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슬레이션(Cancellation)
고주영, 공연화, 이윤정, 정지혜
Cancellation
[명사] 취소, 취소된 것, 무효화 (출처: 옥스퍼드 사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공연과 전시, 행사 등이 연달아 취소 또는 연기되고 있다. 이처럼 의도치 않게 ‘캔슬레이션(Cancellation)’의 상황을 겪은 지금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으며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 상황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식하고 일상을 일구어나가고 있는 4인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막막한 이 현실에 그들의 이야기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길 바란다. (※ 해당 원고는 3월 말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고주영
2월 둘째 주, 일본 요코하마에서 공연이 끝났다. 공연장에서 십여 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바로 그 ‘크루즈’가 멈춰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공연날짜가 2월 16일이었다는 것이 두고두고 회자될 ‘마지막 행운’이 될 줄은 몰랐다. 4월 총선과 세월호 6주기에 맞춰 서울에 오고 싶다는 해외 친구들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을 줄도 정말 몰랐다. 일본에서 공연을 끝내고 귀국한 직후부터 웬일인지 며칠 동안 기침이 나오면서 목이 아팠다. 어느 날은 친구와 사람이 많은 식당을 찾았는데, 기침이 나와도 기침을 할 수 없는 분위기에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다리가 떨리는 공황을 겪기도 했다. 다음 날 1339로 전화하여 상담을 받았고, 2주 이내 해외에 체류했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고받았다. 그 길로 선별진료소에서 진단검사를 받았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두려움의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오전에 ‘음성’ 문자를 받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기침이 잦아들었다.
5년 동안 매년 5월에 해오던 작업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건, 작년 5월 직후의 일이다. 그렇게 5년 만에 봄을 고스란히 잘 맞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원래 계획했던 ‘휴식기’가 본래 의도와 달리 ‘자가격리,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었고, 모두의 휴식기가 되면서 일상은 훨씬 헐렁해졌다. 사두고 읽지 않았던 책을 한 권, 두 권 섭렵했고,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넷플릭스에서 몰아보고, 냉장고 속 재료들을 꺼내 하루에 두 끼를 직접 만들어 먹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설거지와 정리를 마치는 생활이 이어졌다. 넘치는 책장에서 중고서점에 내놓을 불필요한 책들을 솎아내고, 하루에 서랍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러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시장에서 구매하거나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수급한다. 너무 답답할 때는 근교의 강, 호수, 둘레길 등을 찾아가 산책을 한다. 서울 중심부에 사는데도, 이렇게 걷고 싶은 길과 걸을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을 몰랐다. 자동차는 눈에 띄게 줄었으며 주위는 조용해졌고 공기는 맑다. 시간의 속도도 삶의 속도도, 질감도, 이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만 해도 아직 볼 수 있는 공연이 있었다. 방역된 공연장, 어디에나 비치된 소독제, 관객 마스크 착용 의무 덕분에 공연을 보는 건 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마스크조차 쓰지 못하고 서로의 ‘비말’을 주고받는 퍼포머에게 시선과 의식이 꽂히면서 공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어쩐지 미안해졌다. 사태가 심각해진 요즘에는, 공연장 대신에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관람객만 있는 작은 영화관을 찾는다. 해외의 유명 극장들은 공연을 취소하는 대신, 이전에 공연했던 유명 연출가의 공연을 무료 스트리밍하기도 했으며 유튜브 라이브 공연도 등장했다. 그러나 한날한시에 한 공간에서 보는 공연이 주는 연대감과 무대와 객석이 주고받는 생생한 에너지는 노트북 화면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소멸하였고, 제아무리 대단한 이의 작품이라도 시시해지고 말았다.
공연예술은 과연 무엇으로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모일 수 있는 시대’에도 절실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질문에 ‘모이지 못하는 시대’라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전제까지 깔렸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나 방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세계관, 동력을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공연 만드는 일은 삶을 지탱할 ‘비용’을 만들어준 적도 없고, 엄청나게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지도 않지만, 내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매개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지금의 취소되고 유예된 시간은 무엇을 바꾸어놓을지, 취소되지 않고 다가올 시간과 미래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큰 질문이 떠오르자, 가만히 있던 손이 웬일로 의욕 넘치게 사들이고는 금세 포기했던 뜨개질 키트를 찾는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 /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 / 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 장혜영 작사·작곡,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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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과 함께 들여온 새로운 일상 /공연화
나는 여의도에 위치한 중학교를 다녔다. 어느 봄날 점심 즈음에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봄볕이 따뜻하여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색, 흰색, 하늘색, 곤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 빌딩에서 무리를 지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더라. 그걸 보는 순간, “아, 나는 평생 저런 색의 옷을 입은 무리에는 속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 이후로 지금까지 ‘생계형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방안에 누워서 멍 때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난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지는 않을 거야!”라고. 글을 써야만 할 때, 머리에 글이 떠오르지 않아서 하얀 종이만을 쳐다보는 상황을 상상하니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에게 글을 써 달라니… 일단 끄적여보겠다는 승낙의 말을 던지자 임무를 부여받았다. ‘캔슬레이션(Cancellation)’에 대한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3월 8일, 프린터기를 고치기 위해 서비스센터로 가던 중에 공연 단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3월 16일에 예정되었던 공연을 취소한다고. 신기하게도 그 통화를 끝내자마자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고 길가의 꽃집에 꽃이 화사하게 진열되어있는 게 보였다. 아~ 봄이구나. 긴장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봄이 보였다.
