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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9.10.14 조회 4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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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애 × 허명진 대담

기준 흔들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까지

웹진 <춤:in> 편집부

일시: 2019년 9월 27일 오후 2시
대담자: 노경애(안무가), 허명진(모더레이터, 무용평론가)

사회의 고정된 기준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이를 흔드는 작업을 해 온 노경애 안무가는 그 독특한 작업 방법론과 꼼꼼한 리서치로 개성 있는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최근 장애예술가와 함께 작업하면서 새로운 감각 경험을 탐구하고 있는 그를 무용평론가 허명진이 만나 지금까지의 작품과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노경애, 허명진 ⓒFotobee_이병곤
허명진: 최근에 <듣다> 프로젝트를 두 번째로 하셨는데, 지난해에 진행하셨던 첫 번째 프로젝트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때 장애가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비장애인이 감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을 열어주는 것 같았고, 새로운 상상력이 자극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에게 더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노경애: 네 맞아요. 저는 2013년부터 장애인들과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 장애인들과 작업할 때마다 ‘과연 장애가 잘못된 것인가’를 질문하곤 했어요. 지금은 장애 예술에서도 새로운 작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2013년, 2014년만 해도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나 예술작업이 대부분이었고, 저는 그런 작업에 대한 질문이 많았어요. 2014년 청각장애 청소년들과 함께 작업하려고 방문한 학교에서도, 청각장애 아이들에게 비장애인들이 듣는 리듬과 박자를 가르치면서 음악 교육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물론 그런 교육도 너무나 훌륭한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교육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는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한계가 또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2014년 청각장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운드 아티스트와 함께 귀가 아닌 몸으로 듣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다른 방식의 듣기에 대한 작업이었지요. 2018년에는 청각장애, 시각장애 작가들과 함께 하면서 듣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시도했어요. 그러면서 하나의 감각이 제한됨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감각이 발달하고, 그 감각을 통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가능성을 마주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장애 작가들과 함께하면서 흥미로운 지점을 많이 목격했어요.

