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2년 1월 21일 오전 10시
장소: 서울무용센터 스튜디오블랙
참석: 김재리(드라마투르그, 모더레이터), 김바리(안무가), 유지영(안무가), 이윤정(안무가)
녹취 기록 및 정리: 양은혜(춤in 편집장)
편집: 양은혜, 김재리
*본 좌담은 발열체크, 소독, 거리두기 등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무용인들은 몸의 사용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방식 등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 중 몸에 더 집중하여 작업을 하는 무용인들을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소매틱스(Somatics)는 1970년대 토마스 하나(Thomas Hanna)가 인간의 정신이 통합된 ‘살아있는 신체(living body)’를 의미하는 그리스 어원의 ‘soma’로부터 인간 움직임과 학습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1소매틱스라는 용어를 통해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 통합적 신체(Body in its wholeness)에 관한 철학적 제고가 있었으며, 신체, 주체, 움직임 등 무용에서 핵심으로 다루는 요소들에 대한 다른 시각과 창조의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왼쪽부터 김바리, 이윤정, 김재리, 유지영 ⓒ오창동
김재리:
안녕하세요? 2월 춤in은 ‘횡단하는 춤’을 주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몸의 확장, 움직임을 확장하는 몸, 움직임을 확장하는 기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팬데믹 이후 무용인들은 몸의 사용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방식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는데요, 그 중에서도 몸에 더 집중한 무용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좌담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좌담에서는 행위/행동과 신체적 지각(perception)에 관한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가 안무와 춤, 그리고 공연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소매틱의 역사나 정의를 살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 무용장 내부에서 소매틱의 지식과 실천을 통해 기존의 안무, 춤, 공연에 대한 비평과 창작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하는데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유지영:
안녕하세요. 안무가이자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는 유지영입니다. 좋아하는 안무가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게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이윤정:
안녕하세요. 저는 안무가 이윤정 입니다. 평소 흠모하던 김바리, 유지영, 김재리님과 몸에 대한 이야기를 폭넓고 깊이 나눌수 있을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김바리:
안녕하세요. 저는 무용가 김바리입니다. 오늘 이렇게 의미있는 좌담 자리에 멋진 무용가분들과 함께하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소매틱스와 방법론, 용어의 문제들
김재리:
각자의 작업에서 수용하고 있는, 혹은 영향을 받은 소매틱스의 특정한 방법론이나 레퍼런스, 지금 관심 있는 개념이나 용어 등이 있다면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시고 그것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함께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바리 ⓒ오창동
김바리:
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소매틱은 바디마인드센터링(Body-Mind Centering)2이에요. 기본적으로 소매틱과 바디마인드센터링이 다루는 범주가 넓다보니 이를 통해 타장르와 체화해부학을 비롯한 생물학, 물리학 등의 학문으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윤정:
저도 바디마인드센터링을 통해 소매틱스에 관심이 생겼어요. 제주에서 바리나모의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 발생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어요. 사람이 배아의 단계에서 집합체의 세포로부터 팔, 다리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 에너지에 놀랐어요. 당시 저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였는데 ‘내 몸의 세포는 이렇게 시작했는데 나는 앞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을 막연하고 괴로워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장면으로부터 다시 출발했던 것 같아요. 소매틱은 객관적이고 해부학적인 근거를 통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지금의 나의 상태, 현존하는 몸이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학문인 것 같아요.