나는 시트콤을 좋아한다. 특히 김병욱 사단의 시트콤은 항우울제와도 같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시트콤이라는 처방을 내려야 하므로, ‘스트레스 아웃’이라는 폴더에 모든 에피소드를 저장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본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문희의 봄바람'이다. 60대 후반의 문희씨는 봄만 되면 밖을 돌아다니는데, 그의 낭군님 순재씨는 그런 문희씨가 못마땅해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문희씨는 "내 인생에 봄이 몇 번이나 더 올 것 같아? 즐길 수 있을 때 원 없이 봄을 즐길 테야!"라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봄이 올 때면, 그 에피소드와 머리에 꽃을 꽂고 봄을 즐기던 문희씨가 떠오른다. 갑작스럽게 공연이 취소되어 생긴 이 공백의 시간에, 나는 제주도로 유채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제주도에 가고 싶었다. <빛의 벙커>, <라이트아트페스타>, 이타미 준(Itami Jun)의 수풍석 박물관,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본태 박물관 등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는데, 지금이 가장 한적할 듯하여 미안한 마음 반, 조심스러운 마음 반으로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날, 날씨는 따뜻했고 공기는 맑았다. 파란 하늘과 노란 유채꽃들이 너무 고왔다. 유채꽃밭 한가운데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종일 바라보고 싶었다. 문희씨가 머리에 꽃을 꽂고 뛰어다닌 기분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고, 봄이 참 두근거리는 계절이었구나 싶었다.
ⓒ공연화
서울에서 미술관 가기를 꺼렸던 이유는 끊이지 않는 핸드폰 셔터 소리와 많은 관람객으로 인해 여유 있게 작품을 즐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주도의 <빛의 벙커> 전시는 휴관하지 않았고 관람객도 적었다. 이번에 전시를 보러 간 이유는 고흐의 작품으로 미디어 아트를 하기 때문이었다. 해외 미술관에서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본 적이 있는데, 붓터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렬함에 소름이 돋았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과 함께 움직이는 고흐의 작품은 벙커 전체를 덮었고, 내 주위엔 침묵하며 그 순간을 함께 감상하는 소수의 관람객만이 있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시간이다.
ⓒ공연화
유채꽃과 고흐의 그림에 취한 김에 혼술하기 좋다는 주점에서 맛있는 안주와 맥주 한 병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대리기사를 호출했는데, 30대쯤 되어 보이고 목소리가 매우 밝은 기사분이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여행사 직원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행사가 문을 닫아서 한 달 전부터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형은 카페에서 일했는데 카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지금은 그와 함께 2인 1조로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일상이 흔들리긴 했지만 이렇게 쉬면서 삶을 뒤돌아보는 시간도 가지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재미도 가질 수 있다며 경쾌하게 웃었다. “이 상황이 빨리 끝나겠죠. 곧 끝날 겁니다. 하하.”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희망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경쾌한 웃음 탓인가,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제주도 가기 전에 주문했던 베란다 앵글 선반이 도착해 있었다.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난 김에 직접 실측하고 도면을 작성하여 3D 이미지까지 첨부해서 주문한 선반이었다. 앵글을 조립해서 상자들을 넣는 데에만 다섯 시간 정도 걸렸다. 상자들을 모두 정리해 올려놓으니 깨끗해진 베란다 공간만큼이나 내 마음도 상쾌해졌다. 아직 일상의 흔들림은 현재진행형이지만 3월에 취소된 공연이 4월로 확정되었다는 전화도 받았고, 혼란스러웠던 화상 강의를 시작으로 개강도 하였다. 이렇게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를 시작해 본다.
ⓒ공연화
오늘은 24절기 중 네 번째 절기인 춘분(春分)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이 날을 기점으로 서서히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삶은 엎치락뒤치락해도 자연의 시간은 묵묵히 진행되고 있구나 싶다.
생존하기 죽을 맛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연대하고 즐거움을 찾는다! /이윤정
코로나19 덕분에(?) 창작자로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건강 걱정도 걱정이지만 예술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더 큰 요즘이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보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세계 각국의 방식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도 한다.
