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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11.24 조회 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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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과 영화가 합쳐진, 우리가 만든 그 어떠한 것 : 안무가 이선아와의 대화

무용과 영화가 합쳐진, 우리가 만든 그 어떠한 것
: 안무가 이선아와의 대화

추경엽_영화감독

줌아웃 대화 움직임 영화감독 추경엽 인터뷰 관련 사진

Thomas Hahn


2016년 11월 4일 저녁, 제주시에 소재하고 있는 간드락 소극장으로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불이 꺼지자 어둠이 만들어졌다. 작은 문을 열고 나온 선아는 무대에 있는 스탠드를 키고 빛을 만들었다. 그러자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춤을 춘 선아는 옷을 입고 불을 꺼 다시 어둠을 만들었다.
문 앞에 앉아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단편영화가 상영되었다. 영화의 이야기가 전해지던 중 이미지는 정지되자 선아는 스크린 속에 있는 선아를 마주 바라보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다시 이미지가 흘러가고 멈추며 이뤄지는 선아춤은 반복되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공연도 마무리가 되었다.



줌아웃 대화 움직임 영화감독 추경엽 인터뷰 관련 사진

추경엽


추경엽
(이하 추) :

추경엽
(이하 추) :

공연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내가 본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씨네댄스’ 혹은 ‘댄스 영상’의 단어들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영상 안에 무용이 들어가거나 무용 안에 영상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한쪽의 장르가 한쪽의 장르 안으로 들어가서 기능을 하는 합쳐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무용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이 정확히 평행되어 서로의 예술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만들었고, 그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 관객들과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우선, 우리가 만든 그 어떤 것? 뭐라고 이름 짓는 것이 좋을까요?
이선아
(이하 이) :

이선아
(이하 이) :

글쎄요. Cine-Dance, ‘영화와 무용이 만난 공연?’이라는 말 외에 딱히 떠오르질 않네요. 그리고 이런 방식이 정말 새로운 건가요? 먼저 이번 작업 동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제주도에 있는 <제주 프랑스 영화제>로부터 춤 공연 의뢰를 받았고, 그쪽에서 요청했던 것이 가능하다면 영상이 있는 공연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제 작품 중 딱히 영상이 있는 작품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갑자기 의미 없는 영상 하나를 틀어놓고 춤추기는 싫었어요. 그러다 생각난 것이 추경엽감독님과 찍은 단편영화였죠. ‘영화제니깐 영화를 틀고 춤을 추는 건 어떨까?’ 그게 시작이었어요.
추 :

추 :

무용수들이 보통 공연 안에 영상을 가져 오잖아요? 왜 그러한 장치를 쓰는 걸까요? 저도 여러 편의 영상 디자인으로 공연에 참여 하기도 했는데요. 영상일을 하러 갔음에도, 무용을 위해 영상을 쓰지는 말자고 이야기하는 편이예요. 안무가는 어떠한 이유에서 영상을 사용하는 건가요?
이 :

이 :

개인적으로는 순수하게 몸으로만 표현해내는 작품을 좋아해요. 무용수의 몸짓 만으로 바다가 느껴지고, 바람이 느껴지는 그런거요. 영상을 사용하는 이유는 안무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기억이나, 꿈 등) 시각화 시키거나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싶을 때 사용하지 않나 싶어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영상으로 판타지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구요.
추 :

추 :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상의 작업은 좀 다른 경우인 것 같네요. 어떤 방식으로 작업 하셨나요?
이 :

이 :

영화 속에 ‘선아’라는 인물의 성격이 있잖아요. 영화 속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이번 작업 같은 경우 무용을 위해 영상이 들어온 경우가 아니라, 완성된 영화가 있고 그 안에 무용이 들어와야 하는 경우라 상황이 달랐어요. 어떤 장면에서 춤을 춰야 이유가 되고 흐름에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해야 했죠.
추 :

추 :

그런 게 재밌으셨나요?
이 :

이 :

네, 재밌었어요! 일단, 영화를 엄청 많이 봤어요. 몇 십번은 본 것 같아요. 계속 보다보니까 선아가 했던 동작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선아는 계속 하늘을 보네.. 계속 한숨을 쉬네..’ 영화 속에서는 한숨을 쉬고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지만, 그 한숨의 감정을 춤으로 이어나가면 어떨까? 장면을 찾아내고 무용으로 이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영화를 분석해서 보게 되잖아요.

