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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11.12 조회 6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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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링: 안무에서 퀴어의 전술들
Queering: the Tactics of Queer on Choreography

글, 정리_ 김재리(드라마투르그)
함께 모인 사람들: 김재리, 장수미, 루에리 도노반(Ruairi Donovan), 김연임(본지 편집장)
일시: 2018년 10월 27일 11시
장소: 대학로 예술극장 씨어터카페

몸의 정치가 핵심을 이루어온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퀴어(담론)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1970년대부터 전개된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은 젠더 구분 하에 구축된 지식의 역사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 규범에 저항해왔으며 LGBTQ 정체성과 공동체의 액티비즘은 컨템퍼러리 예술의 정치와 미학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신체와 신체적 이미지가 공공에 노출되는 춤의 영역에서는 무대 위의 ‘다른 몸’, 즉 퀴어를 통해 이분화된 성별과 사회 규범에 물질적이고 감각적으로 도전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명료하게 분류해왔던 ‘몸’을 향해 ‘섹스화된 신체는 무엇인가?’ ‘하나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개별 몸들은 어떤 몸인가?’라는 물음을 생성시켰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퀴어의 정치는 잘못 인식되어왔던 것과 인식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존재론적인 요청이다.’라고 강조했다. 퀴어는 더 이상 개인의 성적 취향의 단계에 머물러있지 않으며, 범주화를 통해 작동하는 권력을 폭로하고 그에 저항하는 사회적 존재이자 컨템퍼러리 예술의 표현을 변화시키는 주체이다.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퀴어는 ‘다른’ 신체에 대한 다면적인 감각을 열어주었으며 주체, 신체, 정체성을 구분 짓는 이데올로기는 몸을 통해 폭로되고 춤의 새로운 형식으로 제안되고 있다. 그렇다면 퀴어의 권리와 정체성은 예술적 표현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안무에서 퀴어는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몸에 대한 시각과 안무의 형식을 어떻게 확장시켜왔는가? 퀴어와 퀴어적 전술은 안무에서 어떻게 체화되고 있는가? 이 질문을 중심으로 2018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 SPAF)에서 소개된 <메도우, 메도우, 메도우(Meadow, Meadow, Meadow)>의 공동 안무가이자 퀴어 아티스트인 루에리 도노반(Ruairi Donovan 이하 도노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부터 장수미, 김재리, 루에리 도노반(Ruairi Donovan) ⓒ양동민
퀴어 공동체: 일상과 예술의 공유
김재리: 베를린에서 4명의 퀴어 아티스트 그룹과 함께 살면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함께 했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가? 특별히 퀴어 작업을 함에 있어 이러한 방식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도노반: 우리는 독일에서 일 년 반 정도를 함께 살았다. 나는 우리가 함께 살면서 작업을 하는 것은 퀴어적 접근에서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관계적인 측면에서 무언가를 발명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젠더 정체성과 표현, 섹슈얼리티라는 퀴어와 페미니즘의 큰 개념에 관련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퀴어에 익숙한 구조를 발명해내기 위해 일상과 예술을 공유한 것이다. 퀴어적인 구조에서는 서로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지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살면서 먹고, 자고, 고통과 기쁨, 아픔과 폭력을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생성되는 것으로, 경제적인 부분과 사회구조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작업을 할 것인가의 대부분을 함께 결정한다. 각자가 행하는 퀴어 권리를 위한 사회적 운동들과 예술적 실천들을 작업의 공간에서 풀어놓으며 공유한다.
김재리: 이번 SPAF에서 소개된 <메도우, 메도우, 메도우(Meadow, Meadow, Meadow), 이하 ‘메도우’>도 이러한 과정에서 창작된 것인가? 작업의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면?
도노반: 이 작품도 베를린의 북쪽 브란덴브루크 지역에서 함께 살면서 작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극장에서 초연을 하기 전 18개월 정도 함께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품은 3개의 Meadow(초원)로 구성된 콜렉티브 작업인데, 나와 자셈 힌디(Jassem Hindi), 캐시 월쉬(Cathy Walsh)가 먼저 작업을 시작했으며 2014년에 첫 번째 메도우를 아일랜드에서 발표했다. 그리고 엘리나 피리넨(Elina Pirinen), 마리아 아이포발미(Maria Saivosalmi)가 이후에 작업에 참여해서 안무의 구조를 함께 만들었고 3개의 메도우로 완성하여 2015년 핀란드의 ‘조디악 센터(Zodiak Center)’에서 초연했다.