예를 들어 올해 함께 작업한 홍세진 청각장애 작가님은 오른쪽과 왼쪽이 다르게 들리세요. 한쪽 귀에서는 높은 소리가 들리고, 다른 쪽 귀에서는 낮은 소리를 들으시죠. 오른쪽과 왼쪽을 다르게 듣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에서 잘못된 것이지만, 예술작업 속에서는 흥미로운 ‘새로운 감각’이지요. 그리고 보청기를 몇 년마다 교체하는데, 그때마다 들리는 채널이 달라서 매번 소리를 새로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어요. 그 외에도 청각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말들 속에서 ‘조사’만 많이 들리는 작가님 이야기, 시각장애로 인해 소리로 공간과 거리를 감각하는 작가님, 그리고 시각장애로 인해 소리를 들으면 색을 보는 작가님의 이야기들은 함께 작업하는 장애 작가님과 비장애 작가 모두에게 정말 흥미롭고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프로젝트는 장애를 다루는 작업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 새롭게 자극되고 상상되는 것이 가능해지는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비장애 작가들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장애를 지닌 장애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해요.
허명진: 지난해 작업에서는 장애와 비장애를 의식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듣는 행위 자체가 선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는다’는 행위란 어떤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면서 관념을 확장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노경애: 올해 <듣다 2> 작업을 보신 분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2018년은 청각장애와 시각장애 작가들과 처음 협업한 만큼, 우리 모두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었어요. 장애가 특별한 예술적 감각과 미학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고자 했었기에 ‘장애’ 자체에 더 집중했어요. 반면 2019년에는 질문이 좀 더 깊어졌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것은 저 혼자 해나가는 것은 아니고 작가들과 함께 이루어가는 작업이에요. 보통 작업을 시작할 때 저는 컨셉을 잡고 작업의 틀을 만들어요. 그리고 작업할 때 결과를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쭉 나아가지 않고, 궁금한 것들을 작업의 과정을 통해 찾아 나가요. 그렇기에 함께하는 작가들의 관점과 작업 방식이 작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요. 이번에는 ‘장애’에 대해서만 작업한다기보다는 ‘듣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작업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김보라 작가님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선 공평한 감각에 대해 질문했고, 위성희 작가님은 소리를 저장하기 위한 수많은 매체 중 가장 근본적인 매체인 귀로 듣는 방식을 연구했어요. 그중 하나가 구전인데, 소리를 기록하는 다양한 방식 중 구전은 가장 오래된 방식이지요. 이렇게 작가님들의 관점과 생각들이 이 작업을 관통해가면서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듣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작업이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허명진: 우리가 듣는 것에 대해 공통으로 합의되었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전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칸트가 말한 ‘공통감각’이라는 게 그런 비슷한 것이었다고 기억해요. 그런데 그것은 결국 가정되고 요청되는 차원에 불과한 것이죠. 지난해부터 <듣다> 프로젝트를 보면서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듣는 것의 차원을 접하게 되었고, 오히려 비장애인이 너무나 많이 배우게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경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 작가님들은 자신들의 장애가 새로운 예술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비장애 작가들과 관객들은 장애를 통해 낯설게 감각하고 다르게 경험하면서 그것이 배움이 되는 것 같아요. 홍세진 작가님은 오른쪽과 왼쪽의 소리가 달라서 항상 2~3가지 소리가 중첩적으로 들리는데, 이번에 그것을 전시에서 시각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현했어요. 홍세진 작가님이 듣는 오른쪽과 왼쪽의 다른 소리, 그리고 중첩되는 소리를 듣거나 보면서 많은 분도 다른 감각을 경험하셨다고 생각해요. 작업 과정에서도 장애 작가님들과 처음 작업해보시는 비장애 작가님들도 이 협업을 굉장히 흥미로워하셨어요. 장애 작가들은 소리, 언어, 형태, 공간 등을 다루는 비장애 작가들의 새로운 작업의 방식을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비장애 작가들은 장애 작가들의 새로운 감각을 경험했지요. 2018년 작업 과정에서는 어떤 면에서 정말 비장애 작가들이 더 많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허명진 선생님께서 그 당시에 모니터링해주시면서 이 부분을 이야기해주셨지요. 그때 제게 들었던 생각이 예술교육이 더는 지식이나 기술의 전수가 아니라 ‘경험을 교류’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봤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에게 하는 교육’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프로젝트가 리서치 프로젝트이면서 장애예술교육 연구 프로젝트였기에 교육에 대한 생각들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장애예술 교육에서 항상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교육을 받기만 하는 고정적인 역할을 전환했다고 생각해요.
허명진: 최근 장애인 관련 작업을 많이 하고 있지만, 장애를 배려해서 하는 작업이라기보다 이미 작가로서 기존의 틀이나 규준을 괄호에 넣고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소개됐던 <움직이는 표준>에서 움직임의 중심을 계속 바꾸면서 움직임이 해체되는 지점을 찾았던 것처럼, 기준에 대한 질문이 안무 작업에 있었던 거죠.
노경애: 2018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여러 주제 중 하나가 ‘뉴 노멀(new normal)’이었어요. 사실 이것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생겨난 신조어예요. 그 전까지의 금융시장 분석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여러 전제가 사라지고 새로운 전제와 규범들이 대두되고 있음을 나타내요. 이 주제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한 작업이 <움직이는 표준>이었어요. 하지만 이 작업은 움직이는 기준과 표준들 사이에서 움직이면 안 되는, 지켜져야 할 표준과 기준에 대한 작업이었어요. 이것은 역설적이지요.

