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2. 3. 25. 11:00
장소: zoom
좌담 참여자: 윤푸름(안무가), 정세영(공연예술가), 뭎(조형준, 손민선), 양은혜(『춤in』 편집장)
모더레이터, 편집: 양은혜 춤in 편집장
1분기(2월~4월)의 대주제인 ‘경계의 확장 혹은 이미 허물어진 경계에서의 무용(들)’에서는 공연예술계의 순수무용예술이라는 분야가 춤의 안과 밖이라고 개념 지은 경계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허물어진 경계이기도 하며 경계에서 이뤄지는 춤의 혼합적 양상이기도 하고 춤의 바깥이라고 생각했던 영역에서 드러나는 춤과 안무의 기호이기도 하다. ‘감각의 경계’를 주제로 하는 4월 호의 좌담에서는 윤푸름, 정세영, 뭎(조형준, 손민선)과 함께 퍼포머의 영역이 사물과 공간 등의 비-신체로 전이되어 드러나는 춤, 안무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은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윤푸름:
『춤in』의 지난 호 소주제가 ‘저자로부터 걸어 나온 춤’이더라고요. 제목을 보며 생각하다 보니 저는 ‘춤으로부터 걸어 나온 몸’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무의 확장을 고민하고 있는 안무가 윤푸름입니다.
정세영:
저는 공연하고 있는 정세영입니다. 공연과 극장의 전반에 질문과 궁금증들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뭎(조형준, 손민선):
저희는 뭎 조형준, 손민선입니다. 공간에 관심을 갖고 공간이 가지고 있는 균열과 확장성을 가지고 어떤 방식의 경험과 공연을 만들지 고민하며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양은혜:
오늘은 특정 작품보다 사물 또는 공간과 춤을 근간으로 그동안 발표해 오셨던 작품들을 사례로 대화를 하고자 해요. 극장을 대표 소재로 한 작품들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윤푸름 안무가님의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2021), 뭎의 <Cascade Passage>(2020), 정세영 안무가는 여러 작품에서 극장과 공연 근간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그중 <Shame Shame Shame>(2019)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주빈
윤푸름,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윤푸름:
극장의 장치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 시점은 2020년 팬데믹으로 작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상황인 것 같아요. 팬데믹의 초창기로 작업의 공포가 심했던 시기였어요. 프로덕션 내부에서도 ‘공연을 올려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논의도 많았었고요. 신체가 대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연을 올릴지 고민을 많이 한 것이죠. 이런 과정에서 고정된 극장의 주체들의 작동됨을 재고하고 객체들의 운동성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김재리 드라마투르그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신체를 비추는 객체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공간들, 물리적인 장치뿐만 아니라 가시적이지 않지만 장치로 작동되고 있었던 것들, 일종의 제도적인 규범일 수 있고요. ‘주체인 무용수를 주목하는 것이 아닌 객체들의 움직임과 작동됨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극장의 장치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극장을 무언가를 담는 하나의 커다란 장치로 보고 그것들을 작동시켜 존재했음에도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객체들의 존재함을 드러내는 작업이었습니다.
〈Cascade Passage〉, 사진제공: 뭎
뭎, 〈Cascade Passage〉
조형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뜻하는 〈Cascade Passage〉는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일어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cascade’와 ‘passage’라는 두 단어의 조합인데 본 공연의 중요한 형식을 나타내고 있어요. 제목을 짓는 과정에서 ‘passage’는 파리에 있는 파사주나 북서항로 같은 힘든 뱃길을 떠올렸었고요. 공연은 다크투어 형식의 관람으로 이뤄졌었습니다.
손민선:
극장에 서사를 입혔어요. 작품에서 극장 공간은 얼마 동안 가동되다 움직임을 멈춘 발전소로 가정하고 관객이 그곳을 투어하도록 했어요. 전과 다르게 구성한 극장 공간을 루트가 있는 길을 통해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조형준:
작업을 할 때는 작품을 올리는 곳이 극장 혹은 다른 공간인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 자체에 시간과 타임라인이 어떤 형식을 갖추게 될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에요. ‘이 공연은 어떤 형식을 가질 수 있을까?’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극장1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서사는,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대정전 사건을 서사로 가져와 작품 구성을 했어요. 무대장치가 가동되면서 지형처럼 변하기도 하고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존재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바라만 보던 관객이 그 공간 안에 들어가 반대 시점으로 자신이 있었던 공간을 바라보게 해요.
