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29일 목요일 10:30~12:30
장소: 서울무용센터 3연습실
참석자: 김바리(무용가, 모더레이터), 안이호(소리꾼), 이재영(안무가), 조아라(몸소리말조아라 대표), 김연임(춤:in 편집장)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이호, 김바리, 조아라, 이재영 ⓒKenn_김병구
김연임: 안녕하세요! 더운데 아침 일찍부터 먼 길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 예술 장르, 특히 무용 작업에 있어 소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채우면서 상황과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움직임을 유발하는 무엇이기도 하고요. 특히 즉흥춤의 경우 움직임으로 파동과 소리를 만들어 무용수의 몸과 즉흥연주자의 음악이 대화를 나누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무용음악을 넘어 이처럼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좋을 것 같아 소리(사운드)를 탐구하는 작업을 하시는 네 분을 모셨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움직임과 소리라는 공통분모로 모이신 만큼,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주실지 정말 기대됩니다.
김바리: 안녕하세요. 좌담을 진행하게 된 김바리입니다. 저는 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안무가로서 개인 작업을 해오다가 주나모씨와 ‘바리나모’라는 팀을 결성하여 2013년부터 활동해오고 있어요. 많은 작업을 나모씨와 함께하고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최근에는 ‘신비밴드’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하여 소리와 움직임을 주제로 한 작업을 발표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무술을 할 때 외치는 기합 소리에 빠져서 유도를 배우고 있어요. 이상하게 기합을 외치면서 움직이면 짜릿하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웃음) 다른 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한 분씩 간단히 자기소개와 함께 근황을 소개해주시며 시작하면 어떨까요?
안이호: 안녕하세요. ‘이날치’의 보컬이자, 소리꾼 안이호입니다. 시간 나는 대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금배섭 안무가님이 연출로 함께하신 작품 <판드라마 : 야드>(임채묵 원작)을 올렸습니다.
이재영: 안녕하세요. ‘시나브로가슴에’ 예술감독 이재영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다수 취소되면서, 지금 이 시기에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요즘에는 워크숍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외부 안무가님을 초청해서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요즘에는 기타를 치고 있는데요. 기타는 워낙 원래 좋아했던 거라 시간이 날 때 열심히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열중하고 있습니다. (웃음)
조아라: 안녕하세요. ‘몸소리말조아라’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조아라입니다. 저는 판소리와 무용 창작을 하면서, 그 두 사이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몸소리말조아라’의 공연들은 그동안 ‘조아라’라는 1인 퍼포머 중심의 공연들을 해왔어요. 작년부터 저는 무대에서 내려와 안무가, 연출가로서 작품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판소리움직임 탐구> 역시 조아라의 몸에서 시작했지만, 무용수 - 배우 - 소리꾼 - 장애인 - 아동 등 다양한 몸들을 만나서 탐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용 공연 <우리가 모이면 축제다>와 피지컬 씨어터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몸소리말조아라는 지원금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저의 집이자 대안공간인 ‘몸소리말조아라 센터’를 운영하며 워크숍, 회의, 대안공간에서의 공연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2021서울프린지 페스티벌도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에요.
작업의 시작점과 계기
김바리: 사운드나 소리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움직임과의 만남은 어떠셨나요?
조아라 ⓒKenn_김병구
조아라: 저는 아버지의 권유로 판소리를 시작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쭉 배워왔어요. 그런데 판소리는 전통이기에 어쩔 수 없이 답습해야 하는 규율과 위계가 있었고, 저랑 잘 맞진 않았어요. 저는 생생하게 놀고 싶었고 창작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졸업한 이후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우연히 연극원에서 연기 수업을 듣게 됐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웃음) 무대 위에서 노는 경험이 너무 좋아 연기를 하는 배우로 무대에 서보면 어떨까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갔는데, 또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연극에서는 서양의 교수법으로 가르치는데, 오랫동안 한국 전통 음악을 해왔던 사람이라 그런지 인지하는 방식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연극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박쥐같았죠. 그런 시기를 보내다, 저 자신을 긍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시도해보자는 생각에 작품을 만들어봤는데 재밌는 거예요. 그 작업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어 한동안 놓고 있던 판소리를 제 작업에 다시 반영해 봤어요. 무거운 족쇄처럼 느껴졌던 판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오히려 더 파고 들기로 한 거죠. 그 첫 번째 시도가 <어쩔 수가 없어>(2015)에요. 아빠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제목처럼 아빠와 저의 관계는 ‘어쩔 수가 없다’라는 뜻이에요. ‘어쩔 수가 없어’는 코미디언이었던 아버지의 유행어이기도 한데, 코미디언으로서 남에게 웃음은 주었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는 웃을 수가 없던, 마음의 눈이 먼 아버지의 눈을 뜨이게 하고, 제 삶을 구원하기 위한 작품이었죠. 작품에서 저는 굿을 하는 무녀로 분하여 저만의 방식으로 심청가를 재해석했어요. 저에게도, 아빠에게도 큰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이었죠.
