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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20.09.15 조회 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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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음성해설 워크

무용음성해설 워크숍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시도는 새로운 시도를 낳는다

이경구_고블린파티 안무가

저는 오늘도 연습실을 가기 위해 보행신호 음성안내가 있는 신호등을 건넙니다. 그리고 문턱이 낮은 저상버스를 타고 먼 길을 오고 갑니다. 집으로 돌아와 TV를 켜면 우리의 일상을 잠식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이야기가 들끓는 뉴스가 나오고, 뉴스에서는 언제나 수화통역사의 손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누군가의 눈물과 목소리로 만들어진 이들 물리적 장치는 제 평범한 일상의 일부입니다. 제가 가고자 하고 멈춘 곳에서 저마다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제 일상에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오늘의 사유와 행동을 결정 짓는 창작 작업과 극장에는 모든 이들과 공존하고 있는지 질문해봅니다. 그곳에는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미흡하거나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의 일상에 있을 수 있었던 나의 작품과 나의 극장에 저는 소홀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발견하지 못했다는 고백으로 이 글을 시작합니다.

저는 올해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약 한 달 동안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프로듀서그룹 도트와 아시아나우(AsiaNow)가 기획 및 주관하고 (재)국립현대무용단, (재)전문무용수지원센터, 프로듀서그룹 도트, 아시아나우(AsiaNow)가 공동 주최하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후원한 워크숍으로 움직임과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무용공연을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더불어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 장애인(전맹,저시력)의 공연관람 접근성 확대를 위해 무용음성해설 창작을 개발하고 무용음성해설가를 양성하는데 취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개척되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들추어내고자 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 공연학자, 기획자, 드라마트루그가 모여 뜨거운 담론을 펼쳤습니다. 과연 기록되지 않는, 보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춤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설명이 비장애인 관객과 장애인 관객의 동등한 예술 감상에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선 어떤 시도가 행해져야 할지, 공연을 만들어가는 많은 이들의 질문 안에 제 질문이 있었습니다.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의 프로그램은 장애 인식전환을 위한 <입문과정>과 음성해설 <창작실습과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창작실습과정의 일부로 무용음성해설 개발을 위한 질문과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4인의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음성해설자 엠마 제인 멕헨리(Emma-Jane Mchenry)의 <움직이는 단어(Moving words)>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전문가 그룹에 속하여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나온 이야기와 질문들을 이 자리에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입문과정.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장애를 바라보는 장애학의 새로운 관점>
-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
7월 7일,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의 첫 발걸음으로 김도현 강사의 <장애학의 도전-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가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김도현 강사는 우리가 있는 공간에서 앞줄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뒷줄에 앉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게 했습니다. 평소에 보는 지점이 아닌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의 양은 상대적으로 다를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생각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발견되는 이러한 상황은 세상의 중심에 자리 잡은 비장애인이 볼 수 있는 것과 변방의 자리에 선 장애인이 볼 수 있는 것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와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인식을 전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변방의 시좌로 함께 장애를 관찰하고 질문해보자는 그의 말에서 소수자를 향한 편견을 파헤치고,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냉철하게 통찰하고자 하는 그의 도전 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에는 장애 혹은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2000년대 이후 인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부터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정립되어 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여전히 장벽이 존재하는 제도에 맞서서 ‘장애인도 인간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상대로 비일비재하게 싸우는 걸 바라볼 때 마음이 아프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고 사라져야만 했던 사람들과 지금도 변방으로 쫓겨나고 있는 이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어 참담했습니다.

이날 처음으로 장애인의 정의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법률에서 장애인을 정의한 바에 의하면, 장애인에게 사회적 참여 제한이라는 사회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장애인의 개인적 차원과 신체적 차원의 손상으로 인한 것입니다. 1999년 한국의 장애인복지법 또한 장애인을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표기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에 대한 주류 사회의 정의에 반기를 들었고, 오랫동안 토론과 논의를 거쳐 발의한 법률에서 장애를 아래와 같이 재정의 하였습니다. ‘장애: 장단기간 혹은 일시적으로 발생한 신체적 정신적 손상, 기능상실, 질병 등이 사회적 태도나 문화적, 물리적 장벽으로 인하여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가져오는 상태를 말한다.’

