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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논의에 주목하고, 이를 다각도로 집중 조명합니다.

2018.10.15 조회 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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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재공연과 레퍼토리화를 말하다

조형빈_웹진 <춤:in> 편집부

일시 : 2018년 9월 30일 일요일 저녁 7시

참가자 : 윤푸름(모더레이터, 안무가), 장은정(안무가), 강효형(안무가), 이은경(안무가), 조형빈(본지 에디터)



(왼쪽부터) 강효형, 윤푸름, 이은경, 장은정 ⓒ양동민
올 한 해에도 수많은 무용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갔다. 그러나 그 숱한 작품들 중에서도 재공연의 기회를 잡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분명 훌륭한 작품임에도 오직 단 한 번 무대에 올라가고, 다시 공연할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여기에는 작업에 들어가는 창작자의 상황도 얽혀있지만, 또한 신작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신작을 선호하는 분위기에 맞서, 최근 국립현대무용단에서는 ‘재공연’을 주제로 한 기획 공연 <스텝업>을 선보이기도 하면서 재공연과 레퍼토리는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많은 작품이 재공연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무용계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는 안무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재공연과 레퍼토리의 필요성
윤푸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편하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부터 할까요? 저는 윤푸름이라고 합니다. 여기 이은경 안무가와 장은정 선생님은 이미 너무 잘 아시겠지만. 저도 안무를 하고 있고, 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예술교육으로 일을 하는 중이고, 다음 주 공연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강효형: 안녕하세요, 강효형이라고 합니다. 지금 국립발레단 댄서이자, 안무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은경: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경이라고 합니다. 저는 무용수와 안무가의 두 가지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용수로 활동하거나, 다른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많이 해왔고, 그래서 제 이름으로만 활동을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반갑습니다.
장은정: 저는 장은정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런데 마침 춤을 추면서 산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장은정 안무가 ⓒ양동민
윤푸름: 네. 지금 여기 모이신 모두가 안무자로 그동안 어떤 작업들을 해 오셨는지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주제로 작업을 했는지 혹은 어떤 관심사로 작업을 했는지. 안무를 하셨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나 혹은 나의 대표적인 작품, 안무가로서 내가 나의 다양한 작업들을 봤을 때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 위주로 편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강효형: 저는 국립발레단에서 KNB 무브먼트 시리즈라는 것을 계기로 <요동치다>라는 작품을 만들어 처음 데뷔를 했습니다. 이 <요동치다>를 가지고 재공연을 여러 번 했고요. 브누아 드 라 당스에 이 작품으로 노미네이트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또 이 작품을 통해서 다른 기회들을 부수적으로 얻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허난설헌>이라는 한 시간짜리 발레 전막을 만들어서 해외 투어를 다녀오고, 올해는 평창에서도 공연을 올렸어요. <허난설헌>은 스토리가 있는 전막 발레였고, <요동치다>나 <빛을 가르다>, <쉐입 오프 팬더스>같은 작품들은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그 음악을 이미지로 풀어낼 수 있는, 보편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작품들이었어요.
이은경: 저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처음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제가 벨기에에서 살 때였어요. 그때 제가 했던 작업이 프로로서의 삶에서는 처음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되게 다양한 작업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국에서의 작업들은 주로 프로젝트 그룹의 형태로 이루어져서 딱 제 작업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창작자로서 함께할 수 있었던 작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용수를 오래 했지만,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 더 열려있는 스타일의 작업들을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한 7년 정도 그렇게 있다가 한국에 다시 들어오면서부터 제 이름을 걸고 작업을 해왔습니다. 벌써 3, 4년 정도 됐지만 아직도 제가 작가로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찾는 중인 것 같아요.
장은정: 저는 안무를 시작한 건 1990년 즈음부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뭘 만드는 걸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무용수로 춤을 추지만, 어렸을 적에 비주얼 좋은 무용수들 사이에서 ‘아, 나는 이걸로 싸우면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일찍 얻어서. (웃음) 성향도 그렇고,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서 일찍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작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인간에 대한 작품들을 해 왔어요.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중심에서부터 더 멀어질 수 있을까, 화려함이나 스킬로부터 벗어나서 내 안, 내 몸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내년 1월에 작업하고 있는 걸 준비 중입니다.
윤푸름: 오늘의 좌담 주제는 재공연과 레퍼토리화입니다. 안무가가 재공연을 하게 되는 동기, 그리고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해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 볼까 싶은데요. 재공연을 하게 됐을 때, 재공연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나요? 혹은 재공연의 필요성을 어떨 때 느끼시는지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윤푸름 안무가 ⓒ양동민