배우로서 한창 쉼 없이 활동하던 시기인 2016년에 갑작스럽게 부상을 당했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는 조급하게 앞만 보며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춤추듯이 살고 싶어서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움직임을 배우면서 많은 영감을 얻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판소리움직임 탐구>가 있어요. <판소리움직임 탐구>는 호흡을 통해 소리와 움직임의 연결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작년 <판소리움직임 탐구 - 조아라 편>을 시작으로, 올해는 <판소리움직임 탐구 - 무용수 편>을 진행했어요. <판소리움직임 탐구 - 무용수 편>을 준비하면서 무용수들과 오랜 시간 입에서 입으로 소리를 전수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리고 소리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진동으로서의 몸, 감정과 호흡으로의 움직임 등을 탐구했죠. 이 과정에서 움직임으로 접근하는 것에 익숙한 무용수들이 소리로서 접근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발견하기도 했고, 제 몸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움직임의 연결지점들을 다른 몸에서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단계를 나누어 제안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런 지점들은 앞으로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더욱이 무용수 편은 <심청가> 중 ‘범피중류’ 대목에 집중했죠. ‘범피중류’는 심청이 세상사를 하직하고,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빈 배에 몸을 싣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러 가는 대목의 소리예요. ‘범피중류’를 선택한 이유는 변화무쌍한 물의 특성처럼 소리가 여러 형태로 변화하며 밑에서 위 쳐올리기도 하고 뚝 떨어지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멀리 뻗어나가는 듯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기에, 마치 소리로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죠. 에너지가 끊임없이 형태를 변화하며 흐르는 소리의 운동성이 움직임으로 확장하기에 적합한 대목이기 때문에 이 대목을 선택하게 됐어요.
안이호: 맞아요. 범피중류는 시작 이후로 초반 3분 동안 ‘끝없는 물속에 점 하나’라는 의미의 말을 계속 반복해요. 그 말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고독해지면서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되죠.
이재영 ⓒKenn_김병구
이재영: 저는 할아버지랑 고모가 소리를 하셔서 전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많았는데, 오히려 전통음악이나 연희를 하시는 분들이 훨씬 자유로운 것 같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힙합을 했는데, 힙합은 전혀 자유롭지 않았거든요. (웃음) 웨이브는 이렇게 해야 하고, 스텝은 저렇게 해야 하고, 규칙이 많고 방식을 익혀야 하죠. 그런데 왜 힙합이 자유의 상징이 된 걸까 궁금했던 적이 많아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LG아트센터에서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공연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게 자유로운 거예요. ‘저런 걸 해봐야겠다!’하고 무용을 시작하게 됐는데, 막상 학원과 학교에 가 보니, 커리큘럼이 짜여 있고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어요. 발레를 배워야 하고 테크닉을 익혀야 했죠. 배우면 배울수록 답답했고, 교육은 결국 나에게 주는 철창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저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배우지 말고 무작정 해보게 됐어요. 그저 처음에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을 습득하기 위해 서점에 가서 책을 봤어요. 기타도 그렇게 시작했죠. 아주 오래전부터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형이 군대에서 기타리스트가 되어 나타난 거예요. 형한테 배우면 될 텐데, 배우게 되면 철창에 갇힐 거라는 생각에 혼자서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음계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소리를 내보고, 소리가 좋으면 그 소리랑 어울리는 저음의 소리를 찾으면서 화음을 찾아가곤 했죠. 그렇게 기타를 배워보니 대단한 음악을 연주하진 못하더라도 음악을 만들 수는 있겠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지금은 계속 기타를 연주하며 작업에 반영하는 과정 중에 있어요. 자유롭게 풀어두고 어떤 벽에 걸리면 그건 찰나의 장치로 받아들이는 거죠.
