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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1.08 조회 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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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영상, 가깝고 먼 - 댄스 필름과 비디오 아트가 포착한 몸들

몸, 영상, 가깝고 먼
- 댄스 필름과 비디오 아트가 포착한 몸들

조선령_미학 연구자, 큐레이터

살아있는 것과 기계적인 것.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존재방식과 영구적이고 반복적인 존재방식. 무용/퍼포먼스와 영상매체는 이렇듯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9세기에 무용수와 운동선수들의 움직임을 기록했던 에드워드 머이브릿지(Eadweard James Muybridge)와 에티엔 쥘 마레(Etienne-Jules Marey)의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y)나 퍼포먼스와 특별한 친화성을 보였던 1960-70년대 초기 비디오 아트의 사례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듯이, 영상매체는 항상 살아있는 몸의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역으로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장르는 같은 이유로 영상매체를 필요로 하는 듯 보인다. 비교적 새로운 장르인 ‘댄스 필름’ 역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이러한 욕망을 중심에 두고 이해해볼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스크리닝 + 토크 프로그램인 《비디오/스펙트럼/댄스 Video/Spectrum/Dance》(김연임·정세라 기획, 엘리펀트 스페이스, 2019.10.11-12)에 참여한 안무가 송주원의 말에 따르면, 댄스 필름은 상당 부분 ‘춤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 영상매체를 사용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10월 11일 토크).
그런데 ‘춤을 더 잘 보여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진이나 영상을 현실의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기록 수단으로 간주했을 때, ‘있는 그대로’ 공연을 담아내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번 스크리닝에 선보인 댄스 필름들에서, 영상매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매체적 특성이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Unholy Three>(쌍방 & 백종관)처럼 페이드인&아웃(Fade-in&Out), 합성, 슬로우 모션(Slow Motion) 등 특수효과를 다양하게 사용하거나, <싶다>(김민서 & 김예은)나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송주원)처럼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느슨한 내러티브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기술이나 장치들이 “춤을 더 잘 보여주기”라는 의도와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지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말하자면, 몸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미지화하고 리듬을 부여하는 영상매체의 다양한 방식이 춤의 뉘앙스를 더 잘 전달하는 데 분명히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몸은 외부 세계와 재현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자아를 연결하는 매개고리이기에, 무용의 영상적 재현은 이미지로서의 몸을 보여주는 외적 기록인 동시에 몸에 대한 내적 경험일 것이다. 댄스 필름이 고정된 재현의 좌표를 기록하는 행위가 아닌 것은 이런 면에서 당연해 보인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상영된 댄스 필름 작품들은 장치와 구성이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통의 토대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즉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무용수의 몸을 포착하고 그 가능성을 최대한 현실화하는 데 기여하는 듯했다.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을 때조차도 몸의 에너지, 속도, 혹은 리듬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 《비디오/스펙트럼/댄스 Video/Spectrum/Dance》의 ‘비디오 아트’ 상영 프로그램에서 시각예술 작가들의 영상작품에 등장하는 퍼포머의 몸은 상대적으로 공간이나 풍경의 일부라는 느낌을 준다. 시각예술가들은 공간. 사물, 이미지에 예민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작품 속에서 퍼포머의 몸은 종종 몸이 아닌 다른 어떤 것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움직이며, 계속해서 다른 무엇이 되어간다. 시각예술가들의 작품에서 퍼포머가 전문 무용수가 아닌 경우도 많은 것은 이러한 관심사의 차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문적으로 훈련된 신체는 여기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영주의 <꽃가라 로맨스>나 진달래 & 박우혁의 <ACT/ACT>가 그 경우에 속한다. 이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평범한 동네 주민들의 어색한 아마추어적 춤과 누구나 기본적인 수준에서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한 반복 동작을 담았다. 차미혜의 <닫힌 말 열린 말>, 신이피의 <XY-BR>은 전문 무용수와 협업한 작품이긴 하지만, 몸의 표현 그 자체보다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몸이 어떻게 그 조건과 반응하며 관계를 만드는지 탐구하는 작업에 가깝다. 물론 이 경우 몸의 가능성을 실현한다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기에 전문 무용수와의 협업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닫힌 말 열린 말>에서 무용수들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서대문 형무소의 두 장소에서 자신의 몸을 공간과 사물의 일부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작가는 작업 의도에 대해 “비물질성이 퍼포머들의 몸을 통과하면 어떻게 달라질지를 실험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민통선 안 마을을 배경으로 한 김현주의 <유곡리의 여름>은 ‘다른 표현수단’으로서의 몸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서 몸은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어떤 것을 감각과 이미지를 통해 불러내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댄스 필름이 몸의 내적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객관적 기록과 주관적 체험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는 반면, 시각예술가들은 몸이 지닌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 속성을 비껴가면서 몸을 공간과 세계 속으로 되돌린다. 하지만 두 장르 모두 몸의 직접적 제시가 아니라 몸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무용수/퍼포머의 입장에서 촬영의 피사체가 된다는 것은 이미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영상작품을 경험한다는 것은 이미지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라는 단어는, 그것이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삭제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실 평판이 나쁘다(이런 의미에서 무용을 영상매체로 기록한다는 생각이 공연예술의 아우라를 해친다는 시각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미지가 되거나 이미지를 보는 경험은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미지에 사로잡히기, 이것은 주체였던 내가 대상이 되는 경험, 즉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경험이다. 이는 시각예술가들의 작품에서 퍼포머가 취하는 태도일 뿐 아니라 댄스 필름 촬영 시에 무용수에게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애초에 무용수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상은 몸을 기록할 뿐 아니라 창조하기도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항상 편집된 현실이며, 이미지화된 현실이라면, 서두에 말했던 ‘무용/퍼포먼스와 영상의 차이점’은 해소된다. <ACT/ACT>와 <XY-BR>는 이런 점에서 어떤 동시대적인 쟁점을 제시한다. 이 작품들에서 영상은 몸을 담는 공간이나 그릇 같은 것이 아니라 몸과 동일한 레이어에 있으며, 따라서 영화의 환영적 공간이 아니라 컴퓨터의 스크린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디오/스펙트럼/댄스 Video/Spectrum/Dance》 라운드테이블 2 ⓒ서울문화재단
《비디오/스펙트럼/댄스 Video/Spectrum/Dance》는 영상이라는 미디어에 나타난 움직임과 신체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접근 방식에 주목하고, ‘비디오(영상)’와 댄스(무브먼트)‘ 사이의 다채로운 ’스펙트럼(Spectrum)‘을 살피고 이야기 나누고자 웹진<춤:in>과 더 스트림이 함께 기획했다. 본 행사는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부터 12일 토요일까지 양일간 엘리펀트 스페이스에서 진행되었다.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서울무용센터의 공모지원을 통해 선정된 댄스필름 작품과 시각예술 분야의 비디오아트 작업 중 움직임과 신체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각각 5편씩 선정하여, 총 10편의 작품으로 상영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영상 상영 후에는 라운드테이블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 예술가와 이 분야 전문가들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조선령_미학연구자, 큐레이터 조선령은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라캉 정신분석학과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미학, 현대미술, 이미지/미디어 문화를 연구해왔다. 최근의 연구 주제는 시각성과 감시, 이미지와 아카이브, 스크린 베이스 예술의 주체성의 관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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