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속은 드라마, 영화, 만화, 웹툰 등의 대중 매체의 소재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무속이 근현대화를 겪으면서 미신으로 폄훼된 부정적인 인식이 대중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반면, 한국의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으로서 주목받고, 무속의 점복-주술적 기능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학문의 영역에서 무속이 인류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는 공동체적 기억을 담고 있는 유산이라면, 춤, 무가, 소품 등을 담은 전통 종합예술로 문화재적 전승과 보존의 중요성도 가지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다큐멘터리 영화, <샤먼 로드(Shaman Road>로 알려진 박성미 만신님을 모시고, 종교적 영역에서의 무당만이 아닌, 대중문화와 전통 예술의 영역을 아우르고 있는 무당의 활동에 관해 들어보았다. 또 현대 공연예술의 창작자로서 무속의 의식을 바라볼 때 생겨났던 궁금증들을 질문하였다.
왼쪽부터 박성미, 서영란 ⓒ이민희
굿과 공연 사이: 무당과 공연예술가
박성미:
안녕하세요. 저는 황해도 굿1)을 하는 박성미 무당입니다.
서영란:
안녕하세요. 박성미 선생님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안무가 서영란 입니다. 2010년 정도에 인천에서 황해도 굿 보존회의 배연신굿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무속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서울의 마을굿들을 찾아다니고 인터뷰하며 공연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한국의 극장 무대가 생기기 이전에 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질문하며, 순천 삼설양굿, 동해안 별신굿의 무인님들을 인터뷰하고 공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저의 관심 때문에 만신님을 인터뷰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화재로 지정된 황해도 굿을 하시면서, 황해도 외의 지역에서 개인 굿도 하실 것이라고 짐작했는데요. 맞나요?
박성미:
네, 맞아요. 그런데 제가 신어머니에게 황해도 굿을 배웠기 때문에, 개인 굿을 할 때도 황해도 굿을 합니다.
서영란:
황해도 대동굿이나 배연신굿도 하고 계신가요?2)
박성미:
마을잔치가 있을 때는 대동굿을 하는데, 배연신굿은 개인적으로 의뢰하시는 분이 많지 않으세요. 대동굿도 마찬가지네요. 요즘에는 마을 사람들이 단합해서 굿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요.
서영란:
원래는 의뢰하는 마을이 여럿 있었나요?
박성미:
그렇죠. 마을마다 다 대동굿을 했었고, 정월 대보름이나 10월 3날에 고사를 지낼 때도, 대동굿처럼 고사를 지내긴 했죠. 지금은 공연을 의뢰하시는 분은 많이 없고, 개인적으로 의뢰하시는 분들한테 굿을 하고 있습니다.
서영란:
만신님께서 ‘굿’이 아니라 ‘공연’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이 흥미로운데요. 만신님께서는 ‘굿’과 ‘공연’을 어떻게 구별하시나요?
박성미:
일반 사람들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할 때 ‘굿’이라고 하죠. 공연은 각본을 짜고, 굿을 일반굿과는 다르게 진행합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민족춤협회의 무용가들과 함께 협업하여 공연을 올리면서 기존의 굿의 틀을 벗어나서 다양한 형태로 공연했어요.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굉장히 좋았습니다. 공연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굿당에서 행해지는 굿처럼 섬세하게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일반굿에 비하면, 공연은 접신하는 것도 어느 정도 선까지라는 경계가 있습니다. 공연 때 공수를 주기도 하나 다양한 사람들이 보러온 만큼, 세세하게 공수를 주지 못합니다. 일반굿에서는 한집안을 위해 굿을 하고 공수를 주기 때문에 집안 사정에 깊숙이 들어갑니다.
서영란:
지난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 <샤먼 로드> 인터뷰 중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샤먼 로드>(2018) 스틸컷
“세계에 나가보면 굿을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예술로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굿을 보여주실 때 특히 인상에 남는 경험이 있으셨나요?