말씀하셨듯이, 지금까지의 제 작업은 사람들의 고정된 생각과 개념들을 흔드는 시도를 많이 해왔어요. <불특정한 언어>와 <더하기 놓기+>뿐만 아니라, 장애예술 작업도 그렇죠. 비장애에 놓인 기준을 장애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 작업이에요. 오랜 시간 견고하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사회의 많은 기준을 움직이고 그것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많은 새로운 사상들이 대두되고 그것들이 혼재되면서 사회와 삶 속에서 중요한 기본적인 가치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움직이지 않았으면 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지금까지는 움직이는 기준에 대한 작업이었다면, 앞으로는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기준에 대해 작업해 나가려 해요. 단순하지만 참되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요.
허명진: 움직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예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그와 관련해서 어떤 철학자를 언급하지 않았나요?
노경애: 철학자를 언급했던 건 다른 작업이에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였고, <불특정한 언어>라는 작업에서였어요. 그의 사상이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고, ‘오해’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제가 유럽에 있었을 때는 철학적 사상에서 작업의 단초를 찾으려 노력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요. 저 스스로 궁금한 것이나 사회를 바라보며 생겨나는 질문을 작업을 통해 찾아 나가려고 해요. <듣다> 프로젝트도 ‘듣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저는 보는 것은 강하지만, 듣는 것에는 굉장히 약해요. 공연예술 작업은 3차원 작업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평면적인 시각예술로 인식하고 영상 편집하듯이 장면을 배치해요. 그래서 제 작업은 굉장히 정면성이 강해요. 정면성이 강한 이유는 제가 공연예술 작업을 시각예술처럼 평면적인 작업으로 인식하고 배치하기 때문이에요. 그에 반해 듣는 것은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에요. 그래서 듣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허명진: 한국에서 보여준 첫 작품이 <불특정한 언어>예요. 움직임의 차원에서 춤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그 이면에 있는 것, 보통은 드러나지 않고 통제되기 힘든 무의식적인 움직임 영역에서 명과 암을 뒤집어놓은 듯한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노경애: 네 맞아요. <불특정한 언어>는 옳은 것이 무엇이고,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했던 작업이에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질문해왔어요. 물론 절대적인 가치의 옳고 그름은 분명히 있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중간 지점 즈음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각과 행동 양식에 대한 것들이에요. 삶의 다양한 층위에서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어요. 어떤 행동이 잘못이라는데 이게 과연 잘못된 행동일까? 때로는 진실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진실은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옳은 것인가? 이런 질문을 가졌죠. 그러면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개념인 불편한 것, 불균형한 것, 불완전한 것들에 대해 작업했어요. 이 모든 작업의 컨셉은 함께 작업하는 퍼포머의 개인적인 해석을 통해 구현되었어요. 예를 들면, 각자의 삶에서 균형과 불균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실제로 한 무용수는 의지하려는 것과 자립하려는 것 사이의 불균형을 이야기하고, 어떤 무용수는 사회적인 카테고리와 개인의 카테고리가 다르게 작용하는 불균형을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움직임의 측면에서 본다면, 무용 동작은 항상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기에 불규칙한 것, 불안정한 것, 불균형한 것은 모두 완전하지 않거나 잘못된 것들이라고 받아들여요. 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는 그 순간에 발생하는 움직임들은 새로운 미적인 움직임이 될 수 있어요. ‘불균형’은 ‘균형’이 가질 수 없는 운동성을 가지고 있고, ‘불편함’은 ‘편함’이 감지하지 못하는 감각을 드러내요. 이 작업에서 저는 불안정하고 불균형하고 부조화해서 잘못된 듯하고 실수한 듯한 움직임과 현상을 찾았고, 그 진실함과 낯섦, 실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어요. 작업한 예를 들자면, 한 무용수가 ‘불균형’을 보여줄 때 일반적인 몸의 행동에서 한 부분만 다르게 작동시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움직였어요. 무엇인가를 잡아당기는 행동을 할 때, 일반적인 몸의 조화로운 작용에서 몸의 한 부분만 다르게 작동시켜서 움직임의 균형을 깨는 방식이었어요.
허명진: 방금 말씀하신 몸의 물리성이 <불특정한 언어>에서도 주목되었지만, <MARS> 작업에서는 아예 물리적 법칙으로 풀어나갔죠. 몸이라는 것이 어떤 미적인 가상을 가지고 구성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물리적 대상이라는 거예요. 국내에는 그러한 몸 중심의 작업 경향이 많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그런 편이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로켓이 지구 바깥으로 발사되잖아요. 그렇게 시야가 바뀌고 확장되면서 이제 지구 특정적인 작품이 돼버리는 거죠.
노경애: <MARS>는 자연에서의 움직임의 원리를 궁금해하다가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물이 아래로 떨어지거나, 소용돌이 같은 무언가가 회전하는 움직임의 원리가 궁금했고, 동시에 그런 단순한 움직임의 작용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리서치 과정에서 ‘탄성’의 원리가 한 퍼포머의 움직임에서 구현되었는데, 굉장히 단순했지만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단순함의 원리에서 매력을 느낀 거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임’은 어떠한 방식으로 생성되고 작동되는지 알기 위해서 물리적인 법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MARS>는 정말 물리학책을 가져다 놓고 직접 사물들을 하나하나 실험하면서 움직임 재료를 찾아갔어요. 물건을 줄에 매달아 놓고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사물을 움직여보고 거기서 발견되는 원리를 퍼포머가 몸의 움직임으로 구현하며 찾아 나갔지요.
허명진: 춤추는 몸을 물리적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접근이죠. 그런데 아까도 언급하셨지만 무용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물리적인 몸 자체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 물리성을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하잖아요.
노경애: 저희도 그런 생각과 정말 많이 싸웠어요. 제 작업은 무용 테크닉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실 몸과 몸의 움직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잘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에요. 물론 <불특정한 언어>는 그 운동성 때문에 일부러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들과도 작업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지요. 많은 경우 무용수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테크닉을 내려놓고 움직임 자체를 그대로 구현해야 했는데, <MARS>도 비슷했어요. 예를 들어, 서 있다가 바닥으로 내려갈 때 무용 테크닉의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뚝 떨어져야 했어요. 그것은 사실 우리가 하는 작업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해야 가능한 일들이에요. 작업하면서 ‘움직임’과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하나의 움직임이 ‘완전’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작업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움직임의 완전함은 화려한 테크닉이나 스킬이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걷어내고 난 후, 그 본질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나는 것이에요. 모든 움직임을 그렇게 찾아 나갔던 것 같아요.
협업의 방식