김도현 강사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같은 목적지를 가고자 하는 상황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일반적인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없어 목적지를 가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장애인이 가진 장애에 문제가 있는가, 중간 시스템 역할을 하는 버스에게 문제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이 질문은 장애인들이 향유하는 문화가 제한되어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쉽사리 걸음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장애가 불편함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저의 안일한 고정관념을 깨트렸습니다. 흑인은 피부색으로 인해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을 통해 노예가 되었고, 장애는 손상의 문제가 아니라 제약을 느끼게 하는 물리적 장치들로 인해 사회생활에 제약을 가진 장애인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인식한 장애인의 세계를 뒤엎는 생각의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1) 제도화를 위해 중증장애인 30인이 휠체어에서 내려 한강대교에서 무릎이 피범벅이 될 때까지 건너 투쟁했다는 사실은 국가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생명권’조차 기어코 싸워야만 얻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당연한 권리를 막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 지금도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예감케 하였습니다.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의 첫날, 심각한 자기반성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무용공연을 만들고 있는 안무가임과 동시에 장애인 관객들의 극장으로의 접근을 막고 있는 장벽을 만드는 안무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극장과 공연이 예술가와 관객들을 잇는 중간 시스템이자 물리적 장치라는 것을 인식한 다음에는, 공연을 만드는 이들 모두가 장애인 관객이 제약을 느끼게 하는 장벽을 어떻게 허물어 갈 것인지 다각화하여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제 시점에서 비장애인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김도현 강사가 전한 이야기를 토대로 장애인 관객들을 위한 공연이 아닌, 장애인 관객들도 함께할 수 있는 공연을 위해 변방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여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예술가들에게 되묻고 싶어졌습니다.

Emma-Jane Mchenry-<Moving words>
창작실습과정-1. 엠마 제인 멕헨리의 <움직이는 단어>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시도는 새로운 시도를 낳는다.
무용음성해설 워크샵의 입문 과정 이후 4인으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공연학자 손옥주, 드라마트루그 김재리, 와이즈발레단 대표 김길용,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 단원 이경구)을 대상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음성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엠마 제인 멕헨리의 무용음성해설 창작수업이 6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무용음성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엠마의 경험을 토대로 무용음성해설에 관한 전문지식을 공유하고 실제 공연을 기반으로 음성해설대본을 창작한 후, 참여자들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다양한 접근법과 방법론을 개발하며 이에 관해 자유롭게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춤과 극장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역할은 모든 사람이 접근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고, 관객과 작품 사이를 연결하는 소통 지점이 된다.”

- 엠마 제인 멕헨리(Emma-Jane McHenry)

엠마 제인 멕헨리는 15년 동안 음성 해설자로 활동해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극을 묘사하지만, 그녀의 전공은 무용이며 주로 모던 또는 컨템퍼러리 댄스 발레의 스타일 안에서 작업했고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의 음성 해설가로서 지난 10년간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그녀가 음성 해설사라는 직업을 발견하고 음성 해설자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접하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 발레단에서 교육담당관으로서 일한 이후였습니다. 훈련 방식은 그녀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음성 해설 협회에 의해 전달된 일반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무용의 음성해설가로서 자신의 노하우를 만들어내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엠마의 경험을 토대로 공유한 음성해설에 관한 전문지식 아래, 저를 비롯한 모든 참여자의 무용음성해설의 가능성에 관한 호기심과 고민은 다양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질문에 대한 답은 다시금 질문하게 하고 시도하게 하는 열린 답변이었습니다. 여전히 고민만이 남아 있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 관객이 동등하게 극장으로 접근하는 데에 있어 작은 발걸음이 되어준 엠마의 수업을 Q&A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질문1. 음성해설은 무엇인가? 음성해설은 예술이나 공연을 시각장애인에게 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20세기 이전의 음성해설은 스포츠 해설과 같이 눈에 보이는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현재는 작품의 주제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적인 언어를 사용한다거나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서술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극장 무대 위의 무대세트, 의상, 조명, 배우들의 움직임 등을 극장을 구성하는 모든 지점을 작품의 주제와 연출자의 의도에 맞닿아 해석하는 해설로 전환하였다.

질문2. 음성해설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모든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받아들이게 된다. 오감 중 어느 하나라도 빼앗긴다면 우리는 여전히 마음속에 한 장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완전한 그림은 아니게 된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음성해설가의 역할이다. 음성 해설자로서 우리가 하는 도전은 매우 짧은 시간, 아마도 행동이 진전되기 1~2초 전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를 구두로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묘사하고 있는 작품을 기리고, 순간을 부각시키고,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다른 감각들도 함께 작용하도록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어떤 주어진 공연에서든 주어진 순간의 활동들이 겹겹이 진행되며,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우리의 길을 창조해야 하며, 시각 장애인 관객이 공연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가능한 한 비장애인 관객들이 갖는 경험과 시각 장애인 관객들의 경험이 동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질문3. 현장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음성해설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이브 공연의 음성 해설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지닌다. 첫 번째로는 음성해설가의 안내에 따라 극장 및 무대 소품, 세트 및 의상 등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공간을 직접 걸어 다니며 시각 장애인이 공연의 사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터치투어가 공연 1시간 전에 진행된다. 다음으로 공연이 시작되기 10분 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노트에서 작품의 개요, 제작진, 의상, 세트 및 음악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유한다. 끝으로는 공연과 함께 또는 공연 중에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라이브 음성해설이 있다. 음성 해설자는 방음 부스에서 또는 모니터를 통해 공연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음성해설을 하게 되고, 관객들은 극장에서 제공되는 개별 헤드셋을 통해 음성해설을 듣게 된다.