팬데믹 이후의 재난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21세기의 가장 큰 재난 중의 하나가 바이러스, 자연재해, 전쟁뿐 아니라 정전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정전에 대한 시나리오를 찾아봤는데 무섭더라고요. 정전된 지 몇 시간 지난 시점, 하루, 3일이 지나면 국가가 붕괴되는 등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우리는 극장에서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들을 확인해서 어떤 것들이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 보고 공연의 타임라인을 만들었습니다. 극장에서 많은 전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무대감독과 협의해 전력을 나눠 사용할 수 있는 형식의 타임라인을 구성했습니다. 공연에서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통 얘기하는 공연의 알맹이, 껍데기라는 게 이 작품에서는 좀 더 부각되는 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손민선: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저희는 아무 할 일이 없었고 극장의 스태프들이 모든 것을 진행했어요.
〈Shame Shame Shame〉, 사진제공: 정세영
정세영, 〈Shame Shame Shame〉
정세영:
〈Shame Shame Shame〉은 변방연극제에서 발표했던 작품인데 사물보다는 극장에 관련된 이야기가 좀 더 맞아요. 그동안의 작업들이 극장, 공연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거시적, 형식적, 구조적으로 바라보다 보니 그 태도에 너무 익숙해져 극장에서 뭔가 발언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Shirley & Company의 노래 제목 ‘Shame Shame Shame’(1975)를 빌어서 그 노래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가사에 ‘shame on you If you can't dance too (당신도 춤을 출 수 없다면 수치심을 느껴라)’라는 가사가 있는데 작업에서 거시적, 형식적 입장만 취하기보다는 좀 더 직접적인 언어와 의견 혹은 제 언어를 관객에게 전달해 보고자 했습니다.
양은혜: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는 어떤 발언을 하고자 했나요?
정세영:
전반적으로는 이야기를 만들고 연극 형식을 빌려서 드라마를 만들려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래서 수동적이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태를 이야기하고자 했어요. 사물 이야기로 넘어가면 제 작품에서 대부분의 사물들은 움직이지만 배우와 퍼포머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삶을, 사회도 수동적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개인적인 생각도 하게 됐었습니다. 제목이 그래서 그런지 얘기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있네요. (웃음)
양은혜:
정세영 연출님의 작업에서는 은유가 중요한 장치인 것 같아요. 절제되고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서사가 명확하게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생산적 생산〉 ⓒ김주빈
사물, 퍼포머
양은혜:
패널로 참여하신 안무가님들은 사물(비-신체 혹은 비-무용수)과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들여오고, 그것을 활용해 작품을 구성하는 분들입니다. 각 안무가님들이 작업에서 사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윤푸름:
저는 공간에 관심이 많은 안무가지만 사물을 주제로 작업하지는 않았어요. 관심사, 주제 선정에 있어서 주제가 사물을 다룰 수밖에 없는 작업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에서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요 재료가 되었고요. 저는 주제의 질문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기존에는 극장 안에 무용수가 주체였다면 이 작업에서는 무용수들을 비추는 객체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무용수가 주체가 될 수 없었어요. 반면 〈생산적 생산〉(2021)은 무용 노동에 관한 작업이에요. 김재리 드라마투르그와, 시노그라퍼로 참여한 로와정 작가와 함께 무용 노동을 자본주의 작동원리로 바라봤을 때 과연 노동은 어디에 있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지 묻는 질문을 이어갔어요. 육체를 소진시키는 맥락이 아닌 동시대에 몸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요. 무용수들은 오퍼레이터로 등장했고 소진하는 에너지는 영상에 따로 담아 영상물로 드러냈어요. 무용수의 노동은 기계들, 사물, 장치들이 대신했는데 그러다 보니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사물들의 움직임, 오브제들의 재질 등이 더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어요. 공연 중 상영했던 영상 안에는 무용수들의 소진되는 에너지와 무용수 노동에 대한 단서가 레퍼런스로 등장했는데 무용수 오디션 공고에서 제시되는 무용수의 자격조건 등이었어요. 나이, 신체적 조건, 기량, 경력 등 을 드러내면서 무용수 노동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레퍼런스를 재조합해 영상에 드러냈고요. 이것을 감상하는 관객 관점의 이동이라든지 인식의 새로운 운동성을 발휘하는 것, 그 안에서 드러나는 질문들을 하나의 운동성이라고 보았어요. 그것이 또 하나의 생산물로써 가능성을 드러내는 작업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사물, 공간만 가지고 작업을 했던 안무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어려우면서도 매우 흥미로웠던 작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양은혜:
작년에 이 두 작업 이후로 안무가님의 작업이 무용에서 다원예술로 넘어가고 있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안무가님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작업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인지 궁금해요.