유지영:
저는 소매틱스를 배웠다고 얘기하기에는 어렵고 아직 모르기도 해요. 바리나모와 이윤정 안무가가 작업에서 소매틱적인 것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제가 하고 싶은 작업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리나모의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소매틱을 처음 접했고 그것을 제 작업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여오게 됐어요. 방법론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요즘에는 ‘알아차림’을 시도하고 있어요. 내 삶이 지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휴머니즘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미생물을 품고 있는 내 몸이 다른 종(種)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몸을 자각하고 미생물을 알아차림으로써 다른 종들과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공생하여 나란히 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작업에서 알아차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바리:
동양의 수련법들은 근본적으로 소매틱적 접근법임에도 불구하고 명명되지 않은 소매틱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구에서 발생한 소매틱스 방법론을 배우지 않았을 때, 언급의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유지영씨가 이야기한 종에 대한 구분이 소매틱에서도 시기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있어요. 타자화 했던 많은 것들을 내 몸의 내부에서 인식함으로써 나와 타자가 수평적 위치에서 다른 상태에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고는 타자화로 인해 파괴되었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인종, 난민 뿐 아니라 동물, 식물, 사물 등의 관계에서의 다양한 이슈를 소매틱적인 사고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재리 ⓒ오창동
김재리:
한국에서 새로운 용어를 국외로부터 받아들일 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용어를 의도적으로 피해 소매틱스를 ‘몸학’으로 번역하거나 소매틱적인 것을 번역해 감각, 지각, 의식, 알아차림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소통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소매틱스를 원어 그대로 전문용어로 사용했을 때 형성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더 적당한 용어를 찾기 전까지는 소매틱스라는 용어를 흐름에 올려놓고 소통을 할 때 소통의 재료를 확보한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용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소매틱적인 방법론을 몸으로 습득했을 때 용어에서 담고 있는 사회적 기능도 포함되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소매틱적이라고 얘기한다면 핵심적으로 시작하는 게 몸과 정신과 영혼의 합일에 기반해 얘기하는 것 같은데요, 그 외에도 소매틱스라는 용어를 썼을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바리:
감각도 중요하고, 과정,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어떤 상(像)을 정해놓고 달려가야 하는 몸이었다면 지금은 무엇의 상태, 몸 안팎의 상태를 움직임으로 감각하고 표현하는 상태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이 소매틱스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공연에서는 퍼포머가 감각하는 상태에 머무는 것에서 나아가 미적인 표현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점에 대한 여러 방식,의견들이 나오고 있어요.
결과로부터 과정으로의 전환
김재리: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건가요?
김바리:
과정을 결과로 보는 거예요. 발생학에서 사람의 탄생을 아주 작은 수정란으로부터 배아, 태아라는 단계로 볼 때, 사람이 태어난 시점을 결과로 볼 것인지 발생의 과정 중에 일어나는 각 단계들을 완성된 그 자체로 볼 것인지에 대해 질문 하는 것처럼요.
김재리: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공연의 목적이었다면, 과정의 단계들을 각각의 프로덕션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결과물이 풍부할 수 있고 과정중심이지만 무엇이 과정일 수 있겠냐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요.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도 무대에 무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죠. 작업자들도 지속되는 매 과정에서 생산되는 것들을 지켜보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정리해 보라든지 등 하나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 미적인 기준들이었다면 지속하는 과정에서는 무엇이 나오는지 관객들이 계속 알아차려야 하는 시점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이윤정:
알아차림과 관객의 경험이라고 하니 저는 관객이 퍼포머인 나와 감각을 함께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제가 혀를 움직이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 공연을 봤던 친구들이 관람을 하면서 입 속에서 자기 혀를 움직였다는 후기를 들려줬었어요. 어느새 관객의 몸이 공연을 같이 감각하게 하는 것도 소매틱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상대의 감각을 이끌어 내려면 내가 먼저 무언가를 수행해야 것 같아요. 과정과 과정 사이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굉장히 전략적인 방식인 것 같아요.
<설근체조> 공연사진 ⓒ박해욱
유지영:
지금 말씀하신 <설근체조>(2019)를 저도 관람했는데요, 관객으로서 입 안에 혀가 놓여있다는 것을 느끼는 기분이 좋았어요. 당시 저는 소매틱 작업을 시도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으로 퍼포머로서 관객과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거든요.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작품을 관람한 관객에게 작품을 이해했는지, 잘 봤는지, 내가 만든 것이 정확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네가 어떻게 느꼈어? 너는 그때 어떤 몸이었을지 궁금하다’라는 질문을 하며 관객의 몸이 이 공연장에서 어떤 상태로 나와 함께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몸에 집중하는 퍼포머의 몸을 봤을 때 그 힘이 내 몸에도 전이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에게는 새로운 관람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어요. ‘그동안 무용이 시각과 텍스트에 의해 관람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몸으로 공연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됐어요.
안무 작업의 변화
김재리:
본인의 경험에서 소매틱적인 지식과 실천을 수용한 이후의 작업은 이전과 차이가 있었나요?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 차이와 변화를 발견하셨나요?
