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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1.13 조회 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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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과 네트워크의 코레오그래피: 퍼포먼스와 영상, 그리고 장치에 관한 노트

풍선과 네트워크의 코레오그래피:
퍼포먼스와 영상, 그리고 장치에 관한 노트

곽영빈_미술평론가, 영화학 박사

왼쪽부터 곽영빈, 소피 카불라코스(Sophe Cavoulacos) ⓒ최민욱
지난 10월 21일, 오랜 보수와 확장 끝에 재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화제를 낳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을 받은 건 퍼포먼스에 새롭게 부여된 비중인데, 이는 건물 4층에 독립적으로 자리 잡아 앞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음악, 사운드와 퍼포먼스 작업이 이뤄질 ‘마리-조세 & 헨리 크라비스 스튜디오(Marie-Josee and Henry Kravis Studio)’를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난다.1)
이에 못지않게 중심으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 영화와 영상 작업들 가운데에는 소위 ‘댄스필름’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전설적인 안무가이자 영상예술가인 마야 데렌(Maya Deren)의 <카메라를 위한 안무 연구(A Study in the Choreography for Camera)>(1946)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작업을 선정한 의의를 설명하면서 미디어와 퍼포먼스 담당 부 큐레이터인 소피 카불라스코스(Sophie Cavoulacos)는 “영화문화와 무빙이미지문화”를 구분한 뒤, 영화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긴 하지만 “우리는 무빙이미지 문화 속에 산다”고 콕 집어 강조했다.2) 이는 ‘영화사’나 ‘미술사’, 또는 한 때 ‘영상문화’라고 불렸던 제한된 영역을 넘어 퍼포먼스를 새로운 축으로 삼아 재편 중인 이미지 문화 일반의 좌표계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는데,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해 서울무용센터에서 가진 강연에서 불라스코스가 강조했던 요소들과도 일맥상통한다.2)
하지만 퍼포먼스와 영상의 관계는, ‘퍼포먼스 영상’, ‘비디오댄스,’ ‘댄스필름,’ ‘스크린 댄스,’ ‘스크린 온 댄스,’ ‘코레오 씨네마,’ ‘무빙 픽쳐 이미지’에 이르는 수많은 용어의 혼재가 웅변하듯이4), 여전히 복잡하고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이에 관한 인상적인 논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5) 퍼포먼스의 맥락에서 재정의된 것으로서 영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대적으로 드문 듯하다. 물론 여기엔, 배우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없었던 무성영화의 빈공간을 채운 초기영화사의 ‘변사(benshi)’ 전통에서부터, 내용물로서의 영화보다 영사기와 그 조작이 만들어내는 가능성에 집중했던 아방가르드 영화의 전통, 즉 ‘퍼포먼스’로서의 상영과 영사 전통이 포함되는데, 이행준의 <필름 워크(Film Walk)>(2012)같은 퍼포먼스 작업이 웅변하듯 그러한 논의는 더 이상 오래된 과거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6)
예를 들어 2012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렸던 <플레이타임(Play Time)> 전에 소개된 파트타임스위트(Part Time Suite)의 <편집 라이브(Live Editing)>는 영상물의 라이브 편집행위 자체를 퍼포먼스 차원에서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개보수 중이던 서울역 안팎의 모습과 노숙자들의 영상 푸티지(footage)가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즉흥적으로 편집되었고, 이 과정은 특히 손동작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채널을 통해 모니터 되었다. 여기서 관건은, 손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행위에 방점을 찍느냐 아니면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편집에 주목하느냐일 것이다. 앞에서도 짧게 언급했듯, 영상편집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포착하는 시도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편집 라이브>에서 탐구되고 있는 것은, 사전에 완성된 스크립트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집 자체의 퍼포먼스적 특성에 가깝다.