윤푸름:
무용계에 오래 있다 보니 몸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도 탁해졌고 흥미도 잃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무용이라는 장르를 넘어 안무는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안무는 신체의 안과 밖을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제도적인 문제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몸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작업에서 반듯이 몸을 써야 한다는 외부의 간섭에 대해 질문했던 것 같아요. 그러한 요인도 몸밖을 바라보게 하는데 일조한 면이 있네요. 그런데 이러한 작업을 하다 보니 다시 몸을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요즘에는 몸을 쓰는 좋은 워크숍도 찾아 참여하는 편이에요. 다원과 무용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제가 질문하고 바라보는 작업을 공연으로 올리고 싶은 것 같아요.
퍼포머
양은혜:
안무가로서 안무 영역 안에서 무용, 몸에 집중되었던 작업으로부터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제도적인 부분의 연결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뭎의 경우는 무용 매체에서 리뷰, 평문이 다뤄지지 않았는데요, 무용계 안에 있는 심사위원, 평론가가 동시대의 작업을 어떻게 읽어가고 있는지 이야기 나눠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영님의 작품에서 퍼포머의 몸은 사물들의 기능, 극장의 장치들을 작동시키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는데 비신체적인 것들이 작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세영:
제가 못 움직이다 보니 방법을 찾다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 무용 공부를 할 때 신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방법을 잘 모르겠는데 극장 안에서 운동성이 어떠한 효과, 서사,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내는지는 사물과 신체의 차이가 크게 없을 것 같다는 간단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것들을 깎고, 깎다 보면 작동원리가 다 비슷하지 않을까?’ 퍼포머의 신체, 사물, 장치 등의 작동원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양은혜:
세영님은 프랑스에서 안무 공부를 시작하셨잖아요? 그전에는 연극을 공부하셨고요. 사물과 신체를 동등한 시선으로 보시고 작업을 시작하신 것이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되었었나요?
정세영:
연극과 안무 공부를 하는 사이에 미술 작업도 해서인지 오브제를 다루는 것이 익숙했어요. 연극 분야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무엇을 해도 상징, 서사가 발생하는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이것들을 무마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작동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하다 보니 상징을 최대한 만들지 않거나 배제했을 때 작동되는 현상을 관객이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작업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모든 사물을 그런 식으로 접근해 작업하는 것 같아요.
양은혜:
작동이라고 표현하신 것을 운동성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요?
