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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6.09.29 조회 1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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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커져버리는 것들:
공연예술가 정금형 인터뷰

현시원_큐레이터·저술가

정금형과의 대화는 2016년 9월 11일 일요일 오후였다.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는 <개인소장품>전이 열리고 있었고 작가는 내일 미국 포틀랜드 PICA(Portland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의 Time-Based Art Festival에서 <7가지 방법>을 공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아래 인용한 문장을 생각하며 정금형을 만났지만 대화는 이보다 재미있었다. "정금형의 시스템은 외부의 간섭 없이도 그의 구조를 획득한다. 헬스 트레이너로 일했던 정금형이 헬스기구를 전시장 안으로 끌고 들어왔을 때, 연기와 무용을 전공한 정금형이 인형을 데리고 무표정하게 무대 위에 섰을 때,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따기 위해 프로그램을 이수한 정금형이 카메라를 놓고 홀로 심폐소생술을 연습할 때 작가 정금형은 언제나 정금형이다. 그러나 작가는 언제나 같으면서도 다른 저 너머의 존재를 연습하고 연기하는 중이다."[1]



줌아웃 대화 큐레이터·저술가 현시원 인터뷰 관련 사진



극장의 조건



현시원 :

현시원 :

어제(2016년 9월 10일) <개인소장품>(아뜰리에 에르메스, 2016.8.26-10.23)전 <가이드투어>를 봤어요. 역시나 중간에 흔들림 없이 관객들과의 시간을 끌고 나가시더군요.
정금형 :

정금형 :

룰을 정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해야 할 것이 달라지는데 어제는 극장의 규칙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사람들을 통솔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저만 말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했어요. 극장의 관객처럼 볼 수만 있지 전시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었죠. 개인적으로 각자 자기 시간을 가지고 관람하는 평상시 전시장의 룰이 바뀐 거죠. 공연자의 입장이 되어서 극장의 조건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극장이 아니니까 하나하나 말로 규칙을 정해서 전달해야 하는 것이었죠.
현시원 :

현시원 :

빈 시간을 보내는 방식의 모든 게 정금형 목소리를 통해서 결정되는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마지막에 전시장 뒤편에 놓인 드론까지 다 설명하셨지요? 소장품에 관련한 사건들을 공동 추적하는 기분도 들었는데 그 중에서 거짓말, 허구로 말한 것은 없나요?
정금형 :

정금형 :

완전히 허구인 건 없었어요. 약간 과장을 하거나 생략을 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즉흥적으로 결정한 사항들도 몇 있었어요. 각본이 있었고 이렇게 저렇게 진행해야 되겠다는 있었지만 하나 하나 대사를 만들어서 계획대로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어요.
현시원 :

현시원 :

어제 <가이드 투어>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2014년 봄 시청각에서 열린 기획전 <HOME/WORK>(시청각, 2014.3.21-4.26) 때부터 금형씨랑 자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금형씨가 작업을 이루는 방식은 '독립적인 것이 무엇인가' 몸소 행동으로 해결합니다. 바라는 것도 없고 다음 단계로 굳이 이동해가는 서사가 없어요. 정금형은 무엇인가 마치면 그것에 대한 소회가 정말 명확한 거 같아요. 나는 뭘 목표했고 뭘 달성했는지가 선명해요. <가이드 투어>에서 처음에는 구매하는 방식 알려주는 것 같다가 구매하지 않는 방식 알려주다가 결국에는 아 이 사람은 자랑스러운 사람이구나.(웃음) 또 하나는 작년 연말에 공연한 <재활훈련>은 정금형과 마네킹의 몸이 훈련하는 과정을 계속 보는, 3시간에 육박하는 스케일이 큰 공연이었잖아요. 시선이 몸과 기계의 고군분투에 집중이 되었는데 <가이드 투어>는 시선이 전시장 앞뒤로 분산되고 시간이 흩어지는 특성이 있었어요. 귀는 듣는데 눈은 계속 움직이면서 관람했어요.
정금형 :

정금형 :