노경애 ⓒFotobee_이병곤
허명진: 협업을 이끌어내면서 작업하시는 걸 보면 ‘기획하는 안무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콜렉티브로도 활동하셨고요. 콜렉티브 작업뿐만 아니라, 말씀하셨듯이, <불특정한 언어> 같은 안무 작업에서도 협업 구조로 작업하시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작업에서 협업을 택했던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노경애: 저는 하나의 컨셉이 여러 사람의 관점을 통해 해석되고 구현되는 것을 좋아해요. 저 혼자의 생각이나 표현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작업하다 보면, 저 혼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 나와요. 장르적으로도 무용뿐만 아니라 시각예술,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작업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어떤 것에 대해 오랜 시간 시각 작업을 해왔던 사람이 해석하는 방법과, 몸을 움직여왔던 사람이 해석하는 방법이 다른데, 그 다름이 모여지고 교차되는 것이 흥미로워요.

저는 하나의 컨셉이 여러 사람의 관점을 통해 해석되고 구현되는 것을 좋아해요. 저 혼자의 생각이나 표현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작업하다 보면, 저 혼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 나와요. 장르적으로도 무용뿐만 아니라 시각예술,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작업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어떤 것에 대해 오랜 시간 시각 작업을 해왔던 사람이 해석하는 방법과, 몸을 움직여왔던 사람이 해석하는 방법이 다른데, 그 다름이 모여지고 교차되는 것이 흥미로워요.
허명진: 그렇죠. 협업에 대한 의견이 공유되어야 작업이 가능하잖아요. 만약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면 설득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노경애: 안무가로서나 콜렉티브 작업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작업 안에서 협업 작가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계적인 측면이 아니라, 작업의 방법론이나 리서치의 과정 속에서 작가들의 신뢰를 얻는 것을 말해요. 안무가나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이 제시하는 방법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좋은 방법론을 찾으려 많이 노력해요. 저 역시 공연이 임박하면 무수히 흔들리고 미친 사람 같거든요. 그런 순간들에 협업자들도 저를 많이 이해해주려고 노력하시는데, 그동안 쌓여진 신뢰가 있다면 서로를 포용하는 것이 조금 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어쩌면 저 혼자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러려고 노력해요.

그 외에도 작업을 하다보면 협업하는 작가들과 생각하는 바가 다를 때 많아요. 저도 상당히 독단적일 때가 많고, 작가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하고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그럼에도 정말 중요한 어떤 것은 추진해 나아가지만, 나름 제 것을 많이 포기하려고 하는 편이예요. 제가 내려놓으려 하면 더 크고 중요한 것들을 담을 수 있게 되더라구요. 가장 큰 설득은 작가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항상 작업이 ‘나만의 것’이 되지 않고 함께 협업하는 작가들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허명진: 협업 과정에서 설득되느냐 안 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피나 바우쉬(Pina Bausch) 이래로, 협업의 구도를 만드는 시도를 컨템퍼러리 댄스 안무가들이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생각만큼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지 않으려고 해도 안무가가 독단적이 되는 상황도 많고요. 말씀하셨듯이, 방법론적 차원에서의 설득이라는 지점이 상당히 중요해 보이네요. 협업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선생님의 작업에는 콜렉티브적인 작업도 있고 아까 언급했듯이 ‘기획하는 아티스트’형 작업도 나타나는데, 콜렉티브라고 하면 작업자들끼리의 교환이나 협업이 좀 더 중요해 보이고, 후자의 경우 보통 한 아티스트가 기획을 제시하고 그 기획 안에서 큐레이팅이 이루어져서 주어진 컨셉과 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방식 같거든요. 이런 작업 방식이 처음 나타났던 게 광주의 레지던시에서 했던 작업이었다고 생각돼요.
노경애: 광주에서 했던 작업은, 김성희 선생님이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예술감독으로 계시면서 광주 작가들을 ‘움직여 달라’ 제안하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협업을 통해 광주 작가들의 관점과 작업의 방식에 영향을 주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을 하기 위해 광주로 갔죠. 작업 주제를 고민하다가 기호가 무엇인지 연구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저도 잘 모르는 분야지만 같이 공부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서울에서 세 명의 작가들과 진행한 사전 리서치에서 나온 자료를 기반으로 작업 메소드를 준비해서 광주에 내려갔어요. 그렇게 광주에서 서울과 광주의 작가들이 시각예술, 신체 움직임, 영상 매체를 통해 함께 리서치를 진행했어요. 리서치의 기본적인 과정들은 기본적으로는 제가 방법론을 제안하고 이끌어갔고, 때에 따라 협업 작가들이 제안했어요. 리서치 후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발전시켰어요. 서울과 광주의 다른 지역의 작가들 사이의 마주함과 시각예술과 몸의 움직임의 다른 매체들 간의 교류를 이야기하고자 했기에 프로젝트 이름을 <가로세로>라고 했는데, 이 그 작업은 시간이 지나 <더하기 놓기+>의 근간이 되기도 했어요.