정세영:
정확하게는 운동성인데 제 개인적으로는 운동의 방향에 따라서 감상의 성질들이 정해진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운동성이 아래로 향하거나 위로 향하는 방향성에서 관객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법들이 달라진다고 보고, 어떤 느낌이 생산된다고 했을 때 방향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는데 물체의 무게감, 색깔, 본래 갖고 있는 기능 등을 얼마만큼 무마시키고 작동시키고 남겨놓을 것인지에 따라 사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양은혜:
세영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간의 작업들이 더 잘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뭎은 공간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활용되는데요, 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형준:
공간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것보다 공간 자체를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재미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아요. 작품이 올라가는 본래의 위치가 어떤 공간이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미술관 로비에 누군가 무언가를 끌고 가면 공항 같아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아지면 파티장 같기도 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특성 자체가 생각보다 순간순간 바뀌기도 하는 점이 재밌었어요. 그러다 보니 공간의 실제 물리적인 구조를 활용하거나 사물을 배치하든, 전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지점, 그 공간 자체의 속성에 균열을 내서 여러 모습을 보이게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손민선:
뭎을 소개할 때, 특정 장소의 맥락에 신체나 사물을 배치하는 것에 따라서 작동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공연의 방식이라고 이야기해요. 사람, 사물, 공간이든 그곳에 원래 있던 것들이든 이것들을 언제,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도록 해서 신호나 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조형준:
퍼포머들도 등장하지만 그들 또한 사물이나 물리적인 구조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편이에요. 저희의 성향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보다 사물과 소통하는 것이 편하기도 해요. (웃음) 긴 시간을 두고 완전히 깊게 소통할 수 있다고 할까요?
손민선:
공연을 만들 때 여기에 나올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다 리스팅을 해보기도 해요. 사람, 그중에서 누구?, 그냥 사람이 아닌 특정한 사람이니까 무용수의 성향이 중요하게 리스팅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거기에 다른 조명이 들어갈 수도 있고 사운드가 들어갈 수 있고 공간에서 저희가 중요하게 설치하는 벽 하나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나열해놓고 공연에서 작동하는 객체들로 레이어가 형성이 되어 있으면 이것들이 어떤 식으로 온, 오프가 되는지 봐요. 객체들이 만났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며 혹은 다른 것들과 만났을 때 다른 하나가 무력화되거나 효과를 내거나 서로 싸우기도 하는 등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이고요. 이들이 주고받는 신호들이 타임라인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조형준:
공연 안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에 네트워크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에요.
양은혜:
세영님과 뭎이 ‘작동’이라는 공통 언어로 표현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그 해석은 다른 것 같은데요, 세영님의 작동은 운동의 방향성을 가지고 관객의 감상이 달라지는 점으로 표현하셨다면 뭎의 작동은 공연의 재료가 되는 모든 것이 객체 상태에 있고 네트워크를 이룰 때에 일어나는 물리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형준:
예를 들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다른 것이 되어도 상관없는데 그 이유는 한 사람과 하나의 컵, 두 사람, 두 개의 컵은 모두 다른 느낌을 발생시키기 때문이에요. 그런 느낌들을 계속 보는 것 같아요. 네트워크를 만들 때 거기에 무엇을 놓았을 때 어떤 느낌이 연출되는가? 그 사이에 다른 무엇이 추가된다면 또 어떤 것이 달라질까? 때마다 ‘이게 더 좋겠다’라고 선택해가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손민선:
관객도 그중에 하나의 요소에요. 관객이 작품 안에 들어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것을 주고받는지를 마지막 변수로 남겨놓아요. 그러다 보니 해마다 관객의 성향, 관객으로 인해 생성되는 기류로 인해 저희가 느끼기에 공연의 기류가 굉장히 많이 바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웃음) 그런데 어떨 때는 우리의 기대보다 더 쫀쫀하게 잘 작동이 되기도 해서 관객에 의해 작품의 느낌이 매번 바뀌는 것 같아요.
