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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21.02.10 조회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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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주_문화사회학 연구자

청년예술(인)과 공공의 몫

청년예술(인)과 공공의 몫

성연주_문화사회학 연구자

ⓒ청년예술청
ⓒ청년예술청

2021년, ‘청년’이란 기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사회 재생산 구조를 끊어버리는 동시에, 어떻게든 실현해낼 것을 요구받는 모순적 위치에 자리하며, 청년 정치와 청년당사자 운동 등의 진영을 중심으로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놓이기도 한다. 한편 청년정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이후로 이제 한물갔다는, 진부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유효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며 정책의 선두주자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에 예술을 더한 ‘청년예술’이란 기표는 어떠할까? 2020년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청의 개관과 전국적 문화예술지원기관(지역문화재단이 대표적)의 설립으로 각종 청년예술 지원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청년’이란 기표에 견주어 본다면 개념을 둘러싼 논쟁, 정치, 투쟁, 의제의 부각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1)

본 글에서는 청년과 청년예술 사이의 명확한 간극과 차이를 기본 전제로 하여 청년예술 지원정책을 개괄하고 청년예술인의 성장을 위해 공공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를 질문으로 치환하면 다음으로 요약된다. “청년예술 지원정책은 어떤 역할과 기능을 담당해왔는가?”, “이런 지원정책 속에서 실제 청년예술인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나?”

사람을 선발하는 지원정책

청년예술 지원정책의 계보를 추적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만큼 지원정책이 단편적이고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중요하게 언급할 지원정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RKO Young Art Frontier, 2009~2015)과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2016~현재)이다.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은 만 35세 이하의 신진 예술인 20명 내외를 선발해 작품제작비 외에 국내외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멘토링 등 창작역량 개발을 위한 각종 성장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과 병행하여 진행하던 창작기획사업과 무대예술아카데미 등도 2016년부터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흡수·통합되었는데, 소규모의 인원을 선발해 예술인의 성장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기조와 맥락은 동일하다. 서울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 또한 장르별로 소규모(3건 내외)의 데뷔 10년 이하의 신진 예술인을 선발해, 작품제작비(창작지원금) 외에 멘토링, 크리틱, 세미나 등 각종 간접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르코의 사업과 가장 유사하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갤러리, 미술관, 레지던시 등의 신진 작가 지원 역시 ‘소규모 선발-통합적 성장 지원’이란 흐름 아래 예술인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이처럼 청년예술 지원정책의 가장 큰 흐름은 ‘작품’이 아닌 ‘사람’을 선발하고 지원한다는 데에 있다. 기존 예술지원정책 대부분은 작품을 지원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예술감독, 연출가, 안무가, 작가, 음악가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작품의 성장을 도모한다. 하지만 청년예술 지원정책은 다르다. 작품보다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 지원사업의 꼬리표는 신진 예술인이 기성(named)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예술 지원정책은 다소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스승-학교-공모전(콩쿠르)으로 이어지는 장르 제도권의 권력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균열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원사업은 결코 공모전의 역할을 대체할 순 없다. 그리고 도제식 예술인 양성 시스템을 추구하거나 대체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공’이 인증을 한다는 공적 정당성과 통합적 성장 지원 트랙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도 예술인이 성장할 수 있다는 통로를 열어두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청년예술 지원정책은 왜 확산되었을까

여기서 문제는 2016년, 2017년에 시작된 이후로 확산하고 있는 전국적인 청년예술 지원정책이 기존의 ‘사람 중심’ 지원과 너무나도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해석과 분석을 하기에 앞서, 현실이 어떠했는지 팩트부터 이야기해보자.

‘청년’의 기표를 가장 의도적으로 사용한 청년예술 지원정책의 첫 사례는 2016년 부산문화재단의 ‘청년문화육성지원사업’이다. 당시 부산은 감천문화마을,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등 문화적 도시재생의 가치를 경험하면서 도시정책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이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다. 또한 2013년 ‘부산광역시 청년문화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이 조례는 부산시 청년 기본 조례가 제정되면서 2017.5.31. 폐지되었다), 2015년 ‘부산시 청년문화 육성·지원 추진계획’을 수립하여, 청년문화를 육성할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추진된 2016년 ‘청년문화육성지원사업’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청년예술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여 청년문화의 저변확대를 통해 시민의 문화향유 기회확대와 젊음이 넘치는 활기찬 문화도시 부산을 조성”


상술한 아르코나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이 청년예술인이란 사람의 성장에 주목했다면, 이제 성장, 발전, 개선의 대상은 ‘도시’로, 그리고 이 발전을 도모할 주요 투입자원이 청년예술인으로 변한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이후 청년정책의 부흥기를 지나며 청년예술 지원정책의 확산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경기문화재단의 다사리문화기획학교, 청년문화창업 지원사업, 청년실험 프로젝트,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청년예술단, 최초예술지원사업, 인천문화재단의 인천청년문화대제전 등 광역문화재단에서 주로 가시화된 정책사업은, 시군구 단위 기초문화재단의 설립이 확산되면서 생활권 단위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 청년예술인이라는 ‘사람’의 자취는 희미해졌다. 선별적 지원에서 보편적 지원으로 나아간 만큼 집합적 존재로서 ‘청년예술인’이라는 세대의 가시성은 물론 두드러진 게 맞다. 그동안 예술정책의 역사에서 이만큼 ‘세대’라는 단어가 회자된 적이 있는지 싶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2016년 이후 청년예술 지원정책에서 청년예술인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솔직히 그 성장을 발견한다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수백만원 정도의 일회성 지원이, 어떤 무대로의 등단이나 데뷔를 연결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뚜렷한 성장의 메커니즘도 담보하지 않고, 오히려 예술인이 투신해 마을, 도시, 사회의 발전을 이룩할 것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단 말인가.