이런 방식의 또 다른 작업은 2017년 <더하기 놓기+, 두 번째 실험실>이에요. 이 작업은 2016년 <더하기 놓기+> 작업을 통해 발견한 작업의 리서치 방법론을 신진작가들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한 작업이었어요. 2016년 작업 당시 함께한 무용수들이 작업 방법론을 굉장히 재미있어 했어요. 그래서 이것을 우리만 알고 있지 말고 관객 또는 신진작가들과 함께 공유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과정을 드러내는 리서치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도 열렸어요. 한 번도 제 작업이 콜렉티브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이러한 작업 방법론이 사람을 모으고 신진작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신진작가들 중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많은데 작업을 어떻게 구현해 가는지 그 방법론을 찾는 것을 어려워하는 작가들을 많이 봐요. 그래서 공유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허명진: 방법론 자체를 오픈해놓고 그 과정을 작업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 다른 안무가와 다른 면모라고 보여요.
노경애: 저도 예전에는 작업의 방법론과 그 과정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작업 방법론이 단순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연구와 힘겨운 시간을 통해 나오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작업의 방법론과 과정 자체가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도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전시되는 작업들에는 작가들이 각자의 생각과 관점을 통해 발전시킨 작업도 있지만, 작업의 과정에서 나온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전시물도 많아요. 작업 중에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쓰고, 자르고 조합한 그런 것들이 그대로 전시되죠. 작업 과정의 흔적이 전시되는 것이 좋아요. 아무리 저희가 그때의 것을 다시 구현하려고 해도 그 순간에서 발생한 생생함은 담기지 않더라고요. 어떤 것들은 지저분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그대로.
허명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콜렉티브’로서의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유럽에 있을 때 콜렉티브 그룹으로 작업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는 어떤 식으로 활동하셨나요?
노경애: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단체에는 한 명의 안무가나 예술감독이 있고 그리고 무용수들이 있잖아요. 제가 벨기에에 있었을 때 유럽의 여섯 안무가들과 만들었던 카브라(CABRA)는 그런 고정된 형식과는 다른 방식의 단체를 만들어보고자 시작했어요. 각 안무가의 개별 작업을 존중하다가 작업에 따라 작가들의 관심도에 따라 협업을 이루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모든 작가들이 협업할 수도 있지만, 한두 작가가 협업할 수도 있죠. 협업의 한 예를 들자면, 벨기에에서 콜렉티브를 설립하고 나서, 작가들이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한국, 이렇게 흩어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온라인 플렛폼을 통한 협업을 시도했어요. 프로젝트 이름은 <리타(RITA)>. 한 작가가 하나의 작업물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면 다음 사람이 그 작업에 영향을 받아서 작업을 진행하고 그다음 사람이 이어받고 하는 릴레이 형식을 시도했어요. 항상 함께 작업하는 협업의 방식을 달리하고, 각자의 개별 작업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함께 했던 다른 협업의 예는 프로젝트 <이곳(This Place)>예요. 사라(Sara Manente)와 마르코스(Marcos Simoes), 두 작가의 협업 작업이었는데, 동시에 다른 작가들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갔어요. 하나의 작업 컨셉을 한국, 스페인, 벨기에의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과 이어갔어요. 우리가 좋은 협업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우리가 서로를 무척 사랑하는 친구들이라는 것이에요.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극복해갈 수 있는 더 큰 힘이 저희에게 있지요.
충돌을 통해 발생하는 감각들