박성미: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프랑스 샤먼 축제에 갔을 때에요. 그 당시에 세월호가 터졌어요. 저희는 사고가 일어난 지도 몰랐고, 현지에 계신 분들이 매스컴을 보고 알려주셨어요. 그 당시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다가, 그 배 안에 있었던 많은 한(恨)들을 위해 의식을 하고, 또 우리나라의 이 힘든 상황을 알리고 싶었어요. 무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혼들을 위해 길을 갈라주는 것으로 생각했고요. 너무 신기했던 것은 모든 행위를 끝내고 난 후, 그곳에 계셨던 이삼천 명의 분들이 한 이십 분간 너무나 조용했어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회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이 분위기가 너무 조용하니까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어요. 저는 그걸 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이 된 것처럼 이해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서영란:
<샤먼 로드>에서도 원래는 그 샤먼 축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만신으로 갈지 말지 망설이셨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한국말로 굿을 하시는데 관객들 모두가 그에 반응하는 것을 매우 신기하게 보았어요.
박성미:
정말 언어가 필요 없더라고요. 저의 행동 표현을 보시고, 그분들도 같이 호흡하고 느끼셨어요. 약간 대답이 늦지만, 한 분이 “네~”하고 대답하면 곧 다 함께 따라서 대답해주셨어요.
서영란:
저는 만신님의 태도 또한 놀라웠어요. 한국에서 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위풍당당하게 신을 받은 모습 그대로였는데요. 외국에서 굿을 할 때 한국에서 할 때와는 차이가 있나요?
박성미:
일단 언어가 달라서 의사소통이 즉각적으로 되진 않죠. 무용공연에서도 관객들이 무용수의 몸짓을 보고 무엇을 표현하는지 이해하시잖아요. 의식을 할 때도, 무당의 몸짓을 보고 관객들이 이해하셨어요. 그래서 저 또한 몸짓을 더 크게 하고 표정도 더 밝게 합니다. 그것을 관객들이 보고 ‘이것은 좋은 것이구나’, ‘저 사람이 힘든 것이구나’ 하면서 이해하고 같이 호흡을 해주셨어요.
ⓒ박성미
무당을 향한 시선과 이미지
서영란:
또 위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본인은) 샤먼이자, 또 예술적 의식의 행위자로 비쳤다’라고 하셨는데요. 외국인들의 어떤 반응과 태도에서 그것을 느끼셨나요?
박성미:
예전에 신어머니를 따라서 독일에도 가고, 제가 프랑스에 초청을 받아 가기도 했는데, 무당은 신을 접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굉장히 예의를 갖추고 대해주셨어요. 한국 무속 제의의 아름다운 모습을 공연으로 보면서, 저희 무당을 ‘아름다운 예술을 하며, 신을 접하는 사람’으로 ‘경이롭다’라는 표현을 하셨어요. 가끔 외국인들에게 점을 봐주기도 했는데 매우 신기해하면서도 저를 통해서 한국 전체를 투영해 보시는 것 같았어요. 한국에서는 무당이란 굿하는 것이라고만 보는데, ‘아름답다’, ‘경이롭다’, ‘존경스럽다’라고 인식하지는 않잖아요. 무당을 향한 시선과 사용하는 표현이 다르죠.
서영란:
선생님께서 <샤먼 로드> 영화에서도 무속에 대한 국내의 편견에 대해 언급하셨지요. 한국에서는 개발중심의 급격한 근현대화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종교문화 때문에 무속문화와 무당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속문화가 대중 매체에 많이 소개되고 한국의 전통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점점 그런 편견은 줄어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를 체감하고 계신가요?
박성미:
옛날에 비하면 정말 많이 편견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언론에 무당들이 나와서 어떻게 사는지 당당히 이야기하고, 만신의 자제분들이 나와서 스타가 되시는 분들도 있죠. 안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무속문화를 대단하게 보고 응원해주시는 것을 보고 세상의 인식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을 느껴요.