강효형: 저는 일단 소속이 분명한 사람이다 보니, 제 주변에도 많이 계시는 프리랜서 안무가 분들의 상황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있는 것 같은데요. 제 경우는 제가 스스로 재공연을 필요로 하기 이전에 작품이 올려 졌을 때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를 말이죠. <요동치다> 같은 경우는 저도 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췄었고 나머지는 제가 객석에 앉아있었던 작품들도 있었지만, 객석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반응이 좋은 작품의 경우에는 발레단에서 해외 일정 같은 것들이 잡혔다고 알려주시죠.
이은경: 한국에서 몇 회나 공연 하셨어요?
강효형: 저도 아직은 너무 신인이라 작품이 많지 않아요. 어떤 작품은 정말 딱 10분짜리로, 갈라를 위해 만든 작품도 있거든요. 데뷔작같은 경우는 이걸 재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당시 제가 처음 작품을 만든다는 것에 집중해서 만들었어요.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독일이나,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곳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었죠.
윤푸름: 그렇군요. 데뷔를 하자마자 다행히 작품이 잘 됐고, 또 작품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계기와 환경이 마련된 거죠. 그것이 잘 이어져서 재공연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또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고요.
강효형: 네, 지금까지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저조차도 좀 특이한 케이스이긴 합니다. 저희 발레단에서도 흔한 경우가 아니고요. KNB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름도 프로젝트이자 공연명이기 때문에 저희 무용수들이 꾸준히 참가작들을 내고 있고, 지원자들도 늘어가는 상황이지만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길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강효형 안무가 ⓒ양동민
이은경: 저는 말씀하신 것과 같이 풍족한(?) 상황과는 또 다른 상황에 있지만 그렇다고 대충 뚝딱뚝딱 만드는 건 아니에요. (웃음) 무용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 다르게 저는 시간을 더 많이 들일 수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 고민할 시간과 여유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용수로서나 안무자로서나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연습의 끝은 첫 공연이잖아요. 저는 현대무용으로 4회 공연 했던 것도 되게 럭키라고 생각하거든요. 첫 공연과 두 번째 공연이 또 다르고, 어쩌면 현대무용의 특성일 수도 있을 텐데 공연을 함으로써 작품이 유동적으로 변하고 쉐입이 만들어져가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이 거기서 끝나는 게 안무가로서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가 항상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아까 횟수를 여쭤봤던 것 같아요.
강효형: 저도 한 공연 당 다섯 번 이하였던 것 같아요.
장은정: 저는 모든 문제의 이전에는 작업자들이 작품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적어도 1년, 5년, 10년은 그걸 그대로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실상은 작업 여건은 또 그렇지가 않잖아요. 작품을 가지고 들어가면 그날 많은 것들이 유동적으로 바뀌게 되니까. 은경 씨는 아까 첫 공연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 이거였어.’ 라고 잡히는 것들이 있어요. 만약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면, 그 작품이 관객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재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 땅에서 작업자로 살아가면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많은 에너지를 줄일 수 있고,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재공연을 만들어나가기
윤푸름: 저도 예전 30대에는 제가 제 작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재공연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뽑아주시고, 초청받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할 수 있는 판이 마련되었어요. 저도 되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런 시점이 지나고 보니까, 이제는 불러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번 좌담의 주제를 받고 생각해보니까, 나는 정말 내 의지로 작업을 들여다보면서 재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안무가로서 스스로 내 작업을 봤을 때 내가 이걸 어떻게, 왜, 재공연을 하고 싶은지, 해야 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죠. 이런 안무자의 생각이 먼저라는 생각이 있어서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기관의 힘이 없어도 사실 올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또 하고 싶은 작업들은 해야 하잖아요. 그런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재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재공연은 상황이 늘 같지 않잖아요. 저에게는 공간이 바뀌는 게 굉장히 큰 숙제였어요. 그 공간을 생각해서 만들어 놨는데, 공간이 확 바뀌어 버리면 다른 세상인 거예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본인만의 방법을 한 번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장은정: 일단 공간이 너무 중요하죠. 작품의 본질,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이 작품의 지향점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극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꼭 그 극장이어야 하면 다른 곳에서는 재공연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작품 안에 이미 밀도가 있기 때문에 공간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은경: 저는 그렇게 작업을 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꼭 이 공간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의뢰받은 적이 없어서. 당연히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지만, 다른 곳에서 했을 때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더 재미있어질 때가 좀 많아요. 다른 곳에 갔을 때 ‘여기에서는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같은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 부분이 제 작품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무용수의 문제는, 저희는 여건이 항상 힘들잖아요. 하지만 그것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주로 재미있는 걸 발견하려고 해요. 새로운 환경을 활용하려는 방향으로요.