아, 최근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기타의 반음계를 연주하는 걸 크로마틱 스케일(Chromatic Scale)이라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걸 배우지 않아서 몰랐는데, 좋아하는 재즈 음악을 따라 하려고 연주 영상을 보다가 알게 됐어요. 그전까지 제게 반음은 음계를 벗어나는, 어울리지 않은 소리였는데 재즈라는 장르에는 그걸 넘어선 아름다움이 있더라고요. 춤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 발레 바(Bar)부터 배울 때는 재미가 없었는데, 바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이 나의 몸을 바꾸어준다는 것을 아니까 재밌거든요.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때도 그렇게 해요. 움직임 순서를 일부러 뒤죽박죽 알려준 다음에, 그 친구가 정교하게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것을 하려면 필요한 테크닉을 알려주죠. 더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런 부분에서 음악과 무용이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네요.
김바리 ⓒKenn_김병구
김바리: 좋아서 시작한 것이 강제성을 가지면 즐기기 어려워진다는 말이 공감되네요. 제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인데, 제가 원래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잘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마이크를 주면서 학교 방송 카메라 앞에서 부르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제가 거절하니까 학교가 난리가 난 거죠. 화장실에 숨어 있는 저를 찾기 위해 선생님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욕설이 난무하던 그 상황이 큰 트라우마가 되어서 오랜 시간 노래를 부르지 못했어요. 맛있는 걸 먹으면 신나서 노래를 흥얼거릴 법도 한데, 그것도 안 되더라고요. 그 정도로 오랜 시간 저의 마음속에 노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자리해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 무술을 배우며 기합을 지르나 봐요. 그렇게 쩌렁쩌렁 기합을 내질러야만 속이 풀리는 것 같거든요. (웃음)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저희 집에는 수천 장의 LP가 있었어요. 그만큼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제게 악보를 가져와서 듀엣을 하자고 제안하시기도 했죠. (웃음) 그렇기에 본래 음악은 제게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었어요. 의외로 대학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춤은 전혀 모르고 지냈죠. 대학 시절, 저는 학교 방송국에서 보도부 기자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촬영을 위해 들어간 극장에서 리허설 중이던 춤 공연을 보게 됐어요. 그걸 보면서 ‘아 저걸 해야겠다. 왜 나는 저런 세계를 몰랐지’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춤을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움직임을 제게 익숙한 방식인 언어나 그림으로 기록했어요. 그렇게 춤을 만들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고, 내레이션을 추가한 댄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죠. 그 정도로 제게 춤은 언어와 함께였어요.
그러다 2005년에 독일로 낸시 스타크 스미스(Nancy Stark Smith)의 컨택 수업을 들으러 간 곳에서 즉흥 뮤지션인 마이크 벌거스(Mike Vargas)를 만났어요. 그 음악가가 즉흥 워크숍을 진행했고, 68가지의 방식으로 소리를 듣도록 했어요. 우리는 주변의 소리를 무거운가, 가벼운가, 높은가, 낮은가, 무슨 색인가 등으로 인식하여 몸으로 표현했죠. 그렇게 소리에 대한 인식을 무한대로 넓히고,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구체화하게 됐어요. 한국에 서는 지금의 더 광대, 천하제일탈공작소로 활발히 활동하는 탈춤 꾼들과 어울리며 콘셉트를 넘어선 흥에 대해,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즉흥성에 대해, 표현과 몸, 숙련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죠.
