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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7.11.30 조회 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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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영화의 전향적 만남 - 댄스필름 프로젝트 TAKE #-

박태식_영화평론가

서울무용센터에서 기획한 ‘댄스필름 프로젝트 TAKE#’의 결과물이 11월 10-11일 양일간 홍은동 서울무용센터에서 상영되었다. 총 5편의 영화였는데, 구체적으로 <반성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송주원 연출/안무), <Unholy Three>(백종관 연출/쌍방 안무),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강태우 연출/임진호 안무), <호접몽>(이승엽 연출/박진영 안무), <내 신발에게>(김대현 연출/김동희 안무)이다. 한 작품씩 살펴보기로 하겠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임진호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다.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결국 그 사람이 시신이 되어 차가운 냉동 칸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러니까 상주로서 문상객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입관을 거쳐 발인하지까지 이루어지는 맘과 몸의 변화를 담아내려 한다. 특히 죽은 자의 입장을 살려 장례를 객관화시킨 뒤, 다시 죽은 자의 시각을 회복해 주관적인 눈으로 사태를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 깊다. 장례란 남은 자들의 의식일 뿐 아니라 죽은 자의 의식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죽은 자의 눈을 사실적으로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하니 결국 춤에 맡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이 대목에서 안무가 필요하다. 영화적인 작업에 모든 것을 맡겨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과 안무는 어려운 작업을 잘 이끌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별로 지루할 틈이 없이 감독과 안무와 관객이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생명의 탄생, 결혼, 실직 등등 생로병사를 주제로 삼아 한 주제씩 정복해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회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을 잡기는 했지만 말이다.



호접몽


줌아웃 프리뷰 영화평론가 박태식 관련 사진


어느 여인이 길을 걷고 있다. 길 양편으로는 완만하게 굴곡진 담이 높이 쌓여있는데 따라 걷다 보니 넓은 공간이 불쑥 튀어나오고 그 중앙에 가면을 쓴 사람이 하나 서 있다. 이제부터 여인은 관찰자가 되어 가면 쓴 이의 행동을 지켜본다. 그랬더니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마치 어린 시절 큰 이불 빨래를 두고 형제끼리 장난을 쳤듯 옷에 기묘한 형상을 남기며 무엇인가 가면 쓴 이로부터 빠져나오려는 게 아닌가? 영화의 도입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그러고 나서는 두 사람의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아우러지는 춤이 이어지고 카메라는 적절한 각도와 위치에서 춤을 쫓아간다. 춤의 끝에 충격적인 결말이 서 있고 이제까지 지켜보던 여인이 가면을 쓴 채 왔던 길을 되돌아나간다. 기승전결이 살아있는 정확한 구성이다. 그러노라니 다섯 개의 춤과 영상의 협력 작품들 중 가장 영화 쪽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다. 호접몽에서 장자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자연과 자신이 하나임을 깨닫는다. 나에게 빠져나온 또 하나의 자아 역시 결코 벗어날 수 없어 나 자신이다. 아무리 분리시키고 아무리 가면을 벗겨내도 켜켜이 쌓여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메시지가 왕성하게 살아있는 영화다. 춤과 영화의 협력 작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발견했다. 건투를 빈다.



내 신발에게


줌아웃 프리뷰 영화평론가 박태식 관련 사진


“새 신발을 샀다. 그 신발을 집에 두고 수학여행을 왔다.” 그 한마디 말이 유언이 되어 부모의 가슴에 강한 흔적을 남겼다. 여전히 그 학생은 차가운 물속에서도 이별한 친구들과 떠나온 집과 사랑하는 부모님과 신발장에 잘 모셔둔 새 신발을 그리워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아니, 결코 끝나서는 안 될 사건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감독과 안무가는 그 학생의 유언 아닌 유언 한 마디에 정신을 뺏겨버렸고 이를 영상으로 옮길 계획을 세운다. 제목은 ‘내 신발에게’ 이다. 수직을 개념으로 하는 버티칼 댄스를 위해서는 강한 체력이 요구된다. 중력을 가로질러 새로운 중력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멘트로 만든 거대한 원통 안에 어느 여인이 갇혀있다. 그녀는 줄 하나에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놀고 있다. 공중에 떠 있는 여인을 잡기위해 바닥에 눕혀놓은 카메라는 하늘을 향해 렌즈를 활짝 열어놓는다. 이렇게 설정한 마지막 버티칼 댄스는 가히 압권이다. 어이없이 빼앗겨버린 생명에 대한 갈구이자 죽은 자가 누렸던 삶을 대변하는 새 신발을 향한 강한 욕구가 살아있다. 도대체 누가 감히 나서 죽은 자의 한을 풀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영화가 남겨준 숙제를 가슴에 가득 안은 채 극장 문을 나섰다.



Unholy Three


김승록

3인의 무용수가 무대에 나와 각각 자신의 춤을 펼친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들의 모습을 때로는 합치고 때로는 개별로 담아내 분리시키고 합성하고, 덧입히고 섞어낸다. 이런 해체와 통합과정을 거쳐 3인의 작품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낸다. 이제까지 어떤 ‘댄스필름’의 앞선 작품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신선한 시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노라니 흑백, 칼라, 기하학적 구도, 정지 동작 등등 최대한의 영상작업 기술을 동원해 마치 무대 예술을 직접 보는 듯 힘을 기울였다. 그러노라니 어쩔 수 없이 난해한 구석이 생겨나고 작품 이해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아직은 풀어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고무적인 면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개척자 정신을 읽어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무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공연을 감상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무대를 전면으로 끌어당겨 화면에 담으려는 시도를 칭찬하고 싶다는 뜻이다. 앞으로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반성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


송주원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하루하루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연출자와 안무가의 눈은 순간을 포착해 의미 있는 영상으로 변화시킨다. 여인에게는 직업이 있고 집이 있고 여가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이 모두에게 각각 시간성과 공간성이 부여되는데 때로는 의식하고 때로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일상에 갖가지 영향을 끼친다. 말하자면 인간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살아가는 셈이다. 단편 <반성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은 이런 문제의식을 영상과 춤으로 담아낸다. 영화에 세 가지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는데 영화적 상상력과 춤의 표현력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예는 ‘곰팡이 곰팡 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다. 특이하게도 이 에피소드에서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와 직장동료와 전화로 나누는 대화인데 영화에 표현된 시공간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곰팡 역을 맡은 두 무용수들이 곳곳에 얼굴과 몸을 들이대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세력을 확장시켜나가는 콘셉트는 일상에 사로잡힌 우리의 눈을 해방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결국 세상을 긍정하는 차원으로 진행되어 나간다. 유머가 살아있는 에피소드이다. 영화와 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돋보이고 이에 대한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데 분명한 기여를 한 작품이다.

다섯 작품 모두 새로운 시도라 불러야 마땅하다. ‘댄스필름’이라는 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놓여있는 까닭에 어떤 시도를 하던, ‘개척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선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작품 모두에 박수를 보낸다.




박태식 성공회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월간 <춤> 편집위원.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신학 석사, 독일 괴팅겐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세이스트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월간「에세이」, 월간「춤」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서강대와 가톨릭대, 성공회대 등에 출강했다. 대한성공회 신부로서 현재 장애인 센터 ‘함께 사는 세상’ 지도신부로 있다.
박태식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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