이은경 안무가 ⓒ양동민
장은정: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작업을 계속 해오다 보니까 지치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더 가까이, 서로를 잘 아는 사람과 작업을 하게 되고. 또 자꾸 기관이나 직업 무용단이 생겨야 할 필요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래야 좋은 작품을 레퍼토리화 할 수 있죠. 제가 이 주제로 좌담에 간다고 했더니 지인이 저에게 해준 말이 있어요. “레퍼토리는 중고품이 아니다.” 재공연 작품은 중고시장에서 구하는 중고품 같은 게 아니에요. 어쩌면 굉장히 의미 있는 신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거죠. 레퍼토리에 대한 지원금 섹션을 따로 만들어둔 사업들도 있었는데, 이 재공연들의 경우 지원금 액수가 더 적어요. 그러나 재공연을 한다고 해서 돈이 적게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니거든요. 오히려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해줘야 작업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건데.
이은경: 제가 이 질문을 보면서 생각을 했는데, 이 재공연이나 레퍼토리라는 개념이 정확해야 할 것 같아요. 재공연이라는 건, 저는 사실 1년에 50회 이상은 해야 재공연이고 레퍼토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달에 한 번 하는 공연도 연습은 다시 해야 하는데,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면 다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관점에서 재공연 레퍼토리의 개념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은정: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이하 <바비레따>)>의 경우, 관객 참여형 공연이에요. 같은 멤버로 8년째,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하고 있어요. 사실 이런 형태의 공연이 무용계에서 전무후무한 프로젝트였거든요. 아마도 이 작품 때문에 좌담에서 불러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재공연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공연은 처음부터 관객을 만나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완성을 지을 수가 없어요.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너무 달라지기 때문이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같은 멤버들이 바뀌지 않고 공연이 여전히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작업에서도 역시, 네트워크의 한계가 있고 지원금 사업에 어플라이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죠.
윤푸름: 우리나라에는 레퍼토리화와 그런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했을 때,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문화인 것 같아요. 너무 빠르게 소비되고, 정보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사람들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면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얼마 전에 핀란드 교육에 관해 알아보다가, 왜 그곳의 교육은 우리와 다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환경의 차이라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더라고요. 핀란드는 국토의 넓이가 남한의 다섯 배인데, 인구는 서울의 절반이에요. 드문드문 살고 있기 때문에, 협업이 생존에 필수가 된 거죠. 굳이 빠른 정보가 필요 없고, 대신 생존을 위해 공생을 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만 하는 것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밀집되어 있는 좁은 땅에 인구는 많다 보니까 경쟁을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어딜 가나 선별의 과정이 필요하고, 지원 사업도 경쟁해야 하고, 그래서 이런 문화와 구조 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은경씨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5회 공연도 재공연이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재공연과 레퍼토리가 과연 가능할까? 여기에서 무엇을 찾고 나눌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또한 수요가 있어야 레퍼토리가 가능한데, 아까 장은정 선생님이 굉장히 드문 케이스라고 말씀하셨지만 또 그렇게 8년 째 작품을 찾아주시고. 그게 네트워크가 정착이 되어서 가야할 것 같아요. <바비레따>는 정말 특별한 케이스잖아요. 저는 그 공연의 기획이 너무 좋았어요. 잘 될 것 같았고. 하지만 그런 것이 쉽지는 않죠. 모든 작업이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잘 되었으면 좋겠고, 부럽고, 그런 것도 있지만 또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들기도 합니다.