계속 언어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그게 당연한 거 같아요. 사실은 전시장에 있는 비디오도 보고 작품도 보고 통제 상황 하에 설명을 들으면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까 타진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공연처럼 원맨쇼로 나만 보게 해야지 했다가 동선 상 안되겠다 싶어서 다른 걸 보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는 투어를 꾸렸어요. 사실 1시간 30분 되어서 제가 가도 된다는 말 했을 때까지 나간 관객이 한 명도 없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죠.
현시원 :

현시원 :

금형씨에게 관객 또는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떤 의미인가요? 통제된 룰 하에 확신을 갖고 몰입하는 걸 보면 각각의 공연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라는 게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닌 거 같아요. 마네킹에게도 관객에게도 좌지우지 안 되는 기술을 습득하여 시공간을 지탱하는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금형씨는 공연을 보신 분들을 관객보다는 증인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 적 있죠.
정금형 :

정금형 :

속으로는 영향을 받든 안 받든 사실 공연을 보러 갔는데 나 때문에 공연자가 영향 받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럽지 않나요? (웃음) 나는 작품이 되어 있어야 하는 거니까. 나간 사람보다는 여기 있는 사람을 신경 써야 해요. 매회 공연마다 관객들 사이에서 생기는 특유의 분위기, 기운이 있어요. 하필이면 바로 그 날, 그 시간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관객 캐릭터라고 할까요? <재활훈련>을 공연할 때도 어떤 날은 관객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어떤 날은 의자를 극장 객석처럼 거의 고정된 상태로 사용했던 때도 있었어요. 관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관객이 있어야 공연을 할 맛(?)이 생기는 것 같아요. 혼자 연습할 때는 해야 하니까 겨우겨우 하기도 해요.
현시원 :

현시원 :

금형씨가 마네킹을 이 녀석이라고 부르고 하는 것도 저는 기억이 나요. 마네킹을 의인화하는 것을 넘어서 금형씨가 인형이 되고 마네킹이 실제 산 육체가 되는 혼동이 일어났어요. 공연 때마다 일어나는 상황은 스크립트로 쓴 건 아니고 머릿속으로 굴려요.
정금형 :

정금형 :

보통 공연의 텍스트를 쓰거든요. 어제 공연 같은 경우는 너무 내용이 많아서 다 못 쓰겠더라고요. 사실은 해봐야지 알겠는 것들이 좀 있어서 이번에는 미리 투어 시작할 때 관객들에게 말을 했어요. 리허설을 거치지 않은 거라서 가실 분들 미리 가시라고 말이에요. 1시간 30분을 예상하지만 딱 그렇게는 안 될 거라고 전했죠. 어제 하다 보니까 제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스스로 너무 웃겼던 게 여러분은 저에게 말을 거실 수 없다고 해놓고, 제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면 언제든지….그때 깨달은 거예요.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수습했어요. 저도 모르게 언제든지 안 들리면 저에게 말을 해달라고 할 뻔 한 거예요.(웃음)
현시원 :

현시원 :

이제껏 정금형 작업을 보며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은 금형씨가 직접 깨우치며 한다는 점이에요. 2014년 초에는 신작을 위해서 간호학을 배우고 있다고 했고, 이전 작업에도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하기 위해 운전자격증을 땄죠. 필요한 기술을 몸소 장착하고 기술을 통제하려 하고, 기술을 가진 기계는 금형씨랑 반복적으로 세상을 습득하는 듯 보여요. 이 깨우침은 뭐죠? 뭘 배우고 있는 것은 왜 중요할까, 개인소장품이라는 게 금형씨가 배우고 정복한 도구들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정금형 :

정금형 :

누군가가 정금형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면 재밌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전시는 연출된 상황이고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안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개인소장품>에서 물건의 선택과 배치는 미리 정한 법칙을 작용했지만 시각적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도 중요하게 고려했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단순한 줄기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층위의 가지들은 쳐냈어요. 뭘 자꾸 배우는 것은 일단 관련된 기술을 배우고 지식을 얻어야 작업으로 어떻게 접근할지 방법도 찾게 되요. 기술적인 부분을 모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좀 위험한 것 같아요. 기술이나 관련 지식을 배우다 보면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깨우치게 되곤 해요. 그런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처음 상상했던 것을 가능하게 할 억지스러운(?)방법도 찾게 되요.