Ruairi Donovan ⓒ양동민
퍼포먼스: 퀴어의 시간성, 퀴어의 신체성
김재리: 퀴어링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안무에서 퀴어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퀴어에서의 전술들을 안무에서 적용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퀴어링은 구체적으로 안무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도노반: 나에게 퀴어링이란 퀴어적인 것을 춤이나 안무에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이 예상하거나 알고 있는 춤의 가치에 퀴어적인 것으로 접근하면서 안무로 구조화한다. 이는 퀴어를 통해 관객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볼 것이며, 신체를 어떻게 새롭게, 혹은 다르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며 그리고 춤추는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유럽의 맥락에서 전문적인 춤이란 이미 규정된 예술적인 틀에서 구분 지어져 있으며, 젠더(이분법적)이고, 무용수의 신체에 대한 가치도 균일하다. 그리고 전통적인 형식과 프레임에 춤을 가둔다. 이미 퀴어와 관련된 춤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장르로서의 춤이라는 전통적 규범은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 내가 제안하는 퀴어링이란 역사 속에서 숨겨진 퀴어적인 감수성을 새로운 세대인 우리가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는 퀴어의 방식과 퀴어링의 과정을 통해 역사에서의 예술적 형식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식으로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에 대해 춤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시간 역시도 퀴어다. 춤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라이브적인 상황을 통해 퀴어의 시간성을 드러낼 수 있다. 공연에서의 신체성과 시간성은 일상의 시간과는 다른 것이다. 퀴어의 시간과 퀴어의 몸은 무대 안과 밖의 모든 규범들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모든 공연은 마술과 같다. 이 마술 같은 상황에서 퀴어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김재리: 유럽과 북미,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퀴어와 관련된 공연은 확장되는 추세이다. 이미 1980~90년도 페미니즘의 운동과 이론이 확대되면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공연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하며 젊은 세대들의 공연예술에서 페미니즘의 영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현재 퀴어에 대한, 혹은 퀴어적인 작업이 컨템퍼러리 댄스에서의 지형에서 두드러지고 있는데?
도노반: 지금 예술의 장에서는 자본주의나 지난 세대들에 대한 비판은 모든 지나간 일이라고 여겨진다. 퀴어에 관련한 작업들이 포화를 이루고 있으며 심지어 이것은 이미 상품화되었다. 나는 시장에서 새로운 형식과 미학을 찾는 과정에서 퀴어를 상품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나의 경우에는 퀴어와 관련된 큰 개념어나 주제에 천착하기보다는 퀴어적인 감수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과 경험을 작업으로 발전시킨다. 나의 경우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아일랜드 언어를 사용하고 아이리쉬 문화권 내에서 자라났다. 우리는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유럽과 미국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게 했다. 이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미학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의 맥락에서 나는 정치, 언어, 문화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나를 둘러싼 것들과 어떻게 친밀함을 구성하고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퀴어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퀴어가 만들어 온 역사를 재현하거나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특별한 맥락을 만나면서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과정에서 동시대적인 퀴어의 순간이 발생한다.
김재리: 개인의 체험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해가고 이것을 작업으로 확장시키는 것은 ‘퀴어’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으로서의 정치적 운동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의 보편성의 관점에서 우리는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고 특정 문화적 요소들을 작업에서 선택하고 차용하기도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도노반: 작업을 위해서 다른 지역의 문화, 마이너리티의 문화를 취하는 것도 예술가의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 전지구적인 접근보다는 나와 관련된, 혹은 나의 맥락에서 감수성을 발견하려고 한다. 나 자신만의 맥락을 생각한다. 모든 문화가 섞이는 것에 대해 열려있지만 이것도 내 주변의 사람들, 혹은 나와 같은 땅에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건은 인간 중심적인 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왜 내가 더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그것들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그것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춤도 중요한 질문의 대상이 된다. 나에게 춤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도 이러한 친밀함의 형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김재리 ⓒ양동민
퀴어링의 방법론: 불편함의 감수성
김재리: <메도우, 메도우, 메도우>에서 ‘죽은 오브젝트(Dead objects)’와 친밀감을 찾고자 한다고 했다. 작품에서 친밀감의 형성이 안무의 전략으로 사용되는 것인가?
도노반: ‘친밀감’은 예술 작품 생산에서 중요하다. 어떤 것과의 접촉과 연결, 혹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함께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연에서 관객들을 위해 어떤 기분 좋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프거나 취약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돌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기능이 사라지고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친밀함을 갖는 것이자, 그것을 치유하는 의식인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만 전진하는 테크놀러지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의 맥락에서는 모든 최신의 것과 쓸모 있는 것만이 욕망된다. 이것은 지금의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친밀감’의 개념을 사용한 것은 역사 속에서 감추어져 있었고, 의식되지 않았던 퀴어의 몸과 감수성을 통해 존재하지만 들여다보지 않았던 버려진 취약한 것들을 무대 위로 올려 이들과 마찬가지로 취약한 신체와 관계를 맺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김재리: 실제로 작품에서 보여준 누디티와 몇몇 장면들은 강한 인상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힐링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춤으로 다른 것들을 보살피는 느낌이기도 했고, 무대가 죽은 것에 대한 애도와 의식의 장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안무 과정에서 전략으로 집어들었던 ‘친밀함’을 통한 인간의 몸과 대상들과의 관계를 통해 발생되는 것이 아닌가 했다. 메도우 작품에서 신체와 오브제, 그리고 관객들의 반응까지도 기존의 규범들을 왜곡시키는 이미지들이었다.
하나의 신체는 다른 신체, 오브제와 음악 등의 감각이 이루는 관계들이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제목을 초원으로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작업에서 세 개의 초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도노반: 나는 얼마 전에 타계한 미국의 시각예술 작가 로라 아귀엘라(Laura Aguilar)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녀는 여성의 누드를 특정한 풍경에서 찍는 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여성의 신체가 풍경 안에 위치하고, 그 풍경과 연결될 수 있을까를 질문하게 하는 사진이다. 실제로 그녀의 사진에서는 신체와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각적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땅과 신체가 놓인 풍경들 안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나의 주요한 문제의식이다. 나에게 인상을 주는 풍경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과 신체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나는 정착민의 입장에서 섬에 들어가 토착민들과의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는 식민지적 맥락에서 토착민과 정착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토착민과 반대의 입장에서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말을 건넬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실제로 그들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언어, 관습, 삶의 방식 등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하는 공간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특정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것들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물질적인 것의 다이나믹이 하나의 초원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Ruairi Donovan ⓒ양동민