윤푸름 안무가 ⓒ양동민
장은정: 그런데 사실 저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게, 지금 여러분들이 이야기하는 그 고민 끝에서 내가 선택한 것이었어요. 사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죠. 항상 이야기하는 무용의 대중화,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었잖아요. 내가 스무 살 때도 했던 말이고, 그때도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인데. 그런 고민 속에서 춤이 단지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춤의 순기능을, 어떻게 관객과 나눌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 고민 끝에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이었고, 그게 관객들의 열망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결국 겸손한 마음으로 어떻게 더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이야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고. 거기에 더불어 행정적으로 지원이 되면 더 좋겠죠. 지원금 사업에서 일정 비율을 레퍼토리에 할당한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다듬어 갈 수 있도록. 왜냐하면 지금 우리 무용가들에게는 시간이 너무 없어요. 작업자들이 리프레쉬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작업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죠. 1년도 생각을 못하고 두 달에 하나씩, 세 달에 하나씩 작품을 내 놓는 상황도 있거든요. 아까 윤푸름 선생님이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게 럭키가 아닌 거예요. 새로운 신상이 나오면 너도 나도 찾지만, 정신없이 돌다보면 어느 날 황야에 나 혼자 있게 돼요. 그러면 안무자는 거기서부터 혼자 새롭게 시작을 해야 되는 거지.
신작과 재공연 사이에서
윤푸름: 예술과 창작은 끊임없이 지속이 되어야 하잖아요. 하나를 깊이 있게 바라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고민하는 시간도 물론 필요하지만, 또 창작자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죠. 저도 제 작업을 들여다보면서 재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들도 있지만, 신작을 열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나는 왜 여기 머물러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안무가 입장에서 선택의 측면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지금 재공연을 하고, 한 가지를 더 깊이 있게 바라보아야 하는 시점일 수도 있고, 신작을 통해 내가 가진 것보다 좀 더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을 수도 있겠죠. 신작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기관들에서 신작을 요구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것들을 선호하고, 지원금을 더 많이 주는 경우들도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이은경: 지금 흥미로운 부분은, 저희가 각자 다 다른 관점으로 재공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먼저 재공연을 정말 안무가가 원하는가, 이걸 한 번 질문해 보아야할 것 같고. 저는 재공연을 원할 때, 이 작품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재공연을 원한다는 마음이 지금 들어요. 하지만 제가 그 이상, 50회의 재공연을 바라는 안무가는 아니에요. 물론 그런 안무가도 있겠죠. 그러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재공연을 다시 리서치 해야 할 시기가 있잖아요. 저도 지금을 놓치면 아마 이걸 다시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신작을 생각하고 다른 지원사업을 알아보겠죠? 항상 새로운 작업이나 그 텀이 정확하게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윤푸름 안무가에게 <길 위의 여자>를 지금 다시 리서치해서 재공연을 하라고 한다면 분명히 이게 맞지 않는 상황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안무가에게 재공연에 필요한 리서치를 하는 기간, 디벨롭하는 기간에 대한 지원이 자체적으로 들어가는 환경이 일어난다면 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은경 안무가 ⓒ양동민
장은정: 윤푸름씨의 <길 위의 여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죠. 지금 벌써 몇 회 공연 했어요.
윤푸름: 그 작품을 가지고 한국에서 축제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거기까지예요. 더 불러주지 않고, 또 너무 많이들 보게 되니까 축제에서도 더 이상 안 불러주더라고요. 그런데 또 저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작품이 올해로 10년이 되었는데요. 세월이 10년이 지나면서 제가 변했더라고요. 제가 <길 위의 여자>를 만들 때의 지점에 저는 더 이상 있지 않아요. 아직도 그 작품을 초청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늘 감사합니다만, 제 마음 한 구석에는 또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고 있는 제가 있거든요. 저는 아까 효형 씨가 말씀하신 대로 내 중심보다는 기회가 자꾸 주어져서 신작을 끊임없이 만들었던 케이스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돼요. 말씀하신 대로 방향성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강효형: 저는 발레가 베이스인 사람이고 댄서이자 발레 공연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국립발레단이라는 이 장은, 그래도 안정적인 팬 층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요. 어떤 레퍼토리를 한 번 올릴 때마다 관객들이 다 보러와 주시고. 이번 11월에도 신작이 올라가는데, 신작을 이렇게 처음 선보일 때는 일부 관객 분들께서 ‘클래식을 보고싶다.’는 말씀을 주시기도 해요. 여전히 클래식을 원하고 계시는 거죠. 저도 클래식 전공자이기 때문에 클래식의 메리트를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아까 이미 아는 작품이기 때문에 다시 보지 않으려는 경우를 말씀해주셨는데, 발레에서는 오히려 다른 양상이 있어요. 캐스팅이 바뀔 때마다 보고, 이미 너무 많이 봤는데도 다음 해에 또 와서 보고, 호두까기를 10년 째 보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안무가로서 이런저런 다양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실 저는 시스템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많이 겪어보지 못한 신인이라. (웃음) 제가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레퍼토리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따라갈 수 있겠죠. 대신 이제 하나를 길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잘 만들면 그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해요.