특정한 연극적 상황으로서의 전시



현시원 :

현시원 :

지금 하는 대화에서도 거짓말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웃음) 저는 전시장이나 극장 및 무대에 딱 관심이 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림을 경험하는 상황은 가끔 심각하게 생각하곤 했어요. 어떤 상황에서 작품을 오래 또는 빨리 볼 수 있는 걸까 생각하는 것도 한 축이고요. 자주 말하면 재미없지만 시청각 맞은편에 있는 종교집단이 있거든요. 무술 하는 곳이기도 해요. 처음 시청각에 왔을 때 저는 그 사람들이 모이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이곳은 어떤 곳일까. 2015년에 <재활훈련> 같이 하자고 이야기했을 때도 시청각이 지금 여기 있지만, 딴 데로 갈 수도 있다고 대화 나눴었죠. 금형씨가 시청각이 이동할 수 있는 개념이 재밌다는 그런 말을 했었죠.
정금형 :

정금형 :

시청각이라는 이름 가지고 장소는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엄청 신나게 느껴졌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같이 문래예술공장에서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재활훈련 의자 조립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시청각 두 분이랑(안인용 공동 디렉터, 정민구 사진가) 울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연극적인 상황에 관심이 많아요. 극장이든 뭐든 간에 가짜 상황이 만드는 디테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은 약속에 의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제 작업은 그런 상황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뮬레이션에 계속 관심이 있어요. 심폐소생술 훈련이나 화재대피교육 등은 가짜로 실제 상황을 연출하고, 가짜인지 다 알면서 실제처럼 연습하는 거잖아요. 그런 상황은 저에게 연극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줘요. <개인소장품> 전도 이전 공연에 썼던 오브제를 가져다 놓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나온 특정한 연극적 상황이에요. 공연에 썼던 오브제가 있고 비디오가 있고 한데 그것들이 모두 수집된 소장품 역할로 전시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거죠.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다는 극적 상황인 거예요. 제가 없어도 작동하는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현시원 :

현시원 :

<재활훈련>(2015년 12월 27-29일)은 세 시간에 육박하는 공연이었고 그 시간 동안 금형씨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앞으로 정금형이 어떤 마네킹과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생각하게 했어요. 어제 <가이드 투어>때 금형씨가 <재활훈련>에서 사용한 지퍼 벗기는 연습용 옷을 소개할 때 실제 옷을 벗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했어요.
정금형 :

정금형 :

벗을까도 잠시 생각도 했던 거 같아요. 막상 그때는 까먹고 있었어요. <가이드투어>는 아직 여러 가능성이 있는 거 같아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아직 좀 중간 상태였던 거 같아요. 완전히 연극적인 상태로 가거나 정말 정금형의 실제 상황으로 가거나. 그런데 있는 사실을 가지고 공연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완전히 짜여진 공연은 아니었던 거죠.
현시원 :

현시원 :

공연에서 언제나 눈빛에 의해서 상황이 통제되는 게 있어요. 말을 통해서도 지시가 되지만 눈빛으로 압도해요. 어제도 '저를 믿고 따라와주세요' 하니까 정말 믿음이 갔어요. 아 믿어야겠다.
정금형 :

정금형 :

제가 얼마 전에 <소방훈련시나리오> 했을 때 제복을 입고 통제를 해야 했거든요. 그 습관이 저에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통제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정말로 좀 있었어요. 책임감. 제가 정하지 않으면, 전시장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안 되는 특수한 상황이죠. 무대와 객석이 나눠진 것도 아니고 공간이 넓어서 자유롭게 저를 따라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로처럼 나눠진 소장품들 사이를 안내하고 걸으면서 가이드 하는 방법이 필요했죠.
현시원 :

현시원 :

<개인소장품> 전시장에 영상이 상영되는데 과거 작업에서 추출된 장면들이죠. <사용법>이라는 제목이 붙었어요.
정금형 :

정금형 :