왼쪽부터 정세라, 조선령, 곽영빈, 최재훈, 김연임 ⓒ서울문화재단
여기에 덧붙여 동시에 고려해야만 하는 것은 퍼포먼스와 영상 자체를 넘어, 양자를 (오)작동시키는 (불)가능성의 조건으로서의 ‘장치(dispositif)’의 문제다. 예를 들어, 신이피의 싱글채널비디오 작품인 <XY-BR>(2016)은 바닥에 앉거나 서서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움직이는 퍼포머를 정면과 측면은 물론, 위와 아래 등의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한 뒤, 프레임의 중앙과 상하좌우, 네 개의 모서리 등 화면 전면에 서로 다른 시간축으로 분산시켜 배치한 작업이다. 이 오디오 비주얼 작품은 지난 10월, 웹진 <춤:in>의 김연임 편집장과 ‘더 스트림’의 정세라 디렉터가 기획한 《비디오/스펙트럼/댄스 Video/Spectrum/Dance》 행사의 일환으로 엘리펀트스페이스에서 상영되었는데, 나는 이를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보고 들었다. 이 미묘한 차이는 결정적인데, 바닥을 기준으로 고정되어있는 전자의 스크린과 달리, 나는 폰과 스크린을 상하좌우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관람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화면의 사각형 공간에 배치된 퍼포머의 영상들 자체가 ‘땅을 딛고 선 퍼포머들의 퍼포먼스’라는 전제로부터 탈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업은, 한 편으로는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가 특수카메라를 가지고 찍었던 <중앙지역(La Region Centrale)>(1971)과 같은 실험영화의 전통과 연결된다. 물론 전투기 조종사들이 조종간에서 경험하는 하늘처럼 화면 축이 오른쪽과 왼쪽으로 주기적으로 회전, ‘위와 아래’라는 촬영과 관람의 기본 축 자체를 어그러뜨리는 스노우의 작업과 달리, 신이피의 영상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관객,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용자’가 화면 축을 바꾸어도, 배치된 퍼포머들 자체의 상하좌우가 이미 다 다르기 때문에 전자의 관람에 수반되는 어지러움은 후자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공간에서 불가능한, 즉 중력의 힘을 무화시키는 퍼포먼스라는 차원에서 <XY-BR>은, 앞에서 언급한 데렌의 <카메라를 위한 안무 연구(A Study in the Choreography for Camera)>(1946)와 같은 작업과도 (재)연결된다. 남성 흑인 무용수 텔리 비티(Talley Beatty)의 도약은 편집을 통해 “거의 30초 동안 유지”되는데, 데렌 자신이 명확히 언급했듯 이는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보다 훨씬 긴,”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7)
이렇게 퍼포먼스와 영상이 장치와 맺는 다층적인 관계는,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이 1971년에 수행했던 손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모션 캡처를 통해 변형해 지난 2015년 뉴욕현대미술관이 영구소장품으로 구입한 <루프스(Loops)>(2001-2011)나,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의 <평평한 것을 위한 동시적 사물들의 재생(Synchronous Objects for One Flat Thing, reproduced)>(2011)처럼, 영상화된 무대 작품인 <평평한 것의 재생(One Flat Thing, reproduced)>(2005)의 안무 구조와 움직임의 특성, 무용수의 동선과 음악을 포함한 퍼포먼스 데이터 일체를 디지털 데이터로 치환해 온라인에 구축하는 디지털, 혹은 포스트 매체/미디엄 시대의 퍼포먼스 작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나아가 사유할 것인지에 대한 도전적인 탐침을 제공해준다. 앞에서 언급한 파트타임 스위트의 지난여름 아트선재센터 전시 <색맹의 숲>과, 얼마 후 합정지구에서 열린 단독전시 <에어 (Air)>에서 선보인 〈이웃들 ver1.0/1.1〉(2019)은, 한국은 물론 러시아의 대합실과 공터, 북적이는 거리와 실내를 감시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영상들로 이뤄지는데, 이들은 네트워크와 개별 장치들의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작동하거나 암전된다. 다시 말해 이 작업은, 궁극적으로 <편집 라이브>가 ‘편집’에 부여했던 퍼포먼스의 특성을 전자적인 네트워크 통신의 작동과 오작동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이들을 통해 미묘하게 다시 그어진 일련의 좌표계들 속에서, 앞으로 전개될 21세기의 퍼포먼스와 영상, 그리고 장치에 대한 작업 및 논의들은 새롭게 전개될 수 있을지 모른다.
  1. 1) https://www.moma.org/calendar/groups/47
  2. 2) Eric Kohn, “From Netflix to Dada, MoMA’s Reboot Wants You to Reconsider Film History.” Indiewire 2019.10.10.
    https://www.indiewire.com/2019/10/moma-expansion-film-history-1202180373/
  3. 3) 소피 불라스코스, “대안적 80년대: 뉴욕의 다운타운 아트씬을 보존하고 큐레이팅하기.” 2019년 7월 25일, 서울무용센터. https://ex-is.org/events/club57-sohpie
  4. 4) 정옥희, “비디오 댄스 용어의 혼재 현상을 둘러싼 담론 고찰.” 『우리 춤과 과학기술』 11.3 (2015), 89-123.
  5. 5) 최근 연구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Erin Brannigan, Dancefilm: Choreography and the Moving Imag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6. 6) 이러한 전통과 사례를 분명히 염두에 두면서도, 에리카 발솜은 상영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퍼포먼스’라는 용어보다는 ‘이벤트 event’라는 용어로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다른 자리를 빌려야 할 듯하다. Erika Balsom, After Uniqueness: A History of Film and Video Art in Circulati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7, 특히 6장을 보라.
  7. 7) Clark V. A. et al., The Legend of Maya Deren: A Documentary Biography and Collected Works. Volume 1 Part Two: Chambers (1942?47). New York: Anthology Film Archives, 1988, p. 267. Erin Brannigan, Dancefilm: Choreography and the Moving Imag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p.108에서 재인용.
  8. 8) William Forsythe, “Choreographic Objects.” https://www.williamforsythe.com/essay.html
곽영빈_미술평론가, 영화학 박사 곽영빈은 2012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 영화와 비교문학과에서 「한국 비애극의 기원」 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수집가 혹은 세상의 큐레이터로서의 작가: 구동희론」으로 제1회 SeMA-하나 비평상을 수상했고, 2016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2017년 제17회 송은미술대상전과 제4회 포스코 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 심사를 맡았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현대미술과 사운드, 영화와 (디지털) 매체미학의 교차점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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