줌아웃 대화 움직임 영화감독 추경엽 인터뷰 관련 사진

Thomas Hahn


추 :

추 :

저도 그런 부분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직 우린 이것을 어떻게 부를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런 공연이 더 개발되고 발전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관객들을 한데 모아 놓고 어두운 곳에서 화면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집에서 보는 것처럼 원하는 장면에 정지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영화를 중간 중간 정지 시키죠. 영화를 정지 시킨다는 행위. 그 부분이 참 신선한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무용이 들어오고 다시 영화가 진행되는 형식이 흥미로웠어요. 본인이 직접 출연한 영화여서도 좋았고, 혹은 다른 영화들도 무용수가 개입을 해서 영화를 보여줘도 새로운 예술 장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거죠.
이 :

이 :

이번에 작업 하면서 영화를 중간에 끊는 다는 것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감독님께서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해주셨죠.
추 :

추 :

왜냐하면 이번 작품은 영화가 아니고 선아씨가 만드는 영화 이상의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선아씨를 응원하는 거였죠. 무용과 영화가 합쳐진 그 무언가가 나왔어요. (웃음)
그런 게 라이브로 펼쳐지니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춤을 통해 그 인물을 이해하고 감정을 더 이해시켜주는 재미들이 있었어요. 이게 단순히 기능적으로 화면 안에 사람과 무대에 있는 사람을 이어주는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의 예술 작품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공연장의 분위기를 이야기 안할 수가 없네요.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것들이 좋았어요. 선아씨와 연락을 나누는 중에 ‘공연 장소가 계획했던 곳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가게 되었다,’ 라는 내용을 듣고 공연장을 더 유심히 봤는데요. 안무가로서 참 유연하다(flexible)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고, 그러한 것들이 현실로 부딪혔을 때 선아씨는 유독 유연하게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무대를 정말 잘 활용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스크린의 상태는 어떻게 말하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좋은 스크린은 아니었지만, 그 공간의 낡고 허름한 이미지들 그리고 영화의 이미지들이 전체적으로 참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픈 피아노’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너의 춤〉이라는 영화는 힘들고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이야기인데요. 음악을 만들어준 임유진(야광토끼)님이 피아노연주를 녹음을 하고 들려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피아노가 지금 아파요. 조율이 되지 않아서 우선 녹음해서 보내드립니다. 키보드로 새로 해야지 했는데 키보드로 하면 저런 쓸쓸한 느낌이 잘 안나요. 기억에서 왜곡되어 아련한 사운드라고 할까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 불협화음이 주는 아픔이 더 잘 살았던 것 같아요. 영화의 분위기 그리고 선아의 감정이 참 잘 표현된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은 최고인 것 같아요. 공간을 보면 어떻게 사고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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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Hahn
이 :

이 :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면서 배운 경험 같아요. 잘 갖춰진 대극장, 소극장, 갤러리, 성당에서 공연 할 때도 있지만, 야외공연을 하다보면 거리공연, 잔디밭, 바닷가 앞 등 참 다양해요. 장소가 정해지는 경우도 있고, 제가 장소를 선택할 수 있을 때도 있어요. 축제측에서 “선아씨가 춤출 수 있는 공간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예요. 선택해보세요.” 하면 그 안에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공간을 선택해요. 내 춤의 배경이 될 공간을 선택하는 일은 정말 흥미로워요. 이번 제주도 같은 경우, 영화 전용 극장이면서 기본 조명도 갖춰져 있는 (영화)극장에서 공연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요. 출국 전, 축제측으로부터 태풍 피해로 계획했던 공간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었어요. 빨리 다른 공간을 찾아야 한다면서 사진 몇 장을 보내주셨는데,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축제측에서 더 나은 공간을 찾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욕심이 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축제측의 결정을 따랐죠. 그렇게 정해진 곳이 간드락 소극장이었어요. 제주도에 도착해서 만난 간드락 소극장의 첫 느낌은 살짝 당황스러웠어요. 영화상명 및 무용 공연을 하기에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 후 간드락 소극장 대표님이 오셔서, “보시다시피 이 장소가 아주 훌륭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에요.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다음날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차분하게 준비된 공간을 보며 마음이 놓였죠. 재밌게도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공간이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작품과도 잘 맞았고요. 간드락 소극장 안에는 창고를 드나드는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요. 그 문을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 문이 무대 위 선아와 영화 속 선아가 드나드는 통로 역할을 해줬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있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활용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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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엽


