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_여성철학자·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이현재 『여성혐오, 그 후』, 들녘, 2016
로사나 쇼는 젠더 패러디다
캄보디아에서 압사라(Apsara) 전통춤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공연은 화려하게 치장한 천상의 선녀 압사라의 독무로 시작되었다. 이어진 지역 민속춤은 시골 청년과 처녀의 알콩달콩한 애정행각을 그렸으며, 인어공주와 원숭이 신 하누만의 사랑 이야기가 이를 이었다. 여신의 아름다움이든, 평범한 인간의 애정행각이든, 상상 속 동물들의 이야기든, 전통춤은 철저하게 여성과 남성,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가운데 그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전통춤은 마치 인간의 몸이 원래부터 두 개의 섹스만을 가지고 있음을, 암수 한 쌍이 벌이는 이성애적 애정행각이 곧 자연임을 선언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로사나 브로드웨이 쇼는 전통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고정 관념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아시아 각국의 전통춤이 트랜스젠더 춤꾼들에 의해 전유될 때, 젠더에 관한 뻔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로사나 쇼에 출연한 춤꾼들은 두 개의 젠더를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다. 트랜스젠더의 몸은 젠더 이분법의 외부에 존재하는 몸이었지만 젠더 이분법 내부에 존재하는 두 개의 젠더와 이성애적 판타지를 체현하였다. 로사나 쇼에서 춤꾼들은 하나의 몸으로 두 개의 젠더를 모두 완벽하게 수행해 보임으로써 이분법적 섹스와 이에 토대를 두는 이성애적 애정행각이 알고 보면 가짜일 수 있음을, 그저 하나의 연기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로사나 쇼는 바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말한 젠더 패러디(gender parody)였다. 버틀러에게 몸은 자연이 아니다. 담론체계와 동떨어져 있는 자연으로서의 섹스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말할 수 없으며, 담론 체계 안에서 말하는 순간 섹스는 이미 담론의 산물, 사회적 젠더가 된다. 몸은 지배적인 담론을 오랫동안 반복 수행했을 때 결과하는 일종의 전형화된 스타일일 뿐이다. 여기서 반복은 원본을 전제로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야말로 모방된 젠더를 모방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엄마가, 내 친구가, 이모가, 연예인이 모방했던 젠더를 모방한다. 버틀러가 젠더 그 자체를 패러디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젠더 수행이 알고 보면 우습게도 모방의 모방 혹은 연기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로사나 쇼는 결국 우리의 젠더가 알고 보면 모방의 모방일 뿐임을 희화화시켜 보여준다.
퀴어는 비체다
전통적인 쇼와 달리 로사나 쇼는 젠더가 모방의 모방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로사나 쇼는 섹스, 젠더, 성적 욕망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퀴어(queer)’1) 춤꾼이, 혹은 여성이면서도 남성인 트랜스젠더 춤꾼이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이분법적 젠더를 모방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젠더 체계가 단단한 고체가 아님을 드러내 준다. 춤꾼은 퀴어의 몸으로 지배적인 젠더 이분법을 감쪽같이 연기해 보여줌으로써 지배적인 젠더 이분법에 원본이 없음을 드러낸다.