질문4. 무용음성해설 작법과 과정에 있어 엠마 제인 멕헨리의 고유의 방법론이 있는가? 대본을 구성하는 단어에 있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질문을 구성하는 단어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이다. 그러한 질문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문을 창출하면서 풍부한 해설을 하고자 한다. 무용수가 움직이는 위치는 작품의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무대 위 그들의 주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입고, 사용하고 있는가? 그들은 누구와 함께 움직이는가? 어떻게 상호 교류하고 있는가? 등을 질문하며 해설의 방향을 설정한다. 또한, 움직임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적합한 단어를 리서치할 때 라반 움직임 분석법을 활용하고 있다. 라반(Rudolf von Laban)이 제시한 동작의 기본 요소인 Body(움직임을 할 수 있는 주체), Space(움직임이 이루어지는 공간), Effort(흐름,무게,시간,공간), Shape(움직임의 형태)를 기반으로 움직임의 언어를 만든다.

질문5. 무용 장르에 따라 움직임의 단어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대표적으로 발레나 컨템퍼러리 댄스 작품을 예로 들면, 각 장르에 따라 적합한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발레 작품 같은 경우에 발레 움직임의 전문적인 용어가 들어간다거나, 서사가 있다는 점을 기반으로 한 움직임, 조명, 의상 등에 맞는 적합한 단어가 있을 것이고, 컨템퍼러리 댄스 같은 경우에 개인화된 안무자의 특정적인 움직임이 있기에 독자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인주의를 살펴볼 수 있는 장르이므로 해설할 때도 안무자 개인의 경험, 생각, 감정 등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참여자들은 엠마가 수업 진행 중 즉흥적으로 제시한 작품 영상을 보며 언어로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수업을 진행하지 않은 하루 동안은 발레 작품 및 컨템퍼러리 댄스 작품 중 한 작품을 선정하여 직접 무용음성해설대본을 작성해보았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창작실습을 거치며 갖게 된 경험을 Q&A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질문1. 무용음성해설 대본을 작성하는 과정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작품이 작업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리허설에 참여하여 안무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무용수들과의 대화에서도 큰 도움을 받는다. 안무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태도로 작품의 주제와 연결한 해설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리허설 과정 혹은 공연이 끝난 후 시각 장애인 관객에게 직접 음성해설에 관한 피드백을 얻기도 한다. 한 친구에게서 나의 음성해설 안에는 무용수의 표정이 어떤지 담겨있지 않았다는 피드백도 들었는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질문2. 빠른 속도로 장면 전환이 될 때, 해설이 들어갈 적절한 타이밍에 관한 팁이 있는가? 어떤 일이 일어난 이후보다는 발생하기 전에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완전한 문장은 요구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간결하게 유지하고 가능한 한 가장 짧은 방법으로 말하는 것이다. 초안을 작성하기 이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떻게 해설할 것인지를 염두하여 보지 않고 움직이는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 그 인물의 주위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그저 관찰하고자 한다. 그 관찰을 기반으로 문장으로 써보고, 가장 짧고 가장 정확한 움직임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을 계속해서 고민하며 문장을 수정한다. 초안을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며 음성해설 대본을 완성해갈 수 있다. 대본에 모두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프로그램 노트를 활용한다.

질문3. 흑인, 여성, 젠더 등의 외향적인 모습을 서술할 때 논리적인 규정이 있는가? 현시대에 정체성에 관한 이슈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논리적인 규정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외적 인격을 담는 해설을 하고 싶지 않다. 작품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연출자 및 공연자와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면서 작품의 주제에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면 해설에 담는다.

질문4. 움직임의 형태를 어떻게 해설할 수 있는가? 형태를 관찰하려면 포메이션(formation)을 관찰해야 한다. 움직임 하나하나를 묘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용가들이 무대 전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우선순위를 선택하여 무엇을 먼저 설명할 것인지 결정한다.