김재리: 지금 작업이나 리서치 중인 내용을 소개한다면? 안무에서 재료의 선택이나 방법론의 구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도노반: 나는 35명 정도가 거주하는 아일랜드의 작은 섬에 산다. 하지만 거기에는 많은 것이 있다. 어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이어가는 곳인데, 역사적으로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는 매우 강력하다. 내가 사는 땅과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안무에서 중요한 맥락이 된다. 나는 그 장소와 사람, 사물, 동물들에 관해 증언할 수 있다. 나는 2년간 그곳에 살면서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베를린에서의 퀴어 공동체와는 매우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춤을 만들고 리서치를 하는 대신에 야외에 나가 나와 친밀함을 나누는 동물과 안무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 리서치를 하고 있는 대상은 ‘말’이다. 이것은 퀴어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체와 주체와의 관계를 찾는 점에서 그러하다. 말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매우 풍부한데, 해부학적으로, 매개자의 관점에서, 또 움직임의 즉흥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그렇다. 말과 함께 있기, 접촉하기, 소통하기 등의 몇 가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말과의 리서치는 나의 작업을 많은 부분에서 바꿔놓았다. 어떻게 공간을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언어적인 것과 움직임적인 것도 인간과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며, 다른 연결을 찾을 수 있다. 말과의 작업은 매우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고 예측하기 어렵고 불안하기도 한다. 말에 대한 안무적인 접근이란 시간을 함께하며 그것에 대해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무용의 맥락에서 공간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른 대상을 중심으로 리서치를 할 때에는 항상 위험 요소를 찾아야 하며 무용수와 작업할 때와는 다른 실천이나 아카데믹한 전략들을 찾는다. 또한, 무용과 극장의 맥락에서도 공간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공연의 장소가 어떤 기관인가, 시설이나 용도, 목적에 따라 항상 나는 다른 도전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극장은 이미 특정 신체와 특정한 접근과 실천에 알맞게 디자인되어있으며 물리적인 제한도 많다. 나의 전략은 이러한 공간에서 새로운 움직임과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예술가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편하고 안정적이기를 바라지만 세상은 그렇게 안정적이고 안전한 곳은 아니다. 예술가가 세상에 대해 감수성을 갖는다는 것은 불편한 것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재리: 한국에서 공연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것이 춤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또 공연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고 피드백을 준 관객도 있었다. 관객의 불편함도 하나의 안무의 전략인가?
도노반: ‘이것도 춤인가?’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이 질문 속에는 질문자가 생각하는 춤의 형식과 가치가 있고 우리의 작업을 통해 그런 것들이 흔들렸다는 증언처럼 들린다. 퀴어적인 접근에서 춤이란 명료한 카테고리에 속하지 못한 다른 몸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통해 신체 취약성과 저항을 동시에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신체를 보여주고 훈련된 몸짓을 보여주며 그것을 ‘전문적인 춤’으로 규정하는 것에 균열을 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함께 견디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편안함과 안정성을 유지한다. 퀴어의 시간, 즉 퍼포먼스의 시간은 불편함과 예측 불가능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와 더욱 가까운 시간이다.
‘정상성(Normality)’을 질문하기
장수미: 언제 퀴어적인 것들을 찾는가? 당신에게 흥미 있는 대상을 찾을 때는 언제인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결정을 하는가?
도노반: 섹슈얼리티가 열쇠가 된다. 퀴어나 게이, 레즈비언 등에 대한 질문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회, 젠더화된 사회에서 나는 다른 경험을 하고, 나와 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한다. 주로 예술가나 활동가, 사상가들을 만날 때 퀴어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속한 문화, 식민지와 관련된 역사적 성찰에도 퀴어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퀴어 예술에서의 담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내가 사는 곳에서 퀴어적인 것을 발견한다. 나를 둘러싼 자연과 가족들과의 관계 역시, 도시에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장수미 ⓒ양동민
장수미: 나는 작업에서 퀴어적인 것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이나 레즈비언과 같은 다른 성에 대한 구분들은 나에게 현실적으로 관계되는 지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어떤 지점에서 내가 그들에게 속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생긴다. 이때,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되고 어떤 맥락에서는 내가 퀴어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내가 한국에 왔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퀴어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나의 가족들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퀴어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국은 ‘정상성’이 중요한 사회이다. 규범과 합의된 질서, 규정된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으면 종종 사회적으로 배제되기 쉬운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퀴어는 이슈가 되고 있으며 아카데미나 예술에서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 퀴어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의 사회나 문화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퀴어를 단지 섹슈얼리티나 젠더에서의 접근이 아닌 다른 질문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재리: 퀴어에 관한 나의 생각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것으로 제한되어있었으며, 소수자의 인권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퀴어에 대한 개념이 확장되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가 ‘정상(normal)’이라고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묻게 되었다. 퀴어가 정상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정상’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도노반: 퀴어의 개념들과 실천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왔던 지식과 예술에 대한 비판과 교차되는 지점이 있다. 이미 페미니즘의 운동과 이론을 통해 우리가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많은 비판이 가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나의 경험들과 퀴어의 접근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재리: 당신은 공연 투어를 통해 발견했던 문화적 경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문화와 문화 사이의 경계를 포착하는 감수성을 발견하는 것에 흥미가 있다고 했다. 특정 문화 내부에서 발견되는 창작의 가능성은 경계에서 발생하는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도노반: 나는 안무의 방식 중에서 특히 즉흥에 관심이 있다. 이것은 창작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개입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내가 하나의 구조를 제안했을 때, 그것은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며, 무용수와 관객의 관계에 따라 매번 변화한다. 내가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었다. 내 작업의 모든 것들은 바뀌었다. 내가 어떤 경계를 만났을 때 그것에 대해 감각적으로 인지하기 이전에 뒤로 물러서 나의 한계와 나의 경계를 인식하게 된다. 나의 경계 역시 불안정한 것이다. 내가 공연의 공간에서 다른 순간과 다른 생각을 제안했을 때, 관객들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다르게 반응했다. 이 순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안무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불편하고 어렵고, 안전하지 않은 어떤 순간에 나는 쉬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도전한다. 내가 일상에서 하는 결정들은 모든 게 쉽다. 특별한 시간과 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공연의 순간은 일상과 다른 경험을 생산하는 것이 특히 흥미롭다. 우리의 공연에서 누디티(nudity)나 접촉 등으로 생성되는 불편한 순간들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상황에 균열을 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적 코드를 사라지게 하는 전략이 된다. 그것을 전복시키는 것도 퀴어이다.