청년예술의 대상화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청년예술의 ‘대상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정책, 청년담론 또한 대상화의 양면적 차원에서 고통을 받는다. 청년이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청년의 대상화는 끝끝내 이겨내야 할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술한 부산문화재단의 사례는 청년예술인이 대상화되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청년예술인이 내포한 열정, 창의, 도전, 패기, 실험 등의 가치는 그 자체로 청년예술인을 성장시키는 동력일 뿐 아니라 청년예술인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힘이라고. 그러므로 청년예술인은 마땅한 지원의 대상이나, 그들 스스로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도록 주문한다.

중요한 건 이렇게 청년예술이 대상화되는 동안 공공이 청년예술인을 지원해야 할 마땅한 ‘공공의 몫’이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다. 예술학교는 청년예술인에게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제공할 의무를 갖고, 공모전이나 콩쿠르는 선별적 심사를 통해 우수한 예술인을 지원하는 제도를 구축한다. 그리고 일반 관객과 시장은 이렇게 길러진 우수한 예술인의 예술세계를 경험하여 끊임없이 그 가치를 상호 소통하고 사회적으로 확산시킨다. 이렇게 학교-장르제도-시장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속에 공공의 몫은 찾기 힘들다. 이는 청년예술 지원정책의 미약한 효과성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청년예술 지원정책을 통해 청년예술인의 예술세계가 성장했나? 아니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나? 또는 예술인에게 중요한 이력으로 작동했는가? 그 어떤 질문에도 우리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힘들다. 선별적 지원을 통해 나름의 ‘공공의 몫’을 찾으려던 문화예술 공공기관의 노력이 적확한 탈출구를 찾지 못한 형국인 것이다.

청년예술 지원정책에서 공공의 몫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지원정책에서 제공하는 직간접적인 세부 지원책의 대부분이 청년예술인에게 그닥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적인 지원금 외의 멘토링, 네트워킹 프로그램,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등의 간접적 지원이 대표적인데, 참여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멘토의 선정이나, 뚜렷한 목적이나 방향성 없는 네트워킹 자리의 마련, 준비되지 않은 무대와 관객을 마주해야 하는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등은 청년예술인의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작 청년예술인이 예술적 도약을 하기 위해 결정적인 도움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

‘무용’이란 울타리, 지원정책이 장르의 폐쇄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웹진<춤:in> 독자들을 위해 청년예술 지원정책 안에서 ‘무용’ 장르의 비중과 위치를 짧게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필자는 무용 장르 지원사업에 익숙하지 않아 기존에 알고 있는 청년예술 지원정책 중 무용 장르가 어떻게 포진되어 있는지 정도만 가볍게 살펴보았다.

장르별로 선발하는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이나 아르코의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무용 장르의 창작자를 별도 선발한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한 청년예술 지원정책은 대부분 장르를 나누기보다 창작자, 기획자, 일자리(인턴쉽), 공간, 국제교류와 같이 분야별로 지원 트랙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서 무용 장르가 포함되는 ‘창작자’ 트랙에서도 무용을 별도 장르로 배치하기보다 ‘공연예술’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하고 있는데, 대부분 시민 대상의 대중 공연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어 무용, 연극보다 음악 장르의 선발 비중이 더 높다.2)

무용은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울타리가 견고한 장르에 해당한다. 도제식 시스템이 상당히 폐쇄적으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무용 장르만의 ‘언어’로 대중과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시각예술 작가나 음악가가 한두 개의 지원사업을 경험하며 문화기획자로 거듭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데 반해 무용가가 무용을 벗어나 다른 장르나 영역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청년예술 지원정책이 바로 이런 장르의 폐쇄성을 넘어설 때 비로소 밝은 미래를 희망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청년예술(인)을 지원하기에 마땅한 ‘공공의 몫’이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인이라는 ‘사람’이 다시금 지원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성장에는 어떤 재료와 요소들이 필요한지, 우리는 그 성장을 무엇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것인지, 공공의 다양한 지원정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최적의 전략은 무엇인지 말이다. 아직도 무궁무진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고, 첫 질문이 던져진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청년예술인은 집합적 존재로 환원할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청년예술인이란 모든 예술인이 겪어왔고 현재 경험하고 있는 그리고 미래에도 당연히 경험하고 거쳐 갈 예술인 생애 중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1. 1)청년예술의 개념과 논쟁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서울문화재단 서울청년예술인회의에서 운영하는 웹진 ‘숨은참조(seoulartists.tistory.com)’에 게재된 6편의 연구릴레이 “청년예술을 폐기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2) 지역문화진흥원의 ‘청춘마이크’ 사업의 경우, 2016-18 선발 예술가(단체)는 음악 279팀, 전통예술 109팀, 댄스/현대무용 75팀, 다원예술 48팀, 서커스/마술 39팀, 연극/뮤지컬 31팀으로 압도적으로 음악의 비중이 높다. (2019 청춘마이크 아티스트 북 참조)
성연주_문화사회학 연구자 성연주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를 수료했으며, 학부에서 배운 음악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사회학을 결합해 예술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과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지역문화와 청년예술이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에서 즐겁게 공부 중이다.
성연주_문화사회학 연구자 성연주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를 수료했으며, 학부에서 배운 음악학과 대학원에서 배운 사회학을 결합해 예술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과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지역문화와 청년예술이다. 뜻이 맞는 동료들과 문화정책연구모임 ‘행간’에서 즐겁게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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