유지영:
이전에는 작업의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고 다른 지식을 잡으려 했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것들이 저를 공허하게 만들더라고요.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주는 것, 그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공연을 만드는 것 같다는 자각을 작년부터 하게 되었어요. 공연이 마치 생일잔치처럼, 그날을 위해 사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 공연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어요. 그 후로 작업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요즘은 공연을 해도 오늘과 내일의 연속하는 시간 속에 사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무대에 올라요. 무대에 올랐을 때 오늘의 몸을 느끼는 것이 좋아요. 과거에는 연습했던 몸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오늘의 몸이 무대에 있다는 것, 이것이 하나의 사건이나 이벤트가 되는 것이 아닌 어제와 오늘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에요.
유지영 ⓒ오창동
김바리:
관객으로서 유지영씨의 작업을 보았을 때 그런 지점이 보이고 느껴져요. 다른 무용수로도 대체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어 살아있는 몸으로 보이는 것 같아 좋은 것 같아요. 이 고요함이 또 다른 표현이고 영감을 주는데 공연의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윤정:
내 몸의 인지가 어떤 목표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의해 들여다봐야만 그것이 작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직업이 예술가라면 예술가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볼 때 소매틱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안무라는 것이 갑자기 책을 읽고 몸을 만들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과정과 시간이 쌓여서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해결하는 몸이 평소의 몸과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그 순간이 관객과 만났을 때 이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소매틱을 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거든요.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 내가 몸과 마음을 바라보고 어떻게 작업을 할 것인지 생각하다보면 결국은 이벤트성으로 빠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현재 저는 활동가이기도 하고 예술이 운동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가치를 어떻게 나누고 나의 질문과 타인의 질문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몸도 수련해야 하고 질문도 계속 가져야 하고 몸과 질문과 세상이 만날 수 있는 삼각구도를 계속 공부해야 하는 힘든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김바리:
저도 수련이 가장 중요한 태도인 것 같아요. 공연자가 지니게 되는 일상의 몸과 공연의 몸 사이에서. 이벤트적이지 않은 일상적인 시공간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고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수행자라고 했을 때는 일상의 시공간을 깨닫고 훈련하는 기회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공연에 기입된 일상
김재리:
소매틱에서 개체발생, 계통발생학 등 진화론에 근거한 이론들이 있죠. 공연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환경에 의해 진화해야 하는 것, 공연의 상태에서는 환경적인 변이가 들어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다른 발생학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공연의 상황 안에서도 내가 어떤 내재적, 환경적 요인의 상호성을 통해 어떤 발생학적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우리가 일상과 공연을 대조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게 순환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일상과 공연에서 정적이고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생물처럼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상과 공연의 변증법이 생성됐을 때 제3의 다른 것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로 다시 소매틱으로 돌아가는 포인트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공연의 시간성이 바뀌고 있다든지, 이 공간이 무대가 아닌 다른 장소가 되었다든지 소매틱스적 상태와 공연의 요소가 맞물리는 순간일 수 있죠. 소매틱과 공연, 신체 내부와 외재적인 요소는 어떻게 안무와 공연에서 수렴될 수 있을까요?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되기도 한다> 공연 사진 ⓒ곽소진
유지영:
저는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되기도 한다>(2022)에서 소매틱스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안무적인 장치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몸 바깥 보다 내부에서 안무하려 하는 것을 더 했던 것 같아요. 관객이 공간적으로 자신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모르고 허공의 공간에서 부유하는 것 같은 상태를 만들거나 음악을 진동의 차원으로 사용했을 때 퍼포머와 관객이 진동으로 몸을 계속 경험하기를 바랐어요. 조명도 관객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흔들리는 건지, 내 눈이 그렇게 보게 되는 건지를-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에서 다른 몸을 경험하게 하는 것을 안무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다른 몸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김바리:
저의 작업은 일상에서의 질문과 연결되고요, 작업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접점과 연결성을 끊임없이 찾고 있어요. 제주도에 처음 정착하는 1년 동안 공연과 춤을 추는 것을 잠시 멈췄어요. 도시에서는 작업의 흐름들이 유행처럼 쏠려 다니는 것 같아, 움직이는 것이 내 의도인지 주위의 흐름인지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춤을 추지 않다보니 만드는 것, 목적없이 이것저것 설치 작업을 많이 했어요.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는 병들, 만들어 걸어놓은 처마 밑 풍경을 지켜보다 보니, 이걸 놓기 전에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몸체가 춤과 음악을 풍경처럼 구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landscape이자 wind chime의 결합된 상태를 의미한 <풍경>작업이 시작되었어요. 2013년에 <풍경>개념이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바리나모의 작업의 주제이자 움직임 매소드로 다양한 변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몸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현이 달라짐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인체를 예를 들면, 심장, 장기, 뼈, 세포 등이 구현하는 것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구현체라면 표현도 되어야 하는데요, 내적인 움직임이 외부로 나오기까지, 존재에 대한 차원과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처음에 소매틱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거의 외부적으로 움직임이 나오질 못했어요. 정확히 말해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외부인들이 봤을 때에는 움직이지 않고 뭔가를 느끼고 있다고 보여지는 상태였지요. 나는 느끼고 있지만 내적인 동력에 정직하고 싶다 보니 외적인 표현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죠. <Support&Expression>(2019)에서 했던 것은 내적, 외적으로나 지지되고 있는 몸과 움직임 자체가 표현이라는 것을 리서치하기 위해서였어요. 공연에서는 많은 표현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을 표현이라고 믿었기에 공연자로서는 일면 고통스러운 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거기서 존재와 증명의 싸움이 또 일어났어요. 그 뒤로 최근에 <아나킥 리추얼>(anarchic ritual, 2021)이라는 작업을 했는데요, 저희의 상태를 제목으로 드러냈었어요. 내적인 표현과 일종의 무질서의 상태-관객과 공연자를 포함해 모든 것이 춤과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같이 만들어가는 의식적인 상태, 춤과 음악이라는 감흥상태, 여기서 음악성이 들어왔어요. 음악을 몸으로 바라보고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가무' 상태에 놓여보자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만나다보니 내적 인식, 심장의 두근거림의 깊이를 스스로 제한시키지 않고 음악적인 상태에서 지금 두근거리는 이 심장과 같이 있어보자는 시도를 하며 소매틱이라는 인식이 작업에서 음악적 표현으로 넘나들며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나킥 리추얼>(Arnarchic ritual, 2021) 공연사진 ⓒ바리나모
소매틱스와 안무: 미학과 비평의 문제들
김재리:
소매틱스가 개인의 내부를 파고드는 것에 초점을 두다보니, 무대와 같은 공적 공간과 예술의 사회적, 미학적 논의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요. 무대는 클리셰로 이미 꽉 차있다고 하죠.. 조명과 음악, 구조, 제4의 벽까지 변하지 않는 환경인거죠. 이미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몸 하나 변한다고 해서 관객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내 몸의 상태와 연결될 수 있는 외부의 재료 탐색들도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하지 않을까요? 내 몸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아나키즘적인 상태를 가질 수 있지만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 이상 무대나 관객, 내가 관계 맺는 것들에 대한 시각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미학적인 기준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몸으로부터 시작한 요소들이 다른 공연적인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 있을까요?
이윤정 ⓒ오창동
이윤정:
저는 작년 12월에 《엘리베이션/서큘레이션》(2021) 전시에서 했던 작품 <3circles>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굉장히 많이 흔들렸어요. 소매틱적인 접근으로 제가 사회구조 안에서 제가 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적당한지에 대한 문제였어요.. 한 달 간 수련, 일상, 춤을 매일 균일한 시간을 갖고 작업을 해봤어요. 그러다보니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에는 연습실에서 4시간 정도 연습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8시간, 10시간의 시간을 투자하니 깊이가 생기는 건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강해지더라고요. 저는 연습량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근육이 저에게 리듬을 못 주면 저는 무대 올라가기 매우 두려운데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두려움은 더 강해지더라고요. 이 작업은 제가 충분하다고 생각한 범위에서 더 나아가 노력했을 때 작업을 스스로 신뢰를 갖고 바라보게 되는지 살펴보면서 일상도 달라지는 시간이었어요. 그 즐거움이 관객이 느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담론을 계속 만들고 그렇게 되지 않을 상태를 만들어야 하죠.