그렇게 2012년까지 한국과 외국을 오고 가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제주도에 자리 잡게 됐어요. 제주도의 바람도 느끼고, 자연에서 농사도 짓고, 직접 밥도 지어 보고, 잡히는 모든 것을 만들어봤죠. 그렇게 만든 것들을 집에 두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바람이 불어오면서 여기저기서 소리가 엄청 들리는 거예요. 처마 밑에 걸려있는 것들이나 병뚜껑이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는 식이죠. 정말 충격이었어요. 아무것도 없었는데 왜 소리가 나지? 아, 원래 여기 있었는데 나한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난 거구나. 소리와 춤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죠. 그때 받았던 충격이 바리나모의 ‘풍경’ 프로젝트의 시작이에요. 춤과 음악이 풍경을 구현하고, 모든 것이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며 변화하는 거죠. 그 작업을 하면서 몸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모와 함께 바디마인드 센터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자격증 과정을 시작하였고, 해부학책을 보면서 장기, 피부, 면역 등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몸의 구조를 공부하자, 움직임과 소리가 만나기 위해선 어떤 정보와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궁금해졌어요. 그 이후에 2018년에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즉흥예술교류’에서 타무라 료(Tamura Ryo)와 만나게 되었고, 그와 무용가들이 음악을 듣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 만남을 계기로 저와 나모, 타무라 료 셋이서 2019년에 <가무>라는 이름의 리서치 레지던시를 시작하였고, 거기서 춤과 음악은 하나라는 것이 어떻게 경험될 수 있는가를 하루종일 토론하고 실험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리를 내고, 음악을 연주하고, 움직여 보는 걸 2년 정도 해왔고, 이제 <가무> 3년 차를 준비하고 있네요. 그렇게 리서치를 계속한다면 소리라는 추상적인 것에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겠죠.
안이호 ⓒKenn_김병구
안이호: 저는 정가악회에서 남창지름시조 ‘바람이’를 편곡한 곡(이태원 편곡)을 부르던 때, 처음으로 소리를 하며 움직여봤어요. 그런데 노래가 안 되는 거예요. 충분히 연습했는데도 발을 떼니까 호흡이 달라지면서 노래가 달라지더라고요. 발을 뗐으면 발을 뗀 것과 맞추어 노래도 바뀌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호흡이 막혀서 진행이 안 되는 거죠. 걸음을 떼면 호흡이 바뀌고, 호흡이 바뀌면 노래도 바뀌어요. 그렇게 움직임에 따라 노래가 바뀌는 게 과연 맞는 건가 헷갈리다가, 그게 맞겠다는 확신을 준 작품이 안은미 선생님의 <바리>예요. 그때 선생님께서 저한테 가발을 쓰고 기어가면서 소리를 내보라고 하시길래 무작정 해봤는데 되더라고요. 그게 될 거라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 이후로 앞구르기를 하거나 옆돌기를 하면서 소리를 내는 등 이상한 시도를 많이 해 봤는데, 안 되는 것은 안 되지만 의외로 되는 것이 많았어요. 움직이면서 쓰는 근육과 노래하면서 쓰는 근육이 부딪히기도 하고 부딪히지 않기도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숨을 어디로 보낼지, 어떤 근육을 사용하여 움직일지 선택하는 것 같아요. 최대한 연습을 해보겠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잖아요. 이렇게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그날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안 되거나 등등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그에 따라 선택이 필요한 거죠.
조아라: 그래서 호흡이 중요한 거 같아요. 몸의 호흡을 통해 소리와 움직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거든요. 저는 춤을 추고 몸의 다양한 근육을 인지하는 능력이 좋아지면서 소리가 더 좋아진 부분이 있어요. 춤을 추며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소리를 내는 방식에 적용되거나, 반대로 소리를 내는 상상을 하며 움직일 때 움직임의 연결성이 좋아지고 확장하는데 적용이 되었죠. 소리를 통해 몸에 체득된 리듬감과 호흡이 움직임에 적용되기도 하고요. 소리를 내기 위해, 움직이기 위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이 점점 더 섬세해질수록 소리와 움직임이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소리와 움직임을 ‘진동하는 몸의 수행’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게 됐고요.
이재영: 저도 소리를 내면서 움직임이 명확해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제가 무대에서 해야 하는 행동들을 항상 미션이라 생각했어요. 이 타이밍에서 이 움직임을 해야 한다는 등 항상 미션처럼 수행하던 것에서, 표현의 차원으로 넘어가니 제가 스스로 무엇을 하는 건지 인지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소리를 내뱉으면서 행동과 에너지의 영역에 대해 명확해졌죠.
언어가 움직임이,
움직임이 언어가 되는 순간
안이호: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 발을 한 걸음, 두 걸음 떼면 정말 잘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춤과 소리 모두 잘하는 분들은 그 두 가지를 자유롭게 넘나드시더라고요. 김일구 선생님의 국립국악원 공연에서는, 소리를 하시다가 두리번거리시더니 무대 한쪽에 있던 벽장을 딛고 살짝 올라가시는 거예요. 부채를 내려놓고 부채 위에 올라가려고 하기도 하고요. 그걸 제가 한다고 하면 그 모습이 너무나 이상한데, 정작 움직이는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러웠어요.