강효형 안무가 ⓒ양동민
윤푸름: 안무자들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기획 마인드가 안무가들을 조바심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이슈를 만들고, 눈요기가 있어야 관객들도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래서 특별함을 요구하고, 신작을 찾는 것 같아요. 저도 늘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슬프더라고요. 이것보다 본질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 제가 뉴욕에 공연을 갔을 때 너무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 작품들이 올드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새로움 보다는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서 놀랐는데, 더 놀라운 건 관객들이 매년 그 공연을 보러 가서 박수를 쳐 준다는 거였어요. 매니아층이 다 있는 거죠. 말하자면 레퍼토리가 이미 되어있는 거예요. 인형극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관객 수요층이 있는 거죠. 뉴욕이라고 다 핫한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늘 자기의 바운더리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작품들이 취향으로 존중받고 레퍼토리화 되어서 끊임없이 다양한 무대들을 볼 수 있는 거죠.
이은경: 한국의 경우는 어쩌면 중간 매개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신작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작을 선호하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별로 없거든요. 아마 제가 재공연을 하고 싶은데 신작을 요구받으면 강압적이라고 느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을 지원해주는 쪽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분들에게 중요한 포인트들이 또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뉴욕에 그렇게 다양한 장르가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중간자가 분명히 있을 텐데, 한국에서는 저는 그런 중간자를 많이 만나보지 못한 것 같아요.
장은정: 어딘가에 지원 사업을 어플라이 하는 시장에는 거의 신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것도 좀 본질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관객의 문제도 아니고, 지원을 해주는 관의 문제도 아닌 것 같아요. 무용하는 사람들만 볼까요? 우리가 실제로 다른 작업들을 잘 보러 다니는지를. 발레나, 한국무용, 다른 공연들을 보러 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박수쳐주고 응원하는지. 이런 것들이 정말 부족한 것 같아요. 진짜 우리가 각성하고 변해서 다른 사람을 향해 박수쳐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장은정 안무가 ⓒ양동민
윤푸름: 네.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볼까 싶습니다. 지금 작업을 한창 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실 테고, 얼마 전에 끝난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그냥 안무가로서 안무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에요. 요즘 작업을 하실 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관심사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움직임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축구 경기를 하는데, 그 축구 경기가 작품처럼 보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런 것들을 만났을 때 재미있고 호기심이 들곤 합니다. 다른 분들은 또 어떤 데에 관심이 있고 무엇 때문에 안무를 하시는지, 편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강효형: 저는 안무를 할 때, 메시지나 스토리텔링 보다는 항상 이미지적으로 접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이미지로 남는 춤을 만들려고 해요. 아직은 저는 안무가로서 갈 길이 머니까, 더 복잡하고 실험적인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또 발레라는 것을 바탕으로 관객들이 어떻게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것과 독창적인 것들을 어떻게 얹을 수 있을지 이런 숙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이은경: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지 한 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작업을 하다보면, 또 작업이 너무 많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정신없이 사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고. 계속해서 안무를 하고 싶은데,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하면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매일 하루 세 끼 밥을 챙겨먹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도 하면서 스트레스 받아 살 빠지지 않고 어떻게 포동포동하게 작업을 영위할 수 있을지, 삶의 패턴을 가다듬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장은정: 처음에도 이야기한 거지만, 요즘에 제가 관심 있는 건 더 행복해지는 거예요.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할 것. 그 다음에는 변해가는 나의 몸으로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요즘 완전히 빠져있는 탈춤. 이런 것들이 나의 요즘 관심사예요.
윤푸름: 이렇게 같이 공존하는 게,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 선생님들도 그렇고, 정말 춤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가치를 두고 살 수 있는 삶이 부럽고 또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많은 고민을 안고, 재밌는 것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좌담은 이 정도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오늘 좌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왼쪽부터)윤푸름, 장은정, 조형빈, 이은경, 강효형 ⓒ양동민