서영란:
한국에서 무속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은 계속해서 만들어져 왔는데요. 특히 영화에서는 주로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무당이라는 사람의 삶, 그의 초자연적 능력, 샤머니즘의 신비, 또 무당이라는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심 등이 주로 다루어져 왔습니다.3) 이러한 대중 매체에서 표현하는 무속과 무당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성미:
영화의 경우, <곡성> 등 강한 영화들이 나왔죠. 감독님들도 많은 연구를 하시고 무당의 행위를 보시고 그런 장면을 연출하셨을 텐데요. 일반인들은 그게 실제 무당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 이미지의 여파가 커질 수 있어요. 그래서 무당을 비추는 모습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당의 아름다운 모습도 정말 많은데, 그런 모습이 영화로 비추어지는 게 별로 없더군요. 무당의 아름다운 행위를 비추어서 관객들이 ‘무당이 저렇게 아름다운 행위를 하는 사람이구나’를 느끼도록 하면 어떨까. 영화 혹은 매스컴에서 무당의 이미지를 각인을 시키는 면이 있어 그 부분을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하시고 배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영란:
대중 매체가 왜곡할 수 있는 이미지, 또 그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파급력이 커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영화들이 무당의 모습을 재현했다기보다는, 무속에 대해 의존과 혐오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대중의 심리가 영화에 반영되었다는 분석도 있네요.4) 그렇다면 샤먼 로드에서 비친 만신님의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성미:
영화를 보고 나서, 좀 더 예쁘게 화장도 하고 옷도 콘셉트에 맞춰서 입을 걸 후회했어요. (웃음) 감독님이 영화를 찍으실 때, “좀 화장도 하시죠”라고 했는데, 제가 “그럼 다큐멘터리가 아니잖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제 모습대로 찍으셔야죠”라고 답하니, 감독님과 같이 웃기도 했어요. 이 영화로 저의 기록이 남아서 좋았고, 저의 자식이 그 기록을 갖게 되어 좋았고, 또 저의 어머니의 기록이 남아서 좋았습니다.
서영란:
선생님의 평소의 모습이 그대로 나오셨던 거네요. 저도 샤먼 로드를 보면서 만신님의 개인적인 공간, 가족, 지인분들이 나오신 게, 우리가 알고 있던 무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었고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박성미:
정말 똑같지 않나요? 무당이라고 하면 다르게 살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일반사람들과 살아가는 게 다 똑같아요. 제가 행위를 할 때나 점을 볼 때 다를 뿐이지, 저도 똑같이 한 사람의 엄마이고 딸입니다.
박성미 ⓒ이민희
굿과 공연의 평행선 이어긋기: 형식과 교육
서영란:
이제부터 드리는 질문이 제가 안무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질문인데요. 앞에 언급된 대중매체들 외에도 현대 미술과 무용에서 무속문화는 영감의 저장고와도 같아요. 많은 예술가가 무속문화와 행위에 영감을 받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무용공연을 만들 때, 공연의 형식에 대해 고민을 했었는데요. 예를 들어 근래에는 극장의 성격과 기술에 딱 들어맞는 공연을 만들기보다는 극장 무대의 틀을 벗어나는 작업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런 점에서 공연예술은 행위자 간 상호작용이 활발한 굿 제의의 형식과 전환, 공간 사용 등에도 살펴볼 점들이 많습니다. 또 무용공연의 형식이라는 것은 무용의 형태와 또 그 형태에 영향을 준 무용교육의 방식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기에 무속이 전승되거나 교육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만신님께서는 강신무로 내림을 받으셔서, 오랜 기간 지켜보며 습득하는 세습무의 전승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데요. 저절로 신이 내려와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는 한편, 굿에 항상 등장하는 소품, 행위, 춤, 무가 등 이미 정해져 있고 체계화되어있는 형식이 있는데요. 이 형식을 어떻게 신어머니로부터 배우시는지요? 또 만신님의 신딸들에게는 어떻게 전승을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박성미: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일단 신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신어머니이신 김금화 선생님께 신내림을 받고 나서, 어머니가 굿에 들어가서 어떻게 춤을 추시는지, 어떻게 장구에 맞추시는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습니다. 무당은 무용처럼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환갑이 넘는 신어머니가 이제 막 신내림 받은 딸에게 하나하나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만세받이’라는 무가를 녹음해서 듣고 배우고 하며, 신어머니가 하는 행위를 거의 3~4년을 보고 기본 틀을 배웁니다. 그때부터는 자기와의 연습이에요. 신이 나에게 주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점을 보는 것, 신통성 그 외에는 모두 나의 노력이고, 그게 약 10여 년이 걸렸어요. 한국무용학원에 등록하고 경기도 민요 소리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현재는 무당학원이 많이 생겼지만, 그분들은 어떻게 가리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상을 차리고, 왜 이 옷을 입고, 이 무구를 사용하고, 왜 이 거리를 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노인 만신에게 묻고, 또 책을 찾아보며 공부했습니다.