젠더 경계를 넘나들고 젠더 이분법을 뒤흔든다는 점에서 퀴어는 ‘비체(abject)’다. 비체는 지배적 젠더 담론의 주체가 그 경계를 분명히 규정할 수 있는 대상(object)이 아니(a)라는 의미다. 비체는 불일치의 구멍을 통해 안팎을 넘나들기에 뚜렷한 경계, 지속적인 동일성을 갖는 착한 대상이 아니다. 대상이 그 폐쇄성으로 인해 정해진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비체는 경계를 넘나들고 뒤흔든다. 비체는 젠더 정체성, 젠더 “동일성을 격렬하게 뒤집어 놓는,”2)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3)이다. 이런 점에서 젠더 경계를 지키려는 자는 비체를 더러운 오염물처럼 혐오해 왔다. 사회가 정결하고 순종적이고 법을 준수하는 몸을 원하는 한, 비체로서의 퀴어는 배제의 역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보면 비체는 가능성이다. 동일성이 아니라 변화와 흐름을 인간존재의 중요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순간 비체는 긍정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젠더 정체성의 변화가 가능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존의 정체성을 반복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이에 저항하고 이탈하는 비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변화와 흐름을 인간 존재의 당연한 조건으로 받아들인다면 비체는 여기서 더러운 오염물로 혐오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비체는 오히려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몸짓이다. 젠더 정체성의 고수, 젠더 정체성의 고체화가 오히려 변화를 삭제하는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경계를 넘나드는 비체의 행위는 우리에게 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만약 비체를 구현하는 몸짓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곧 동일화의 폭력을 행사하는 젠더 체계를 해방시키는 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변화에 저항하기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화와 여성 비체의 등장
젠더 체계를 열어젖히는 비체성은 퀴어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성들 역시 비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도시화라는 사회문화적인 조건은 여성들을 기존의 고체화된 여성성으로부터 이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시화란 우선 감정노동, 서비스업의 발달 등으로 공/사 영역의 구분이 허물어지는 경향을 말한다. 하이-터치 서비스업뿐 아니라 하이-테크 서비스업에 대거 진출하게 된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가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친절과 배려는 이제 사적관계뿐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도 요구되는 감정의 덕목이 되었다. 도시화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바로 소비문화이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여성들은 소비의 주체가 되었다. 한편으로 소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소비는 여성에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발화하고 선택하도록 추동하였다. 마지막으로 도시화는 자기계발의 강령이 노동시장의 제1원리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 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는 이기적인 개인이 될 것을 강조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또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적인 개인이 되었다.
결국 도시화는 종잡을 수 없는 비체 여성들을 부상시켰다. 여성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감정을 과잉으로 실천하지만 정작 사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화장, 성형, 명품을 위한 소비를 주저하지 않는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욕망에 따라 사는 수동적인 존재인 듯 보이지만, 소비의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살림과 자녀교육을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였던 여성들은 쇠고기 수입이 가족의 밥상을 위협하자 바로 정치적인 주체가 되었으며, 카메라 소비에 대한 관심으로 디시인사이드에 모였던 여성들은 인터넷상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확산되자 곧바로 미러링으로 대응하였다.
비체 여성으로 젠더를 춤추자
비체 여성은 종잡을 수 없다. 언뜻 그녀들은 남성에게 선택받는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욕망과 권리의 주체이다. 그녀들은 소비문화의 노예인 듯 보이지만 현명하고 주체적인 소비를 생각한다. 그녀들은 경쟁에 몰두하는 이기적인 개인인 듯 보이지만 가족의 밥상을 생각하고 건강할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적인 개인이다. 비체 여성은 대상과 주체, 독립과 관계맺음의 위치를 넘나든다.
물론 여성의 비체성은 젠더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젠더 정체성의 변화가 인간의 조건임을 인정한다면, 여성의 비체성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를 추동하는 가능성이 된다. 이것은 곧 춤꾼의 철학이 될 수 있다. 만약 춤꾼이 전형적인 여성성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비체의 몸짓을 구현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젠더 체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젠더를 창조하는 춤이 될 것이다.
1) “퀴어란 염색체적 성sex, 젠더gender 그리고 성적 욕망sexual desire사이의 소위 안정된 관계에 모순들이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태도 혹은 분석 모델을 가리킨다.” 애너매리 야고스, 박이은실 옮김, 『퀴어이론 입문』, 여이연, 2012, 10쪽.
2)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옮김, 『공포의 권력』, 동문선, 2001, 23쪽.
3) 같은 책, 22쪽.
이현재_여성철학자·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간 여성의 몸, 로맨스, 여성혐오,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등에 관심을 가져왔다. 저서로 『여성혐오 그 후』(들녘), 『여성의 정체성』(책세상), 『사랑 이후의 도시』(라움)(공저),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사월의 책)(공저) 등이 있으며 공역서로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깁슨-그레엄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 낸시 프레이저 외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