김재리 ⓒ양동민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사이
김재리: 퀴어적인 미학에 대해 묻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퀴어 운동가들은 평등을 요구하며 그것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촉구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활동은 운동과의 접점을 갖기도 하지만, 예술 형식 그 자체로 미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퀴어의 운동과 미학은 다른 것인가? 어떤 미학을 통해 퀴어 만의 예술 형식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도노반: 퀴어 미학은 기존의 지배적인 미학과는 매우 다른 지점에 있다. 퀴어의 미학은 오히려 비미학(un-aesthetics)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규범적이고 지배적인 미학에 대한 반응을 통해 만들어지며 새로운 시각을 깨울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지배적인 퀴어 담론들도 이미 상품화되어있으며 이미 구축된 이미지와 지식을 통해 예술 형식을 만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작업에서 퀴어 미학의 물질성과 관련하여 많은 위험 요소(risk)를 살피는 것과 감각을 강조한다. 또한 퀴어적 접근에서의 모든 나의 행위들을 어떻게 언어화할 것인가를 탐색하고 이것이 내 작업의 미학을 이룬다. 나는 영어와 아일랜드 고유의 언어(게일어)를 이중으로 사용하는데 게일어를 사용할 때 특별한 미학이 생성된다. 게일어는 땅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이것은 단지 내가 그 땅에 속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의 문제이다. 영어는 지배적인 언어이다. 게일어를 사용할 때의 나의 감각은 영어를 사용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특정한 언어가 가진 권력을 배제함으로써 특별한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김재리: 컨템퍼러리 댄스에서 자기 반영적(self-reflective) 안무의 접근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용의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몸들의 정체성에 대한 안무적 접근이 컨템퍼러리의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고려되기도 한다. 퀴어의 맥락을 통해 춤의 자기 반영성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도노반: 퀴어는 개인의 섹슈얼리티와 관계된 것이지만, 예술가로서 공동체 내부에서 다른 관계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캐나다 아티스트 그룹,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Mammalian Diving Reflex)의 예술감독 대런 오도넬(Darren O’Donnell)은 『사회적 침술(social acupuncture)』라는 책에서 예술은 침(바늘)과 같다고 얘기한다. 예술이 공동체 내부에서 특정한 역할과 기능을 하며 이는 예술가의 행위를 통해 실천된다고 강조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민족주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 그것이 민족이나 인종, 혹은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것이건 보이지 않는 어떤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건 그 내부 안에서 예술을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춤은 공동체 내부에서의 실천을 위한 모든 테크놀러지로 가득 차 있다. 이를 통해 공동체 내부에서 새로운 제안을 하고 더불어 예술형식도 생산할 수 있다. 우리는(안무가) 신체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왼쪽부터 김재리, Ruairi Donovan, 장수미, 김연임 ⓒ양동민
참고한 문헌

