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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1.30 조회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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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인의 서재] 나의 삶, 나의 춤을 거쳐 간 책들

[춤인의 서재]



나의 삶, 나의 춤을 거쳐 간 책들

김선미_ 안무가

어렸을 때부터 늘 책을 지니고 다니며 하루 한 페이지씩이라도 읽곤 했다. 왠지 책을 읽지 않으면 하루가 다 채워지지 않은 것만 같아 언제나 나의 가방과 손엔 시집, 수필집, 소설책, 만화책 등이 들려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시집과 수필집에 빠져 있었고 때때로 시나 수필을 써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오래 전부터 내가 늘 지니고 있는 빨간색 노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책을 읽으면 나는 어느 새 주인공이 되어 있었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몸으로 형상화시키고 있었다. 어느 때는 전체 내용이 지닌 이미지에, 낱말 하나에 반해서, 또 어느 때는 시 한 구절, 명사의 한 마디에 반해서···. 때문인지 바쁜 와중에도 하루 단 한 줄의 글 이라도 읽으려 노력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김선 관련 사진

《남남》, 조병화, 일지사, 1975


조병화 시인의〈공으로 돌지>라는 제목의 시는 나의 창작 작업의 처녀작이 되었고, 그 시를 모티프로 한 시간짜리 솔로 춤을 안무하고 췄다. 이때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혼자 한 시간씩 솔로 춤을 추고 있다. 말이 적고 조용한 성격으로 단순명료한 것(미니멀하다할까)을 좋아하는 내게 조병화 시인의《남남》(<공으로 돌지>가 실린 시집)이란 시집은 대학시절 늘 가슴 아리게 되새겨 읽었던 시집이다. 그 때 당시 ‘공으로 돌지’란 제목으로 첫 작품을 올릴 때 낱말하나, 어휘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김선 관련 사진

《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권영주 옮김, 북폴리오, 2008


온다리쿠의 《초콜릿 코스모스》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책으로 기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며 읽었었다. 특히 여배우의 무대 오디션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발했고 함께 경지에 오르도록 자극하고 있었다. 작품 구성에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김선 관련 사진

《유리가면》, 스즈에 미우치, 대원씨아이, 2013, GARASU NO KAMEN ⓒ SUZUE MIUCHI / HAKUSENSHA, INC.


미우치 스즈에의 만화책《유리가면》은 스토리 전개도 재미있었지만 연기할 때 감정이입 시키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전개되어있다. 춤을 추는 내게도 필수인 감정이입 즉, 작품에 빠져들 수 있는 방법을 이 만화책을 통해 경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 꼭 한 번씩은 이 책을 소개하고, 만화책에서도 얻는 것이 많으니 꼭 찾아 읽어보라고 이야기한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김선 관련 사진

《토지》, 박경리, 마로니에북스, 2012


박경리 선생님의《토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책이 아닐까? 책을 읽고 또 읽고 주인공 서희가 되어 몇 달을 살았다. 이후 박경리 선생님 칠순잔치 때인가 댁에 가서 축하공연을 하면서 가까이서 뵐 기회가 있었다. 모든 것을 포용한 듯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한국 춤을 추는 내겐 《토지》라는 제목 자체가 가지는 힘이, 에너지가 늘 커다란 과제이자 화두였다. 어떻게 하면 춤추는 공간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까? 관객들의 마음을 모두 껴안을 수 있을까? 땅의 깊은 울림을 지닌 춤을 출 수 있을까? 아마도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내 평생 춤의 화두이자 에너지원이 될 것 같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김선 관련 사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2017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1982년부터인가 매년 한권도 빠지지 않고 사서 읽고 있다. 묘한 상상력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 많이 있다.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그것을 춤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나의 예술가적인 기질과 잘 어울린다고 할까? 매년 기대감과 호기심속에 책을 사는 내게 늘 충분한 만족을 주며, 난 또 하나의 상상력에 취해본다.



줌아웃 에세이 안무가 김선 관련 사진

《갈매기의 꿈》, 리차드 바크, 공경희역, 현문미디어, 2015


리처드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항상 날고 싶어 하는 내 꿈이 담겨있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게 했던 책이다. 끊임없이 춤추고자 하는 나와 너무 비슷한 조나단. 어쩌면 내 춤에서 많이 보이는 날갯짓이 이 책의 영향일까? 나의 작품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작품에 새의 날갯짓이 들어있다. 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춤추는 내게 격려와 위로가 되는 책이다.
이 외에도 무수히도 많은 책, 많은 글귀들을 읽어왔는데,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던 그 책들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책들이 하나하나의 돌멩이가 되어 어느새 춤꾼으로서의 삶을 머금은 세월의 강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삶이라는 물방울들은 소리 없이 모여들어 어느덧 세월이라는 큰 강에 스며들어 있다. 간혹 차가운 바람이 나를 휘감을 때면 나는 세월의 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곳에서 나는 매우 놀라운 것들을 찾아낸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도 아니고 하늘의 섭리도 아니다. 그저 작지만 소중한 내 삶의 이야기들이자 내 춤의 이야기들이다. 늦은 저녁에 연습을 마치고 오뎅과 떡볶이를 먹으며 나를 달래고 있는 나, 컴컴한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나, 분장실에서 졸고 있는 나, 차 속에서 머리를 부딪치고 있는 나 등등 시간 속에서 이리저리 무엇인가를 향해 가고 있는 수많은 나를 발견한다. 내가 나를 만나고, 나는 또 나를 만나고, 그리고 그 만남들은 어느덧 삶이 되고 또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어 열심히 세월의 강을 건너고 있는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생활의 리듬이 바뀌면서 옆구리에 책 한 권을 끼고 있으면서도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조금 생활의 리듬이 안정되면 낱말하나 글귀 하나하나에 가슴 떨림을 느끼고 또 한 페이지 책장을 넘기며 손짓, 발짓, 미소까지 춤을 추고 싶다.




김선미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강의하며 창무예술원 예술감독, 전문무용수 지원센터 이사, 한국춤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춤의 온화하고 섬세한 동작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몸과 마음의 중심과 균형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선미_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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