관객
양은혜:
뭎에서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에서는 퍼포머들이 어셔의 역할을 했는데요, 극장의 작동을 보여주기 위한 어셔들의 움직임과 극장 장치들의 움직임 간에 각기 다른 리듬감이 있다고 보았어요. 그리고 조명과 소리 등으로 하여금 관객이 어디를 바라보고 어떤 존재들을 상상하게 하는지에 따라 관객과 극장 객체들 간에 다양한 관계와 네트워킹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네트워크라는 키워드로 안무가님의 작품 이야기를 첨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푸름:
세 명의 퍼포머들은 어셔이자 오퍼레이터로서 지하 공간, 1층, 2층 총 세 개 층에 각각 한 명의 퍼포머들이 극장 구조를 이동하면서 벨을 울려요. 벨이 로비까지 멀리 나가면 관객들은 자신들이 앉아 있는 무대로부터 먼 로비 공간을 벨 소리로 인지하게 되죠. 극장을 둘러싼 거대한 기계 구조, 규모 등을 사운드로 드러내는 것이었어요. 때문에 어셔의 이동하는 보여지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닌 벨 소리의 이동을 통해 그 공간의 크기를 얼마나 감각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보았을 때 사운드와 공간이라는 네트워킹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대는 항상 조명으로 그곳이 메인 공간임을 드러내는데요, 무대 이면의 공간 규모 등을 관객이 감각하기를 바랐어요. 늘 주목받던 주체로서의 공간이 아닌 보이지 않았던 객체가 드러나는 작업이었습니다. 극장의 소외된 공간인 벽, 기계 그림자, 모서리 등으로부터 메타포를 끌어들이고 싶었었어요. 극장의 비상구와 극장의 매뉴얼들이 극장의 구석마다 붙어있지만 관객은 그것에 관심이 없죠. 저희는 비상구 유도등을 더 구입해 모서리, 틈새, 기둥 밑 등의 공간에 설치해 숨은 경로들을 드러내고 관객의 시선이 메인 무대가 아닌 바깥으로 향하도록 하는 의도였어요. 극장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퍼포머의 신체를 보고 기대하는 것과 사물을 보고 기대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아요. 전시관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와 극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고요. 관객의 감상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장소에 어떤 사물이 모였을 때 어떤 네트워킹이 이뤄지는지 관계를 찾아가는 것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극장이라는 공간이 뭔가를 요구하는 공간이구나.’ 사물과 장치만으로도 많은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퍼포머가 등장했을 때 그에게 움직임을 요구하게 되는 것, 사물이 아닌 퍼포머를 따라가는 시선들이 재밌더라고요. 저보다 사물을 많이 다루셨으니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조형준:
관객의 유형이 다양한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인지 알고 싶어서 파헤치면서 보는 관객도 있는 반면 주제는 관심 없고 수동적으로 보는 분들도 많고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크게 관심 없이 많이 본다는 걸 느껴요. 관객은 공연에서 중요한 등장이자 객체 중 하나인데 저희에게는 가장 큰 변수를 쥐고 있는 요소에요. 공연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작동하기 시작했을 때, 관객이 그다음으로 넘겨주지 않으면 공연이 진행되지 않는 방식이거든요.
손민선:
저희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을 관객 ‘참여’라고도 이야기를 하는데, 저희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관객이 자신을 어떻게 위치시킬 건지 공연과 눈치를 보게 하도록 해요. ‘여기에 서 있을까, 아니면 저쪽으로 갈까. 그냥 버텨야지.’식의 소통을 능동적으로 하도록 해요. 공연을 준비할 때 그 변수를 굉장히 많이 고민하는데 관객이 그 변수를 다 뛰어 넘기기도 해요. 작업 초창기에는 당황을 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모든 작업에서 관객의 예상치 못한 반응은 무조건 생길 것을 알고 이것을 어떻게 대처할지 장난기까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양은혜:
그렇다면 관객의 변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무대 작업으로는 〈데카당스시스템〉을 볼 수 있을까요?
조형준: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데카당스시스템〉은 무대 안에서 보이는 구성에 더 집중했었거든요. 무대 내부의 작업으로써 타임라인을 본다면 저희가 하는 다른 작업들과 크게 다른 지점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무대 안에서의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세트 자체가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며 퍼포머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보았을 때 주체적이기라기보다 수행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세 가지 패턴을 무용수들의 몸에 익숙하게 만들어 즉흥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취했었어요. 무대 자체는 바닥이 변화하면서 사라지기도 하고 구조물이 생기거나 사물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어떻게 네트워킹 될 수 있는지 풀어갔던 것 같아요.