거의 다 5분 이내고요 긴 것도 6분 정도예요. 일단은 짧게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관객들이 스쳐 지나가듯이 보게 하고 싶었어요. 편집하다 보면 공연의 맥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게 안 했어요. 지나가는 한 부분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썼어요. 영상에서는 전체 공연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어요. 뭔가 아 이렇게 해서 이렇게 끝났구나 해소되는 느낌 없이 다음으로 뚝뚝 끊기면서 넘어가게끔 했어요. 그렇게 끊겨진 장면들이 모여서 하나의 호흡으로 쌓이기를 바랐어요. 이번 전시 자체가 공연 별로 분류한 게 아니라 다 섞은 다음에 유형별로 정리를 한 것이었고 영상도 공연 별로 배치한 게 아니에요. 여기에는 어떤 것들 어떤 물건들 이렇게 분류한 것도 있고 어딘가는 어떤 장면들, 예를 들면 전원 켜는 장면만 모아놓거나 굴러가는 장면만 모아놓거나 하는 식으로 분류했어요. 장면이 한 비디오에 모여지는 각각의 이유가 있어요. 물건들이 모여지는 방식을 기준으로 편집했어요.
현시원 :

현시원 :

<가이드 투어>에서 유일하게 감정이 들어간 순간은 딱 한 번이라고 생각해요. 가면 하나가 사라졌다는 말을 하면서 이 사물들이 사라질 거 생각하면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소비자로서 물건을 구매해왔는데 이상한 소비자인 거잖아요. 두 시간 넘게 서있는 일이 허리가 아프긴 했는데(웃음) 저는 금형씨가 끝까지 그 페이스로 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정금형 :

정금형 :

제 친구 하나가 한국말 전혀 모르는 상태에 끝까지 동행했어요. 관객들이 막 나가고 갤러리에서도 불안해하는 걸 느꼈는데 제가 전혀 신경 안 쓰고 하는 게 재미있었대요.

줌아웃 대화 큐레이터·저술가 현시원 인터뷰 관련 사진



현시원 :

현시원 :

2011년 <휘트니스 가이드>도 미술관에서 했던 공연이에요. 그때 두산아트센터 Space111이 제게는 미술관으로 느껴졌거든요. 미술관에 앉아있는데 눈동자의 자유를 어느 정도 통제 하에 허용하면서 금형씨가 움직였던 거죠. 기구를 바꿔가며 자리를 이동했고 관람객은 앞뒤좌우 이렇게 금형씨를 따라 앉은 채 자리의 방향을 이동했었죠.
정금형 :

정금형 :

사실 연극 무용 미술 이렇게 나누면 아주 전형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안에 엄청난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 점이 흥미로운 결정체죠. 연극에서도 무대를 어떻게 쓸 것이냐 관객을 어디다 둘 것이냐, 프로시니엄 극장이 필요하냐 뻥 뚫린 스튜디오가 필요하냐에 따라 구비되는 장치와 기술, 인력이 다르죠. 만약 상황에 맞출 수 있다면 미술관이나 극장이든 상관없잖아요. 두산아트센터도 극장이었지만 객석을 치울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작품을 2015년에 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했었는데 그때는 명백한 미술관이었죠. 이 공연은 극장과 객석이 분리되어야 해, 그러면 미술관에서 극장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게는 미술관이다 극장이다 큰 차이를 느끼고 분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시청각에서 전시하면서 주제에 맞게 전시를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제가 작품을 먼저 만들고 그걸 미술관에서 초청할 경우, 작품에 맞는 조건의 공간을 미술관에서 만들어줬어요. 극장에서도 객석을 치운다든가 해줬기 때문에. 제가 미술관이나 극장의 차이가 여기선 이렇고 저기선 이렇고 저렇다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개인소장품>처럼 정말 전시라는 걸 해야 할 때, 전시라는 형식을 빌려서 뭔가 해야 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이런 생각들이 필요하게 되는 거예요. 아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없이 뭘 할 수 있을까. 그럴 때는 미술관이나 극장의 차이가 아니라 전시와 공연의 형식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 같아요.
현시원 :

현시원 :

저는 전시라는 형식과 글쓰기 형식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금형씨에게 전시와 공연이 차이가 있다면 어떤 차이가 발생하나요?
정금형 :

정금형 :

시원씨가 다루는 매체니까. 재료니까요. 저는 전시와 공연을 생각하자면 그때그때 핑계거리가 생겨서 좋은 거 같아요. 그 매체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잖아요. 이쪽과 다른 쪽에서 또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현시원 :

현시원 :

저는 연극 무대를 볼 때 너무 재현적이거나 표현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 금형씨 작업을 보면서 조각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기술적 문제=정금형x이정우x잭슨홍>도 천천히 움직이잖아요. 공연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방식이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움직일 때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정금형 :

정금형 :

<심폐소생술연습> 때도 사람들이 조각 같다고 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 아주 천천히 움직이니까요. 어제의 <가이드투어>는 전시장에서 극장의 룰이 어떻게 적용되는가가 중요했어요. 시작할 때 룰 이야기하는 상황, 진입해서 전시된 소장품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상황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죠. 앞의 규칙 말하는 부분이 좀 중요했던 것 같아요.