서영란:
이미 존재하는 형식을 배우실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우셨나요?
박성미:
저는 정말 좋았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무당의 길을 가려면, 자기만의 노력이 없으면 프로가 될 수 없어요. 신은 신어머니가 내려주시지만, 이 길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력입니다. 또 형식과 관련해서는 처음에는 배운 그대로 정석대로 굿을 하였지만, 지금은 굿거리를 줄이던지 하여 자신에게 맞게 조절합니다. 하지만 기초가 없으면 스스로 줄이고 늘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기초가 형성되고 나서 자기 스스로 불필요한 형식이라고 느꼈을 때, 그 전체 틀이 무너지지 않는 한에 자기 판의 굿거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세월 따라 굿이 변한다고 하고 굿이 축소되는 부분이 있지만, 기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영란:
존재하는 형식들의 필요성을 느끼시는 것이네요. 굿 형식이 굿을 하실 때 아까 말씀하신 신통성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시나요?
박성미:
춤을 출 줄 알게 되고 여유가 생기면, 신과 교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영란:
굿에서 그 현장에서 신을 받아 매 순간 새로운 즉흥적인 부분과 이미 형식화-체계화된 부분이 어떻게 조화되는지 궁금했는데,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서영란 ⓒ이민희
무당의 접신과 퍼포머의 변신
서영란:
<샤먼 로드>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국의 굿 형식이 한국이 아닌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변형되어 나타나는 순간이었는데요. 영화에서 꼴레뜨(Colette) 샤먼을 두 번째로 만나러 프랑스에 가셨을 때, 집에 방문한 다른 샤먼이 나쁜 기운에 휩싸이셨는데, 만신님께서 그곳에 있는 도구로 즉흥적으로 나쁜 기운을 몰아내셨잖아요.
박성미:
한국이었으면 무쇠 칼로 행위를 할 텐데, 그곳에서는 그게 없었어요. 보통 옛날에 아이가 아프면 할머니가 부엌칼로 아이 머리를 쓰다듬잖아요. 그래서 부엌칼을 사용했었고. 한국처럼 음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거기에 있는 음식을 가져와 잡신들을 먹여서 보낼 수 있게 행위를 했습니다.
서영란:
옛날에는 집에서 부엌칼로 그런 행위를 하는 풍습이 있었군요. 지역과 문화가 다르지만, 즉흥적으로 바로 응용하여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샤먼 로드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샤먼 로드>(2018) 스틸컷
“나라는 의식이 있지만, 제삼자의 명령을 받는 것과 같다. 그 몸의 에너지가 보통 사람의 에너지와 전혀 다르다. 그 배역에 충실히 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
그 중 ‘배역’이라고 표현하신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접신을 연기와 어떻게 비교하시나요?
박성미:
신은 하늘에 있고, 신은 저에게 지시합니다. 저는 대역이죠. 신이 나를 통해서 굿의 의뢰자에게 ‘~해라’라고 하는 것이죠. 저는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중간매개자입니다. 제가 그 소리를 전하는 방식은 무속의 춤, 소리, 행위, 언어를 통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신의 소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 신도 저에게 표현할 수 있는 더 큰 힘을 주는 거죠.