질문5. 반복하는 움직임은 계속해서 설명되어야 하는가? 하나의 지문을 반복하되 반복의 변화된 지점, 변화된 공간, 변화된 캐릭터에 집중한다. 그냥 반복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그램 노트에 반복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최근에 함께 작업한 안무가 한 분은 움직임이 가진 별명을 그것을 해설에 사용했다. 개인적인 요소가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된다면 가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질문6. 서사가 있는 발레 작품의 경우 현실의 시간과 무대의 시간을 어떻게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비장애인 관객들이 무대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사전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장애인 관객들 또한 작품의 시간적 배경, 공간적 배경에 관한 정보를 프로그램 노트에 최대한 전달해야 한다. 발레 작품에 있는 캐릭터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 시간을 어떻게 흐르게 하고 멈추게 하는지에 관한 사전 정보와 함께 어떤 움직임으로 표현되는지는 현장을 통해 공유하겠다는 해설도 있다면 좋겠다.

질문7. 터치투어와 프로그램 노트를 공유할 시간이 부족할 때, 모든 것을 대본에 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타협하는가? 터치투어, 프로그램 노트, 라이브 음성해설, 이 모든 것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난제는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과감하게 ‘버려야 하는 요소’에 집중한다. 또한, 공연 5분 전에라도 실용적인 정보를 공유하려 한다. 그리고 극장의 동의하에 웹사이트에 공연에 관한 사전 정보를 게재하거나, 안무가와의 인터뷰 등을 팟캐스트를 통해 공유하면 시각장애인도 주체적으로 사전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창작실습과정을 거치며 참여자들은 음성해설창작에 있어 개인의 접근성과 방법론에 관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주된 논의는 음성해설가가 움직임을 해설 및 표현하는 데에 있어 음성해설가 개인의 창의성이 시각 장애인의 감상에 도움이 되는가 혹은 방해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위 내용에 앞서 컨템퍼러리 댄스 작품 중 제가 실습한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마이너스 16(MINUS 16)>의 음성해설 대본을 공유합니다.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 <마이너스 16(MINUS 16)>
각자의 공간에 서서 머리 어깨 무릎 팔꿈치 몸의 작은 부위들이 둠칫둠칫둠칫둠칫 음악의 리듬에 맞춰 흥겹게 움직이는데 모두 다르다. 다시 도레미파솔라시도. 한 명씩 순서대로 의자 뒤로 상체를 뻗어 휘날리고 일어선다. 마지막 한 사람은 반대로 쓰러진다. 마지막 한 사람. 작품 제목의 숫자는 16 무용수는 15명. 마지막 한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 이경구 음성해설 대본 中

질문1. 음성해설에 여러 방식이 열려있는 것 같다. 해설자가 창의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인 정보 전달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시각장애인 관객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장애인 관객은 일반 관객과 비슷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극장으로 오는 것이다. 몇몇 시각장애인 관객은 기대치를 모르고 온다. 그 점에서 일반 관객과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사실적인 정보, 예술적인 정보의 균형을 잘 맞춰 전달해야 한다. 공연은 계속 진화하는 공간이며 반복적이고 순간적인 요소가 있다. 우리의 대본도 이런 특성을 개발해야 한다. 예술 감상의 목적에 있어 무용음성해설은 유연해야 한다.