안숙선 선생님도 선생님만의 특유의 움직임이 있어요. (오른쪽 위로 오른손을 뻗으며) 부채가 있으면 이렇게 손을 뻗으며 움직이시죠. 젊었을 때 작품 영상을 보니 그렇게 안 하시더라고요. 똑같은 시김새더라도 그때는 그냥 해도 소리가 잘 나왔는데 연세가 드시니 힘이 부쳐 그렇게 움직이시는 것 같기도 해요. 젊었을 때는 한 번 힘주면 됐던 게 이제는 잘 안 되니까 손을 움직여서 힘을 끌어올리기로 한 건가 싶은 거죠. 그래서 그런지 시김새에 따라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요. 그걸 보면 참 흥미로워요. 그렇게 움직이는 게 가장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본인에 맞게 소리와 움직임의 경계를 계속 조율하는 것 같아요. 이건 각자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행하는 느낌은 똑같지 않을까요.
이재영: 저는 소리와 움직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같은 개념인데 우리가 분리된 개념으로 교육을 받아왔기에 그 분류에 갇힌 건 아닐까요. 이호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소리를 할 때는 보통 발을 떼지 않았지만, 막상 발을 떼어 보니 움직이며 소리를 낼 수도 있었잖아요. 평소에 움직이면서 말을 하는 것처럼요. 그런 식으로 원래는 한 덩어리였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분리가 된 거죠.
조아라: 맞아요. 분리하여 가르치는 교육 과정 때문에 다시 재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죠.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데 말이죠. 지금 저는 <조각난 뼈를 가진 여자와 어느 물리치료사>라는 피지컬 시어터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 작품 속에서 언어를 소리와 음악의 관점으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언어를 해체해서 음악의 층위를 어떻게 더해볼 수 있을지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있어요. 언어를 의미와 소통의 창만이 아닌, 리듬과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또 노래가 움직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김바리: 저는 2016년에 나모와 함께 ‘바리나모 사운드’라는 이름으로 작은 음악공연을 처음으로 올렸어요. 그리고 올해부터는 ‘신비밴드’로 이름을 바꾸고 8개의 트랙을 만들었어요. 기존에는 몸의 인지 상태로 춤을 췄다면, 이번에는 소리와 음악의 상태로, 몸을 매개로 악기로, 소리로, 움직임으로 연주하는 작업이었죠. 거기서 제가 목소리로 하는 <여행자>라는 트랙이 있었는데, 여러 질문이 생겨난 것 중에 나라는 존재와 언어는 너무 딱 붙어 있는 거예요. 춤은 그래도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언어가 발화되는 순간, 어떤 상태에서 나도, 언어도, 순간으로부터 도망쳐 버리는 경우가 생겨요. 이 지점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상태이고, 앞으로 더 탐구해보고 싶어요.
이재영: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른 세계의 언어를 들을 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인도 음악을 좋아하는데, 인도 언어를 모르니까 묘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게 오히려 우리를 상상하게 하죠. 비슷한 사례로, 제가 어렸을 때 제가 교회를 다녔는데 기도원을 가면 기도를 하시다가 갑자기 방언을 해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데, 어렸을 때만 해도 그 소리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해야 저 경지까지 이를 수 있나 싶더라고요. 언어를 보통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그건 그저 표현의 수단 같았거든요. 언어와 거리를 두고 표현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거죠. 가사가 없거나 모르는 언어로 된 음악을 들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것이겠죠.
김바리: 전통 음악도 어떤 소리인지 안 들릴 때는 음악 그 자체로 들려요.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들리는 순간, 언어가 되는 순간, 감각이 사라지더라고요.
이재영: 그래서 제가 판소리를 좋아해요.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리거든요. (웃음) 특히 적벽가의 ‘자룡 활 쏘다’를 좋아하는데, 리듬감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다 보니 아는 정보가 많아졌고, 그러니 그다음부터는 노래로 들리지 않더라고요. 음악을 접하면 보통 그런 단계를 거치게 돼요. 피부로 감각적으로 즐길 때와 뇌를 거쳐 즐기는 게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모든 음악이 그래요.