추 :

추 :

맞아요. 자연스러운 것이 너무 좋았어요. 더군다나 저는 이런 공연 혹은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 손쉽게 펼쳐질 수 있겠다 생각됐어요. 꼭 자리를 만들고 형식을 다 갖춘 형태의 공연이 아니어도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춤이라는 것 혹은 그 외에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떠한 공간에 영상을 틀 수 있는 프로젝트, 화면이 비춰지는 스크린,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스피커 그리고 거기에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조명기가 있고 그 공간에 무용수만 들어오면 심플하게 사람들하고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야기 구성도 재밌지만, 공연을 보여주는 방식도 재밌었어요.
무용을 볼 때 이제는 극장을 대관해서 사람들을 불러서 공연을 소비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고, 영화도 큰 예산을 들여 만들어지고 있지만 극장에 사람들을 부르는 부분이 쉽지 않아지고 있어요. 자본이 크게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붙어서 작업을 하게 되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점차 줄어들게 되고 많은 의견 속에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지 방법을 잃게 되죠. 자존감과 관련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무용을 소통하는 방식, 영화를 소통하는 방식은 예전부터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진 방법이지만 이제는 그 기능이 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새 시대의 방향은 적은 인원이 즉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포착하는 예술의 형태가 새 시대를 대비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변화하고 있는 우리 예술계에 우리가 해야 할 새로운 시대 속 형태의 예술로 보이는 것 같아요. 대신 단점은 돈은 많이 벌지 못 할 거예요. 하지만 자존감과 관련해서 높은 가치를 지닐 수 있어요.(웃음)
이 :

이 :

감독님, 참 열려 있으신 것 같아요. 지금 말씀하신 내용도 그렇고 이번에 공연하면서 극장 스크린을 통해서도 느꼈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어서 잘은 모르지만, 스크린이 잘 펴지지 않았거나 구김이 있을 때는 그냥 봐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눈에 보이잖아요. 본인의 영화가 좋은 스크린에서 보여 졌으면 하는 것이 보통 감독님들의 마음일 텐데, 감독님은 스크린 상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어요. 전체적인 그림을 더 보셨던 것 같아요.
추 :

추 :

춤이었잖아요.(웃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야외 공연 경험에 관해 얘기 좀 들려주세요. 어떠셨어요?
이 :

이 :

2008년, 프랑스에 있을 때 처음으로 야외공연을 제안 받았어요. 신청서를 한번 내보라고요. 축제 측에서 공연료 지불은 따로 없고,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 자리에서 관객들이 돈을 준다는 거예요.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사람들이 모자에 돈을 넣어 주는 거요.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편견을 깨기가 쉽지 않았어요. 망설이다가 신청서를 냈고, 성당 옆에 있는 분수대에서 춤을 췄어요.
추 :

추 :

대박 쳤죠?
이 :

이 :