허명진 ⓒFotobee_이병곤
허명진: <더하기 놓기+>의 방법론을 보면서, 영화에서 ‘충돌 몽타주’ 기법을 많이 가져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호가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는 게 어떤 것일까. 미지의 움직임을 딱 던져놓고는 거기에 사운드나 다른 무언가가 더해지면서 의미가 방향을 찾아나가는 게 기호학적이에요. 애초에 제시된 이미지가 역설적인 신체 배치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뭔지 잘 모르는 어떤 다이내믹을 이미 포함하고 있는데 다른 것들이 더해지면서 그게 방향성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 더해짐 자체가 산술적인 더해짐이 아니라 어떤 도약이 발생하게 되죠. 충돌을 머금으면서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차원까지 포함하게 되면서 일종의 쉼표를 찍게 된다고 할까요.
노경애: 2013년 <가로세로> 작업 중 기호에 대해 리서치 하는 과정에서 그래픽디자이너 안상수 선생님의 글을 자료로 받게 되었어요. 한자 조합기법의 하나인 ‘회의(會意)’와 일본의 시 ‘하이쿠(俳句)’의 기법을 영화 편집기법의 ‘몽타주(montage)’와 연관하여 쓰신 글이었어요. 한자의 회의 기법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글자를 합하여 새로운 뜻을 가진 글자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구체+구체=추상을 이루어내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일본의 시 하이쿠는 단어들을 배치하여, 단어와 단어 사이의 충돌을 통해 제3의 이미지와 개념을 발생시키는 기법이에요. 이 기법들이 장면과 장면을 결합하여 의미를 창출해내는 영화 몽타주 기법과 닿아 있다는 글이었어요. 이 글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그 내용을 토대로 글자, 이미지, 사물 등을 이용해서 ‘회의’적이고 ‘하이쿠’적인 다양한 결합의 방법들을 리서치 했어요. 그리고 이러한 결합 방법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질문에서 광주의 작가들과 광주 도시를 리서치 했고,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삶에서 정말 흥미로운 결합의 기법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일반적인 사회의 논리와 다르게 작용하는 한 개인의 논리작용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이 작업 후에 리서치 메소드를 한 예술대학교 학생들과도 함께 작업해보았어요. 그런데 광주에서의 리서치 과정도 그랬고, 학생들과의 리서치 과정에서도 무엇인가 이상하게만 결합하면 이것이 하이쿠적이고 회의적인 결합 기법인 듯한 오해가 발생하고 있었어요. 엉뚱하고 이상한 조합들 사이에서 어떤 것은 회의적 결합이라 생각했고, 어떤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는데, 그 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어요. 제 막연한 개인적인 취향인가 싶었죠.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결합의 원리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게 무엇일까를 2013년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발견했던 것이, A와 B를 결합할 때, A의 결합 형식을 지키면서 B에 적용하되 일반적이지 않은 생경한 것을 결합하는 방식을 찾게 되었죠. 글자의 경우 문법적 결합의 형식을 이용하고, 사물의 경우는 기능적 요소를 이용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형용사에는 명사가 결합하는 일반적인 문법적인 형식은 지키면서, A에 일반적이지 않은 생경한 B를 결합해요. 이 작업 방법론이 2016년 <더하기 놓기+,> 작업하면서 구체화되고 깊어졌어요. 그러면서 ‘뚱뚱한 바람’, ‘형상 3’, ‘무게를 가로지르다’ 등의 낯선 말들이 생성되었어요.

그리고 이 기법을 이미지와 사물에도 적용하며 다르게 실험했는데, 몸의 움직임에서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당시에 함께 작업했던 드라마투르그와 작가들이 했던 생각은 몸의 움직임은 추상적 요소가 많아 기호적으로 읽히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몸의 움직임과 다른 요소들 사이의 결합을 시도했어요. 움직임+사물 그리고 움직임+소리의 결합이었죠. 예를 들어 ‘던진다’는 몸의 행동에 생소한 사물의 재질을 결합했어요. 무언가를 던지면 멀리 나가는 게 일반적인데, 사물의 재질이 엉뚱하게 이불솜이 되면 아무리 열심히 던져도 운동성은 이상하게 작용해요. 그리고 그 행동에 쉽게 연상되지 않는 낯선 소리인 쇠가 떨어지는 “뚝” 소리 같은 것을 결합했지요. 그리고 굉장히 활발하고 적극적인 행동인 ‘달리기’의 질감을 다르게 하면서 늘어지게 해보고, 그것에 굉장히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사이렌 소리를 결합해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시도해보기도 했어요. 이런 방식의 결합들이 충돌을 발생시키고 다른 것으로의 도약으로 내딛게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허명진: 그 작업이 다른 매체와 결합해서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노경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2017년에는 이 작업 방법론을 이용해서 영화, 무용, 연극, 음악의 다양한 장르의 많은 신진작가와 작업했어요. 그중 한 음악가가 이 기법을 활용해서 글자에 악상기호를 결합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쩌면 이 메소드는 무용보다는 음악, 사운드, 영상 등의 다른 매체의 작가들과 작업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명진: 이미 안무 작업 속에 충돌하면서 생경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대한 탐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메소드를 선택하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노경애: 이 작업은 몸의 움직임으로 작업할 때 너무 어려웠어요. 몸이 굉장히 추상적이니까 움직임이 굉장히 단순해지더라고요. 그걸 보며 시각적인 컨셉을 너무 몸에 입힌 게 아닐까 생각되고, 몸은 다르게 접근되어야 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어요.
허명진: 어떤 배열이 이루어지고 맥락이 생겨날 때 의미가 생성되는 거니까, 몸도 다른 사물과 같이 놓고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안무가들에게는 몸을 특별하게 여기는 태도가 있잖아요. 그만큼 몸이라는 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자칫 도그마(dogma)적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어쩌면 그걸 내려놓고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노경애: 다시 작업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 생각해봐야 할 작업인 것 같아요.
리서치에 대한 질문들