김바리: 갑자기 든 생각인데, 전통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오랫동안 갈고 닦은 몸으로 소리를 내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음악은 정말 아름답죠. 그런 분들은 단순히 언어를 이야기했을 때도 음악으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해요.
조아라: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공간성이 달라지니 춤 같기도 하죠.
이재영: 저는 예전에 성가대에서 부르는 합창 음악에 압도당한 적이 있어요. 그 감각이 너무 좋아서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게 하고 싶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소리를 내는 게 몸에 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소리와 몸에 발전의 단계가 있다면, 그 두 단계가 어느 정도 맞아야만 같이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두 단계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게 얼마나 힘들지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상상이 가질 않아요.
조아라: 그래서 계속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한 번에 잘하게 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계속 발전시켜나가며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안이호: 오히려 저는 소리와 몸의 숙련도가 비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몸과 소리의 단계가 아무리 달라도 그저 부딪히면 무엇이든 발견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각자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도 하고 또 둘의 숙련도가 아무리 달라도 일단 하면 그 사이에서 적절한 뭔가가 나오기 때문이죠.
김바리: 작년 제주도에서 저는 몇 달 동안 바리나모의 ‘몸의 연주’라는 워크숍을 직접 열어 뮤지션과 함께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스코어 워크숍을 시도해봤는데, 두 시간 내내 엄격한 스코어가 짜여 있어요. 예를 들어, 그날의 주제가 ‘손’일 때, 첼로로 시작한다고 하면, 첼로가 손으로 즉흥을 15분 정도 하고, 우리는 움직임으로 함께 하고, 첼로가 사라지면 우리가 손으로 즉흥을 하고, 다시 첼로가 붙는 방식이죠. 그렇게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새로운 악기인 장구가 들어오고, 장구가 사라지면 또다시 손만 남고, 그걸 보고 있던 장구가 다시 들어오고, 결국에는 모두 하나가 되고. 그걸 계속 반복하면 정말 무아지경처럼 춤과 음악이 섞이며 어떤 상태가 되더라고요. 우리는 그걸 몸의 연주라고 불렀어요. 처음에는 이 워크숍을 실험차 해본 건데, 좋은 것 같아서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해보려 해요. 워크숍에서 만났던 연주자들과는 그 이후 공연도 따로 했어요.
또 최근에 했던 바리나모의 리서치 워크숍 작업은 ‘음악적 공동체의 춤’인데, 춤은 결국 음악적 공동체이며, 춤이라는 것은 음악적으로 공동체가 된 상태라는 주제로 열었어요. 소리와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었는지 해부학과 발생학, 소매틱, 놀이, 춤을 들여와서 설명하고 같이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졌죠. 그리고 올해 초에는 모므로 살롱에서 바리나모의 <아나킥 리츄얼> 공연도 했어요. 이것 역시 열여섯 명의 음악가들과 음악과 춤이 우리의 몸을 매개로 즉흥의 순간에 어떻게 만날까를 고민하며 했던 작업이었죠. 우리는 외부의 음악을 어떻게 들으며, 내부의 소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분해보기도 하고, 통합해 보기도 했어요.
최근에 읽었던 진화발생학 책에서 흥미로운 점이 여럿 있었는데요. 우리가 소리를 듣는 과정이 어떻게 되냐면, 소리의 진동이 우리의 귀에 전달되면 림프액에 있던 유모세포들이 흔들린대요. 세포들이 흔들리면 뇌에서 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유모세포가 상당히 고대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세포라고 해요. 우리가 듣는 상태가 고대의 시간과 함께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진화발생학 등을 통해 몸과 나, 우리, 심지어 우주에까지 관심이 커지며 수많은 세포와 생물의 집합체가 이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라는 상태를 완전히 뒤바꾸어 주었어요. 달라진 몸의 상태로 소리와 움직임을 만나는 거죠. 지금 제가 하는 이 말도 귀로 들으면 언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유모세포와 비슷한, 몸에 있는 털과 피부로 이 소리를 들으면 몸으로 감각돼요. 그렇게 소리를 듣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듣는 거예요.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서 큰일이에요. (웃음)
이재영: 궁금하신 게 있으면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하시는 거네요. 이야기하다 보니, 저희는 정답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정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언어도 완성되어 있으니, 재미없다고 느껴져서 해체하려 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될 때 더욱 재밌어하는 거죠. 정답보다 과정이 흥미로워서요.