질문2. 무용음성해설은 사실적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도 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전달하는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니즈만 너무 고려한다면 공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어떻게 하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도 해설가 개인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표현적인 예술적인 측면을 표현하면서도 사실적인 요소가 잘 반영되어있는지 확인한다. 예술 표현 위에 해석적인 요소를 붙여나가는 식이다. 시각장애인 관객을 특별한 그룹으로 대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장벽을 해소하는 것도 있지만,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있어 사실과 예술적인 정보의 균형을 잘 맞춰 전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시각장애인들 중 몇몇은 해설 스타일에 따라 공연을 보러오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을 전달하는 정확한 해설을 선호하는 특정 관객은 그것을 충족해주는 음성해설가의 공연을 선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성해설가가 개인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면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공연을 선택하는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마련된다.
본 워크숍에서 무용음성해설을 둘러싼 전문지식을 알게 되고, 자유로운 창작실습 과정을 거치며 공연을 만들어가는 많은 이들의 고민 속에 제 고민도 담겨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질문으로 완성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장벽을 허물기 위한 공연에 작은 발걸음이 된 엠마의 워크숍은 앞으로 무용음성해설이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완벽한 무용음성해설 대본은 없다는 것, 무용음성해설 대본은 연출자와 시각장애인의 모니터링을 거쳐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 음성해설가는 작품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인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동등한 극장으로의 접근성 확보 및 예술적 경험을 위해 창작진 뿐만 아니라 극장과 리허설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변방의 위치에서 서서 문제를 즉시하고 모두의 편의와 권리가 보장된 공연 환경을 만드는데 함께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용음성해설 워크숍 현장 (c)박수환
창작실습과정-2. 강내영 <화면해설 대본 습작하기>
강내영 음성해설가의 워크숍은 영화 및 드라마 등의 영상을 기반으로 한 음성해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엠마의 수업이 해설에서 개인의 스타일과 창의성을 담는 주관적 표현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면, 강내영 음성해설가의 워크숍은 객관적 정보의 전달에 있어 구체적인 방법과 노하우를 수집하여 창작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영화 <시티 라이트(City Light)>,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외에 제가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제작한 어린이 무용작품 <루돌프>의 음성해설 대본을 10인의 참여자가 협력하여 창작하고, 시각장애인의 모니터링을 통해 완성하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강내영 음성해설가는 참여자들의 각기 다른 대본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 있어 화면음성해설에서 기본적으로 고수해야 할 규칙을 반복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선천적 전맹을 대상으로 할 것, 남녀노소 이해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할 것, 비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해설이 될 것, 인물의 이름과 나이, 외향적 특징은 극 초반에 설명할 것, 시점과 단어의 반복을 최대한 줄이는 것, 영상 프레임의 변화에 따라 주체를 설정하는 것, 이것 혹은 저것 등의 지시어의 사용을 명확한 단어로 변환할 것, ‘보인다’라는 표현은 정보의 우선순위에 입각하여 고민하고 최대한 배제할 것, 순간을 해설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맥락에 해설이 담길 것, 해설에 있어 문장의 구조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본 워크숍의 창작실습 과정에 있어 특별했던 점은 시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이 함께 참여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움직임을 글로 언어화하는 것에 있어 고정되어있는 저의 방법을 발견함과 동시에 음성해설가로서의 발전 방향과 무용음성해설의 역할에 관한 의문에 관한 강내영 음성해설가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해서 발견했던 저의 방법은 영화의 한 장면 혹은 공연의 일부를 해설하기 위한 대본을 작성할 때 글과 말로서 완전한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해설을 위한 글보다는 보이는 것에서 느껴지는 보편적인 감정을 글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장면이 말이 주는 리듬이라거나 의성어나 의태어를 사용하여 추상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작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시점에서는 이러한 주관적 표현은 궁금함으로 남게 되고, 오히려 감정을 주입하게 되어 명확한 해설이 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동시에 영상을 기반으로 한 화면음성해설 작업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지점인 궁금증을 낳게 하는 해설이 공연 현장을 기반으로 한 무용음성해설에 적용되었을 때 해설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강내영 음성해설가는 위의 질문에 관해 무용음성해설을 창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기 위해 지속적인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모니터링이 작업 과정에 담기고 최대한의 만족도를 높이는 해설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무용음성해설 개발을 위한 질문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2019년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어린이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무용공연 <루돌프>를 제작할 당시, ‘극장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공연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 친구들 또는 생계유지가 힘겨워 공연을 보러올 여유가 없는 친구들, 극장으로 오기가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장애 아동들. 이렇게 무수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두고 나는 진정으로 모든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만들고 있는가? 이들이 가진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는 창작자인가? 라는 질문과 반성을 했고 공연을 선보인 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무용음성해설 워크숍은 제가 느낀 이러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거두어 준 경험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극장에 공존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을 워크숍에서 만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책임감에 용기를 얻은 듯 합니다.

하루아침에 작업을 만드는 출발점 자체를 나와 다른 감각으로 공연을 감상하는 비장애인의 시좌에서 바라보고 작업할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관점에서, 자리에서 출발한 작업이 장벽을 허물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과 맞닿기 위해 협력자들과 함께 여러 시도를 이어간다면 장애인 관객들의 일상에도 우리의 작품과 극장이 찾아들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봅니다.

참고자료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공연 프로듀서 장수혜의 ‘Emma-Jane McHenry <Moving words>’ 수업 요약본
강내영 음성해설가의 ‘베리어프리버전 제작 가이드’

1) 장애인 활동 보조 지원 사업은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 지원 급여를 제공하여 자립 생활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에 기여할 목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서비스의 종류는 활동 보조 지원에는 신변처리 지원과 가사 지원, 일상생활 지원, 이동의 보조, 방문 목욕과 방문 간호 등의 서비스가 있다.

이경구_안무가 이경구는 나는 누구인지, 작품 안의 나는 누구인지 질문하며 춤을 만들고 추는 사람이다. 컨템포러리 댄스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안무자 그룹 고블린파티에서 안무자 및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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