양은혜:
윤푸름 안무가님은 앞서 이야기해 주셨던 작품과 반대되는 성향의 작업이 있었다면 어떤 작품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윤푸름:
〈시간의 형태의 시간〉(2020)은 플랫폼 엘에서 발표했었는데 그 작품이 〈정지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의 전 버전인 것 같아요. 당시도 팬데믹 초창기로 동료들과 7개월간 줌(zoom, 온라인 화상 회의 플랫폼)으로만 만나 작업을 했었어요. 시간의 형태에 대해 리서치하면서 비물질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더라고요. 운동성을 지닌 시간, 우리가 어떤 에너지를 발생시키느냐에 따라 다르게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전시장에는 큐알 코드만 숨어 있었고 관객이 본인의 모바일폰으로 찍으면 작품은 휴대폰 안에서 감상하는 방식이었어요. 예를 들어 분장실에서 큐알코드를 찍으면 2시간 전에 무용수들이 몸을 풀기위해 있었던 모습이 보인다든지, 인포데스크 관계자들도 대면하지 않지만 장치는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든지, 몇 시간 전의 영상 속에서 무용수가 포그머신 안에서 춤을 추었다면 관객이 입장한 상태에서 그 무용수는 포그머신만 작동시키는 오퍼레이터로만 기능을 하는 등 관객은 현장에 있지만 감상은 본인의 모바일폰에서 했었어요. 큐알 안에서 감각한다는 것, 각자의 시간으로 감각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양은혜:
시간성을 기준으로 같은 공간에서 시간에 따라 축적된 공간의 레이어들이 움직임을 만들어내었을 것 같아요.
윤푸름:
3차원의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거시적으로 보고 싶었어요. 이전 시간과 이후 시간에 벌어졌을법한 상황을 관객이 감각하는 작업이죠. 외부의 비평과는 별개로 저희 내부에서는 흥미로웠던 작업이에요. (웃음)
공간
〈개인주의자의 극장〉, 사진제공: 정세영
양은혜:
영상에서는 무용수들의 신체와 행위가 나오지만 관객이 보는 것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상상하게 돼요. 하지만 상상을 현장성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은 퍼포머가 있었던 동일한 공간에 관객이 있으며 그 이후의 일은 과거의 퍼포머가 상상했듯 관객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맥락으로 이어져요. 그 안에서 관객과 퍼포머의 역할이 상상으로 교차되며 연결되기도 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세영님의 작업에서는 어떨까요? VR(Virtual Reality) 작업에서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정세영:
작년에 This Is Not a Church(이하 TINC)라는 공간에서 〈I’m the church〉(2021)를 발표했어요. 극장이라고 상정한 TINC의 공간을 똑같이 모델링 해 가상공간으로 만들어 관객은 오큘러스를 쓰고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이었어요. 기본 전제는 극장의 기본 문법을 지킨 상태에서 관객이 무엇이 작동됐고 안 됐는지를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작동이 극장의 강제성이잖아요. 앉아서 봐야 하고 중간에 나갈 수 없고 들어오고 나갈 때 다 같이 이동하는 등이요. 관객은 평상시와 똑같이 앉아서 관람하지만 가상극장 안에서는 극장의 작동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아요. 가상현실에서는 중력의 물리작용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기존의 제 작업에서 사물을 사용했던 방식이 가상극장 안에서 퍼포머로 등장하는 아바타의 움직이나 사물의 움직임에는 적용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가상현실에서의 신체와 현실 세계에서의 신체가 연결된다기보다는 아예 다른 존재와 작동을 하는 신체라고 상정하는 것이 연출할 때 좀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것이에요. 스토리텔링 기반의 작업이 가상현실로 들어왔을 때는 드라마를 따라가면 되다 보니 어느 정도 작동돼요. 그런데 무용, 신체 기반의 작업은 가상현실에서 운동성이 필수가 아닌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작동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운동성을 얼마만큼 선택할 수 있는가? 한계가 정체성을 만들고 장르를 만드는 데 이 공간에서는 그러지 않다 보니 다른 한계치와 제한을 발견하고 거기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양은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가상현실에서 찾게 될 한계가 무엇일지 기대돼요. 한계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접근한다는 것, 그것이 장르를 만드는 데에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계를 알 때 명확해지는 것이 분명 있네요. 그렇다면 VR을 사용했던 작품으로 〈I’m the church〉와 〈개인주의자의 극장〉(2020)의 전개는 매우 달랐던 것 같아요. 〈개인주의자의 극장〉은 눈이 먼 테이레시아스 신화가 스토리텔링의 기반이 되었었는데요 두 작품의 구성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정세영:
〈I’m the church〉는 현실과 가상극장의 모습이 동일했고 가상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관객이 오큘러스를 벗으면 현실 극장의 빈 공간을 보도록 하는 구성이었어요. 〈개인주의자의 극장〉은 VR을 처음 사용했던 작업이라 그 매체의 속성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 〈I’m the church〉의 관람 방식과 연출 방식의 차이가 커요. VR은 관객이 주체가 되어 체험과 경험을 해요. 실제 극장도 아날로그의 방식이지만 가상현실로 만드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가상과 어떤 차이를 지니는 것인지, 실제와 가상을 똑같이 만드는데 차이는 무엇인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VR은 시각에 치중되어 있는데 가상에서의 시각과 실제 앞에서 발생하는 것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것을 이머시브(immersive)라는 키워드로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 현실과 가상의 몰입도는 어떻게 다른지 등의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가상현실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각 공간마다 한계가 다르기에 신체 또한 달라요. 작업을 하면서 한 달간 오큘러스를 계속 쓰고 가상공간 안에서 퍼포머들과 연습을 했는데 어느 순간 현실성이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움직이기 위해 퍼포머의 실제 신체를 센서가 트래킹을 하는 데 전신이 지원되지 않다 보니 조이스틱(joystick)으로 아바타의 걷고 뛰는 속도를 제어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퍼포머들이 그것을 제어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것은 신체적인 한계가 아닌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처음마다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양은혜:
가상공간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가 주체자가 되는 데에서 능동적인 참여가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기존 극장에서의 관람 방식이나 문법으로부터 달라지는 지점 또는 해석하는 것에 따라 극대화될 수도 있고요. 오브제와 장치의 운동성을 관람하는 것으로부터 관객이 직접 이동하거나 움직여야 할 때 서사 외에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작품 공간 내에서 객체들의 네트워킹을 만들어내고 관객의 변수를 고민하는 뭎의 입장에서 첨언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해요. 특히 민선님은 건축을 하시는 입장에서 사용자가 주체가 되어 어떤 공간을 경험하게 될 때 사용자의 이동에 따라 공간의 연결성과 공간을 예측하게 되는 상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손민선:
실제 공간과 VR 공간이 환경이나 그곳에서 행동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 제가 VR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세영님이 가상공간에서 긴 시간을 지내면서 실제 공간을 가듯이 거기서 움직여지게 되는 것이 실제 공간에서 방법을 찾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어느 공간을 계속 방문하면서 제약이나 방법이 찾아지는 것처럼요.
조형준:
목적성이 들어왔을 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요. 예를 들어, 부동산에서 VR을 접목시킨다면 각 공간을 가상에서 보며 부동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잘 사용하겠죠. 그 차원에서 세영님이 말한 서사도 예술작업에서 기술 매체를 사용한다고 할 때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있을지 그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아요.
윤푸름:
어떤 목적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반대로 몸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질문할 때 몸의 제한은 있는 것 같아요. 세영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로 시각적인 작동으로 이뤄지는 VR 환경에서 시각을 제외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감각할 수 있을지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춤을 무엇으로 감각하는가, 춤추는 사람, 춤을 보는 사람. 시각이 작동되지 않는 상태에서 내 몸은 무엇이고 무엇이 작동되어야 하는지. 그런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면서 본질적으로 몸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시각을 제외하고 어떤 감각들이 있는지 그것을 VR과 함께 생각한다면 제한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세영:
익숙함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하다 보니 저는 거의 포토샵,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등 대부분 2차원에는 익숙한데 3차원 툴은 어렵더라고요. 저는 공연을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해석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래세대는 우리보다 3차원을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요. 다른 형태의 관람 방식, 신체 역시 다르게 생각할 것 같은데 이것이 익숙함의 문제 같아요. 기술의 편리함은 어차피 해결될 테지만 인식을 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신체를 어디까지 정의하는지도 달라질 것 같고요.