조아라: 그러게요.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 천진난만해 보여요. (웃음)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작업을 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네요.
김바리: 그 방법과 호기심을 공유하고 함께 연구하고 경험하고자 워크숍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이러한 시간을 통해 사람의 몸을 넘어 공간이 변화된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공간이 우리를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변해가는 거죠.
왼쪽부터 김바리, 조아라 ⓒKenn_김병구
이재영: 저는 이상하게 춤을 출 때보다 기타를 칠 때 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움직임은 그래도 오랫동안 해왔으니, 긴장되고 불안해도 어떻게 대처할 방법들이 있는데, 기타는 아직 오래되지 않았으니 대처할 방법이 적거든요. 그래서 더욱 긴장돼요. 노래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신기하게도 제가 말한 것을 귀로 듣는 것과 녹음하여 듣는 건 다른 느낌이잖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제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돼요. 반대로, 움직이는 거 거울을 보지 않고 연습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거울을 보지 않고 움직여도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제대로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대로 듣고 있는 건 절반 정도라는 거죠. 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제가 바리씨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게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거죠. 모두 시력이 다르고 인식하는 색과 시야가 다르니까요. 그런데 기준점을 잡아두고 그것에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하죠. 물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업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순 있겠지만 오래 작업하기엔 힘들어요. 공연에도 자본이 작동하니까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예요. 속도로 인해 많은 것이 영향을 받고요.
김바리: 공연도 소리도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네요. 요즘에는 인간과 그 상태를 넘어선 것에 관심이 생겨요. 그렇게 모든 생명체의 과정과 유사성을 탐험해보면 듣는 상태가 바뀌면서 인간 중심을 벗어난 상태가 되더라고요. 이 문제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확장되느냐면, 듣는다는 것은 주체적인 행위인데, 듣는 것이 수동적인 행위가 되고, 표현만이 주체가 되어버리면 개발 중심이라는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돼요. 저는 현재 나모랑 제주도에 살고 있는데,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이기도 하지만 개발의 현장이기도 해요. 서울은 이미 개발이 되어 있기에 오히려 익숙하기도 한데, 제주도는 언제나 위협에 노출되어있는 것 같아 불안해요. 이러한 불안감을 몸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가 지금의 큰 화두예요. 그래서 조만간 물에 집중하여 작업을 해보려 해요. 현재 제주 바다는 많이 오염되어 있는 상태인데, 그 상황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고민도 되고, 물이라는 생명을 더 만나고 깊숙이 알아가고 싶어요.
이재영: 저도 요즘 개발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세상은 계속 발전되는데, 그 발전이라는 행동들이 자연을 위한 행동인가에는 의문이 드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자연이라는 화두를 작업에 들여오자니 공연이라는 형태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공연만 해도 무대에서 엄청난 쓰레기들이 나오잖아요. 우리가 하는 작업 자체가 수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데,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싶어요. 최근 모므로살롱에서 발표한 작품은 살롱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들을 재활용하여 무대에 활용하려 했던 작업인데, 그것들을 고정하려면 필연적으로 테이프를 사용해야 하더라고요. 궁극적으로 쓰레기 배출을 막을 방법은 없던 거죠. 이전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인데, 요즘엔 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네요. 저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져서 내적으로 괴롭기도 해요. 그래도 이제는 모두가 생각해야 할 시기인 것 같아요.
김연임: 네. 기후 위기와 무용예술가들의 작업에 대해서는 조만간 섬세하게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자면, 제 개인적으로는 이 좌담을 기획하는 데 여러 과정이 있던 것 같아요. 전에 서예를 배웠는데, 선생님께서 서예 글씨를 써주시는 모습에 울컥했어요. 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글씨를 쓰실 때의 호흡, 선생님과 붓의 움직임, 종이와 붓이 마주치면서 내는 소리가 함께 작동하면서 저를 움직였던 것 같아요. 또 판소리도 그렇지만 정가를 들어보면 호흡이 가는 중에 소리가 계속 움직이잖아요. 몸도 움직이고요. 그 장면을 볼 때 정말 춤 같다 느꼈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움직임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복잡다단한 파동과 소리들이 함께 영향을 주고받음을 알게 되었어요. 오랜 시간 귀한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건강히 또 뵙겠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재영, 안이호, 김바리, 조아라 ⓒKenn_김병구
정리. 웹진<춤:in> 에디터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