나의 주 수입원은 연극 움직임 디자인, 예술교육 워크숍, 예술가를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인데, 모두 몸과 마음을 맞대고 움직여 나누는 일이다. 나의 숙명과도 같은 이 일들은 모두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2020년은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일정이 많은 해였기에, 4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여태까지 해왔던 작업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2월로 예정되었던 공연은 3월로 미뤄졌고, 3월 공연은 5월로 미뤄졌고, 4월 공연은 취소됐고, 5월 공연은 다음 주부터 연습이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연습이 시작될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리고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3월 전시는 4월로 미루어 졌으나 이 또한 진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그리고 6월 영국 공연과 7월부터 8월까지의 해외 레지던시, 워크숍 참여 여부 역시 불투명해졌다. 정말 요즘은 어떠한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지원서를 3개나 썼고, 하나는 떨어지고 하나는 붙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던 마음은 분노-불안-포기의 과정을 겪으면서 오히려 고요해졌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향을 피우고 집안을 서성거리며 급하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 이후로 달라진 일상이 있다면 무엇인지 적어보았다.
ⓒ이윤정
* 하루종일 집에 있기 (하루도 집에 있지 않았던 나는 이제 집순이가 되었다)
* 친구들과 집 또는 동네에서 만나기
*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 읽기
* 짐 정리하기 (그러다가 옛날 사진들을 발견하고 SNS에 올려 자랑한다)
* 요리하기 (요리가 늘고 있다)
* 화상채팅 하기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 듯이 한번 시작하면 2시간은 기본으로 떠든다. 그냥 카메라를 켜두고 각자의 일을 보기도 한다)
* 산책하기
* 영화보기
이렇게 사소한 일상을 경험하는 것은 어느덧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내고 있는 동료들과는 예전보다 솔직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응원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았던 일이고, 머리가 복잡했으며 두려운 마음 때문에 몸과 마음이 솔직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았다.
ⓒ이윤정
* 또래 동료 친구들과 연습실에서 몸풀기
* 지난 작업을 다시 펼쳐 스스로 피드백 받기
* 영어 공부하기
* 해부학 공부하기
막상 정리해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꽤 많았다. 하지만 욕심을 내거나 너무 열심히 하면 하기 싫어질까 봐 천천히 시작하고 있다. 일단 또래 친구들과의 연습실 만남을 위해 연습실을 예약해둔 상태이고, 지난 작업은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영어 공부는 영화를 보면서 틈틈이 따라 하고 있다. 아직 해부학책은 펼치지도 못했지만 제일 재밌을 거라 기대되는 일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취미이자 작업인 나에게, 지금 이 시기는 보다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있다. 안무가로서, 무용수로서, 싱글 여성으로서, 교육자로서, 한 집안의 막내딸로서, 그리고 욕망이 가득한 예술가로서 말이다. 평소에도 소수자, 혐오, 불균형, 힘의 이동, 그리고 소수 장기와 세상 연결하기 등의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번 사태로 많은 아시안이 해외에서 피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렇게 남 탓만 하다가 골든 타임을 놓이면 또 누구 탓을 할지 참으로 한심스럽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유럽과 미국의 상황을 보면서 ‘빛 좋은 개살구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제발 이번 기회에 모두 사대주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이윤정
얼마 전, 이탈리안 국민이 발코니 음악회를 열어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로를 응원하는 깃발을 손수 그려 발코니에 걸고 성악가의 노래에 박수치는 모습, 합창과 합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 졌다. 예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압축해서 보여준 좋은 예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는 2호선 지하철 기사님이 짧은 멘트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안녕하세요 승객 여러분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죠? 여러분들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오늘 좋았던 일만 생각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는 게 어떨까요? 지치고 아팠던 맘들 지하철에 두고 내리시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근심 걱정 여기에 두고 가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서 시작된 ‘오아시스 딜리버리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획자와 예술가에게 조건 없이 10만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오아시스처럼 액수에 상관없이 목이라도 축이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예술이라는 동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빨리빨리 도와주고 서로를 살려보자’는 움직임이라고 한다. 이 캠페인은 조직에 소속되지 않았지만 뜻을 가진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어려운 시기에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감은 어떤 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술가들이 연대하여 예술의 힘을 보여주고 이 시기를 함께 잘 극복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의 섬세하고 신속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 어려운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인생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긍정적인 생각도 해 보았다. 인구밀집도가 높고 비좁은 도시에 살면서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면서 살아온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훈련은 서로의 몸을 존중하고 자신의 몸을 관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던 한국 사회가 좀 더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지금의 이 속도가 정상적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파도 일해”, “아파도 춤춰”가 아니라 “아프면 쉬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희망해 본다.