김재리:
개인적 수련이나 수행을 위한 소매틱스가 무대와 같은 공적 공간이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떤 작업들에서는 ‘왜 무대에서, 관객 앞에서 수련을 하지?’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거든요. 무대, 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때 관객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관객과의 미팅 포인트에 대해서 고려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관객의 몸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김바리:
작업자와 관객이 작품을 같이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작업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연을 계속 하며 힘을 갖게 되는 것은, 관객들과 함께 공연의 시공간에서 공연이라는 무엇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소매틱에 있어서 ‘되는 것’, ‘되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춤이 되는 것, 음악이 되는 것이에요. 공연이라는 시공간에서 춤과 음악이 된다는, 그래서 공간도 관객도 공연도 춤과 음악과 의미가 되고, 되어간다는. 어쩌면 끊임없이 불가능하고 불완전한 것들을 시도하는 인간적인 상태이죠. 이 지점에서 소매틱적 인식론이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김재리:
소매틱적인 공연을 보면서 이 주제가 뭐고 콘텍스트가 뭔지 묻는 관습적인 비평의 방식이 아니라 작품을 읽어주는 준거들이 다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지를 동시에 생각했어요. 소매틱을 기반으로 하는 안무가들은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을 생각하고 있는지, 혹은 그것을 봐줄만한 외부의 비평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김바리:
요즘은 관객들로부터 감사하게도 여러 다양한 글을 받게 되어요. 개개인의 표현, 피드백과 공유의 방식과 채널들, 형식과 내용도 다양하고요. 비평계쪽 차원에서 볼 때도 채널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요. 공연 때 글을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마치 자동기술법 같기도, 시 같기도 하고요. 본 감각 그대로의 아름다운 글이거든요. 이 또한 또 하나의 독립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작업과 작업이 연결되고 제가 그 글을 독자-관객으로 보게 되는 것에서 새로운 순환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관객도 이 감각을 기록하고 싶고 기록이 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면서 감각이 표현으로 공유되는 거일 거고요.
유지영:
관객, 비평가도 자신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몰두하고 있는가. 관심주제, 읽어내고 싶은 것, 관점이 있다면 읽어낼 수 있는 것 같고 그것이 작가의 작업과 맞닿는 것 같아요. 저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공연을 보면 글을 잘 써줘요. 그 글에는 제가 작업 과정 중에 생각했지만 언어로 명명하지 않았거나 흘러갔던 것을 잡아주고 있어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작업을 이처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술계에서는 작가들을 많이 읽어주는 것 같아요. 작가가 원치도 않는데 읽혀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만큼이요. 그런데 무용계에서는 안무가가 많이 읽혀지지 않고, 작가의 관점을 꿰뚫고 있지도 않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그것이 안무가의 역할인줄 알았어요. 안무가가 자신의 작업을 개념화하고 담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미술계에서 전시를 할 때 서문을 받는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거든요. 내가 작업하는 것을 왜 다른 사람이 소개하는지. 그러나 내가 한 작업을 누군가가 개념화시켜주고 안무가는 작업에만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비평의 힘이 커져서 작업을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김재리, 유지영, 김바리, 이윤정 ⓒ오창동
왜, (다시) 소매틱스인가?