윤푸름
몸에 거주하고 있는 나를 오랜 시간 춤을 통해 찾아오고 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싶고, 예술교육과 안무에 관심이 있다. 얼마 전 <보다>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다가올 11월 <길 위의 여자> 오스트리아 공연을 설레며 준비하고 있다.

장은정
장은정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대명제를 믿는다. 여전히 그것은 요원하지만 어느 날, 대학로 어떤 무대의 젊은이들에게 삼겹살을 사주고 싶은 '삼겹살 할머니'의 꿈을 꾸는 사람. 그리고 어디에서든 춤을 추고 싶은 사람.

이은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 (2002), 벨기에 P.A.R.T.S (2006) 졸업후 2008-2013년까지 유럽에서 토마스 하우어드, 로버트 스테인, 피터 암프, 앤 쥬런 등의 아티스트와 작업하였다. 2013년 귀국후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무용수로 꾸준히 활동함과 동시에 최근 <무용학시리즈 vol. 2: 말, 같지 않은 말>을 안무, 그 외 <어긋난 숭배>, <무용학시리즈 vol. 1: 분리와 분류>를 안무하였다.

강효형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입단, 2015년 <요동치다>로 안무가로 데뷔하였고 2016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 뒤 <빛을가르다>와 국립발레단을 위한 전막작품 <허난설헌-수월경화>를 안무하였고 <요동치다>와 <허난설헌-수월경화>로 캄보디아, 라오스, 독일, 러시아, 캐나다 등 해외 각지에서 공연을 올렸다. 최근 칠레 산티아고 발레단에서 초청받아 <Shape of panthers> 라는 신작을 칠레에서 공연하였다.


조형빈_웹진 <춤:i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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