서영란:
중간매개자라는 단어가 정말 적절합니다. 자신의 자아가 없는, 그야말로 통로와 같은 상태네요. 굿 의식 동안 무당은 ‘신령님이 내려온 상태' 이외에도, 대동굿과 같은 큰 굿에서는 다른 무당이 신을 받으시는 차례 때 옆에서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신의 역할이 ‘굿의 행위자’ 이외에 ‘의식의 진행자, 보조자’로 바뀌는 것인데요. 연극과 비교하자면, 무대 위에서 어떤 인물을 만들어내는 상태이다가 또 그것이 전환되거나 깨어지기도 하는 상태와 같아요. 그 두 다른 상황에서 만신님은 어떤 상태인지, 혹은 어떤 것에 집중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성미:
대동굿을 하면, 그 안의 열두 거리를 여러 무당이 나눠서 합니다. 자신이 했던 거리가 끝나면 그다음 무당이 집중할 수 있게 한마음으로 돕는 역할을 합니다. 행하는 자가 편하게 행위를 할 수 있게, 그 거리를 잘할 수 있게 모두가 그 굿 자체에 함께 집중하지요.
서영란:
그렇다면 굿에서 신복을 입고 벗는 상태는 무엇인가요? 입었을 때는 어떤 존재가 되고, 벗었을 때는 또 다른 존재가 되거나 변화하는 상태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박성미:
신복을 안 입었을 때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신복을 입으면 이미 신이 내려와 강림할 혹은 강림한 상태라 신이라고 여깁니다. 신복을 입은 사람에 대해 존중해야 해요. 그 사람의 나이와 상관없이. 나이가 많은 어른도 어린 사람이 굿을 할 때 절대 하대하지 않아요.
서영란:
그런 측면에서는 나이로 인한 사회의 서열이 사라지는 순간이네요. 무속 연구에서는 굿에서 반복되는 무당의 행위들, 예를 들어 계속 뛰거나 도는 행위들, 장구의 반복되는 리듬 등이 굿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보는 사람의 의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그 행위와 음악이 신을 받도록 돕는 거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박성미:
보통 장구, 징, 피리 악사 세 분을 모셔놓고 굿을 하는데요. 제가 행위를 하는 모습, 절을 하는 모습, 신을 받는 모습에 따라 그분들의 음악이 다 바뀌거든요. 그분들이 저의 모습을 보고, 제가 신을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올려줘요.
서영란:
즉흥연주에 가까운 건가요?
박성미:
즉흥은 아니고 악보가 있어요. 그런데 숙달되신 분은 만신의 발동작이나 하는 행위를 보고, ‘이때는 어떤 장단이 들어가야 하고 어떻게 해줘야겠다’를 생각하고, 접신이 잘 안될 때는 더 뛰어줘서 잘 될 수 있게 도와줘요. 저희는 장구를 상장구라고 부르는데, 만신과 장구를 떼려야 뗄 수가 없죠. 그분이 저희의 행위를 보고, 저희의 부족한 부분을 얼려주시죠.
서영란:
굿에서 만신이 관객과 긴밀히 소통하는 것처럼, 만신과 장구 사이에도 그런 소통이 일어나네요. 공연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들이 흥미로운데요.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배우는 무대에 있고, 관객은 객석에 있는, 이렇게 멀어진 거리를 부수는 예술가의 시도들이 굿 제의의 형태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었는데요. 반면 이제는 굿이 극장과 무대로 옮겨졌을 때 행위자와 관객과의 관계가 좀 딱딱하게 변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만신님께서는 굿을 마을의 현장에서 했을 때, 또 페스티벌, 극장, 무대 위에서 했을 때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요?
박성미:
마을에서 굿을 할 때, 저의 소리를 들려 드리고, 주민분들이 호응해 주시면 너무 재밌어요. 제 안에 숨어있던 끼가 나올 정도로. 무대 위에서는 소통이 없으면 재미가 없거든요. 최대한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특히 대감거리나 작두를 탈 때는 무대에 내려가기도 합니다. 정형화된 극장이라 “여기서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 재미가 없어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객과의 소통과 몰입이 생길 때 더 재밌고, 서로 흥이 나게 됩니다.