Butler, J. (1993). 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 NY: Routledge.

Minh-ha, T. (1989). Woman, Native, Other. IN: Indiana University Press.

Hennessay, K. (2014). A Choreographer’s Notes on Making a Dance about the Economy. The Performance Research, 19(5): 56-60.


장수미 : 안무가/무용수/공연자/교육자이다. 1973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1996년 중앙대학교와 2010년 독일의 에센의 Buehnentanz (Aufbaustudium) at Folkwang Hochschule(2002)에서 학사학위를, 2018년 네덜란드의 DAS Choreography, Amsterdam University of the Arts에서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2000년 한국을 떠나 독일과 스위스에 거주하면서 2010년까지 안무가 및 무용수로 활동했다. 컨템퍼러리 댄스와 다양한 bodyworks와 즉흥을 훈련했다. 그녀의 작업은 신체에 대한 존재론적 개념과 사회, 문화, 윤리(사회적 문법)오 개인의 역사를 가로지르며 춤과 안무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베를린의 HKT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Theater Freiburg, Kanton Basel에서 지원금을 수혜 받았다. Zurcher Theater Spektakel (2013) and SPAF (2013)에서 작업을 소개했으며, Sasha Waltz, Hans-Werner Klohe, Graham Smith, Joachim Schloemer, Philipp Egli의 무용수로 활동했다. Theater Freiburg and Tanzcompany St.Gallen와 서울의 LIG 아트센터에서 작업을 소개했다.


김재리_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드라마투르그 2011년 안무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3-2014년 국립현대무용단 드라마투르그를 역임했다. 현재 독립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면서 안무가 및 시각예술 작가와 협업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실천들을 이론으로 확장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고 개인 연구를 진행 중이며, 컨템퍼러리 댄스와 안무에 관한 몇몇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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