노경애 ⓒFotobee_이병곤
허명진: 최근 안무가들이 리서치 중심의 작업을 많이 시도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소위 말해 공부하는 형태로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도대체 안무가들이 리서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그런데 연구자가 아닌 예술가의 찾기, 혹은 배움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노경애: 제 작업에서 리서치는 리서치 프로젝트를 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작업의 과정에서 항상 이루어지는 일이예요. 하나의 흥미로운 컨셉을 발견하여 그것을 예술작업으로 구현해가는 과정에서 실험하며 구체화해서 작업의 방법이 되는 모든 과정이에요. 작업의 과정에서 협업하는 작가들로부터 ‘이것이 어떻게 공연 작업이 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더하기 놓기+>도 거의 6개월 동안 작업했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계속 리서치를 했어요. 그런데 이것이 제 작업 방식이에요. 결과를 정해두고 결과를 구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질문 하나를 가지고 시작해요. 질문 하나만 딱 던지고 어떻게 갈 건지 작업하며 찾아보는 거예요. 이런 작업 방식이 정말 재미있는 게 뭐냐면, 그렇게 찾아보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치가 떠올라요. <듣다> 프로젝트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가르치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가르치며 서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가치가 떠올랐고, <가로 세로> 프로젝트에서는 어르신들의 삶 속에 재미있고 예술적인 결합을 찾을 수 있었어요. 제게 ‘리서치 프로젝트’는 리서치를 한다는 것 자체에 있지 않아요, 리서치는 모든 작업에서 항상 하는 것이에요. 그와 다르게 ‘리서치 프로젝트’는 리서치의 과정을 작업화하는 것을 의미해요. 작업의 과정과 그 안에서 생겨난 ‘질문, 과정, 실험’을 전부 관객들과 공유하는 행위를 포함하지요.
허명진: 그렇죠. 리서치 과정을 어떻게 작업화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 과정 중심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리서치는 어떻게 해야 작업화할 만한 것들이 많아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질문 하나를 가지고 체험적인 차원에서 찾아보고 발견하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과 만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은데, 자신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나 질문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게 빈약하니 뻔한 것을 작품에 펼쳐놓는 경우가 생기지 않나 싶어요. 그런 작업을 과연 리서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하게 돼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리서치는 무엇이며, 모르는 것은 어떻게 길어 올리시나요?
노경애: 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네요. 리서치를 처음 했던 것은 무용창작 작업을 할 때부터였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구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무용수)이 논리적으로 이해되고 납득할 수 있을 객관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한 단계 한 단계 진행 과정을 찾아 나갔던 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매일의 연습에서 작업마다 방법을 찾았지요. 예를 들어, ‘불균형’에 대해 작업한다면 무용수들에게 갑자기 ‘불균형을 몸으로 표현해주세요’라고 제안하지 않아요. 저는 이런 방법은 무용수들에게 상당히 무례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무용수가 표현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 전에, 그의 생각과 마음이 몸을 움직이기 위해 먼저 납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불균형이 무엇인지 간단하게라도 자료를 먼저 찾아요. 아주 간단하게는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해요. 그리고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그것을 해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그렇게 하나하나 작업해 나가다가 전체적 구성에서는 작업의 컨셉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고 연구해요.

<가로세로>, <더하기 놓기+,>, <듣다> 등의 콜렉티브 프로젝트는 다양한 매체의 작가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리서치를 한 작업이에요. 그런 작업의 경우 작업 컨셉에 따라 리서치 방법론이 달라져요. 예를 들어 <가로세로> 프로젝트의 경우, ‘기호’를 주제로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여 작가들과 기호가 무엇인지 그 자료를 함께 찾고 공부했어요. 제가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자료가 너무 어려우면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아주 쉬운 자료부터 시작해요. 그렇게 자료를 통해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봐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도시를 리서치 하면서 우리가 공부한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체화하는 작업을 해요. 그러다가 더 연구하고 싶은 부분이 생기면 그에 맞는 자료를 찾아서 보고, 계속해서 다른 방식의 실험들을 이어가요. 영상 작업을 보거나, 강연을 찾아보거나, 도서 자료들도 찾지요. 그리고 또 흥미로운 부분을 작업으로 시도해 봐요. <가로세로> 프로젝트의 경우, 기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호 - 기표’와 ‘기의 - 상징 - 은유 - 결합’.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갔어요. 그리고 그 방법으로 자료조사, 글쓰기, 그림 그리기, 자르기, 붙이기, 영상 관람, 도시 리서치 등으로 진행했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작업의 흐름과 작가들의 흥미와 그들의 이해의 과정을 보고 그것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함께하는 작가들과 함께 자료를 찾고, 그것을 체화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무가나 감독 한 사람의 리서치가 아니라 함께 찾아가는 리서치가 되도록 하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작업마다 리서치의 방법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2018년에 <듣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무 자료도 없이 시작했어요. 그게 정말 이상했어요. 저는 항상 작업의 컨셉을 정하면 그것에 관련한 자료를 찾아요. 그리고 그 자료들을 함께 하는 작가들과 공유하고 공부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듣다> 프로젝트는 아무런 자료를 찾지 않고 시작했어요. 작가들에게 당신에게 ‘듣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각 사람의 이야기에서부터 방법을 찾아 나갔어요. 그래서 작업 중반에는 이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제 저의 예술적 작업 능력이 끝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데 또 다른 작업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시 자료를 찾고 있는 저를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듣다> 작업은 특별한 자료 없이 각 개인의 듣는 방식에서 작업 방법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 맞는 것이었구나 생각했지요.