서영란:
마을굿을 볼 때, 대감거리에서 무당보다 더 흥겹게 노시고 춤추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박성미:
굿이라는 자체가 정형화된 것이 아니에요. 기본적인 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재간을 보여주는 것이 굿이에요. 열두 거리로 체계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기본 위에서 무당이 하는 것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영란:
이런 부분이 공연인들에게 흥미로워요. 공연의 형태를 얼마나 정해놓을 것인가, 풀어놓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요.
박성미:
굿은 정형화될 수 없어요. 굿은 신을 받는 부분이 있지만, 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고 형식 자체도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관객과 함께 하나가 되는 몰입이 일어날 때 느끼는 희열이 대단하죠.
왼쪽부터 박성미, 서영란 ⓒ이민희
신내림과 범주화되지 않은 정체성
서영란:
많은 페미니즘 학자에게 한국의 샤머니즘이 매력적인 이유는 여성 무당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매우 가부장적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무당이라는 강한 능력과 직업을 가지고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 그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박성미: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왔어요.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이 나가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하고 억눌려왔는데, 그게 폭발한 것이 무당이라는 존재가 아닐까요. 사대부 집안에서도 무당이 나왔을 것인데 족보에 기록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명석한 집안에서 무당이 나지, 어리석은 집안에서는 무당이 나오지 않는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셨거든요. 또 한이 많아야 무당이 된다고 하는데, 그 한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여성이지 않았을까. 세상 풍파를 다 겪고, 억압을 이겨내고 살아왔으니, 신의 제자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무당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더 많이 무당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서영란:
정말 타당성 있게 느껴지는 가설인데요. 또 흥미로운 점은, 무당이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용과 연극처럼 ‘다른 존재-되기’상태가 된다는 것인데요. 여성 무당이지만 남성 신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박수무당이 여성 신을 받을 수도 있는, 정해진 성 범주를 넘나드는 잠재성이 흥미롭습니다. 그 부분이 퀴어(Queer)성의 미학 혹은 이론 등에서 말하는 정의되지 않은 존재, 또 인간 누구나 퀴어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과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박성미:
무속에서는 그러한 성의 고정관념이 깨지죠. 무당은 사람이 아니라 중간매개자이면서 반신반인입니다. 우리는 굿을 할 때 아주 어린 아이부터 아주 강한 남성 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보여줄 수 있지요. 다양한 신들을 다 표현합니다. 여자 무당은 점점 더 남성화되고, 박수무당은 점점 더 여성화되는 경향도 있어요. 저 스스로 때에 따라 남성적으로 또 여성적으로 느껴질 때면, 정해진 성정체성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여겨져요. 성소수자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는 몸이 있는데 뇌에는 다른 정체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무당과 똑같다고 느낍니다. 신을 받아서 성정체성이 바뀌는 무당한테는 누군가가 성소수자라고 물어보지 않는데, 우리가 왜 그들에게 성소수자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은 자기 선택이지 그것을 국가에서 제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무당이라는 존재를 받아주지 않는 것처럼 성소수자들도 받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무당으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공감하고 더 깊이 고민하다 보니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박성미
무속과 심리치유,
변화해 갈 새로운 모습 그리기
서영란:
무속연구자분들이 한국의 굿이 ‘공동체를 위한 굿’에서 ‘소수 개인을 위한 굿’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서해안 배연신굿이나 대동굿도 원래 그 지역 사람들의 참여가 노령화, 도시화 등으로 줄어들고, 외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또 만신님께서도 다른 지역과 나라에 가셔서 굿을 하시는 것이 늘어났을 것 같고요. 이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성미:
한국에서는 정해진 굿당에서는 굿을 할 수 있지만, 마을에서 할 때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단합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과 융합해서 대동굿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개인적인 신념이나 종교의 문제 등 때문에 어렵죠. 또 도시에서 하는 경우에 많은 걸림돌이 있고, 특히 소음의 문제가 생깁니다.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굿이라고 하면 고개를 흔들죠. 지금 달나라에 가는 최첨단 시대에 왜 굿을 하느냐. 하지만 계속해 오셨던 어르신들은 하고 싶어하시죠.