무대 장식처럼 분수대 앞에 접시 두개를 놨는데요. 사람들이 정말 돈을 주더라고요. 5유로, 10유로씩 내고 간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공연만 보고 사라져도 되는데, 도대체 이 돈을 낸 사람들은 뭘까? 농담 삼아 호텔로 돌아와서 돈을 세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어요.(웃음) 그런데 그때 느낀 게 정말 많았어요. 프랑스 관객은 아름다움을 느낀 만큼 돈을 내는 것에 익숙해요. 지하철 안에서도 정말 아름다운 연주가 있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돈을 내요. 암튼 그때의 경험으로 야외공연에 대한 편견이 완전 깨졌어요. 그 때 제가 공연했던 분수대는 100년도 넘은 분수대였어요. 공연 중 교회 종소리도 들리고, 새소리, 아기울음 소리도 들렸어요. 야외공연에서 이뤄진 공연은 어떤 무대 미술로도 그 느낌을 무대로 옮겨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추 :

추 :

극장에서 하는 공연보다 더 매력이 많았나요?
이 :

이 :

그럼요! 반면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도 많아요. 햇빛이 너무 부셔 눈이 안 떠질 때도 있고, 공연 도중 비가 쏟아질 때도 있어요.
추 :

추 :

그럴 때는 어떻게 했어요?
이 :

이 :

그냥 비 맞고 하는 거죠. 근데, 관객들도 비를 맞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그 모습에 저는 또 감동받아 더 열심히 했어요. 바닥도 미끄럽고 상황은 힘들지만, 묘한 에너지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주고받은 에너지가 좋았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 공연 후, 다음 참가자는 실내 극장으로 자리를 이동했죠.
추 :

추 :

눈 올 때 공연하면 너무 좋겠다.
이 :

이 :

눈 올 때는 감독님 영화 안에서 춤 췄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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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엽


추 :

추 :

배우로서 영화에 참여하고 난 후 어떠한 것들이 달라졌을까요?
이 :

이 :

많은 변화가 있어요. 제 작품들을 보면 얼굴이 머리카락에 가려진 채 춤을 추는 작품들이 많아요. 몸의 마디마디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배제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약간 컨셉처럼 된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머리를 묶고 춤을 춘 모습을 비디오로 찍고 보는데, 제가 너무 심각한 거예요. 제 표정이.. 그때 제 모습을 발견한 이후로는 얼굴을 드러내어 춤을 출 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런데 배우라는 것은 입술이며 미간이며 눈이며 다 드러내고 보이는 거잖아요. 영화 촬영을 앞두고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있었는데 촬영이 시작되고 감정에 몰입을 하다 보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어요. 배우도 무용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결국 집중하는 방식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배우라는 경험을 한 후, 무용 장면 장면에서 (나만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감정을 끌어내면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무용도 결국은 연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추 :

추 :

감정을 다룬 다는 것. 그건 똑같은 것 같아요. 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볼게요.
결혼을 하고 유럽이라는 문화 속에 있습니다. 이번에 오랜만에 선아씨의 춤을 보았는데, 선아씨의 춤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동양적이라고 할까요. 혹은 그 안에서 한국적이라고 할까요? 그건 선아씨 모르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 움직임의 변화에 동기를 준 이유들이 있었나요?
이 :

이 :

예전에는 움직임이 많고, 빠르게 움직였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겠지만 조금 덜 움직이지만 깊이는 깊어진 그런 춤을 추고 싶어요. 바라는 마음이죠. 요즘 주변에서 ‘성숙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적인 것은 한국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 봐요. 한국무용은 학부때 배운 것이 전부지만, 관심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프랑스 단체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 작업 초반, 학들과 춤 출 때 학을 깜짝 놀라게 하는 동작을 해 안무가에게 혼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춤이 차분해진 것도 같아요. 학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춤을 추다 보니 선을 많이 생각하게 되고요. 호흡과 선, 한국무용과 가깝네요. 그런데 저는 한국무용을 깊이 있게는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부분도 있고요. 지금의 이런 경험들이 제게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무용수랑 작업하시는 게 처음은 아니시잖아요? 무용수가 연기를 하는 것은 일반 배우들과 어떤 느낌들이 차이가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추 :

추 :