멈춤, 그 안에서 내일을 꿈꾼다 /정지혜
2월 7일 14:00 마스크를 쓰고 한국에 입국하였다.
2월 12일 20:00 마스크를 쓰고 아르코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였다.
2월 21일 15:00 마스크를 쓰고 전시가 예정된 갤러리에 들렀다. 다음 주였던 전시 오픈이 미뤄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2월 24일 12:30 코로나19의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향상되었다. 예정되었던 퍼포먼스가 잠정 연기되었고, 공연 진행 여부는 추후에 별도 안내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했다. 이 시국에도 우리 인간은 여전히 예술을 바라고 있지만, 그들에게 공연의 관객이 될 마음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3월 초 위기가 기회라고 누가 그랬던가, 친구들은 내게 지원금 공고를 보내주며 위안해준다. 나는 가산점이 주어지는 ‘코로나 피해자’이지만 지원금 서류를 쓰는 건 역시 녹록지 않다. 또 한 번의 좌절을 겪는다.
3월 중순 최근에 숱한 공연 취소 문자를 받았지만, 큰맘 먹고 예매한 LG아트센터의 밀로 라우(Milo Rau)의 공연 취소 문자는 어쩐지 아쉽다. 4월 초에는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의 기대는 취소 문자와 함께 빠르게 취소되었다. 과연 나는 4월에 공연할 수 있을까? 취소, 거절, 취소가 반복된다.
3월 말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는 퍼포머의 부상이나 작가의 정치적인 성향으로 인해 반대 세력에 부딪힐 때만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염병은 예상치도 못한 복병이다.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중세 유럽 시대를 살고 있나? 이건 영화나 소설 속 세상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평균 수명이 100살을 넘을 수도 있는 시대라던데, DNA도 자르고 붙이는 시대라던데…. 연이은 취소로 시간이 차고 넘치니 전염병에 대한 리서치를 해 보았다. 역시 인간이 문제다. 과유불급이다.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고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90살이 넘으신 할머니도 “오래 살고 볼 일이네!”라는 말을 달고 지내실 정도다. 지금은 현재성과 즉흥성,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이 강조되는 공연예술을 업으로 삼은 나에게 너무나도 실제 상황이고 비상 상황이다. 작년부터 즐겁게 준비했던 작업은 그대로 동결되어 아무도 열지 못하는 갤러리에 감금되었고, 현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코로나 피해자로 만들었으며 희생양으로 포장해 버렸다. (물론 갤러리는 죄가 없다.)
1월 말에 첫 프리미어를 마쳤을 때만 해도 올해가 이 정도로 ‘거절의 해’가 될지 몰랐다. 갑자기 모든 일정이 차례로 취소되고, 당장 다음 주의 일도 확답을 주고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평생 당할 거절을 지금 몰아서 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나는 한 줄기의 희망만 붙잡으며 기다리는 ‘프리랜서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그 덕(?)에 공연 예술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시도들, 누군가의 행동과 그 이유, 전 세계 사람들이 내놓는 창의적 대안을 손바닥 안에서 감상하고 향유한다. 그 손안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취소와 거절을 넘어 멈춤을 이야기하고, 그 멈춤 안에서 이전보다 나아갈 것을 꿈꾼다. 읽고 쓰며 생각하는 요즘은, 마음속으로 “너는 왜 꼭 그래야만 했니?”라는 질문에 “내일은 뭐 하지?” 아니 사실은 “내일은 뭐 먹지?” 등의 질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암팡지게 물며 내일을 생각해본다. Anyway, (My) Life is not canceled.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 ⓒ정지혜
고주영_독립 프로듀서
고주영은 몇몇 공연예술 축제, 지원기관을 거쳐 2012년부터 공연예술 독립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연극·극장·예술과 그 바깥의 사이에 있고자 한다. Jooyoung.Koh@Facebook
공연화_조명디자이너, 중앙대 겸임교수
공연화는 현대무용과 전통공연을 주 분야로 활동하는 조명디자이너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국악원 작품을 주로 하며 늘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기술’이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이윤정_안무가
이윤정은 ‘댄스프로젝트 뽑기’의 예술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몸과 몸 사이, 몸과 공간 사이, 몸과 시간 사이 등 다양한 ‘사이’ 에 관한 질문들을 던지며, 몸을 통한 신체의 접촉과 크고 작은 신체적 갈등 속에서 여러 ‘사이’ 들로부터 발생하는 나와 타인, 개인과 사회, 소수와 다수, 균형과 불균형의 관계에 몰두하고 있다.
정지혜_퍼포머
정지혜는 상반되는 개념이 공존하면서 나타나는 패러독스에 흥미를 가지고 작업과 연결하며, 이를 움직임 중심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소통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