김재리:
현재 무용계에서 소매틱 훈련 방식을 안무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소매틱스가 (다시) 유행을 하는 것일까요? 20세기 후반 개념적인 무용에 관심을 두고 움직임에 대한 거부, 매체의 확장, 탈숙련화된 무용수를 선호하는 것이 동시대 무용의 경향이었다면 지금 다시 신체,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윤정:
자신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저는 댄서로도 오래 활동을 했었고 춤과 안무의 경계에서 굉장히 헤매기도 했어요. 안무로 넘어 오면서 몸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고요. 몸이 여러 과정을 지나면서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것, 많은 컨셉이나 방식을 고민했다가도 어느 날 그걸 뛰어넘는 게 몸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움직임에 대한 신뢰가 예전보다 강해졌어요. 저는 모던댄스의 시기에 춤을 배우기 시작해 컨템포러리 댄스로 전환되는 시기를 겪었는데 그 변화를 누군가 읽어주고 내가 역사의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바리:
소매틱은 질문의 상태인 것 같아요. 요즘은 소매틱하면 떠오르는 온전한 몸의 이완의 상태에서 나아가, 몸이 이미 갖고 있는, 신명, 생동은 과연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요. 말하자면 전통문화에서는 일종의 소매틱을 느끼는 점에서 보자면, 역동적인 신명의 상태까지도 생각하게 되거든요. 언어를 뛰어넘어 트랜스의 상태. 거기엔 몸, 정신 다 있어요. 서구적인 상태, 이완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관점도 너무나 훌륭한 툴이지만 이미 몸 안에도 신명이 있다면 그 안에서 어떤 이완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재리:
무용사에서 춤의 기원을 의식(Ritual)으로 이야기하잖아요. 의식적이고 제의적인 요소들이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형식화됩니다. 근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만들어지죠. 발레는 굉장히 형식화되어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몸을 거의 제거하여 다른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그렇지만 형식을 제거하고 동작자체만 보면 과거에 있던 뻗기, 돌기, 뛰기 등의 원시적인 춤의 요소들이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추적, 원래의 모습으로 가려는 것 자체가 소매틱스의 수련자이자 동시에 춤의 관점에서는 근원적인 것들에 대해 학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윤정:
저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소매틱을 접근했었던 시점은 제 몸이 아파 어떻게든 회복을 하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었거든요. 환경도 마찬가지에요. 예전에는 쓰레기가 난지에 쌓여 있는 걸 보면서도 쓰레기를 버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쓰레기를 보면서 저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역추적 하게 되요. 현대인이 고기를 많이 먹으면서 성인병이 발병하고 있어요. 이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어떤 자본논리로 고기를 먹게 됐는가? 이런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굉장히 소매틱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정신도 병든 시대라고 이야기하는데 개인의 관계성, 물질을 이루는 관계에 대해 산업혁명 이후에 생각하지 않았던 것, 인간이 생산에 급급했던 흐름이 이 시대에 와서 자각하게 되는 것 아닌가. 무언가를 만들어 아름다움을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사가 달린 시점에서 수술하듯 해부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술교육도 굉장히 많이 바뀌어 가고 있어요. 예술교육에서는 아티스트들이 학생들과 만나 과정 중심,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나누거든요. 예술이 치료 목적은 아니지만 어떤 용도로는 그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요. 몸을 몸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과 구조 안에서 관계를 어떻게 하면 인지하면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예술이 세상을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거기서 소매틱적인 접근이 윤활류의 기능을 더하는 것 같아요.
김재리:
현재 한국 제도권에서 콩쿠르나 입시무용, 대학의 장르 구분적인 무용 훈련 등은 소매틱과 훈련과 가장 먼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전문 무용수나 아카데미 교육의 차원에서 소매틱이 어떤 방식으로 훈련, 교육되면 좋을까요? 소매틱적인 훈련 방법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김바리:
훈련된 몸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는 외부적 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이 배워왔던 것들을 없애려는 싸움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훈련이 필요한 장르들이 있고, 훈련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고요. 소매틱은 자신의 몸을 감각하고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몸을 인식하는 다양한 상태들을 제시하는 것이니, 소매틱과 강도가 있는 훈련과 만나는 지점이 서로를 계속 발견해 나갈 거라 생각해요.
정자와 난자가 수정이 되어 엄마 뱃 속에서 배아-태아의 단계에서 자라나면서, 태아의 심장이 몸의 바깥에 있다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시기가 있어요. 이때 팔다리가 생기는 시기와 겹쳐, 어느 순간에 두 손 안에 심장이 들어와 있는 시점이 순간적으로 있게 되거든요. 이 시간이 지금 우리의 몸에 계속되고 있는 거고, 손과 손 사이에는 나의 심장이 있었고, 박동하는 생동이 지금의 내 손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거죠. 핸드폰을 하는 것으로 내 손의 대부분이 쓰인다고 하지만, 내 손 안에 심장이 있었다고 할 때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전복될 수 있어요. 시적이지만, 사실이기도 해요. 이런 인식을 함께 할 때 큰 변화와 안으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이게 일종의 소매틱적 훈련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수련, 수행처럼요.
유지영:
배우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눈과 사유할 수 있는 상태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하던 길 외에 다른 움직임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소매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의심하는 상태면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에요. 내가 믿음을 가져야 훈련이 가능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