제가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기준은 ‘그럴듯함’에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믿어져야 한다는 부분의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구요. 제가 좋아하는 취향이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화면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선아씨가 보여준 하나의 연습장면을 보고 당시 큰 위안이 되었어요. 제 마음이 힘들 때 춤이 저를 토닥여준 순간이었어요. 그 감정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요. 그러려면 그럴 듯한 무용수가 꼭 필요했었던 순간이었어요. 배우가 춤을 추는 것과 오랫동안 춤을 추는 사람은 외형적 구조부터 차이가 나잖아요. 매일같이 자신의 몸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은 단 시간 안에 이룰 수가 없죠. 그런 의미에서 선아씨는 제게 참 좋은 배우였고, 감정에 대한 표현의 방법을 아주 잘 따라와 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선아’ 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표현할 때는 무용수 선아씨를 바라보았던 시간이 있었죠. 그리고 선아씨에게 잘 맞는 옷을 입히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을 했고,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고 그래서 <너의 춤>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선아씨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종환’을 연기했던 종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죠. 최종적으로 그러한 자연스러움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도 만날 수 있는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화 안에서 가장 밝은 이미지인 눈 내린 자작나무 숲에서 춤을 추는 ‘선아’가 있는데 그 춤을 본 ‘종환’이나 관객들이 그 춤의 아름다움으로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선아라는 인물이 영화 안에서 춤을 출 때 어떤 생각들이 났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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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Hahn


이 :

이 :

사실, 일단은 너무 추웠어요.(웃음) 발가락이 안 움직일 정도로 마비가 왔었거든요. 감독님이 맨발로 춤을 추자고 요구하셔서 눈 속에 발을 쑥 넣었는데, 그때 마비가 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부츠를 싣고 다시 촬영을 했었는데 ‘이 상황을 두 번, 세 번 만들면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들더라고요. 모두가 고생하지 않게 한 번에 성공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한 동작, 한 동작 움직였어요. 스치더군요. 지금 다시 보면 춤이 참 간단해요. 그런데도 저는 다시 그렇게 추지 못할 것 같아요. 그 순간에만 나올 수 있었던 감정의 몸 짓 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위로가 필요하다 느낄 때 이 장면을 찾아보곤 해요.
추 :

추 :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든 사람들이나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도요.
이 :

이 :

최근에 댄스필름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받았던 시간이 있었어요. 인터뷰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느낀 것이 우리가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스웨덴에서 찍은 짧은 영상을 추감독님에게 보여드렸고, 그것을 보시고 난 후 감독님께서 마음의 힐링을 느꼈다고 하셨죠. 얼마 후, 다시 그것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하셨고요. 그렇게 해서 <너의 춤>이란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을 위해 저는 또 다시 그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어요.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게 모티브가 되어 영화가 되고 그리고 영화가 모티브가 되어 다시 공연이 되는 과정. 이 과정이 참 흥미로운 거 있죠. 주고받는 예술로서의 흥미로움. 영화 촬영은 제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우리 영화가 개봉한 것도 기쁘고, 공연이란 형식으로도 시도할 수 있어 참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감독님!
추 :

추 :

저는 그러한 새로움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공연을 보고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무용과 영화, 우리가 만든 그 어떠한 공연? 곧 답을 찾겠지만, 새로운 시대의 예술작품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뉴 제너레이션 무용수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선아씨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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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엽


관련 영상 링크 : <너의 춤>




추경엽_영화감독 영화의 이미지를 책임지는 촬영, 조명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영화에 대한 깊이를 이해하고자 영화 연출을 한다. 또한 연극, 현대무용공연에서 영상감독으로 다수의 경험이 있어 공연 이미지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선아_안무가 이선아의 춤은 신체의 작은 부분들이 섬세한 연결 과정을 통해 음악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주요 안무작으로는 <Performing Dream>, <Waves>, <Touch!> 등이 있으며, 작품 <Waves>는 2014년 프랑스 죠셋 바이즈 그르나드(Josette Baiz Grenade)무용단에 전수되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 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의 작품 <Light Bird>, <Silent Dream> 무용수로 활동 중에 있다.

추경엽_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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