안무, 제도
제4회 댄스 엘라지(DANSE ELARGIE)에서 1등 수상작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사진제공: 정세영
양은혜:
오늘 다룬 작품과 작업 방식 속에서 안무가 어떻게 정의 혹은 작동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윤푸름:
공연예술계에서 안무가의 역할이 신체 기반의 작업으로 고정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안무가의 질문이 무엇을 향하는지에 따라 신체(身體)가 몸체(몸體)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무가의 시선과 질문에 따라 역할은 계속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속하는 안무의 과정에서 경계의 확장이 일어나기도, 안무 너머에 다른 것을 행하게 될 때 이미 다른 분야에서 칭하는 역할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시작이 안무이기에 ‘안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세영:
저는 제가 한 작업을 스스로 안무라고 얘기해 본 적은 없어요. 그 이유는 정체성 안무, 연출, 큐레이터든지 간에 질문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생겼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안무라는 용어가 무용으로부터 나왔기에 신체 기반의 작업을 할 땐 안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저는 대체로 제가 하는 작업을 ‘공연’이라고 칭해요. 작업이 연극 혹은 공연, 극장에 대해 하기에 안무가보다 연출가라는 말이 더 편하고요. 나중에 작품의 형태가 비슷할지언정 처음 질문이 어디 있는지에 따라 작품의 줄기와 감상의 차이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양은혜:
제4회 댄스 엘라지(DANSE ELARGIE)에서 1등으로 수상했던 작품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2016)였어요. 그 작품의 질문은 안무에서 시작했었나요?
정세영: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연극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작업의 질문도 거기서 출발했어요. 공연예술계 전반에서 이 용어를 통용시키던 시기가 있었던 반면 소외시켰던 시기가 있었고 작품에서 사물의 운동성, 운동의 방향성이 중요한 장치였기 때문에 댄스엘라지 발표작으로 선택했었어요.
양은혜:
댄스 엘라지 수상으로 세영님의 인지도가 국내 무용계에서 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후 작품 제작지원은 주로 어느 분야에서 선정되는 편인가요?
정세영:
저는 무용 분야에서 직접적으로 지원받은 적은 없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서만 활동해 봤어요. 제도권 내에서 분야로 따지면 다원예술에서 많이 받았고요.
양은혜:
윤푸름 안무가님은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로 올해 무용 분야에서 지원 선정이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이 작품이 무용 장르임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을까요?
윤푸름:
전혀 없었어요. 지원서를 무용 분야에 제출하고 떨어지면 다른 분야로 다시 제출하려 했었어요. 그런데 선정 결과를 보고 이제 창작에서는 장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었는데 한편으로는 심사위원마다 정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니 그것도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손민선:
처음에 뭎의 활동 범위를 안무가, 공간 연출이라는 명확한 구분으로 밝혀주는 것을 외부에서 좋아하기도 했고 작업이 그렇게 설명되는 것이 편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도 했고 그것이 사람이나 신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더라고요. 『공간의 안무』라는 책도 있는 것처럼 안무가 넓은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가 하는 것이 구성, 연출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무와 공간 연출의 구분이 희미해졌어요.
조형준:
저희 공연에는 무용평론가가 오시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작업이 무용이라고 할 수는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런데 안무라고 하는 범위의 자체를 넓게도, 좁게도 볼 수 있어요. 작업하는 주체가 안무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떠한 역할의 범위를 규정하고 직함을 붙이는 것이 제도적인 것 같아요. 건축가, 안무가, 무용수로 불리지만 실제로 하는 일과 다른 경우도 있어요.
양은혜:
예술 단체가 해석하는 고유성의 개념과 작업 흐름이 제도권에서의 장르 구분과 차이가 있다는 점은 중요한 논점으로 다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zoom 좌담,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뭎(손민선, 조형준), 정세영, 양은혜, 윤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