연은 시작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여 이해도를 높여갔으며 각자의 5분을 서로의 5분으로 만들어갔다.
두 번째 공연은 쇼 케이스를 하고 싶은 팀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각자가 장소와 작품시간을 정하여 공연이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총 7팀이 참여 했으며 불참한 아티스트들도 있었다. 나는 첫 팀으로 공연을 했었던 안무가 중 한 명인 안카트리나와 함께 작업 한 것을 발표하였다. 그녀는 먼저 내게 다가와 함께 작업하길 원했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에게 집중하고 알아가면서 작업을 시작하였다. 안카트리나는 안무자 학교를 졸업했지만, 전공은 성악이었으며 지금은 목소리로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움직임으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우리의 주제는 그림자로 파동에서 빠져나와있는 눈에 볼 수 없는 그림자였다. 다른 팀들 또한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팀을 만들어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 후에는 서로의 작업에 대해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관객 또한 함께 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두 번째 쇼케이스 공동작업자 박진영, 안카드리나


세 번째 공연은 두 명의 아티스트가 제안한 피크닉 이벤트로 진행되었다. 서로의 작업에 점점 지쳐가고 있던 차에 쉬어가자는 의미로 관객과의 협업을 주제로 한 그들의 계획이었다. 우리는 여섯 개의 돗자리를 펼칠 위치를 지정하고 그 자체가 공연 장소가 되거나 전시장이 되도록 했으며 관객들은 다양한 이유로 피크닉을 와서 우리와 함께 공간을 만들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피크닉 작업과정


피크닉에 오는 관객들에게는 사전에 집에서 가져올 수 있는 음식이나 자신이 연주 할 수 있는 악기를 가져오길 바란다는 이벤트의 내용과 참여 준비물을 제시하였다. 참여자들이 일반 관객이었기에 더욱 열정적이었으며 서로가 편하게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배워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은 역시나 협동 작업을 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며 트레펜 토탈을 통해 받은 또 하나의 혜택'이라고 서로 입을 모았으며 피크닉 쇼 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피크닉 이벤트 작업사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공연부터는 더욱 심층적인 과정을 거친 작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4주 동안 고민하고 함께 진행했던 작업을 공연 혹은 워크숍의 형태로 발표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작업들도 있었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해보면서 연습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시점으로 서로를 봐주면서 리서치작업을 해나갔으며 이는 10분, 혹은 30분의 작업 형태로 만들어졌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박진영 관련 사진

ⓒWolfgang Unger, 네 번째 쇼케이스 공동작업 사운드디자이너 토비, 안무 및 무용 소피아, 박진영


이것은 끝이 아니라 발전적인 시작임을 인식하게 해주었으며 협업작업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고 얼마나 많은 과정과 노력이 모여야만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시작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4주간의 작업 통해 협업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이제 이것을 어떻게 끝까지 실행 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이야기 한다. "여러 방법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 작업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고, 그 끝을 만들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곳에서는 그 어떤 치열한 경쟁구도나 작업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방황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 시스템이 곧 스스로를 독려하는 하나의 구조가 되었으며 경쟁의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협업은 서로를 알아가는 색다른 과정을 배우게 해주었으며 나를 관찰함으로써 세계의 본질을 향한 문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박진영_안무가 박진영은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에서 안무자전공을 이수하였으며 움직임과 사운드 디자인기반의 공연들을 주로 만들고 진행하고 있다. 레지던시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2013lmpulsTanz DanceWEB’, 에스토니아 ‘2015MoKS, Mooste’, ‘2015 경남예술창작센터’, 함부르크 ‘2016 Treffen Total’에 참여 하였다. 그 외에 댄스비디오 작업 및 여러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작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비디오 전시작 <Boundaries of Time(13:50)>(2015), 안무 및 협업 작업으로는 <남쪽노을>(2016), 〈퍼포먼스의 경계선에 서다〉(2015), <PENUMBRA>(2015), <MakeAPP>(2014) 등이 있다.


박진영_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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