서영란:
도시화되어 마을굿이 사라지는 현상도 있지만, 또 반대로 현재의 서울굿 변화 양상에 대한 연구를 보면 오히려 개인 굿의 수효와 점을 보는 젊은이들이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5)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성미:
개인 굿 의뢰가 늘어났고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것도 맞습니다. 심리적인 불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옛날보다 훨씬 커요. 그것을 풀기 위해 오는 거죠. 하지만 마을에서 하는 굿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서영란:
여전히 한국사회 내에서 무속을 향한 감성적인 의존과 심리적인 혐오가 공존하는 경향이 그렇게 드러나네요. 영화에 출연하셔서 만신님의 인생을 보여주신 것, 또 웹진<춤:in>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기인해서 만신님께서 새로운 매체에도 열려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또 영화 외에도 만신님께서 관심이 있으신 대중 매체 혹은 예술 장르가 있으시나요? 그러한 매체를 통해서 활동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박성미:
저는 연극 쪽으로 관심이 있습니다. 심리극에서, 가정이 편안치 않았는데,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보고, 아버지가 아들이 되어 보는 역할극을 하는 것을 보았어요. 무당도 심리극처럼 저렇게 심리치료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리극치료는 연극을 전문적으로 배우신 분도 있지만, 저는 무당으로서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요즘 자주 해요. 무당들은 점을 볼 때 그분의 나이나 생일을 보면서 그분의 현재 상태가 어떨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연극을 하면서 그분의 심리에 있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극 행위를 직접 하며 속에 있는 것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 연극인 것 같아요. 물론 무용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영란:
무당이 사람들을 치유할 때, 연극과 심리극을 통해서 그분들이 더 능동적으로 자기 스스로 치유를 끌어내는 것. 무속과 연극의 흥미로운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박성미:
무당이 굿이나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을 치유하거나 도와줄 수 있지만 수 있지만, 연극을 통해 그 사람의 치유를 병행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서영란:
만신의 역할에는 샤먼, 전통 예술의 연희자이자 전승자, 예술가, 심리 치유사 등 다양한데요. 이 역할 중에서 만신님께서 대중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박성미:
저는 제가 어떤 행위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 황해도 굿을 하는 만신이기에, 그 모습에서 한국의 종합예술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이 보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공연할 때, 한국의 전통 옷 액세서리 등을 제대로 입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잘못된 형태를 보이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자칫 잘못 알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외국에 나갈 땐 가장 한국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사람들을 다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로요.
서영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다운 모습은 어떤 걸까요?
박성미:
가장 기본에 충실한 사람. 변형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제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영란:
올해 굿을 하시는 일정이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박성미:
코로나 때문에 굿과 공연은 거의 다 취소가 되었고, 현재 경기도 여주에 신당을 준비하시고 있습니다. 치유센터 같은 장소가 되어서 그곳에서 공연도 하고, 필요하신 분들이 오고 가시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영란:
이제 마지막 질문이네요. 무속이 어떻게 현재에 의미 있게 여겨지고 공유될 수 있을까요?
박성미:
앞으로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의 민속 전통을 지켜줘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또 그것이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닌, 한국인 모두의 것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지켜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영란:
전통에 대한 공동의 소유를 언급하신 게 인상적이에요. 만신님께서 프랑스인인 꼴레뜨에게 한국의 샤머니즘을 전달하셨는데요. 그것이 지역적 경계를 넘어 더 넓게 공동성을 가지도록 흘러가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만신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에 많은 성찰을 하신 분이란 게 느껴졌습니다. 굿에 기본 형식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 또 만신님의 새로운 계획들, 샤먼의 치유와 연극의 심리치료를 연결하는 것 등, 만신님만의 통찰을 듣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여주에 마련하시는 새로운 터전에서 계획하시는 활동이 모두 잘 이루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연임:
굿은 한국 문화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무속신앙으로, 또 풍부한 문화예술의 원형을 담은 예술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굿은 그것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과정이자, 해학과 위트, 비장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도 느껴졌고요. 문화 인류학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었으면 합니다.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성미: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왼쪽부터 박성미, 서영란 ⓒ이민희
정리. 서영란 안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