부위 별로 따로 해체된 것들



현시원 :

현시원 :

지난 해 시청각에서 열린 <무브 앤 스케일>(시청각, 2015.10.09-11.14) 전에 참여했을 때 금형씨가 엄청 열심히 했잖아요. 공연을 하러 해외에 갔을 때 그 과정을 다 촬영하고 공연하는 데 필요한 사물들이 보관된 대형물류창고에도 가셔서 촬영한 장면이 전시장에서 상영됐었죠. <투어자료(Tour Material)>라는 설치 작업이었는데 8월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한 <7가지 방법> 무대 설치 과정, 9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공연한 <휘트니스 가이드> 운송 과정, 9월 네덜란드 로테르담 씨어터에서 공연한 <심폐소생술연습> 포장 장면을 모두 촬영해 오셔서 놀랐었어요. 금형씨에게 중요했던 것은 진열, 배치하는 것도 있지만 자기 노동력을 충실하게 수행 증명하는 거였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전시장의 배치와 디스플레이는 어떻게 중요했나요?
정금형 :

정금형 :

이번 에르메스 전시에서는 끝말잇기처럼 배치를 했어요. 유형별로 나누자는 계획이 먼저 생긴 다음, 어떤 순서로 어떻게 배치할까 하는 건 끝말잇기로 해결이 됐어요. 사물들을 거의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거였어요. 보통 제 공연에서는 녀석들을 이렇게 저렇게 막 결합시켜서 이상한 조합이 되어있고 하잖아요. 떼어 놓을 만큼 떼어놓고 머리는 머리대로, 머리 안에 있던 카메라도 떼어놓고, 뇌, 눈알, 내부 장기들도 꺼내서 장기들끼리 모아놓았고요. 그렇게 분리해놓으니 그동안 따로 따로 생각해왔던 각 공연의 물건들이 제가 몰랐던 어떤 질서를 이루고 있더군요. 그렇게 각 작업들이 모여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다가 조립 영상도 필요하겠다 생각했고요. 비슷한 방법으로 공연 영상들도 다시 분류하고 정리했어요. 사실 나름의 신작인 무인항공기에도 이런 저런 신체부위를 달았지만 그렇게 조립된 모습은 전시장에서 볼 수 없고 부위별로 따로 따로 해체되어 있죠. 그 놈은 여전히 진행 중인 작업이에요. 계속 앞으로 완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어제 <가이드투어>는 좀 큰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뭔가 큰 게 되어버렸어요.
현시원 :

현시원 :

정금형 작업 모든 게 그런 거 같아요. 금형씨는 준비기간, 연구기간이 길어요. 뭐 하나를 완성하면 그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금형씨 작업의 다음 번으로 가는 것이 있죠. 마네킹 살 때 이 녀석이 <재활훈련>인 줄 몰랐지만 <재활훈련>에 등장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셨었어요. 오랫동안 끝까지 밀어붙이고 일이 계속 커지는 거 같아요.
정금형 :

정금형 :

그게 다행이었던 거 같아요. <재활훈련>으로 완성된 공연을 2014년에 시작했어요. 2014년에 레지던시하면서 제작 지원을 조금 받을 수 있었는데 완성해서 공연할 장소는 정해지지 않은 채로 2015년까지 작업하게 되었어요.
현시원 :

현시원 :

<재활훈련>은 제작 과정 면에서도 능동적인 작업 같아요. 금형씨가 작품을 생산하는 양식은 굉장히 독립적인 거 같아요. 어쨌든 큰 덩어리를 더 크게 하나 만드는 거 같아요. 오래 걸리긴 했지만 2014년 초부터 2015년 말까지가 연구기간이 된 거잖아요.
정금형 :

정금형 :