그리고 리서치 과정에서 각 단계를 구현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는 작가의 오랜 시간의 작업 경험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평소에 생각하고 연구해오던 것들이 작업에서 나타나죠.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작업 안에서 갑자기 드러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평소 쌓아오던 것이 없었는데, 갑자기 리서치 프로젝트를 한다고 작업 방법론이 특별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작업은 항상 작가를 드러내지요. 저와 함께 협업하는 작가님들을 봐도, 평소의 그들의 고민과 관점이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봐요. 그래서 ‘작업’은 ‘작가’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나만의 관점과 고민이 흥미롭게 ‘예술적’으로 방법론 안에서 구현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이 없다면 그냥 단순한 자료 연구에 지나지 않겠지요.
허명진: 그러고 보니 멘토링 하실 때도 작업에 대해 추상적인 이야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방법론의 차원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던 게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작업을 끌어내는 방법론을 갖고 계시니 그게 창작 작업이든 예술교육이든 가리지 않고 나타나지 않나 싶어요.
노경애: 네, 누군가가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우려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질문과 함께 구체적으로 발을 밟고 디딜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론도 함께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는 함께 병행되는 것이 좋다고 봐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은 작가가 당장의 답을 구하게 하지는 못해도,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은 어떻게 작업을 구현해갈 수 있을지 그 단초를 제안해주지요. 추상적인 질문만 있다면 작가들은 심연 속에서 헤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구체적인 방법론만 제시하면 스스로 깊이 있는 작업을 찾는 힘이 생기지 못할 것 같고요. 두 가지가 함께 병행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저의 경우 이러한 창작의 방법론이 예술교육으로 이어져요. 실제로 창작 작업의 방법론이 예술교육 내용으로 전환되고 또 예술교육안이 창작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불특정한 언어> 작업 당시에도 작업 메소드가 재미있어서 움직임으로 표현해보고, <가로세로>에서 하나의 매체를 글자로도 작업해보고 그림으로도 작업해보는 게 재미있어서 예술교육에서 사용했어요. 그리고 저는 예술교육을 할 때도 하나의 주제가 몸, 사람, 사물, 공간으로도 확장되고 변형되는 것을 좋아해요. 어린이든, 어른이든, 예술가든, 아마추어든,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한 가지 개념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차원에서 결합하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아요. 예술교육을 하게 된 것도 창작 작업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연구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렇게 함께 이야기하니까 스스로 저에 대해 분석하게 되고 좋네요.
허명진: 사실 방법론이 없으면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뭔가 그럴듯하게 얘기를 하는데 막상 작업이 허술하게 드러날 때는 문제가 있는 거죠. 안무 작업에서든 과정 중심의 프로젝트든 방법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네요.

정리. 웹진<춤:in> 에디터 이주연

노경애_안무가 네덜란드 ArtEZ University of Arts(전 EDDC)에서 공부하며 몸에 대한 이해와 움직임연구, 자신의 작업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에서 아트엘(ArtEL)을 창단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페스티벌 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SeMA 미디어시티비엔날레, 독일 포츠담 탄츠타게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 및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참여자를 대상으로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듣다> <여러가지 선> <점점 퍼지다> <21°11′> 등 장애·비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

허명진_무용평론가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노경애_안무가X허명진_무용평론가 네덜란드 ArtEZ University of Arts(전 EDDC)에서 공부하며 몸에 대한 이해와 움직임연구, 자신의 작업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2010년 한국에서 아트엘(ArtEL)을 창단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페스티벌 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SeMA 미디어시티비엔날레, 독일 포츠담 탄츠타게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 및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참여자를 대상으로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듣다> <여러가지 선> <점점 퍼지다> <21°11′> 등 장애·비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
허명진_무용평론가 무용전문지 <몸> 기자를 거쳐 2003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공연예술지 <판> 편집위원, 국립현대무용단 교육&리서치 연구원을 거치면서 무용의 접점을 다변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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