그걸 제가 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지난 해에 시청각에 제안해서 같이 제작하게 된 거잖아요. 누가 초청하지 않아도 극장 대관해서 하고 독립적으로 완성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예산도 모자란 상태였고요. 아 이거 어떻게 완성하지 더 이상 끌면 안 돼 이런 생각을 했는데 연말에 <재활훈련>을 끝내서 너무 좋았어요.
현시원 :

현시원 :

2010년 페스티벌 봄에서 공연했던 <기술적 문제=정금형x이정우x잭슨홍>는 임근준 선생님이 잭슨홍 작가와의 협업을 제안하셨던 거고 그 밖의 작업들은 어떤가요? <심폐소생술연습>은요?
정금형 :

정금형 :

<심폐소생술연습>은 기금을 받아서 레지던시 기관에서 작업했고. <휘트니스 가이드>도 아이디어는 있고 연습은 하던 차에 공간이 없었는데 두산아트센터에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현시원 :

현시원 :

제가 2011년도 <휘트니스 가이드>를 볼 때는 두산아트센터가 공연장이 아니라 전시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보러 갔었는데 전시장에서 하는 공연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관람객들 통제하는 게 재밌었어요. <재활훈련> 때도 바퀴 달린 의자라는 게 전 재밌었어요. 관람객들이 움직일 수 있었잖아요. 금형씨가 지난해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금형 수기'를 쓰신다고 했던 것도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정금형 :

정금형 :

사실 수기를 완성해보려고 야심차게 시작했죠. 그러다 <무브 앤 스케일> 하니까 이거부터 먼저 정리 해보자, 그러다가 재활훈련에 대해 써보자 하다가…. 수기는 어느새 잊고 있었네요. 다시 써야지. (웃음) 그런데 <재활훈련> 관련된 글은 시청각에 들고 와서 보여드렸었죠!
현시원 :

현시원 :

요새는 뭘 배우고 있었어요?
정금형 :

정금형 :

요새 무인항공기 배우고 있고 잠깐 쉬고 있어요. 전시장에 있던 큰 기체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전시장에 있어서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이런저런 교육장이 있는데 저는 어쩌다가 대전에서 하게 돼서 왔다 갔다 했어요. 이게 이 세계는 발을 잘못 들이면 안 될 거 같아요. 부품 하나 하나 다 사야 해요. 배터리 따로 사야하고 그래야 해요. 너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어느 동호회 회장님께서 저보고, 누가 아직도 이렇게 유행 다 지난 이런 큰 기체를 사냐, 요새 얼마나 가볍고 좋은 게 많은데 이렇게 무겁고 비싼걸 샀냐, 차도 없으면서, 하고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그래도 좋은 점이 딱 하나 있긴 있지, 이런 거 들고 다니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고는 와, 저 사람 뭐 좀 하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바로 인정해준다고요. (웃음) 저 그런 거 좀 좋아해서 만족스러워요.


[1] 현시원, '정금형의 살아있는 재료들', "제16회 에르메스재단미술상 정금형-개인소장품", 2016, 5쪽.




정금형_공연예술가 호서대 연극영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국내외 다양한 페스티벌과 전시에 참여했으며, <유압진동기>(2008), <7가지 방법>(2009), <기술적 문제=정금형x이정우x잭슨홍>(2010), <휘트니스 가이드>(2011), <심폐소생술연습>(2013), <재활훈련>(2015), <소방훈련시나리오>(2016) 등의 공연을 통해 무용가, 퍼포머, 안무가, 작가로서의 독특하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제16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이며, 8월 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첫 개인전 <개인소장품>을 통해 또 다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현시원_큐레이터·저술가 <지휘부여 각성하라>(공간 해밀톤, 2010), <천수마트 2층>(국립극단, 2011), <13 Balls-잭슨홍 개인전>(아트클럽 1563, 2013) 등을 기획했으며 2013년 11월 전시공간 시청각을 열었다. 저서로 『사물유람』(현실문화연구, 2014) 등이 있으며 『래디컬 뮤제올로지』(클레어 비숍, 현실문화연구, 2016)를 공역했다. 최근(2016년 8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 기념전에서 뮤지엄루트라는 기획 아래 '라이팅밴드(www.writingband.net/2016)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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